266화
한편 대마도주의 아들인 대마불은 최인범의 배려로 살아남아 시종으로 일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항상 지근거리에 둘 대마불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다. 이유는 대마도주와 면대하고 나서 대마불에 대해 조금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마도주와 얼굴의 윤곽이 너무 달라.’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법이라 느낌으로 라도 닮은 점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마불은 이목구비 중 어느 것 하나 대마 도주와는 닮은 점이 없었다. 형제들과도 전혀 다른 얼굴형이다.
‘이상하네.’
문뜩 친아들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대마 도주를 아비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정이 하나도 없었다. 형제들과도 상당히 이질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일단 서자기 때문에 그런다 생각을 해보지만 그게 다가 아닌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시녀들 중에 그래도 많은 내막을 알만한 시녀를 만나 슬며시 물었다.
“마불의 어머니는 어디 출신인가?”
“탐라 출신입니다. 그리고 해녀고요.”
“그럼 강제로 납치되어 끌려온 것인가?”
“그렇지요. 여기 있는 여자들 중에 반 이상이 그런 여자들입니다. 마불의 어미는 저 애가 7살 되던 해에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했어요. 제일 큰 형이 아비 옆에서 떠나라고 심하게 핍박해서요.”
“그렇군.”
어미가 해녀출신이라 그런지 대마불은 심폐기능이 뛰어나고 또한 물과 너무 익숙해 수영이나 잠수도 아주 잘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그가 칠삭둥이라는 사실이다.
칠 개월 만에 태어난 아이는 미숙아라 심폐기능이 뛰어나기는 곤란하다. 물론 어려서는 힘들게 자라도 나중에는 정상으로 살 수는 있지만 남보다 뛰어난 신체적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군.’
그런 내용 말고도 여러 가지 면에서 대마불은 의문점이 많은 소년이다. 아비나 형제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으로 변해 멀리 부산포로 끌려갔어도 별로 개의치 않고 자신의 할 일만하고 있었다.
상당히 친숙한 사이가 아니면 쉽게 친해지지 않은 백두와도 빠르게 친해졌다. 대마불은 흑혈풍과 적혈풍을 끌고 자주 바다로 나가서 수영을 시킨다. 그리고 다시 계곡으로 가서 몸을 씻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말들은 전에 비해 피부가 더 깨끗하고 윤이 반들반들하게 변했다. 시종으로 말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주로 말들이나 백두와 지내고 있었다.
‘어미에게 배웠나? 말도 잘 다루네.’
최인범은 일단 어미가 탐라 출신이라니 호감이 가고 있었다. 물론 영민한 머리나 물과 친하고 어린 나이에도 벌써 바람과 날씨의 특성을 본능적으로 아는 소년의 뛰어난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를 철천지원수로 여기지만 않으면 잘 키워보고 싶은 녀석이야.’
자신이 홀로 떨어져 사는 처지라 외로움을 가끔 느껴서 그런지 정이 가는 녀석이었다. 마치 오래전에 월녀에게서 느꼈던 혈육과 같은 이끌림이다.
바닷가에서 여전히 말들에게 목욕시키던 대마불이 흑혈풍을 타고 빠르게 저택으로 와서 보고 했다.
“총병관님, 기다리시던 판옥선 10척이 왔어요.”
“그러냐? 그런데 내가 판옥선을 기다리는 것은 어찌 알고?”
“철갑웅 아저씨가 알려줬어요.”
단순한 이야기지만 대마불은 자신들의 심복부하들인 철씨 삼형제와도 무척 친했다. 주로 바다로 나가서 잠수해서 채취해 오는 해산물을 그들에게 주면서 친해지는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등에 짐을 진 격군들이 저택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물품은 소모성 군수품인 화살이나 육포 그리고 말에게 먹일 콩이다.
기다리던 판옥선들이 입항했으니 최인범은 철병웅에게 지시했다.
“네가 생아편을 가지고 판옥선과 같이 봉황성으로 떠나.”
“넷!”
“판옥선에 여자들도 모두 싣고 가고.”
조선의 사령관인 한정문은 섬의 모아진 처녀들을 별도로 100명을 뽑아 최인범에게 넘겼다. 데리고 가서 봉황성에 정착시키라는 뜻이다.
최인범이 노비가 아니고 봉황성으로 데리고 가서 혼인을 시킨다고 하자 섬의 처녀들의 경우 그렇게 조치를 내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린 나이에 평생 노비로 사는 것보다 나은 생활이라고 판단해서 약간은 베푸는 행동이다.
“배에서 처녀들이 무슨 일 당하지 않게 수군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시켜.”
“넷!”
“만약 그런 불상사가 한 건이라도 생기면 네 목부터 잘라 버릴 것이니 명심해.”
“명을 따르겠습니다.”
“봉황성으로 가면 여자들은 모두 공주부에서 머물게 하고.”
“넷!”
나중에 오게 된 판옥선이 10척이 먼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은 늦게 포섭된 유능한 조선출신 선원들이 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판옥선에는 생아편은 물론 이곳에서 챙긴 귀금속들도 같이 보내고 있었다.
최인범은 항상 수중에 들어오면 그 즉시 투자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철병웅에게 지시했다.
“재물들은 가지고 가서 자순에게 전달해. 사용처는 압록강 상류에서 날라 오는 원목을 사서 잘 말리는 작업부터 하고 갑판으로 사용할 송판을 만드는데 모두 사용하도록 전해.”
“넷!”
판옥선을 건조하는 데는 6개월 정도면 충분했다. 소나무를 말리는 기간은 최소한 2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나중에 자신이 돌아가면 그때 쉽게 배를 건조할 수 있도록 재료부터 준비시키는 것이다.
“생아편은 모두 장주한에게 전해서 천진의 발해 여각으로 보내서 소 부인이 북경에 팔도록 하고 그래서 생긴 자금은 대장간으로 보내서 화포나 소총 제작에 사용하도록 전하고.”
“알겠습니다.”
“중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가니 너무 무리해서 운항하지 말고. 조선 수군의 도움을 수시로 받도록 해.”
아직은 조선과 마찰이 없는 긴밀한 사이라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철병웅이 짐과 처녀들은 싣고 판옥선 10척을 끌고 떠나자 최인범도 약속대로 저택에서 나오게 됐다.
“오늘부터는 야영하며 사냥한다.”
“넷!”
최인범은 아직 작은 천막을 사용해 야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기마병들과 같이 대마도의 산들을 돌아다니면서 훈련을 했다. 왜의 규슈로 넘어가면 취해야 할 행동들을 예상해 훈련을 하는 것이다.
해안에서 판옥선으로 연락해 함포 사격으로 지원을 받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이제 깃발 이외에 유리를 이용해 빛으로 신호를 보내거나 또는 연기나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방법으로도 함포 사격 지원을 하도록 해.”
“넷!”
주로 최악의 경우 해안에서 기다리는 판옥선으로 승선하기 위한 방법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 때문에 기마병들은 전투 수영도 배우고 있었다. 아울러 판옥선에도 말이 배에 올라탈 수 있도록 새로운 장치를 만들어 장착했다.
쾅! 쾅! 과광!
해안에 피워놓은 모닥불이 깜박거리자 신호에 따라 판옥선에서 함포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그런 사격 훈련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섬에서 판옥선의 해상 훈련을 지켜만 보던 최인범이 드디어 판옥선에 올라 직접 지휘하며 훈련에 임했다.
봉황성의 수군들이 판옥선 10척으로 근해에서 해상훈련을 하는 중.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 심하게 흔들렸다. 판옥선의 선미에서 훈련 상황을 지휘하던 최인범이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어!”풍덩!
심하게 부는 바람에 휘청하더니 짧은 비명을 토하고 갑옷을 입은 상태로 바다 속으로 빠져 버렸다. 다들 놀라서 허둥대는 순간 대마불이 급하게 판옥선에서 바다 속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잠시 뒤에 대마불은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멈춘 최인범을 끌고 바다 위로 올라왔다.
“푸아!”
대마불이 최인범의 허리춤을 잡고 물위로 올라오자 철갑웅이 크게 외쳤다.
“빨리 끌어 올려!”
“넷!”
최인범은 갑판 위에 올라온 뒤에 길게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후! 죽다 살았어.”
무거운 갑옷을 입은 상태로 물속으로 들어갔으니 대마불이 구하지 않았으면 분명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위기순간이었다. 수군들은 다들 대마불이 용감하게 행동했다고 칭찬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총병관께서는 돌아가실 수 있었어. 정말 수고했다.”
그러나 최측근인 철갑웅이나 철을웅은 그저 옆에서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갑옷이 무겁게 보이겠지만 사실 무척 가볍다.
총병관의 수영실력은 판옥선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바다 속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도 아니다. 더구나 무술이 뛰어난 총병관이 겨우 바람 때문에 중심을 잃고 배에서 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총병관님께서는 대마불이 무척 마음에 드신 모양이야. 저 애의 충성심을 일부러 시험하다니.’
총병관은 때로는 모질어 보이지만 한번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믿고 의지하는 성품이다. 자신들을 항상 옆에 데리고 다니는 이유도 경호의 필요성도 있지만 믿고 정이 그리워 같이 다니는 것이다.
대마도에서 포로 상태에서 시종이 되어 대부분 대마불을 조금은 낮은 신분으로 대했다. 그러나 이번의 사건으로 대마불의 위상이 높이 올라갔다.
대마도의 주민들이 모조리 이주민들로 새로 교체가 되자 대마도호부도 온전하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마도에는 보병으로 1천명, 포병으로 500명이 항구 양쪽에 2개의 진을 구축해 주둔하게 되었다.
이 무렵. 한양에서는 큰일이 터졌다.
늦은 봄의 아직 새벽이 밝아 오기 전인 깊은 어둠을 뚫고 대궐에서 천아성이 크게 울렸다.
뚜우우웅! 뚜우우웅!
천아성 소리가 크게 울리자 한양 도성의 백성들은 통곡하고 있었다.
“전하! 어이해서 백성들을 버리나이까?”
“전하!”
백성들이 도성에서 울고 있고 대궐 안에서도 여자들이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그동안 나름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던 중종이 드디어 숨을 거둔 것이다.
조선의 백성들은 빠르게 상복을 입고 주상의 죽음을 애도했다. 잘못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말기에 벌인 정책들은 그런대로 백성들의 삶을 전보다는 조금 풍요롭게 한 점들이 많았다.
군왕의 자리는 하시라도 비울 수 없으니 왕세자는 빠르게 즉위해 국정을 살피게 되었다. 효심이 깊은 새로운 군왕은 대신들을 모아 놓고 지시했다.
“영상께서 주도해 국정을 살피세요.”
“전하, 황공하옵니다.”
세상일이란 미래를 전혀 알 수 없다지만 중종의 다소 이른 죽음은 조선이 원 역사와 달리 아주 심하게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왕세자는 원역사보다 몇 년 빠르게 왕위에 오르고 권세를 부리던 문정황후도 이제는 교태전에서 나와 다른 궁으로 떠나고 있었다.
교태전은 중전이 머무는 곳이라 새로 중전에 오른 박빈에게 넘겨줘야 한다. 나름 남편이 더 오래 살 것으로 판단하던 문정왕후는 이제 윤대비라는 칭호를 받으며 뒷방 늙은이로 살아야 하는 신세가 참으로 한심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마음속으로 이렇게 각오를 다지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윤대비는 나이어린 경원대군을 데리고 대비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제는 막강한 권력은 고사하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위기가 닥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