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영파에서 지내는 철씨 삼형제가 자신의 명령만을 듣는 처지라 그들에게도 별도로 서찰을 써서 설화에게 넘겨주었다.
“이 서찰을 가지고 가야 같이 떠날 것이니 가져가시오.”
“예!”
“절대 외부인은 모르게 비밀리에 운반해야 합니다.”
“알았어요. 조심하죠.”
최인범은 자신이 보수로 받았던 비단 1000필과 반군들에게서 탈취한 재물 중에서 고아를 사고 남은 재물인 어음을 모두 넘겨주며 당부했다.
“조선으로 어음을 가지고 돌아가야 아무 소용없으니 설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물건으로 모조리 사가지고 돌아가시오.”
“알았어요. 비단으로 가가지고 가서 말과 바꾸면 되겠네요.”
여진족들이나 조선에서는 명나라에서 생산되는 고급 비단을 상당히 좋아한다. 그 때문에 고급 비단을 사가지고 돌아가면 필요한 물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설화는 고급 비단을 사가지고 돌아가서 군사력 양성이 필요한 말을 대량으로 구입할 계획이다.
최인범이 넘겨준 어음으로 적어도 비단 3000필 이상을 사갈 수 있었다.
‘제일 오지인 동여진으로 가져다 팔면 적어도 군마 5000필은 충분히 구할 수 있어.’
남편인 칸의 말대로 감자가 재배하기가 쉽고 많은 수확을 하게 된다면 새로운 작물 재배로 동여진족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배에 성공만 하면 세력 확장에 큰 힘이 될 거야.’
새로운 작물을 보급만 해줘서는 그들을 휘하부족으로 거둘 수는 없다. 하지만 군사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선심을 쓰게 되면 쉽게 포섭이 가능했다.
‘조선에서 북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지금 보다는 대폭 늘어나게 될 거야.’
설화의 꿈은 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대해 지고 있었다. 이곳으로 남편을 찾아와 다시 만나보니 그런 야망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설화가 돌아가는 이동로도 정해 주었다.
“우선 산동의 등주로 가서 고아들과 종자는 무역선으로 보내고 산해관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말과 양을 모조리 가지고 가시오.”
“양도 사서 개마고원으로 보내려고요?”
“그렇소. 내가 많은 양과 말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가면 혹시 말썽이 생길 수 있으니 설화가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소,”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최인범은 자신에 행동에 대해 명나라나 조선에서 주시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미 조선에서는 윤임이 자신을 해하려는 행동을 보이니 특히 더 조심스러웠다.
떠날 준비를 마친 설화는 최인범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돌아가서 개마농장이나 또는 이도백하에서 지낼 겁니다.”
“알았소. 당분간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지 말고 자중하라고 전하시오.”
“그렇게 하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지만 설화는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중요한 물건을 빨리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그 때문에 서둘러 새로 구한 작물을 배에 싣고 급하게 떠났다.
부두에서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최인범은 슬며시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설화와 헤어지고 나자 포르투갈의 범선에서 소총을 구하기 위해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혼자 야영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기로 정해 행동이 은밀했다.
최인범은 보제사로 가서 노스님을 만났다. 떠난다고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절의 탑에서 만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스님, 보타도를 떠날까합니다.”
“그런가? 여기를 떠나서 바로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법명이 원선이란 노스님은 최인범이 떠난다고 말하자 약간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전에 정화의 배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내가 절에 있는 서고를 모조리 찾아보았네. 혹시 자네에게 필요한 내용이 쓰여 있나 살펴보았어.”
“뭐가 남아 있던가요?”
“정화의 해외 원정을 다닐 때 같이 떠났던 스님이 기록해 남겨놓은 서책을 몇 권 찾았으니 자네가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가게. 그 스님도 고려에서 이곳으로 넘어 왔으니 자네가 가지고 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어.”
“감사합니다.”
원선 스님은 사찰의 경내를 천천히 걸어가며 설명했다.
“명나라에서 해금정책을 바꿀 전혀 생각이 없어 보이니 내가 찾은 서책들은 이곳에 있어야 아무 소용이 없어. 자네가 가지고 가서 필요하면 쓰도록 하게.”
최인범은 원선 스님과 같이 절의 서고로 들어갔다. 서고에는 수많은 불경들이 비장되어 있었다. 고려에서 만든 고려대장경이나 기타 불경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특이한 것은 명나라 초기에 해외 원정을 떠났던 정화가 타고 다녔다는 대형 선박들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었다.
최인범은 서책을 대충 넘겨서 읽어 보며 중얼거렸다.
“스님,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군요.”
“자네는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해양을 통한 무역에 힘을 써주기 바라네. 조선은 명나라와 같이 해금정책을 고수하면 바깥세상에 대해 너무 몰라 뒤질 수 있으니 그런 점을 항상 명심하게.”
“잘 알겠습니다.”
원선 스님이 넘겨준 서책들이 선박을 건조하는 설계도는 아니다. 하지만 대형선박을 건조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나 또는 선박을 운용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서책에는 또는 동남아시아나 인도양 지역의 지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천천히 서책을 읽어보던 최인범은 화들짝 놀랐다. 서책에는 조선의 해안에 있는 섬에 대해서도 아주 세밀하게 적혀있었다.
“스님, 이 책에는 조선의 해안지역이나 바다에 대해서도 기록이 많군요.”
“고려 말의 기록이라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군. 남해안 지역에 있는 섬들이나 해안 지역에 대한 기록이 많이 적혀 있으니 언젠가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네.”
일종에 항해 일지로 특정한 해역의 바다 속에 숨어 있는 암초나 기타 지형지물이나 또는 그곳에 사는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세밀하게 적혀 있었다.
‘이것을 그림으로 기록하면 해도가 완성될 수 있겠어.’
세밀한 지도를 그릴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많은 지역에 대한 해도 제작이 가능하게 생겼다. 물론 기억에 의존하니 한계는 있으나 전혀 모르는 상태보다는 매우 유용한 서책들을 찾은 것이다.
원정 스님과 헤어지고 나서 보타도를 떠난 것으로 위장하고 숲속으로 들어왔다. 옆에는 백두가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혼자기 때문에 움직이기가 편했다.
최인범이 상당히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자 백두도 같이 긴장해서 주변을 살폈다.
“백두! 누가 다가오는지 잘 살펴!”
컹! 컹!
명령을 받자 백두는 빠르게 앞장섰다. 사냥도 항상 같이 다니고 늘 같이 지내서 그런지 주인이 어떤 요구를 하는지 알고 빠르게 움직였다.
보제사의 남쪽에 위치한 백화산 골짜기에서 작은 천막을 치고 야영하며 포르투갈의 범선을 살폈다. 계속 살펴봐도 소총을 든 선원은 전혀 보이지 않고 배의 선측에 작은 대포들만 보였다.
‘범선 안으로 들어가야 소총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겠어.’
최인범은 결국 범선 안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수색해 보기로 결정했다.
침투할 범선의 구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조타실이나 또는 선장실로 침투해 들어가야 필요한 물건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칫하면 선원들에게 들켜 위험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범선과 다소 떨어진 풀숲에서 숨어 기회를 노렸다.
설화와 헤어진 지 벌써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범선을 살피며 한 편으로는 먼저 떠난 설화 일행이 은근히 걱정이다. 그들이 지나가는 지역에는 반군들이 산발적으로 움직이니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빨리 범선을 살피고 말을 타고 따라가면 중간에 만날 수 있어.’
바스락바스락. 컹!
해안가의 약간 높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범선을 살피는 중에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옆에 있는 백두가 반갑다는 듯이 한번 짖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르렁 거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이 아니다. 하지만 혹시 몰라 급하게 뒤를 돌아보자 설화와 같이 떠나라고 지시했던 찰갑웅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최인범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왜 여기로 와?”
“칸! 다른 사람은 모두 마님과 같이 북쪽으로 떠나고 저는 옆에서 돕기 위해 남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이미 해어졌다니 명령을 어겼다고 나무래야 소용이 없었다. 그런 명령불복종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따져도 된다. 그래서 이내 궁금한 점을 물었다.
“고아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떠났고?”
“넷! 설화 아씨는 배를 이용해 항주로 이동하고 항주에서 비단을 사서 대운하를 따라서 북쪽으로 간다고 합니다. 저는 배를 한척 빌려서 사공 2명과 같이 왔습니다.”
“남겨 두라는 말은?”
“영파 여각의 마방에 맡겨 두었습니다. 모두 6필입니다.”
“알았어. 일단 왔으니 같이 움직이기로 하지.”
“넷!”
위험하기 때문에 모두 먼저 떠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영파에서 지내던 철갑웅은 설화와 같이 떠나지 않고 이곳으로 찾아왔다. 큰 몸집과는 달리 생각이 깊은 철갑웅은 최인범이 혼자 남게 되자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철갑웅은 범선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인님, 밧줄을 준비해야 되겠네요. 그리고 두건이나 가죽 가방도 준비하고요.”
“그게 좋겠군. 어서 준비해.”
“넷!”
정상적으로 포르트갈 상인과 거래한다면 굳이 혼자 남겠다고 주장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최인범은 분명 필요한 뭔가를 구하기 위해서 범선으로 침투하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러니 침투 작전에 필요한 준비물은 철갑웅이 이미 챙겨 놓고 있었다.
범선의 동태를 살피며 기다리는 중에 어느새 초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범선으로 침투하기는 초저녁 보다는 날이 새기 직전인 새벽이 더 좋으나 자칫하면 범선이 새벽에 항구를 떠날 수 있으니 지금 들어가야 한다.
‘다행이 선원들이 대부분 하선한 상태군.’
범선을 살피자 선원들은 거래가 모두 끝나서 그런지 모두 해변으로 나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배 안에서 너무 오래 지내서 그런지 보초 서너 명만 남기고 모여 있었다. 술에 취한 선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와글와글
선원들이 비틀거리며 향하는 곳은 붉은 등이 켜져 있는 색주가다. 숙박업소라는 점에서는 여각과 거의 같으나 색주가는 몸을 파는 여자들이 항상 대기하는 곳이다.
‘창기를 만나러 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