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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10화 (210/519)

210화

포르투갈 선원들이 독한 술을 좋아하다고 하니 소주를 넘겨줄 생각이다. 고기를 안주삼아 같이 마시면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낼 속셈이다.

잠시 뒤에 식량과 같이 소주나 고기들을 가져오자 그것들을 넘겨주며 말했다.

“식량을 가져 왔으니 물건을 넘겨주시오.”

“그럽시다.”

포르투갈 선원은 커다란 자루에 감자와 고구마를 가득 담아 가져왔다. 의외로 옥수수도 있었다. 감자가 20포대 고구마가 20포대, 옥수수20포대가 있었다.

식량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수량을 가지고 다녔다. 이런 정도 수량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재배에만 성공하면 내년에는 최소한 작은 고을 정도는 보급이 가능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1포대에 밀을 3포대를 넘겨주자 거래하던 선원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새로운 작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소.”

“그렇습니다. 진귀한 작물은 어떤 종류라도 구해서 길러보고 있습니다.”

최인범은 여전히 화초 기르듯이 길러본다는 식으로 말해 그들의 의심을 피했다. 사실 흔한 작물이라 선원들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소? 그럼 이런 것도 혹시 필요하시오? 배에는 아주 매운 후추 씨와 목화씨가 있은데.”

“매우 후추와 목화씨요?”

“그렇소, 씨로 기름을 짜면 고소할 거요.”

“알겠습니다. 가져와 보세요.”

선원은 범선 안으로 들어가 매운 후추 씨라고 하면서 작은 포대에 들어 있는 씨를 가져왔다. 최인범은 선원이 넘겨준 매운 후추 씨를 살피다가 화들짝 놀랐다.

‘좋았어. 이건 분명히 고추씨야.’

고추가 없어서 항상 다소 민민한 백김치를 먹고 고추장이 없어 조금은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그런데 의외로 왜로 가서 구하게 될까 했던 고추씨를 다량으로 구하게 되자 신이 났다.

그동안 오래 기다린 보람이 한 번에 찾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민족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작물이고 고추가 생기면 식생활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목화씨도 씨알이 상당히 굵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개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수확 품종 같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총만 구할 수 있다면 모두 이루어지게 된다. 일단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고추씨를 밀과 교환하고 나자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빨리 이것을 가지고 영파로 돌아가. 종자이니 너무 뜨거운 장소에 보관하면 변질될 염려가 많으니 다소 서늘한 곳에 잘 보관해.”

“넷!”

소총은 선원들을 설득해 봐야 거래하거나 또는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무기인 소총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감자나 고구마 등 신품종인 작물 재배가 더 급했다.

지금 조선으로 떠나야 파종 시기가 적당하니 서둘러야 된다. 1년 이상 파종이 늦추어 지면 그만큼 일반 농민들에게 보급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명나라도 가뭄으로 기근이 아주 심하지만 조선도 전년도에 태풍과 가뭄으로 기근이 심해 진휼청을 설치할 정도로 백성들의 삶이 고달팠다.

‘감자와 고구마도 중요하지만 고추 보급도 서둘러야 돼.’

고추를 조선으로 공급하게 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식생활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명나라나 왜는 고추가 입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한민족에게는 고추가 아주 좋은 식재료다.

‘내가 조선으로 돌아가기는 당장은 힘드니 설화를 통해 보내는 것이 안전해.’

직접 가지고 가서 자신이 재배하는 방법이 제일 좋으나 아직은 명나라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다시 명나라로 올 기회가 별로 없다고 판단되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소총도 구해야 된다.

‘왜로 먼저 소총이 보급되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겨.’

조선은 전쟁이 없으니 많은 군비를 들여 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왜는 수시로 전투가 벌어지는 전국시대(戰國時代)라 그곳으로 소총이 보급만 되면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다.

허접한 소총이라도 중요하게 판단하는 이유는 빠르게 군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검술이나 창술 그리고 활의 경우는 수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소총으로 무장하게 되는 보병의 경우 한 달 정도면 군인으로 양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했다.

물론 소총을 몇 자루 습득한다고 해서 당장에 많은 소총을 양산할 재력이나 또는 기술력은 없었다. 또한 그런 무기가 당장 필요하지도 않았다.

‘일단 견본을 가져가야 기술자들이 제작하기가 수월해.’

지금부터 기술자를 구해서 복제하는 방법으로 제조에 들어가면 나중에는 양산체제로 변할 수 있다.

새로운 무기인 소총을 보유하게 되면 주변국인 명나라나 또는 왜에 비해 군사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진족이야 잘만 조정하면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판단하고 나자 설화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설화는 내가 구한 작물을 가지고 우선 개마고원과 흑풍대 점령지역에 보급하도록 해. 재배하는 방법은 내가 자세하게 그림과 설명서를 써 줄 것이니 그대로 해보고.”

“알았어요. 하지만 보급하기가 수월치는 않겠네요. 종자가 많지 않아서요.”

“일단 올해는 개마고원에서 집중적으로 재배하도록 하고 내년에는 종자가 많아지게 되니 다른 지역까지 보급을 확대하면 돼.”

“관리하기 편하게 한곳에서 기르면 되겠군요.”

설화의 응수에 최인범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당부했다.

“관리하기 편하다고 너무 한곳에 집중해서 재배하다 보면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환경이나 토질 때문에 종자를 모조리 버릴 수 있으니 여러 곳에 조금씩 나누어 재배하는 것이 좋겠어.”

“그렇겠네요. 처음 재배하는 작물이나 실패할 수도 있고요.”

“혹시 가뭄으로 완전히 죽으면 다시 구하기 힘드니 일단 관리가 편하고 물이 충분한 곳에 재배를 시작하도록 해. 그래야 가물면 물을 퍼서라도 공급하니까.”

“잘 알았어요. 그런 장소를 구해서 재배해 보죠.”

어렵게 구한 종자를 혹시 재배를 잘못해서 모조리 죽일 수 있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재배 방법을 기록하기 위해 우선 숙소로 돌아왔다.

보제사 옆에 있는 작은 집에 돌아온 최인범은 급하게 문방사우를 꺼내놓고 글을 쓰고 있었다. 일반 농부들도 쉽게 재배기술을 알도록 하기 위해 훈민정음으로 썼다.

또한 그것이 힘든 사람도 있다고 판단해 한문으로도 재배 방법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글을 쓰거나 허접하지만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재배방법을 위해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방법이 제일 손쉽다고 판단했다. 옆에서 서책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설화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칸은 정말 이상하신 분이야. 처음 생긴 새로운 작물인데 어떻게 칸께서는 재배 방법이나 먹는 방법과 보관 방법들을 아시는 거지?’

감자나 고구마들은 땅속에서 많은 수확을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더욱 오리무중 했다.

최인범은 보다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림과 같이 두둑을 높이 치고 심으면 되는 거요.”

“그렇게 하면 재배는 그리 어렵지는 않겠네요.”

“그렇소. 쉽게 재배되는 작물이라 종자만 충분히 보급되면 식량으로 사용하게 될 거요. 영양가도 높고 밭에서 재배하니 소출이 대폭 늘어나니 배고픔은 면할 수 있소,”

이런 설명을 들으며 설화는 자꾸만 최인범의 얼굴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왠지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전려 들어 보지 못한 언어를 사용해 포르트갈의 상인들과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니 더욱 신기했다.

‘역관처럼 외국 말을 너무 잘하다니 이상해.’

만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곳으로 와서 줄 곳 같이 지내다 보니 이상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설화는 계속해서 의혹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설화가 옆에서 자꾸만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최인범은 슬며시 설명했다.

“명나라로 와서 황궁의 서고에 있는 귀한 서책을 봐서 이런 신기한 작물에 대해 잘 아는 거야.”

“어머! 그렇군요.”

일반인들이야 명나라 황제가 사는 자금성의 황실 서고에 무슨 서책이 비장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으니 이렇게 적당히 둘러댔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실 그대로 설명을 할 수도 없다. 또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니 이런 방법으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은 백지인 서책에 감자,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고추의 재배시기, 파종과 수확 방법, 관리, 보관 방법 등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했다. 기억에 의존하지만 오래 생각하던 재배 방법이라 수월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목화의 재배 방법은 잘 모르기 때문에 추가해서 말해 주었다.

“신품종인 목화는 전에 기르던 방법으로 해보면 될 것이오.”

“알았어요, 목화씨도 여러 곳에 나누어서 보네 길러 보도록 하죠.”

설화는 자세하게 설명을 들으며 나름 기억해야 될 부분은 따로 기록하고 있었다. 조선말이나 한글을 어느 정도 알지만 아직은 완전히 익혔다고 볼 수 없어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추가로 기록했다. 그래야 재배하는데 큰 실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로운 작물이다가 보니 토질이나 자연환경이 재배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구마의 경우는 모두 풍기 쪽으로 보내기로 했다. 고구마는 본시 따뜻한 곳에서 재배하는 품종이라 재배지로 우선 남쪽으로 지정했다.

‘종자가 많아지면 차츰 북쪽으로 재배지역을 넓이면 돼.’

최인범은 재배 기술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한글과 한문으로 써진 서책 4권을 넘겨주며 당부했다.

“고구마는 감자보다 파종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여름으로 다소 늦으니 일단 개마고원으로 가서 감자를 심고 사람을 보내서 서책 2권과 같이 풍기로 보내도록 해요.”

“개마고원에서는 고구마 재배가 어려운가요?”

“그렇소. 고구마는 조금 따뜻한 지역에서 키워야 돼요. 아직 직접 재배해 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지만 고구마의 경우 되도록 남쪽에서 재배해야 되요.”

“아무 곳이나 재배되는 작물이 아니군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풍기로 보내도록 하시오. 감자와 고추의 경우도 설화가 개마고원까지 빨리 도착하면 일부를 풍기로 보내도록 하고요.”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급하게 서두르는 이유는 명나라의 강소성 북부 지역과 산동성 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직은 대운하를 통하는 교통로는 명나라 조정에서 통제하고 있지만 언제 반란군에게 막힐 수 있었다.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작물은 조선의 백성들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라 모든 부하들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삼형제는 물론 고아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가시오.”

어린고아 100명을 포함해 부하들까지 모두 데리고 개마고원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에 설화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칸! 제가 신품종인 작물들은 안전하게 개마고원으로 가지고 갈수 있으니 칸의 안전을 위해서 삼형제는 데리고 다니는 것이 좋아요.”

설화의 걱정에 최인범은 즉시 다시 강조해서 지시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신품종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해요. 내가 그동안 접한 정보로는 대운하 지역도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으니 부하들을 모조리 데리고 같이 돌아가도록 하시오.”

“혼자 남게 되는 칸께서 위험할 수 있잖아요?”

“나야 혼자서 가면 말을 수시로 바꿔서 더 빨리 이동도 가능하니 안심하고 고아들과 물건을 잘 운반하도록 해요. 아직은 조선 조정이나 관아에는 이런 사실을 비밀로 하시오.”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계속해서 혼자 남겠다고 하자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남편이면서 이제는 부족들의 우두머리인 족장 역할을 수행하는 위치라 거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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