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이렇게 장담은 해보지만 큰일이 터진 것은 분명했다. 막상 양진묵 서장관이 먼저 북경으로 떠나고 나서 방법을 생각해 보니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쉽게 해결도 될 것 같았다.
‘이거 잘하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머릿속에서 뱅뱅 돌기만 하고 정확하게 떠오르지는 않네.’
최인범은 과거를 보아 급제해야 하는 큰 위기가 닥쳤다. 그에게 암울한 검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 것이다.
발해 여각의 2층에 있는 도박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이곳에 있는 기원으로 오면 전혀 새로운 묘수풀이를 하게 되자 자주 찾고 있었다.
“여각에서 내는 묘수를 시간 내에 풀게 되면 공짜로 술을 준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나도 가서 풀어 봐야지.”
기왕에 취미로 두는 바둑이라 즐기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맛좋은 매실주도 준다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시절에는 잘 하지 않은 상술 기법인 상품을 내걸자 반응이 너무 좋았다. 더구나 음식 값도 싸게 책정해 손님을 맞이하니 너무 좋았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여자가 없다는 점이다.
“맛은 좋은데 여자가 없어서 조금 그렇군.”
“나중에는 여자도 들여 와 장사를 하겠지.”
마작을 두거나 또는 내기바둑을 두기 위해 모여든 손님들은 다들 북경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거기에서 최종 우승자가 이곳으로 와서 내기바둑을 두기 때문이다.
“누가 최고 고수로 뽑혀 여기서 내기바둑을 두게 될지 모르겠군.”
“내가 알기로는 양유승이 최고라고 하던데.”
이들이 말하는 양유승은 북경 사람으로 본시 진사 출신이다. 하지만 일찍 벼슬을 그만두고 바둑이나 두면서 천하를 떠도는 사람이었다.
“양유승 대인이 천하제일 고수가 분명해. 그 사람과 바둑을 두어 이긴 사람이 아직까지 없잖아. 북경의 바둑 대회에서도 우승을 했다고 하더군.”
“하긴, 그 사람이 제일 고수라고 볼 수 있지. 학식도 높고 재물도 많잖아.”
재기가 넘치는 양유승이 관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예부상서로 있는 엄숭 때문이다. 양유승은 엄숭이 탐욕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비판하다가 결국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많은 재물을 지닌 재력가라 벼슬보다는 상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대운하를 통해 바둑을 두며 떠돌기도 하지만 상업에 힘쓰고 있었다.
세상을 떠돌면서 학식을 높으나 가난한 선비들을 뒤에서 후원해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직접 벼슬을 하지 않는 대신 재력을 통해 후진 양성에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유승은 수많은 유생들의 칭송을 받고 또한 많은 유학자들과 교류가 있었다.
그러나 손님들은 지금 주인이 이겨주길 바랬다. 그 이유는 양유승이 발해 여각을 인수하면 지금과는 다르게 여각을 운영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양 대인은 스스로 많은 재물을 걸고 바둑 대화를 열었지만 결국 그 대회에서 우승했어.”
“대회에 참석한 고수들이 양 대인에게 일부러 진 것은 아닐까?”
“절대로 그건 아니야, 이기면 큰 재물을 차지하고 명성도 얻는데 그렇게 두지는 않지. 양 대인은 바둑을 잘 두는 인재를 찾고 싶어서 바둑 대회를 열게 된 것이고.”
오늘도 여전히 여각의 기원에 묘수풀이 문제를 내던 최인범은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문뜩 기발한 계책이 떠올랐다.
‘좋았어. 그런 방법을 한번 써보자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북경으로 가서 문과를 보아 급제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청해 몰락을 길을 가기고 작정했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 새로운 진로를 찾기로 결정한 것이다.
‘병법에 사측생이라고 했으니 이번 기회에 완전히 몰락해 죽어버리자고.’
이렇게 판단한 최인범은 말을 타고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르게 야밤에 천진을 떠났다. 그는 북경으로 가서 천하제일 바둑고수라는 양유승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북경 자금성의 남쪽에 있는 커다란 저택.
저택에는 많은 하인들이 있고 또한 큰 거래를 하는 상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커다란 창고들도 많았다. 저택 주인인 양유승이 운영하는 만리 상단의 비축창고도 같이 있어 저택의 규모가 컸다. 만리 상단은 아주 먼 몽골이나 또는 서쪽의 변방 지역까지 교역을 떠나는 큰 규모의 상단이다.
별과 달빛이 전혀 없어 어두운 깊은 밤.
휘리릭!
저택의 높은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는 검은 복면을 쓴 그림자가 있었다. 검은 복면의 구멍에 보이는 눈은 맹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괴한은 조심스럽게 건물들의 어두운 통로 사이를 통해 이동했다. 야방을 도는 하인들의 눈길을 피하려니 매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사락. 사락.
검은 그림자는 드디어 저택 주인인 양유승이 자고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동작으로 보아 무장한 강도가 도둑고양이처럼 남몰래 저택 안으로 숨어든 것이다.
탁! 탁! 탁!
다소 느린 속도로 혼자서 바둑을 두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방안에서 혼자 바둑을 두는 소리에 검은 그림자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조용히 바둑을 두기 위해서인지 방 주변에는 하인들이나 잡인들의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야방도 이곳은 돌지 않았다.
‘흠! 아무도 보이지 않는군.’
주변에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자 검은 그림자는 빠르게 양유승이 바둑을 두는 방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혼자서 바둑에 집중하던 양유승은 괴한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매우 놀랐다. 그러나 시퍼런 장검이 목을 노리니 크게 소리치지 못하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를 원하나?”
장검을 든 강도를 보고 담대하게 묻는 것으로 보아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그러자 괴한은 약간 몸을 멈칫하며 의외의 말을 던지고 있었다.
“나와 바둑 한 판 둡시다. 물론 서로 목숨을 걸고 두는 내기바둑이오. 당신이 지면 목숨 값으로 내가 하는 요구를 들어 주시오. 서로 오랜 시간을 둘 수 없으니 속기로 둡시다.”
장검을 들고 들어온 강도치고는 너무 이상한 놈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내기바둑을 두자니 자신을 해하려고 숨어든 도둑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양유승은 바둑판을 끌어다 놓으며 태연하게 응수했다.
“좋소. 둡시다.”
결국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바둑을 두었다. 빠른 속도로 대국은 진행되었다.
탁! 탁!
이윽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목숨을 담보한 내기바둑은 모두 끝났다.
‘허! 내가 지다니.’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든 강도에게 완패 당한 양유승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천하에서 자신이 바둑을 제일 잘 둔다고 자부했지만 무참하게 대마가 죽어 완패를 당하자 얼굴은 어느새 파랗게 질렸다.
‘이럴 수가? 이런 숨은 바둑고수가 있다니.’
내기바둑이 끝나자 괴한은 승리자의 자격으로 양유승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그런 요구를 듣던 양유승은 점점 눈이 커지며 매우 놀라고 말았다.
‘괴이한 부탁을 하는군.’
요구 중에는 황당하기는 하지만 아주 간단한 내용도 있다. 또한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되는 어려운 일도 있었다.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움직임을 잘 아는 사람이다.
조금은 위험한 일도 있어 거절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약속한 상태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로 하죠. 대신 너무 많은 요구를 했으니 다음에 바둑을 다시 두어 봅시다. 오늘은 당신이 장검을 들고 찾아 왔으니 진정한 승부라고 볼 수 없소.”
“그럽시다. 일이 잘 해결되면 얼마든지 대국할 기회가 있을 거요. 그때 사람을 보내 연락하죠. 하지만 당신의 약속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증명서가 있어야 되겠소.”
“그러죠.”
양유승은 이내 괴한이 요구한 몇 가지 내용에 대해 증명서이자 서약서를 써서 넘겨주었다. 그러자 괴한은 빠르게 방에서 나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획!
뒤늦게 방에서 나와 멀리 보이는 높은 담장을 그저 한손을 집고 훌쩍 뛰어넘어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괴한을 보며 감탄했다.
“대단한 무공실력이야.”
높은 담장을 뛰어 넘어 간다는 자체가 너무 놀랍다. 하지만 곳곳에 배치되어 야방을 서는 하인들의 눈길을 교모하게 피해서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이런 행동으로 보아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무공 실력이라고 판단했다.
‘바둑도 고수고 무공 실력이 저런 정도라니 대단해.’
아무튼 서약서까지 써준 상태라 양유승은 급하게 하인을 불렀다. 그는 계속해서 서찰을 써서 하인들에게 넘겨주며 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서찰은 보고나면 모두 태우라고 전해. 반드시 네가 보는 앞에서 태우면 그때 돌아오고.”
“예이.”
집단으로 행동하는 내용이라 증거가 남으면 곤란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지시를 모두 내리고 나자 양유승은 먼 친척으로 자신의 집으로 와서 식객으로 머무는 양산봉을 불렀다.
그는 덩치가 크고 무공 실력이 조금 뛰어난 먹고 노는 날건달이다. 그래서 멀리 상행을 떠나는 상단의 호위대장으로 가끔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너에게 줄 일거리가 있으니 나와 같이 천진으로 가자. 네 짐도 가져가고.”
“넷!”
양유승은 집에 있는 어린 하녀 10명과 성인인 하녀와 하인을 20명이나 데리고 급하게 말을 타고 떠났다. 하녀와 하인들이야 가마를 타거나 걸어서 다소 뒤에서 이동했다.
천진의 발해 여각에 도착한 양유승과 양산봉은 출입문 옆에 써진 바둑대국의 광고지를 뜯어 들고 여각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바둑을 두어 괴한과 약속한 내용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여각의 지배인에게 광고지를 건네며 말했다.
“광고지에 적힌 내기 바둑을 두러 왔다.”
“예? 누구시죠?”
“북경에서 온 양유승이다.”
“알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시죠.”
양유승은 2층의 기원으로 올라가 기다리고 있던 최인범과 내기바둑을 두었다. 양유승은 대국자인 최인범의 나이가 어리자 매우 놀랐다. 하지만 눈매를 보니 전에 자신의 방으로 찾아와 바둑을 둔 사람이 분명했다.
‘저런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오르다니 대단하군.’
여각과 두 미녀를 거는 내기 바둑이라 많은 사람들이 대국을 지켜보았다. 물론 한정된 공간이라 기원에 들락거린 고수들만 볼 수 있었다.
탁! 탁!
두 사람의 바둑이 시작되었다. 대국의 진행 상황은 아래 층 벽에 걸린 커다란 천에 기록되어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일종에 공개 바둑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아래층에 걸린 진행 상황판을 보며 나름 누가 더 강한지 가늠해 보았다.
“양 대인이 상당히 불리하네.”
“아무래도 양 대인이 바둑을 포기 하게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