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38화 (138/519)

138화

그렇다고 마냥 개마고원에서 눌러 살 수는 없었다. 풍기로 돌아가기는 해야 하는데 부마도위로 내정하고 있다니 은근히 머리도 아프고 또한 걱정도 된다.

‘한양으로 올라가 주상전하를 만나서 막무가내로 박색인 공주와 혼인하라고 하면 그때는 뭐라고 변명해서 그것을 피하지?’

개인적으로 나라를 훌러덩 뒤집어 보려는 권력에 대한 야망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호의호식만 하고 죽은 듯이 살기는 정말 싫었다.

뭔가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었다. 나중에 당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치욕스러운 사건은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부유하고 무력이 강한 조선으로 변해야 해.”

세계는 지금 한창 변화하고 있었다. 대항해 시대는 조금 뒤에 오겠지만 지금부터 그때를 대비해야 된다.

아직 명나라나 왜는 그런 고급 정보에 대해 매우 어둡다. 하지만 최인범은 그런 역사를 너무 잘 아니 때로는 마음이 급할 때가 있었다.

‘조금 있으면 왜로 조총도 들어오고 머리가 아픈 일이 많아져.’

그렇다고 너무 개혁적인 행보를 보이면 주변 사람들의 모략으로 졸지에 역적으로 몰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남의 모략이나 질투를 받을 만한 위치다.

‘내가 너무 쉽게 현대적인 군대를 만들려고 했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리석게 행동했다. 보통의 양반들은 잘 하지 않는 노비를 면천시킨다는 것도 양반들의 중상모략을 당하지 좋은 돌출된 행동이다.

자신이 소금을 많이 사서 일시에 보낸 다는 것도 마음이 급해서 생각한 구상이다.

‘그것도 천천히 조금씩 사서 보내야 돼.”

많은 부를 이루고 보니 이제부터는 최대한 남의 시선을 끌만한 행동을 삼가야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검교직이지만 벼슬이 있는 칠복이 형제에게 지시했다.

“너희들은 먼저 덕원부로 가서 소금. 쌀, 건어물을 사서 개마고원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믿을 만한 상인을 통해서 매달 일정한 수량을 그곳으로 보내도록 약속하고 돈을 지불해.”

최인범 명령을 받은 두 형제가 목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우선 당장 필요한 생필품이라 빨리 나르기 위해 100명의 목부들이 400필의 말을 끌고 덕원부로 떠났다.

최인범은 사노비로만 구성된 부하들을 이끌고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했다. 여전히 호랑이는 찾지 못하고 표범 한 마리와 사슴 몇 마리를 잡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혜산진에서 김찬중 절제도위가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예, 고생 많았습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많은 조선인들을 구해와 정말 고맙습니다.”

“당연히 조선인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죠. 주상 전하께는 매우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구해 주고 싶어서 했던 작전이었습니다.”

“저야 그 뜻을 잘 알죠. 하지만 조정의 신료들은 곡해할 여지가 많지요. 그래서 최 사정이 북쪽에서 활동한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여진족이 살기가 힘들어 투항한 것으로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만 공적이 오르고 말았네요. 그래서 혜산은 이제 만호가 다스리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제가 만호로 승차했고요.”

“그런가요? 축하합니다.”

종6품인 병마절제도위에서 종4품인 병마만호로 승차했으니 상당히 높이 오른 것이다.

파격적인 승차는 조정에서 꼭 필요한 말을 500필이나 공짜로 보내고 500필은 시세보다 낮은 가격인 필당 면포 100필에 사서 보냈다는 점이 주요했다.

‘결국 재물을 주고 승차한 셈이야.’

이런 대화를 나누던 김찬중 만호는 면포 5만필 어음을 꺼내 놓았다. 이제 상평통보가 주된 통화로 결정되었지만 현물이 꼭 필요한 경우는 조정에서는 면포 수량이 적힌 어음을 발부했다.

말 1필당 면포 50필씩 계산해 말 1000필을 판매해서 면포 5만필로 생각했었다.

조정에서는 말 1필당 면포 100필로 계산해 정산하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조정에서는 개마고원에 정착한 여진족들에게서 1필당 면포 100필로 계산해 납품을 받겠다는 뜻이다.

‘이런, 조정에서 잔머리를 쓰는군.’

시세와는 반 토막인 가격이다. 하지만 이도백화에서 터전을 잡은 흑풍대가 약탈해 넘기니 충분한 가격이다. 실제로 여진족과 면포와 말을 거래할 경우는 1필당 50필 정도라 2배는 차익이 남는 거래다.

‘이런 정도 만족해도 되겠어.’

이러 대화를 나누고 나자 김찬중 만호는 주상이 최인범에게 보낸 교서를 넘겨주었다.

교서에는 착호부대는 모두 원상복귀하고 최인범은 명나라로 떠난 진하사와 합류해 명나라를 다녀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필요한 여비로 2000필의 면포를 하사했다.

또한 호피를 획득해 보낸 공을 치하하며 마칠복과 마팔복은 여전히 검교직이지만 종8품 부사맹(副司猛)으로 승차시켜 주었다. 부대장인 자신에 대한 승진 내용은 없어 다소 이상했다.

‘아마도 조정에서 또 소란스러워서 그랬나?’

사실 부마도위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별 볼 일 없는 하급 벼슬을 조금 높이 올리겠다고 주상께서 골치 아픈 대신들과 논쟁할 이유는 없었다.

심복부하들이 이제는 제법 행세할 정도인 직급으로 오르자 최인범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북쪽에서 거둔 성과도 두 녀석들이 정찰을 너무 잘해서 이룬 결과다.

‘벼슬이 올라갔으니 부대의 계급 조정이 조금 쉬워지겠어.’

최인범은 착호부대의 계급을 이등병, 일등병, 상병, 병장으로 구분했다. 상병은 종9품 벼슬인 부사용의 경우 주는 계급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니 사용은 병장, 그 위인 부사맹은 당연히 하사로 올리는 것이 적당했다.

‘이제 하사가 생겼으니 조금 더 정확하게 소대가 구성됐어.’

착호부대에 대한 운용 문제야 내무반장이나 또는 행정병들이 잘 하고 있을 것이라 별로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더구나 오래 같이 생활한 칠복이 형제와 사노비들도 소대본부 요원으로 합류하게 되니 잘 유지 된다고 판단했다.

물론 자신이 풍기로 돌아가 직접 그들에게 훈련을 시킨다면 무력이야 높아질 수 있다. 이제는 조심할 때라 자신이 멀리 떠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적당한 때 명나라로 보내는군.’

최인범은 기회를 보아 명나라로 가볼 생각을 전부터 했었다. 명나라로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서에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사신을 호위하라는 내용도 없었다. 그저 면포만 잔뜩 주고 명나라를 다녀오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만호께서는 이 교서 내용을 정확하게 아시나요?”

“왜요? 교서 내용을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까?”

“예, 조금 애매모호해서요. 명나라로 가서 무슨 임무를 수행하라는 직책도 없고 그저 명나라를 다녀오라며 면포를 무려 2000필이나 하사하니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이렇게 의문을 표하자 김 만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름 해석해 주었다.

“제가 교서 내용을 해석해 보니 주상 전하께서는 최 사정을 중히 쓰기 위해 이번 기회에 사신단과 같이 북경을 가서 견문을 넓히고 마음대로 활동하며 유학하라는 뜻 같은 데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즉시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하는 경우가 전에도 있었나요?”

“무관에게는 없는 일이지만 문관의 경우 매우 드문 일이지만 그런 경우가 전부터 전혀 없는 일은 아닙니다. 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한양의 예조로 찾아가서 물어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죠.”

“굳이 그렇게 예조를 찾아가 물어볼 필요까지는 없겠네요.”

한양으로 올라가면 자칫 코가 끼게 생겼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최인범은 교서의 내용이 궁금하다고 해서 한양으로 가서 묻고 싶지는 않았다.

‘한양에 갈 시간이 있으면 풍기를 가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풍기로 돌아가도 지금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하고자 하면 할 일들이야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중할 때라고 다짐했으니 이런 내용이 적힌 교서는 아주 좋은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판단했다.

‘좋았어. 김찬중 만호의 교서 내용의 해석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군. 한양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바로 의주를 거쳐 명나라로 떠나는 것이 좋겠어.’

착호부대는 모두 풍기로 복귀하라고 했지만 사노비는 명나라로 데리고 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노비를 명나라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보통 구종으로 2명 정도는 데리고 간다니 2명만 선정해 데리고 가야 한다. 그래서 명나라 말을 조금할 줄 아는 의무병인 장주환과 홍성철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명나라에는 유럽인도 자주 들어온다니 그들과 접촉해 봐야해.’

지금은 이미 명나라에 포르투갈의 상선들이 자주 들어와 있을 시기다. 그런 서양 배에는 서양의술을 지닌 의사들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의무병들은 의술을 배우기 때문에 명나라로 가면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의술을 익힐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항상 자신의 시중을 드는 당번병 역할을 하고 있으니 제일 적당했다.

수의학에 관심이 많은 홍성철의 경우 해부학도 연구했다. 물론 자신이 권해서 시작한 해부학이다. 흔한 토끼를 잡아서 내장을 그리고나 사냥물을 내장을 그리는 방식이다. 계속 동물을 이용해 해부학을 연구하는 홍성철은 그림도 아주 잘 그렸다.

‘명나라로 데리고 가면 아주 유용할 거야.’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면 첩자 노릇도 많이 하는 화려하게 채색하는 화공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세밀하게 뭔가 흑백으로 그리는 것은 일품인 실력이다.

명나라로 가서 중요한 정보를 얻어낼 속셈인 최인범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홍성철의 실력이 꼭 필요했다.

바로 떠나기로 결정하자 김찬중 만호에게 부탁했다.

“여기 목장에서 정착한 여진족들을 잘 부탁합니다. 목장 관리자를 두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가끔 관아에서 챙겨 봐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앞으로 계속해서 여기서 군마를 조달 받아야 하니 가끔 찾아와서 살피죠.”

조정에서 직접 운영하는 목장과는 전혀 다른 개인이 소유한 목장이다. 하지만 국경선을 지키기 위해서 조정에서 말을 중시하는 터라 목장의 관리 상태를 만호로써 살펴봐야 한다.

“만호님, 저와 가볼 곳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가봅시다.”

최인범은 개마고원을 벗어나 압록강의 강변으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수심이 낮은 여울이 있는 곳이다. 관리인에게 지시한 목책이나 압록강 변에 관문을 설치하는 문제도 김 만호에게 부탁했다.

“여기가 전에 제가 북쪽으로 쉽게 넘어갔던 수심이 낮은 여울 지역입니다.”

“이곳이 여울이라고요?”

“지금은 얼음이 얼어 잘 모르겠지만 수심이 낮아 장마철인 여름만 아니면 수시로 말을 타거나 걸어서 넘어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오래 지낸 나도 모르는 정보를 잘 아는군요.”

“저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이곳에 반드시 군사를 배치하고 목책이나 돌로 관문은 만들어야 합니다. 개마목장에서 이곳에 관문과 목책 시설을 해도 눈 감아 주세요.”

이런 부탁에 김찬중 만호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정으로 알리지는 않고요?”

“굳이 조정으로 그런 내용을 올리면 오히려 설치하지 마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더 곤란하죠.”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최 사정이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여서 이곳에 방어 시설인 관문을 만든다면 굳이 조정으로 알릴 필요는 없겠군요.”

“생각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겁니다. 관문이라고 해도 거창하게 누각을 세우지는 않으니까요.”

최인범이 관문을 설치하는 계획을 쉽게 결정한 이유는 그곳은 이미 오래전에 작은 성곽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구려나 발해 시절에 관문과 성곽이 있었던 곳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