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2 9 / 베어링턴에서 가장 긴 하루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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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뵈이그(Bøyg). 트롤의 아종이다.
그나마 인간다운 외견과 최소한의 지능만은 남아있는 트롤과는 달리, 이놈들은 말 그대로 짐승이나 다름없는 추한 외모와 본능으로 행동한다.
늪지나 바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몬스터를 잡아먹으며 살아간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보는 게 처음이라서, 어떤 몬스터인지 생각해내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리고…
“…정말 지독하게 못생겼네… 책에서 본 것보다 열 배는 더 추악하게 생겨먹었어.”
살아 움직이니까 더 추레하다.
독룡이라더니, 부리는 사역마마저도 이렇게 징그럽게 생긴 놈들이었을 줄이야.
싸울 수밖에… 없겠다.
이를 악물고, 후들거리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지탱했다.
달달 떨리는 손끝에 감각이 돌아오도록 꽈아악 지팡이를 움켜쥐고, 숨을 내쉰다.
자꾸만 들썩거리려는 의식은 아마도… 무슈마헤트의 피에서 흘러나오는 독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폐가 아주 조금씩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 스쳤다. 피냄새가 콧속을 채웠다.
코에 차오르는 피냄새가 워낙 짙고 독해서,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몸이 아주 조금씩 죽어간다고 말하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
시간도 없고, 내 몸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초조해하지 마!’
천천히 마력을 끌어냈다. 들끓어오르는 마나의 흐름에서 위화감이 함께 스며들었다. 독이 마나맥에까지 퍼진 걸까.
가로로 벌어지는 턱에서 무질서하게 도드라진 이빨을 드러내며, 뵈이그가 달려왔다.
드래곤의 피로 짜인 두 기의 골렘과 함께 적의 수는 총 여섯. 내가 갖고 있는 말은… 무슈마헤트의 것을 빼앗은 피 골렘이 한 기. 전력차는 절망적이다.
하지만, 이길 수 없는 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마력을 가득 품은 질료라면, 여기에 하나 훌륭한 게 있으니까.
내 지배하에 들어온 피의 골렘에 의식을 집중했다. 꾸득꾸득 하고, 그 안쪽에서부터 움직임이 태동했다.
“「불과 마법, 어두운 지식의 신 말로키르의 시종이 고하니…”
식물을 다루는 마법과 생명력을 다루는 흑마술, 그리고 골렘술.
거기에 내 스킬, 튜닝까지 더해서…
“…네 앞에 놓인 제물을 먹고, 내 앞에 나올지어다!」”
피의 골렘의 몸집이 커다랗게 부풀었다가, 산산이 파열했다.
이리저리 튀는 핏덩어리 속에서 무엇인가가 비집고 나왔다.
창백하고 가냘픈 나신을 바르르 떨고, 푹 수그린 얼굴의 반을 가면으로 가렸다. 뒤로 늘어진 머리카락은 진녹색의 가시덩쿨로 이루어진 그것은 여성적인 몸매를 띠고 있었다.
골렘은 아니다.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라… 피의 골렘을 제물로 바치고 그 안에 심은 씨앗을 촉매로 하여, 이 세상의 이면에서부터 소환된 무엇인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몸의 감각이 익숙하지 않은지 미세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그것이 손을 한번 흔들자, 제가 요람 삼아 튀어나온 피의 골렘의 파편이… 마치 드레스처럼 그것의 나신에 감겼다.
‘하필이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르긴 했지만, 반 식물 반 인간 같은 사역마가 소환될 줄이야.
그… ‘불로초’인가 하는 그놈이 생각나서 기분이 영 별로였다.
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써먹을 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역마의 등장에 잠시 주춤거리던 뵈이그 중 하나가 날카로운 발톱이 도드라진 앞발을 들이쳐왔다.
[캬아아아악!]
마치 슬라임처럼 끈기 있게 엉기는 푸른 체액이 팔과 함께 튀어올랐다. 뒤이어 끔찍하게 울부짖는 뵈이그의 울음소리도 함께 튀었다.
휘리릭.
머리 뒤로 늘어진 넝쿨 중 두 가닥이 위로 뻗쳐서 공중에서 떨어지는 뵈이그의 팔에 휘감겼다. 여성스러운 곡선을 그리는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에서 상어처럼 맞물린 뾰족한 송곳니들이 도드라졌다.
“욱….”
으드득, 아드득, 까드득, 으득, 으득.
살점과 뼈를 우악스럽게 씹는 소리가 소름을 끼치게 했다.
캬아아악!
한쪽 팔을 잃은 뵈이그가 분노의 고성을 질렀다. 트롤답게, 이미 뜯겨나간 팔은 엉성하게 재생하여 근육을 부풀리는 중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골렘과 뵈이그들까지도.
포식을 즐기는 듯이 턱과 목을 연신 움직이던 그것이 머리를 들었다. 등 뒤에서부터 넝쿨이 다시 한번 팍, 하고 뻗쳤다.
푹, 푹, 푹, 푹, 푹, 푹…
여섯 가닥의 넝쿨이 각각 뵈이그와 피 골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심장과 핵이 있는 곳의 냄새라도 민감하게 맡아냈던 것인지, 가시덩굴에 꿰인 뵈이그와 골렘은 그저 바들거리면서 굳어졌을 뿐 어떠한 반격도 행하지 못했다.
“카학…!”
하지만, 자신이 소환한 존재가 강하다 하여 희희낙락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것을 조종하고, 이 현세에 붙들어놓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데에는 터무니없이 막대한 마력을 필요로 했으니까.
마나맥이 쪼그라들고, 마력을 쥐어짜지면서 몸이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주저앉아 내뱉은 기침에서 핏덩어리가 함께 쏟아졌다.
[어리석은… 것, 지금 네가… 뭘 불러냈는지… 아느냐?!]
심지어 무슈마헤트까지도 경악할 정도였다니.
몸이 흠칫거릴 정도의 굶주림이 전해져왔다. 그것이… 제 발아래에 있는 드래곤의 존재를 처음으로 눈치챘다.
독과 피, 마력으로 가득 찬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가운데 가장 강인한 종족, 드래곤을 상대로 굶주림을 느낀다고?
눈을 들었다. 덩굴에 꿰인 뵈이그의 몸통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물기 하나 없이 생기 없는 송장이 되었고, 피 골렘은 이미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그럼에도… 저것은 아직도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있다.
“내… 명령을… 들어!”
그것을 지배하는 주문을 마치 고삐처럼 당기자 천천히 그것의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뺨이 씰룩거렸다. 여섯 가닥 넝쿨이 다시 원래대로 줄어들어 등 뒤로 늘어진 채, 그것의 몸에 활기와 혈색이 돋았다. 아마도 지금 잡아먹은 뵈이그와 골렘으로부터 뽑아낸 게 아닐까.
“네 주인은… 나야. 내 말을 들으라고 하잖아, 이…!”
뼈마디가 시큰거린다. 폐가 1mm씩 잘려 나가는 듯이 아프고, 심장은 마치 전력질주를 막 마친 것처럼 거칠게 뛰고 있다. 저것이 몸을 움직이고 힘을 쓸 때마다, 그에 반비례하듯 몸이 엉망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저런 것을 불러낼 생각은 없었는데!
[격에 맞지도 않는, 분에 넘치는 힘을 취하려 했구나, 마녀여.]
으드득… 이를 가는 듯한 무슈마헤트의 노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그것이 드레스 사이로 발을 내딛었다. 비늘 사이로 흘러나오는 독 짙은 피가, 그 발 끝에 빨려드는 것이 보였다.
[89위의 마왕 중 하나… 샤무라마트! 날 잡아먹으려느냐!]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끄트머리가 뾰족한 넝쿨이 수십 가닥이 너울거리는 게 보였다.
무엇을 하려는지는 뻔했다.
“멈춰!”
비늘 사이사이로 그 넝쿨 가닥이 파고들기 직전 제지의 소리를 질렀다.
말뿐만이 아니라 지배력을 꽉 붙든 채 힘껏 당겨서, 겨우겨우 넝쿨 끄트머리가 미약하게 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의식을 놓았다간 그대로 비늘 사이에 파고들어, 뿌리를 내릴 것 같다.
“멈추라고, 하지… 마! 내 말을 들어!”
만약 지금 이… 사역마가 이 드래곤을 잡아먹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다고… 그런 예감이 들었다.
샤무라마트… 무슈마헤트가 외친 이름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난 그저 이 상황을 타개할 정도의 힘을 가진 사역마를 불러냈을 뿐인데, 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녀석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지배는커녕,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제어하는 것마저도 벅찰 정도인데.
[여기에서… 사라져라, 사라졋!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다, 마물아!]
그리고 무슈마헤트 또한, 그대로 두지 않았다.
사역마를 불러내봤자 꺼내는 족족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허공에서 돌연 펼쳐진 마법진이 회전하면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쏟아졌다.
젠장! 일단 다급하게 마력으로 장벽을 쳤지만, 드래곤의 주문을 몇 번이나 막을 수 있을까.
꼬여만 가는 상황 속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사역마, 샤무라마트의 얼굴이 불쾌한 듯이 일그러졌다.
아마도 식물 계열의 사역마이니만큼, 불이 달가울 리는 없겠지. 그 주위에서 거칠게 폭발하는 불길에 샤무라마트의 넝쿨이 마구 휘날렸다.
하지만 한 발도 제대로 명중하지 않았던 것은, 휘두른 넝쿨이 채찍처럼 불덩어리를 요격하여 유폭시키고 있었던 탓이다. 그때마다 타들어간 넝쿨 끄트머리에서, 새 넝쿨이 돋아난다. 지금은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어느 한쪽이 밀리는 그 순간 끝이 날 것이다.
‘으,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느 쪽이 이기든 나는 무사할 것 같지 않다.
샤무라마트가 밀리면 드래곤의 주문이 나를 덮칠 것이고, 무슈마헤트가 밀리면 이 드래곤을 잡아먹고 내 제어에서 벗어나겠지. 어떻게 해서든… 지금은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어떻게 해야 하지? 점점 패닉으로 빠져들려는 그 때, 예기치 못한 곳에서 돌파의 가능성이 열렸다.
[장미 씨.]
웬즈데이?
갑작스럽게 내 머릿속에 울려온 웬즈데이의 사념에 슬슬 꺼져가려던 정신이 조금 또렷해졌다. 웬즈데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니, 그건 안 돼, 네가 어떻게 될지 알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요?]
아니, 분명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지만, 조금만 더 침착하게 생각하면 있을 것이다.
저 괴물들을 멈출 방법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럴지도 몰라요. 장미 씨는 머리가 좋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잖아요.]
분하지만, 웬즈데이의 말이 맞다.
드래곤이 날뛸 때마다 베어링턴은 속속 파괴되고, 눈을 내려보면 그 아래에 다치고, 죽어가는 모험가들이 시시각각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다.
루시탄, 페리링, 카르티, 키르케, 헤카이트, 늑대원숭이, 센…
그들은 내 작전에 동의해 목숨을 걸어주었다. 그들이 죽는 걸 상상하면…
그렇게 둘 수 있을 리가 없다.
피가 맺히고, 그 맺힌 피가 턱으로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웬즈데이마저 목숨을 걸어주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그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웬즈데이.’
[맡겨주세요!]
언제나처럼 발랄한 웬즈데이의 목소리.
나는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를 거쳐서, 웬즈데이의 영체가… 샤무라마트에게로 이동한다. 웬즈데이와 나, 그리고 샤무라마트의 사이로 연결된 영적 라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그저, 기다리고 바랄 뿐이다.
모두의 목숨을 걸고 만들어낼 단 한번의 찬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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