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56화 (56/157)

〈 56화 〉 2 ­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1)

* * *

(1)

원래는 방청소를 목표로 시작했던 청소였건만, 정신을 차려보니 저택 1층을 구석구석 청소하는 대청소를 마치고 동이 틀 즈음이었다.

골렘인 웬즈데이와 즈왈트야 그렇다 치고, 당연히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던 터라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한 얼굴이 되어서는 마차역에 도착했더랬다.

“여어, 좋은 아… 침이 아닌 모양이네. 대체 밤에 뭔 일이 있었던 거냐?”

한발 앞서 기다리고 있던 카르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녕, 하고 퀭한 눈으로 대충대충 인사하고는 대충 지난밤에 있었던 일은 얼버무렸다. 청소하다가 밤을 샜다는 건 역시 좀 쪽팔리잖아.

“그나저나… 일행이 늘었네. 소개 좀 해 줘.”

“어, 이쪽은 웬즈데이. 그리고 이쪽은 너도 잘 아는 즈왈트.”

“즈왈트 형씨라고? 그 갑옷이었던?!”

어젯밤까지만 해도 커다란 갑옷이었던 즈왈트가 오늘은 멀쩡한 인간(형)이 되어 나타난 건에 대하여. 카르티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신기하게도 위화감이 없네… 뭐. 지난번에는 여러가지로 신세 많았어, 즈왈트 씨. 그쪽은 웬즈데이라고? 만나서 반가워.”

“반갑습니다, 카르티 씨. 주인님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재미있으신 분이라고 하시던걸요.”

“그렇게 소개했어? 조~금 섭섭한데. 좀 더 성의있게 소개해줄 순 없었냐고.”

아, 귀찮게.

카르티의 항의는 무시하고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야 많았지만, 알브레히트 남작령은 왕도에서 제법 먼 곳이다. 거기까지 가는 마차가 있긴 할까.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고. 몇 대의 마차를 거친 끝에 알브레히트로 가는 빈 마차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아, 양똥 냄새. 아니, 이런 마차밖에 없었냐고.”

“어쩔 수 없잖아. 이 인원이 낑겨탈 만한 마차는 이것밖에 없었는걸.”

메에에 우는 양 몇 마리와 동석하는 짐마차였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즈왈트가 타도 문제없을 정도로 크고 값도 싸고. 이 이상 좋을 수 없구만 뭘 그래.

카르티는 코를 감싸 쥐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며칠간의 끔찍한 키메라 뱃속 체험에서 악취라면 학을 떼게 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한가롭게 우는 양 세 마리와 골렘 둘. 걸리버 둘. 실로 괴상한 구성의 마차가 출발했다.

마부석에 앉은, 제법 맵시 있는 턱수염을 기른 남자와 뒤늦게 서로 통성명을 했다.

“크라수스 아란입니다. 업계에서는 편하게 크라수스로 통하죠.”

“로제이아에요. 이쪽은 카르티. 즈왈트, 웬즈데이.”

이름이 제각각인 탓에 출신지를 알기가 꽤 어려웠을 테지만 크라수스는 그런 기색은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느긋이 말을 몰았다. 앞서가는 마차와 적당히 거리를 둔 채로 마차 다루는 솜씨가 제법 노련해보였다.

그러고보면 이 마차만이 아니고 뒤따르는 마차도 있고 보면 네 대의 짐마차가 알브레히트로 향하는 모양이다. 그다지 번화한 영지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손님들은 알브레히트에 무슨 일로 가십니까? 왕도에서는 꽤 먼데 말이죠.”

‘그런 깡촌에는 무슨 일로 가는 거냐’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례하지 않을 선을 딱 지켜서 능수능란하게 말을 고르는 것도 마차 다루는 것만큼이나 노련했다.

빈틈없는 시선이 내 목에 매달린 로켓을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 로켓을 보고도 이렇다할 반응이 없다는 게 더더욱. 굳이 감추려고 해서 의심을 살 필요는 없겠지.

“저는 견습 마법사라서요. 스승님의 심부름으로 갑니다.”

마법사라고 신분을 대면 귀찮은 일은 대개 풀린다.

크라수스도 더 캐물을 생각이 없는지 그렇습니까, 하고 말을 모는 데 주의를 돌렸다.

카르티는 지루한 듯 발을 동동 굴리면서 마차 짐칸에 등을 기대고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도착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알브레히트까지는 닷새는 족히 걸립니다. 하하, 벌써 지루해하시기엔 남은 길이 좀 긴데 말이지요.”

닷새라. 멀긴 멀구나.

닷새나 되는 길을 양똥냄새를 맡으며 걸을 생각에 카르티는 암담한 모양이었다. 태평스럽게 메에에 우는 양을 우울하게 바라보면서 카르티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닷새… 으으, 난 이 세상에서 이제 가장 싫은 게 악취야.”

평생 맡을 악취는 다 맡았을 테니까… 카르티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참아야지. 웬즈데이가 카르티를 토닥이는 게 보였다. 왜 나보다 쟤한테 더 친절한 거냐고.

마차는 천천히 완만한 경사의 언덕을 올라 숲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섰다. 빽빽하게 들어찬 삼나무 숲이 우거져서 나무 사이 연약한 노루나 토끼가 경계하는 모습이 이따금 스쳐지나갔다. …조금 귀엽기도 하고.

“워, 워!”

마부석의 크라수스가 조금 곤혹스러운 듯 쓴소리를 흘리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앞서 가던 다른 짐마차가 멈춰섰기 때문이었다. 급정거가 으레 그렇듯 타고 있는 사람에게 그 곤혹스러움이 순식간에 옮겨갔다. 메에에 우는 양들의 울음소리에도 불안함이 섞였다.

“무슨 일이에요?”

“선두 마차가 멈춰서… 조금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이런 숲 속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라면… 카르티와 웬즈데이, 그리고 즈왈트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도 조금 긴장하여 표정을 굳혔다. 카르티는 바닥에 엎어두었던 한손검과 방패를 쥐었고, 웬즈데이가 내 옆에 가까이 바싹 달라붙었다.

“…앞쪽에 뭔가가 길을 막고 있다는군요.”

크라수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귀찮다는 듯 말했고, 마차에서 내려서 선두 마차를 막고 있는 ‘뭔가’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드러난 ‘뭔가’란…

조금 전형적이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기분이네. 응.”

내가 허탈해져서 뇌까린 말을 받아 카르티가 마무리를 지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덩어리와 통나무가 아무렇게나 쌓여서 진로를 막고 있는 걸 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진로 방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는 수 없지. 웬즈데이, 이리로….”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에서 재주를 뽐내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알브레히트로 가는 내내 양똥냄새를 맡는 것도 질릴 지경인데 그 시간이 더 길어지는 건 이쪽으로서도 사양이었다. 골렘을 불러내서 길을 치우게 할 생각이었는데…

“저길 봐라. 주인이여.”

즈왈트의 손이 돌덩어리와 통나무가 위태롭게 쌓인 위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검은 손이 가리킨 위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렇잖아도 수면 부족으로 한껏 일그러졌던 표정이 더 구겨지는 것 같았다. 뭐냐, 저건….

돌덩어리 위에, 당당히 허리를 짚고 선 조그마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하필이면 해를 등지고 있어서 얼굴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 것 같다.

“으아…!”

어, 안 좋은 데를 밟았다. 발끝이 불안정한 돌멩이를 붙잡고 미끄러졌다.

하지만 겨우겨우 자세를 바로잡는 걸 보곤 오히려 이쪽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위압적인 첫인상을 주는 데는 실패했지만 인상적인 첫인상을 주는 정도만은 성공한 그는 조그마한 몸집의 아직 앳된 티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소년이었다.

눈썹 한쪽을 찌푸리고 올려다보니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낯설었는지 어흠, 그 소년…이 헛기침을 했다.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칼을 어깨에 걸친 채 제법 의기양양해보이는 얼굴이 되어선.

“이 숲은 울던 애도 웃음을 터뜨린다는 래핑 크로우 유적(??)단의 영역이다! 지나가려거든 통행세를 내야 할 거다! 가지고 있는 짐을 전부 내놔!”

래핑 크로우… 웃는 까마귀?

그 앞의… 뭔가 캐치프레이즈 같은 멘트에는 도저히 딴지를 걸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회사 상호를 지어도 고객의 니즈에 맞게 신중하고 깔끔하게, 그러면서도 강렬하게 지어야 하는데 저렇게 날림으로 지어서야 장사를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말야.

“들어본 적 있어요?”

“아뇨, 전혀….”

크라수스도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르티도 모르는 눈치다. 두 사람 다 모르면 이름 있는 도적단은 아니라는 얘기가 되는데.

그보다 유적단은 뭐야 유적단은. 유적을 털고 다닌다고 유적단이야?

“이 숲길은 이미 우리 단원들이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다고! 순순히 짐을 내놓지 않으면 유혈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거다!”

어디의 비폭력주의자야, 너는.

해적들이나 쓸법한 커틀러스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내려다보는 소년을 올려다보며 참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에 잠겼다.

왜 자꾸 난 이런 녀석들하고만 꼬이는 거지?

“이봐, 어린애가 위험한 놀이를 하려 들면 못 써… 솜씨에 자신이 있으면 길드에라도 가서….”

“갔었지! 시시한 일에 시시한 보상들뿐이라서 금방 때려쳤지만!”

즉 세상에 불만이 많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와중 피가 들끓어 도적단인지 유적단인지를 차려서… 한 탕 하려고 했다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세상 쉽게 보지 마, 이 자식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