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2 1 /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에게(3)
* * *
3
내 커스터마이징 스킬은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하여 ‘튜닝’이라는 스킬로 진화했다.
…라는 말은 ‘그 여자’와 만났다는 말이 되기도 했고.
튜닝을 처음으로 사용했을 때 예의 공간에서 마주친 그 여자… 이간의 마녀는 흥미로워하는 듯도, 비웃는 듯도 한 웃음을 입가에 그린 채 말했었지.
“네게 새로운 특전이 주어졌어.”
“…특전?”
여전히 그 여자는 반은 검고, 반은 희었다.
머리카락도, 눈도, 복색도. 즐거워하는 듯도, 내키지 않는 듯한 태도도 반반이다.
“이쪽 세계의 법칙, 섭리입니다. 이 세상을 관장하는 여신님께서는 꽤 공평무사함이라는 것을 좋아하거든. 그중 하나가 ‘밭을 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삭을 줘야 한다’라고 하고요.”
…무엇인가 비유가 이상하지만 일단 알아듣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노오력을 하면 대가를 주는 게 당연하다, 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보다. 하지만 이 녀석이 그 ‘여신’이라는 존재에게 설설 기는 게 이상한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그 여자는 불만스럽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었다.
“너희 걸리버들에게 스킬을 부여하는 것도 여신과의 거래 때문이거든. 흠, 이건 말하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뭐, 아무튼 네게 주어진 특전은….”
그 때, 그 여자가 싫다고 그 특전을 내팽개치거나 그랬었다면
아마 여기에서 나는 지금 날아오는 주먹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한 뒤 직접 재배한 타라곤 포션을 마셔서 거의 바닥을 보였던 마력을 채웠다. …달고 맵고 씁쓰레함이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기묘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워서 잠시 숨이 턱 막혔지만, 아무튼 효과 자체는 확실했다.
아주 잠깐 체력을 보충하고 난 뒤,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았다.
한참 올려다봐야 하는 심사위원석에서 굵은 팔을 팔짱 낀 채 이쪽의 시험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사자 갈기 같은 터럭을 가진 남자. 이름은 케라우노스라고 했던가. 용병 마법사로 유명하다던데. 뭣보다…
“세 번째 시험은 간단하다. 덤벼. 1분 정도는 버티겠지? 나한테 한 방 먹이면 나도 추가 보상을 내놓도록 하겠어.”
간단해서 알기 좋긴 한데 이론파 마법사들한테는 쥐약일 시험 방식이다.
가브롤의 지팡이를 움켜쥐면서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 좋은 얼굴이라며 그가 씩 웃었다.
준비… 시작!
시작 신호가 울리자마자, 한참 떨어진 반대편에 있었을 그가 코앞에서 주먹을 날리고 있다는 사실은 꽤, 부조리하다.
“윽…!”
순간 허리를 꺾어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하지 않았다면 단박에 주먹을 맞고 저만치 나가떨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냥 주먹이 아니라, 파직거리는 전극을 싣고 있는 위험천만한 살상 병기였다!
‘뇌명의 케라우노스’라는 이름을 얼핏 들은 듯한 기억이 났다. 쯧, 하고 지팡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가능한 빠르게 골렘을 불러내서…
“으랴아!”
그는 일부러 골렘이 몸을 일으키길 기다렸다가, 골렘의 핵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빠직빠직 튀는 스파크를 끌고 호쾌하게 날리는 스트레이트였다. 자신의 마력탄을 받아낸 방진(팔랑크스)을 설정하자 바윗덩어리들이 방패처럼 늘어서 벽을 형성했지만…
콰콰콰콰콰쾅ㅡ
한 방이었다. 자신이 처리에 애를 먹었던 방진을 주먹이 한 방에 뚫어버리고 전격이 그 안의 핵에도 타격을 가했다… 시커멓고 타버린 핵이 바닥에 떨어졌다. 적어도 이번 시험에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가라」!”
하지만 아직 내게는 한 기의 골렘이 더 남아있다고!
쿵쿵쿵, 지면을 울리며 내달리는 골렘이 거대한 바위손을 들어 남자를 내려치기 위해 휘둘렀다. 그러나 바위 골렘의 사정거리에 남자가 들어왔다는 것은, 동시에 골렘 또한 남자의 사정거리에 들어갔다는 의미도 되었다.
“으랏, 차!”
마법사 맞아?!
바위주먹이 찍어내리는 것보다 빠르게, 그는 말도 안 되는 반응속도의 뒤돌려차기로 골렘의 핵에 전격 킥을 먹였다. 바위주먹을 내려찍으려 하던 골렘이 주춤했다가 무너졌다. 이걸로, 겨우 10초…
“내가 아가씨를 너무 과대평가했나? 이런 골렘으로는 날 잡아두지 못한다고.”
아니, 이 10초는 매우 귀중한 시간벌이다.
적어도, 내가 주문 하나를 짜낼 시간은 되었단 말이지!
지면이 쿠릉쿠릉 흔들렸다. 빠직하고 균열이 간 순간, 저 혼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가시덩굴의 무리가 땅속에서 솟구쳐 날카로운 가시를 남자에게 들이대었다. 다리에서부터 기어올라 휘감기면, 골렘조차 풀 수 없는 구속이라고!
내 특기인 「장미여왕의 포옹」이다!
우왓, 하고 그가 짧은소리를 내면서 묶인 다리에서부터 넝쿨에 칭칭 감기는 것에 학학, 거친 숨을 골랐다. 이걸로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으려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서둘러 바닥을 굴러 옆으로 몸을 날렸다. 정말 딱 예상한 대로, 가시넝쿨이 다리에 감기기 직전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번개를 일으킨 그는 내 주문으로 불러낸 식물을 숯덩어리로 만들어놓고는 그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지척까지 날아왔었다.
마법사 맞아?! 영창 어디에 팔아먹었냐! 투덜거리면서도 일단 발을 놀려 둥글게 시험장에 원을 그리듯 내달렸다. 쫓아오는 그를 향해 뒤쪽으로 마력탄을 거푸 쏘아댔지만, 차례차례 빗나가고 있었다. 조준이 느슨했던 것이 아니다. 저 남자의 말도 안 되는 반응신경 탓이다!
안 돼, 따라잡힌다…!
“15초, 아가씨의 기록은 그 정도라고!”
“아, 정마아알…!”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 뻔했잖아! 아니, 닥치고 죽어 있어, 씨발스턴!
으득, 이를 깨물고 달리던 기세 그대로 몸을 앞으로 날려 굴렀다가,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만면에 웃음을 가득히 깨물고 번개처럼 질주해오는 그 남자. 유난히 거대해 보이는 주먹은, 절대로 이 일격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어?!”
생각했을 주먹을 머리를 살짝 비틀어 겨우겨우 피해냈다. 남자가 의뭉스러운 감탄사를 흘렸다. 나로서도 이 스킬과 주문을 동시에 통제하는 것은 아직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익숙하지 않았으니 그의 반응은 당연하지. 걸었던 주문은 반사신경과 운동신경을 가속하는 ‘헤이스트’. 스킬은…
스쳐 지나간 주먹에 안대가 벗겨져 툭 하고 떨어진 순간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호오, 차례차례 뭔가 재밌는 비밀을 한가득 가진 아가씨구만.”
“마녀니까요.”
「노신왕의 각인안(Odin’s Sphere)」.
미친놈에게 눈 하나를 날려 먹은 게 여신께서 보시기에 퍽 딱했던 모양인지 개고생하던 내게 내려진 특전이었다.
한번 쓰고 나면 9일 동안 쓰지 못한다는 게 흠이지만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쓰겠냐고. 시험 통과는 고사하고 내 목숨이 날아가게 생긴 판인데.
특전의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마력과 체력을 뭉텅이로 잡아먹는 스킬이니만큼 하는 수 없어…! 마법사의 시험에 걸리버로서의 스킬을 꺼내는 게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저 남자는 나한테 진심으로 죽을 수도 있는 펀치를 날리려고 했으니 그걸로 퉁칠 수도 있겠지.
“좋아 좋아, 전부 다 끄집어내! 가진 밑천을 죄다 털어내 보라고!”
항의는커녕 희희낙락해서 달려오는 남자의 수치화된 정보를 확인했다.
좋아, 깔끔하게 오기로 이겨볼 생각은 일단 포기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수치화된 정보를 들이밀면 악이나 깡으로 어떻게 해 보자는 생각부터 버리게 되었다. 이 특전에 지나치게 의지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어차피 9일에 한 번밖에 못 써먹는 것이긴 하지만.
‘영창가속’, ‘전기신호 증폭’, ‘격투’ 스테이터스가 돋보였다. 본직은 마법사임이 틀림없지만 본분은 격투가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쯧, 하고 매초 빠르게 줄어드는 마력 잔량에 시선이 쏠리지 않도록 일부러 조심하면서 일단 눈앞에서 붕붕 쏟아 부어지는 주먹세례를 피해내는 데 주력했다. 킥을 날리지 않는 건 뭐, 초짜 마법사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가보다. 골렘조차 단번에 박살 내는 킥을 맞기라도 하면 정말 삼도천을 건너갈지도 모르니까.
“학, 학, 학…”
정돈되지 않는 숨이 가쁘게 입과 코, 폐를 들락거렸다. 체력도 마력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지칠 줄 모르고 날뛰는데, 죽겠네 정말!
마력이 다 떨어져서 헤이스트가 해제되고 나면… 1분이 지나있을지 어떨런지. 고작 1분이 지금은 천근처럼 무겁다.
앞으로 3초, 2초, 1초…
헤이스트의 지속이 1초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 전격이 깃든 주먹이 턱 아래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고…
“…챳!”
턱이 들렸다.
턱에서부터 꽂혀 올라오는 묵직한 타격. 정말 죽일 생각으로 날렸구만, 하고 생각하면서 뇌가 흔들렸다. 그나마 마지막에 앗차 싶었는지 전격을 거둔 탓에… 눈을 뜰 수는 있으려나, 생각하면서 의식이 갈가리 찢기는 것이 느껴졌다.
1분을 버티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리고, 가물가물해지는 내 눈으로 확실히 확인했다.
그 순간 들린 게 내 턱만이 아니었던 것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