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2 1 /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에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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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1단계는 여유롭게 통과했다. 그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은 디저트로 먹기였지.
골렘 두 기가 덩치가 커서 잠시 쫄았었지만 이 정도는 여유롭게 통과했다고.
손에 착 감겨오는 골렘 제어 지팡이를 꽉 쥔 채 의식을 집중했다.
커스터마이징을 해제해도 자신을 주인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지팡이에 자신의 마력을 고루 스며들게 할 필요가 있었다.
가브롤의 지팡이… 인가. 그 이름은 헤카이트 당주의 수업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라 모든 일을 골렘에게 맡겼다는 희대의 골렘 마스터. 종국에는 자기 자신의 병약하고 노쇠해진 몸마저 하나하나 골렘으로 대체한 끝에 결국 부리던 다른 골렘과 똑같은 모습으로 삶을 마쳤다는 인물이랬던가.
그리고 이 지팡이는 그가 평생 골렘을 다룰 때 썼다고 하는 물건이었고.
…기구한 사연의 물건이지만, 이제껏 어떻게 썼냐기보다는 이제부터 어떻게 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튜닝」 완료. 제 마력을 지팡이의 구조를 따라 구석구석까지 흘려내어 장악을 마쳤다.
이제 다음 시험에 임할 차례. 올려다보니 이런이런, 하고 술라 씨가 조금 곤혹스러운 얼굴로 가볍게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욕심이 대단한 젊은 마녀로군. 그 지팡이는 아주 귀중한 것인데 말이네.“
”그래도 시험을 전부 통과하던 로제이아에게 주실 생각이었겠죠, 술라 경?“
헤카이트 당주가 웃음을 한 번 흘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나이가 세 자리가 넘어가는 마법사라고 들었지만 그녀는 겉보기에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서른을 넘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대마법사쯤 되면 자신의 외모를 젊게 유지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다.
”1단계는 쉽게 마쳤네요. 로제이아. 술라 경께서 조금 쉬운 과제를 내주셨지요? 하지만 나까지 그러면 모인 분들의 눈에 이 시험이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조금, 엄하게 가겠어요.“
헤카이트 당주의 손이 나긋나긋하게 한 번 까딱였다.
돌로 된 바닥이 처음에는 희미하게, 그러다가 점점 거칠게 흔들리고, 지팡이를 짚은 채 그 바닥의 진동을 조금 견디고 있으려니… 돌연 눈앞에 거대한 벽이 솟아올랐다.
벽과 벽이 이어져 입구가 나타나고, 꺾이고 얽힌 길로 이어졌다. 시험장이 그다지 넓은 장소도 아닐진대, 눈앞에 나타난 ‘미로’에 조금 숨이 멎었었다.
”조금 공간을 이어붙여서 만든 미로랍니다. 30분 안에 이 미로를 통과하도록 하세요. 그러네요… 통과하는 것만으론 재미가 덜하니 중간에 작은 여흥을 준비해두었지요.“
결코 ‘작은’ 여흥이 아닐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언제나처럼 터무니없는 과제를 웃으면서 던져주고 될 때까지 마구 굴리는 헤카이트 당주이니만큼 이것도 평범한 미로가 아닐 게 분명했다.
그래도 못할 거라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들지 않지만. 30분? 그렇다면 15분만에 통과해주겠어.
씩, 하고 입가에 야심만만한 웃음을 머금은 채… 시작 신호와 함께, 입구에 뛰어들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좋아, 목표는 15분.“
가브롤의 지팡이를 앞으로. 특별히 골렘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평범하게 지팡이로도 쓸 수 있단 말이지!
마력 효율은 이제껏 사용하던 수습생용 지팡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력을 불어넣으면 불어넣을수록 끄트머리의 핵 안에서 집속시킨 마력이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손에 넣었단 말이지.
내 공격 마법의 방식은, 그것을 불이나 얼음, 전격, 바람 등 원소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마력 그 자체로 내쏘는 것!
파직파직 방전이 이는 마력의 포화가, 그대로 빛의 격류가 되어 내쏘아졌다.격렬하게 타오르는 마력구가 그대로 미궁의 벽에 부딪혀…
“칫. 역시 이런 방법은 안 되나….”
“당신의 방식을 가장 잘 알고 가르친 게 누구라도 생각하는 거예요, 로제이아.”
“기대도 안 했다구요. 당주님.”
…훌륭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력구는 돌벽에 그대로 흡수당했고, 응축된 마력이 돌벽의 틈과 틈 사이로 스며드는 것에 눈을 찌푸렸다.
물론 이렇게 미궁벽을 하나하나 부수고 돌파를 시도할 거라고 헤카이트 당주가 예측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입이 있었다면 꺼억, 하고 마력을 포식해 트림이라도 했을 벽을 잠시 곰곰이 보다가, 일단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정석으로 돌파할 수 있는 미로라면 헤카이트 당주가 마법사 시험으로 내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디 보자.
벽은 돌과 흙으로 되어있고, 마치 이 바닥 지하의 지반을 그대로 융기시킨 것처럼 오래 묵은 풀뿌리나 이끼가 듬성듬성 붙어있었다.
흠, 하고 코로 숨을 내쉰 뒤 목에 걸고 있던 주머니에서 씨앗 한 움큼을 꺼냈다.
마력을 불어넣으면 순식간에 발아해서 빠르게 자라나는 특성의 씨앗이라, ‘잭의 콩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마력탄에 실은 씨를 벽 여기저기에 쏘았다.
스펀지처럼 마나를 빨아들이는 벽에 깊게 박히는 씨앗에서 금새 싹이 돋아나고, 가느다란 넝쿨이 천천히 이어져 스멀스멀, 돌과 흙에 고인 마력을 빨아들였다.
“뭐, 대충 이세계판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해 둘까.”
영웅 테세우스는 명공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을 탈출할 때 아리아드네 공주가 준 실을 따라 길을 찾았다고 했던가.
미궁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주문으로는 적당했다. 다른 용도로도 이래저래 쓸 수 있다는 점도 있고.잽싼 판단에 어깨에 힘이 조금쯤은 들어갈 것 같다고.
그대로 넝쿨이 자라난 구조를 짚어 미궁을 나아갔다.
이제 5분쯤 지났으니 10분이면 넉넉하게 출구까지 빠져나갈 수 있겠지. 그렇게 여유롭게 계산했지만 한편으로는 마냥 낙관만 할 순 없었다. 이 시험을 낸 게 다름아닌 헤카이트니까.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헤카이트 당주가 내는 시험인데, 이렇게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나아갔다.
잠시 더 미로의 길을 따라 나아가다가… 미궁 중추 부분인 큰 방에 들어서자 그럼 그렇지, 하고 입가에 쓴웃음을 일그러뜨렸다.
무엇인가가 누워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머리에우악스럽게 돋아난 거대한 뿔이었다.
터질 듯한 근육이 부풀어 오른 몸뚱아리. 아무것도 입지 않은 탓에… 어… 고간의 그것도 적나라하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우와, 너무 크면 혐오감이 아니라 경외심이 든다더니 딱 그쪽인데. 숨김없이 덜렁거리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눈꺼풀에 덮여있던 눈동자가 번쩍 뜨이고, 커다란 코가 숨을 후욱 들이마셨다. …이쪽을 봤다!
순간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리지 않았다면 벽에 들이받힌 것이 자신이 되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미노타우로스(Minotauros), 진짜로 날 뿔로 들이받아 죽이려고 했다고!
어림잡아 2.5m쯤 되는 거구가 벽에 큰 구멍을 내며 들이받았다가 부슬부슬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소머리에 내려앉은 먼지를 머리를 부르르 흔들어 털어내고는 이쪽을 바라보면서 다시 후욱후욱 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보면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어서, 이 미궁 가운데를 빠지나가지 못하게 되어있나보다.
“씁… 그렇게 순순히 잘 풀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터프하네.”
선택지는 두 가지. 어떻게든 저 녀석을 뿌리치고 이 방을 돌파해서 탈출한다. 아니면, 저 녀석을 쓰러뜨린다.
2.5m 정도라면 아직 다 자란 미노타우로스는 아닌데. 그래도 자신보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머리가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압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
“…헹, 한번 해 보자고.”
지팡이를 손에 고쳐쥐고, 주문을 영창했다.
최대한 빠르게 주문을 짜낼 수 있는 것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마력의 냄새를 맡았는지, 미노타우로스가 반응했다.
우워어어어어어!
귀가 먹먹해지다못해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울부짖음. 워 크라이라든가 그런 종족 특성인 모양인데, 확실히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가 꺾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력탄을 지팡이에 장전하는 것보다 빠르게, 미노타우로스의 발이 움직였다!
쿵, 하고 내가 있던 곳을 발굽으로 짓밟은 뒤 손에 든 도끼를 맹렬하게 휘둘러대는 움직임은 거칠고 조잡했지만, 동시에 파괴적이었다.
와지끈 하고 미궁의 돌벽이 무너져서, 잭의 콩나무가 한창 뻗은 뿌리가 보일 정도였으니까.
신화 속의 미노타우로스는 인육을 먹고 자랐다는데, 이 녀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탱글탱글한 넝쿨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고.
“Shooting!”
마력탄을 발사한다. 주문을 발동하는 시동어를 영어로 정한 것은 모국어로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주문을 발동시키는 상황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지팡이에 장전한 마력탄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매끄럽게 갈랐다. 지금까지 쓰던 지팡이보다 훨씬 위력이 높아졌다!
열 발 중 네 발이 사지에 맞았지만 튕겨나갔고, 나머지 여섯 발은 녀석이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빗나갔다. 미노타우로스가 막고 있는 건너편 벽에 착탄한 것을 보면서 칫, 하고 혀를 찼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마력 시계를 확인해보니 이것으로 13분 지났다.
끙, 하고 벽에 손을 짚고 이쪽을 경계하며 도끼를 움켜쥔 미노타우로스의 몸이 여전히 끈질기게 이 너머로 보내지 않겠다는 듯 묵직하게 자세를 낮춘 것을 보았다.
어쩌면 헤카이트 당주에게 ‘이 이상 아무도 지나가게 하지 말라’ 라든가, 그런 비슷한 명령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안됐네. 지나가야겠어…!”
잭의 콩나무의 생장이 목적 단계에 이르렀다.
미궁 벽 전체에 뿌리를 뻗칠 때까지 기다렸고, 자신이 주문을 문제없이 시전하려면 반드시 이 미궁의 중추인 ‘여기’여야 했다.
미노타우로스가 배치되어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이제 소 괴물의 존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콰악, 바닥에 가브롤의 지팡이를 꽂아넣고 마력을 가능한 전부 퍼부었다. 이 정도의 ‘골렘’을 10초만이라도 움직이려면,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도 아슬아슬해!
“우워어?!”
주변의 벽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하자, 미노타우로스가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당황한 소리를 내었다. 이미 늦었다!
잭의 콩나무는 일종의 신경. 사방의 돌벽은 말 그대로 몸체.
핵은 자신의 마력과 지팡이로 대용. 피가 맺히도록 움켜쥔 지팡이에 의식을 집중하고, 거인이 걷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목에 힘을 꽉 주고 마력이 실린 목소리로 명령했다.
울거진 핏줄이 뺨에 도드라지고, 주륵… 눈의 실핏줄이 터져 안대 아래로 피가 한 줄기 고였다가 흘러내렸다.
“「일어나라」!”
쿠르르르르르릉…
미궁이 몸을 일으켜세우고 있었다.
벽이 한데 뭉치고, 재구성되고 입구는 다리와 발이, 출구는 머리가 되고 사방으로 뻗친 갈림길은 팔로 뭉쳐져, 미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 골렘으로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
시험관들과 관람석의 방청객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묘하게 만족스럽다.
쿨럭, 기침에 피가 터져나왔다. 온몸의 마나맥을 혹사시킨 탓에 몸에 무리가 왔지만…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다! 이제 겨우 1분 남았다고!
“크워어어어!”
몸을 일으킨 골렘의 눈…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미노타우로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미노타우로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미궁을 통째로 골렘으로 만들어낸 탓에 벽에 연결되어있던 족쇄는 전부 고정된 벽에서 끊겨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순순히 보내주진 않을 거지만!
10, 9, 8, 7… 골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시간과 스스로 정한 시험 통과 시간이 맞물려 시시각각 줄어드는 초조감 속에서…
“뒈…졋!”
휘둘렀다.
미노타우로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골렘의 주먹이 신의 철퇴처럼 내리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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