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1 6 / 나 자신, 로즈에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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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클래식이라. 살면서 그다지 연이 있었던 음악 장르는 아니었다.
악단이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은 더더욱 없었고.
노련하게도 손님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며 귀에 스며드는 음악은 막귀인 내가 듣기에도 꽤 훌륭했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의 주요 역할…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는 데는 지금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맞아.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아주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드레스 장갑의 손끝이 땀으로 젖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 안. 그리고 까끌까끌해지는 목 안.
침을 삼키면서 조금 긴장을 완화하려 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루시탄… 아니, 그 안에 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걸리버가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수상한 낌새는 없는지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기도 했고.
…그나저나 나도 이제, 저쪽에서 넘어온 나 같은 녀석을 걸리버라고 부르는 것도 꽤나 익숙해졌네.
여유있는 눈으로 힐끔거리는 게 열받아서, 이쪽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탄신일을 맞이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왕자 전하.”
“잉겔트 공작 각하. 병환이 드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리저리 분주하여 변변히 문안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좀 어떠신지요.”
“많이 나아지셨습니다. 폐하께서 치유사를 보내주신 덕을 봤지요. 허허.”
그 와중에 환담을 나누기도 하고.
니이냐로서 있었던 시간이 오래되었던 탓인가, 루시탄은 자연스레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들이 건네는 인사를 익숙한 듯 받고 거기에 답례도 하면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나하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게 십 수명을 넘어서고부터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옆에 계신 분은…?”
뭘 그런 걸 묻고 난리야.
당혹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생긋 웃음짓고는 대답하지 않으려니 루시탄… 의 몸을 차지한 녀석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네, 이 사람은… 최근 왕립 악단에 입단한 소프라노 여가수입니다. 저와는 먼 친척이 되어서, 우연한 계기로 이렇게 데리고 왔죠. 연습이 좀 지나쳤는지 목에 무리가 와서 잠시 말을 하지 않도록 진단을 받았던 터라.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공작 각하.”
“아, 그런… 가엾은.”
잉겔트 공작은 대략적으로 납득한 모양이었다.
뭐, 납득하지 못했다고 해서 왕자를 추궁하려 들진 않았을 테지만. 파티를 즐기시라며 잉겔트 공작이 떠나갔고, 녀석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흥, 하고 이쪽은 그 곤혹스러움에 고소하다는 양 웃음지었고.
…그리고 아는 얼굴도 하나 납셔주었다.
아까 보았던 것보다 조금 더 위엄에 방점을 두어 화려하게 치장한, 붉은 주교관에 사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금제 단안경을 어색한 듯 만지작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다. 루시탄의 기억을 대충 확인했겠지만, 아마 어떠한 이유로 자신이 지적했던… 그녀와 나눴던 환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탄신 축하드립니다. 왕자 전하.”
“…베아트리체 추기총경 예하. 아까는 결례가 많았습니다.”
“별말씀을.”
포도의 색을 닮은, 베아트리체의 청보라색 눈동자가 루시탄과 나의 얼굴을 한 번씩 슥 훑고지나갔다.
이제껏 마주치는 손님들에게 그러했듯 스커트 자락을 쥐고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했고, 베아트리체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교환했다.
“…괜찮으신가요?”
베아트리체의 시선은 날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질문은 어쩐지… 굉장히 타이밍이 미묘했다.
무엇이 괜찮냐고 묻는 것인지가 모호해서. 아까의 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여자가 무엇인가를 눈치챘는지조차 애매하다.
녀석이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아마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나와 베아트리체가 계속 대면하고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목에 이상이 생겨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아하. 그렇군요.”
주섬주섬 주워섬기는 녀석의 변명에 베아트리체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뒤로도 가볍게 이런저런 화제를 꺼내 이야기를 이어가던 베아트리체가, 악단의 음악이 조금 높고 경쾌한 곡조를 연주하자 고개를 돌렸다.
각자 환담을 나누던 내빈들도 마찬가지로, 몸을 돌려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국왕 폐하 납시오.”
검은 바탕에 금실로 장식된 예복을 입고 왕관과 왕홀로 위엄을 살린 알트슈타인의 국왕… ‘울자크 4세 알트슈타인 팔케’가 단상에 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세 명의 ‘매의 기사’가 뒤따랐다. 얼굴을 드러낸 노년의 기사와, 그 뒤를 따르는 두 명의 매의 투구를 쓴 기사.
왕이 단상 중앙의 왕좌 앞에 서자, 그 옆을 나이 든 기사가 지켰고 나머지 두 기사는 왕좌의 뒤에 섰다.
왕의 입이 열렸다.
“환영하오. 이 자리에 모여주신 국내외의 귀빈 여러분.”
자신에게로 충분히 시선이 모인 것을 확인하고, 왕은 손을 들어 악단의 음악을 중지시켰다.
청중들의 숨소리도 잦아들고, 후우… 왕의 입에서 깊게 한숨 비슷한 것이 새었다.
“못난 자식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렇게 바쁜 시간을 내어준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이다. 부디 마음껏 이 연회를 즐겨주시기 바라오.”
왕은 시종이 내민 잔을 들고는 건배를 제의했다. 투명한 술잔에 담긴 술이 가볍게 찰랑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내빈들의 손에 각자 술잔이 내어졌고, 왕은 그 술을 단번에 삼켰다. 내빈들도 그러했다.
“…덧붙여, 연회가 파하기 전에 짐이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한 중대한 발표를 하겠소이다.
그럼 특별히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특별히 청해 모신 손님께 한 말씀 부탁해도 되겠소이까?”
왕의 시선이 향한 곳에 서 있던 손님… 붉은 사제복의 자락을 살짝 끌면서 단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베아트리체에게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왕보다 조금 아래의 위치에 서서 그녀는 경건한 미소와 함께 머리를 숙였다….
주교관이 굴러떨어지려는 것을 눈치채곤 허둥지둥 그것을 다시 머리에 잘 정돈하는 것을 보곤 좌중에 약간 웃음이 일었다.
사실 이 자리의 모두는 알고 있었다. 저 또한 실수가 아니라 정치적 함의가 깔린 의도적인 제스처라는 것을.
“이렇게 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 폐하. 말씀드렸지만 거듭 탄신을 축하드립니다. 루시타니아 왕자 전하.”
녀석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베아트리체의 눈이 그 옆에 서 있는 내 얼굴에 잠시 머무르다가 떨어졌다.
아마 왕이든, 다른 내빈이든, 그녀가 날 보았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긴장에 목이 바짝 탔다. 목이 말랐다… 그도 그럴 게아까부터 아무 것도 마시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참자.
침을 한 번 더 꼴깍 삼키며 베아트리체에게 살짝 눈짓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아무것도 합의하거나 한 것은 없었지만, 그녀는 뭔가 알고 있다.
막연하게 그런 판단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잘 되기만을 그저 바랄 뿐.
기다리던 때가, 곧 온다.
“또한 이것은 율황 성하의 뜻으로서, 왕자 전하께서 왕국의 평화와 안녕을 이루시는 데 부디 여신께서 보듬어주시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성가대.”
왕립악단이 잠시 자리를 비키고그 자리를 율황청의 성가대가 채웠다.
젊은 수도사가 오르간에 앉았고, 내빈들이 각자 자리를 찾아 앉고 나서도 잠시 더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어라, 아까 봤던 그 수도사는?
약간의 뜸들임 후, 오르간 소리가 부드럽게 베일처럼 나부끼며 실내에 떠돌기 시작한다…
「태양성가」.
이 땅에서는 대중들은 물론 높은 귀족들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진 성가였다. 경건하게 울리는 오라토리오(Oratorio)가 청중의 귀와 마음에 스며들어 여신의 은혜를 몸소 깨닫게 하는 지상에 내리는 태양의 은총.
걸리버인 자신에게도 예외없이 내리쬐는 태양의 노래에 가슴이 조금 술렁이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베아트리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고, 내 자신의 안에서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예고도 없이 입이 벌어졌다.
「지상을 비추는 여신의 빛이여 Dea lucis unde mentes illustrantur terrae
당신의 빛이 씨앗이 되어 Lux erit semen tuum est
새싹이 움트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며 pullulat germinare facite ergo fructum
사람이 태어나고 잠드는 것을 Homo natus homo perit
당신의 태양으로 오롯이 비추소서 Ut sol tuus, fulgore quodam illustrare」
숨이 느릿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이의 목소리가 목을 통과하며,
벌어진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을 때, 이윽고 그것은 노래로 화했다.
성가대의 노래와 화음을 이루어, 온 회장 안으로 번져가는 죽은 성녀의 노래.
내게서 목소리를 빼앗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던 녀석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꼴 좋다!
「우리를 그저 악에서 구하시고 Servo nos a malo
당신의 품에 우리를 안으소서 amplectaris nos
생명 있는 자, 생명 잃은 자 Vivus, mortuus est
죄 없는 자, 죄지은 자 innocentia, peccator
그 모두를 태양으로 비추소서 Ut sol tuus, fulgore quodam illustrare」
녀석의, 루시탄의 얼굴에서 점점 경악의 표정마저 점점 벗겨져 갔다.
성녀의 목소리가 내지르는 것은 태양에의 찬미. 부정한 것을 모두 불태워 몰아내는 산 자를 위한 축원이다.
몸을 가로채어 써먹는 삿된 스킬 따위, 더는 그 녀석의 몸 안에 웅크린 채 버텨낼 수가 없을걸!
목에 힘을 빡 주고, 라스트 스퍼트, 질러서 간다!
「태양에 찬미를 Laudo Quod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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