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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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끈질겼다.

잠시도 차돌 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모든 여자들은 사력을 다했다.

그녀들의 손짓과 몸짓은 그러한 동작들은 마치 미소를 짓는 어린아이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누군가가 이런 행동을 보았다면. 그들은 이렇게도 생각할 것이다.

짐승보다 더한 화냥년이라고.

식물인간이 되어있는 처량하고 불쌍한 남자를 괴롭히는 천하의 창녀보다 더러운 갈보라고.........

그러나 그들은 욕구를 충당시키려고 행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온통 사랑에 동해 행하는 고귀한 희생정신이었지 욕구로 인한 본능 때문에 행하는 일이 절대 아니었다.

간혹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잠시의 시간이었고 그것 또한 한참 열기 솟는 젊음이 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들은 그 곳에 매달렸다. 죽기로 매달렸다.

그곳에서의 움직임을 알고부터 결사적이 되어버린 그녀들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했나. 노력해선 안 되는 것이 없다 했던가.

그들은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희열을 보고 말았다.

슬쩍 감지되던 그곳이 이십 여일이 지나자 뭔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았다.

즉 차돌이의 혈맥이 그곳으로 통했다는 의미다.

축 늘어져 기운을 잃고 있던 고집 센 자지란 놈도 여자들의 육탄공세에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일까,,,,,,힘없던 그놈이 조금씩 무게를 더하더니 오늘 제법 묵직하고 풀숲에 누워 일어 날줄 모르던 그놈이 약간이나마 허리를 펴고 일어나려 하고 있지 않는가.

여자들은 환호했고 다시 기적 같은 기쁨에 울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법에 또 하나의 방법을 더했다.

손과 입으로 행하던 행동에 자지란 놈이 조금 묵직해지는 것을 보고 여자들의 중심에 가둬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가 않았다.

조금 묵직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힘이 없는 놈이 아닌가.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여자들은 손을 동원하고 주위의 힘을 빌 어 억지로 삽입했으며 그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 차돌이의 자지를 가두고는 행여나 달아날세라 조심하면서 엉덩이를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이다.

길고 늘씬하게 빠진 다리를 축으로 삼아 지탱하면서 긴 머리가 산발이 되고 커다란 젖통이 출렁거리면서 가는 허리를 움직이고 풍요한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그들은 춤을 췄다.

언젠가 다가올 축제를 위함인가 그들은 좋아했고 그리고 슬프도록 깊은 한숨을 쉬어가며 모두는 차돌이의 다리중심에 앉아 나름대로 지닌 춤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슬프도록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움직임을 느낀다.

나날이 조금씩 다르게 변모하는 자지란 놈의 기세가 예상을 뛰어 넘도록 활기에 차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그놈이 광기를 부를 정도로 크기를 더했을 때까지 그들은 근 두 달여를 다시 보내야만 했다.

차돌이가 죽은 듯이 누워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2년이라는 세월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물론 그곳 중심에서만의 일이었고 다른 모든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들은 이제 완전한 희망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들의 처절한 투쟁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좌절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겪는 고통도 이러할 진데.....

과연 차돌 이는........

그들은 자기의 고통 속에서도 여기까지 오기까지 자기들만이 싸우지는 않았다고 굳게 믿었다.

차돌이도 고통과 좌절 속에서 깨어나고자 내면으로 얼마나 숱하게 싸우고 지쳤으리라 그리고 조금씩 희열을 느끼고 있으리라.

우리보다 그가 겪는 고통은 우리의 몇 천배가 될 터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것뿐이었고 그는 분노와 목마름으로 시련을 받으면서도 자기를 위해 아니면 우리를 위해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라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투지와 집념이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차돌 이는 분명 일어나 우리에게 환하게 웃으며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고통을 생각하면 저절로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여보, 제발 용기를 내....그리고 끝까지 싸워 줘.........]

모두는 한마음으로 차돌 이를 성원하고 북돋우는 마음이다.

그렇게 그들은 흐려져 있던 하늘이 차츰차츰 개 이는 희열을 보며 희열과 함께 동반한 슬픔까지도 이해하고 사랑하며 환호하는 것이다.

.

.........................

.

그리고 세월은 무심히 또 흘렀다.

봄기운이 다 갈 무렵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세상은 나들이를 하기 좋은 그런 화창한 날이었다.

그러나 대궐 같은 이집에 오직 처량한 정적 말고는 별다를 반응이 없다.

들락거리는 사람은 많지만 누구하나 떠들고 웃지도 않는다.

이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얼굴에 긴장을 드리우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 집에 오늘 새벽에 커다란 비명이 울려 퍼졌던 것이다.

[여보, 오빠..석이 아빠......엉 엉엉..............]

윤지의 비명이었다.

윤지는 늘 하던 대로 차돌 이를 자기의 중심에 가두고 가쁘게 몸을 놀리고 있었다.

차돌이가 살아있는 유일한 곳이 그곳이었고 그렇게 되기까지 피나는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곳만 반응하는 차돌 이를 일깨워 자기중심 가득히 가두고는 연한 살 벽을 찌르며 감지되는 자지로 말미암아 야릇한 흥분의 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실 차돌이의 그곳이 기운을 차리고 여자들이 그것을 몸속에 품고 움직이는 것이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차돌이의 자지가 가져다주는 짜릿한 쾌감은 그가 정신을 잃고 있어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환자에게 이런 것을 느끼고 흥분하다니 모두는 처음에 얼마나 당혹했던가,

그러나 오는 쾌감을 누가 말리리오.

갖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품속에 들어오는 그 쾌감이라는 선물을 사양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의 선물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윤지도 새벽녘이나 되어서야 자기차례가 왔고 서둘러 차돌이의 중심을 품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다리사이에서 오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한층 쾌감에 젖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차돌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마냥 허공만 쳐다보고 있어야할 눈동자가 자기를 보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입가엔 미소 같은 것이 어려 있고........윤지는 기절하도록 놀랐고 그 자세에서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었다.

모든 여자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그녀들은 목적한 바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그들에게 무한히 크고 긴 미래가 있었기에 그걸 희망으로 삼았기에 모두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성심을 다하리라 맹세했기에 내일을 보게 된 것이다.

진정 내일을 포기하고 희망을 잃었다면 오늘 이처럼 기쁨은 절대 없을 것이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을 그들은 기적을 이룬 것이다.

........................

차돌이가 깨어난 것이다.

2년6개월을 방황하던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차돌이의 상징이 살아나고 그 상징을 조종하고 명령하는 기관이 갑자기 눈을 떤 것이다.

이건 차돌 이와 모든 여자들의 승리였다.

차돌 이는 윤지에게 슬프도록 처연한 눈빛과 미소를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지를 움직여 윤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사지는 꼼작 달 삭을 않는다.

.......................

차돌이의 정신만 먼저 깨어난 것이다.

윤지의 비명에 다시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차돌이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은 오랜만에 보는 다정한 얼굴들을 모두 눈 속에 집어넣을 듯이 강렬했고 아름다웠다.

차돌이의 눈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비록 사지는 움직이지 않아도 지금 자기가 처해진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기라도 했을법한데 차돌 이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미소만 흘리고 있다.

그런 차돌이의 눈이 모두를 보고난 뒤에 스르르 흐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살았다는 안도의 눈물이기도 했고 정다운 사람 곁에서 다시 오순도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은혜에 어찌 보답을 하리하고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수척해진 모든 여인들의 모습에서 자기를 살리려고 애쓴 흔적들을...

그 흔적 속에서 그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지극히 험하고 거친 세상에도 누굴 헐뜯거나 싸우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또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려하는 숭고한 마음들을...

이젠 내가 보답해야지..

어찌하던 이 난관을 헤치고 일어나 날 위해 애쓰고 고통스런 날들을 보낸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며 그 아름다운 마음을 소중히 가꾸며 나머지 내 삶을 열심히 살아야지,

차돌 이는 눈을 감아버린다.

허지만 그런 그의 눈물을 본 모두는 한 덩어리가 되어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윤지의 비명에 벌거벗고 들어온 양여사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모습은 아랑곳없이 차돌이의 메마른 손을 잡고 그의 여자들과 더불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입은 울음소리이고 눈은 눈물바다인데도 울음소리가 슬프게 들리지 않는다.

찡그리고 불쌍해보여야 할 얼굴이 환희와 기쁨에 차있으니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조금 후 다시 그 집은 요란을 떨었고 점심 무렵부터 사람들의 행 열이 끊이지가 않는다.

그리고 잔치 집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음식들이 들어왔고 주방에서는 하루 종일 연기와 냄새가 끊이지가 않는다.

그런 상태는 차돌이가 정신을 차리고 근 일주일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차돌 이는 문병 온 사람들을 일일이 맞이하며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아직 말을 하기에는 어려운 모양이다.

허긴 정신이 차려졌다고 모든 것이 원 상태로 오는 것은 아니다.

급격히 뇌가 있는 백회혈이 뚫리고 그것으로 인해 정신은 차려졌지만 기혈이 모두 뚫린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자리를 잡기에는 다시 차돌이의 처절한 싸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 맥과 막히고 굳은 혈을 원활히 해야 하며 그곳으로 혈의 순환을 이끌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한다는 건 정신을 차린 차돌이가 알 것이다.

그는 기를 공부했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에...........

차돌 이는 많은 사람에게 병문안을 받았다.

기주는 물론. 덕만도 다녀갔다.

미국에 있는 제니의 할아버지도 다녀갔고 알렌은 그간 여러 차례 다녀갔지만 이번에는 제니와 함께 한동안 머물기로 한 것인지 눌러앉아 손님들을 맞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곰도 외팔이도 종민 이도. 같이 와서 차돌 이를 문안했다.

차돌 이는 그들을 보며 입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억하고 눈물을 짓는다.

왜 모르겠는가.

차돌이가 입을 앙다물고 눈물 흘리는 이유를.........곰은 손수건을 꺼내 차돌이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준다.

[대장. 당신은 영원한 우리들의 대장이야.

그리고 난 엄청난 축복을 대장에게서 받았고...........대장 걱정 말고 빨리 일어나.

아마 대장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대장이 매듭을 풀 수 있을 거야.

모든 것은 철저히 조사되었고 누군지도 밝혀졌어.

세상은 모르고 있지만 우린 절대 묵과할 수 없어.

대장이 일어나 그들에게 벌을 주도록 하기위해 지금도 모른척하며 아픈 가슴을

달래고 있어. 그러니 대장이 빨리 일어나 제비의 한까지 풀어줘야 하지 않겠어.]

곰이 한손으로 차돌이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하는 소리다.

차돌 이는 눈을 껌벅인다.

알았다는 무언의 표시가 아니겠는가.......

어찌 잊어버릴 수가 있는가......

그토록 활달하고 숨김없던 제비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자기가 제비를 형으로 부르고 대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기구한 운명에 두 사람은 만났고 인연이 이어졌는데 나랑 같이 있던 제비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고 나또한 그 일로 이렇게 오랜 세월을 허송으로 보냈는데 그것이 흉계에 의한 사건이라면 차돌 이는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또 맹세했던 것이다.

차돌 이는 그걸 알리기 위해 유일하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기관인 눈을 통해 의사를 알려준 것이다.

곰도 차돌이의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처연하게 웃을 뿐이다.

..............................................

........

밤 열두시가 넘어 세상이 조용할 즈음에 슬그머니 차량 한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차는 조심스레 차돌이의 집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검은 중형승용차에서 두 사람이 내린다.

언제나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던 마당은 오늘따라 이상하게 소등을 하고 있다.

앞을 구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중 젊어 보이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을 경호하는 듯 했다.

두 눈을 사방으로 둘러보기도 하고 상전의 앞길을 살펴주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용히 걸었고 잠시 후 그들은 현관을 밀고 들어가 사라진다.

현관에 들어서서도 그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이미 차돌이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는 듯이 보였고 또한 아무도 마중하지 말기를 약속이나 한 듯이.... 두 사람은 한 방문 앞으로 가더니 노크를 한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조용한 목소리가 들린다.

선영이의 목소리다.

지금 이집에 많은 여자들과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지금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적막감에 싸여있다.

훤하게 밝혀놓은 마당의 전조등도 모두 꺼버리고 거실에도 약한 조명등만 밝혀놓았으니 집이 마치 음사한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 같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다.

들어온 사람은 말없이 환자 앞으로 가더니 손을 내밀어 힘없이 늘어진 차돌이의 손을 잡는다.

노신사는 그런 선영 이에게 약간의 고개를 숙여 묵례를 보내고는 차돌이 곁으로 다가간다.

차돌이의 눈도 다가오는 상대방을 보고는 반가움에 넘쳐있다.

[이봐, 친구....... 한 달에 한번 씩은 한잔하기로 해놓고 이게 무슨 꼴이야.......

이렇게 자꾸 오래 있으면 나 자네랑 친구 안 해.......

그러니 어서 일어나 한잔하자고, 응 친구............]

노신사의 말은 무식하게 하면서도 정감이 가득 들어있다.

몸은 어떠하냐......아픈 데는 없느냐하는 일반적인 인사는 전혀 없고 마치 신경질을 부리듯 다구 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노신사의 얼굴엔 정감이 가득 들어있었다.

누구인가, 이 초로의 신사가.

놀랄 일이다. 그는 바로 정 대찬이었다.

예전엔 상록수 회장이었고 지금은 이 나라의 권력의 수반인 대통령이 아닌가.........

말은 하지 못하지만 차돌이의 눈엔 죄송함과 찾아준데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득하다.

[나,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

허나 이렇게 정신 차린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아. 허허허...........]

대찬은 차돌이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편다.

그리고 지금껏 가만히 있던 노인을 호위하고 온 젊은 신사가 입을 연다.

[사숙님........빨리 일어나 제자의 절을 받으셔야죠.

제자는 지금 2번이나 세뱃돈을 건너뛰어 섭섭합니다.]

상허였다.

상허도 이젠 제법 농을 할 정도로 사람을 파악할 줄 안다.

지금 차돌 이에게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말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차돌 이는 상허에게도 눈빛을 준다.

고맙다는 무언의 대답을 담고.........

그들은 그리고 말이 없었다.

서로를 쳐다보고 두 손만 마주잡고는 뜨거운 정이 담긴 눈빛만 나누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대찬은 차돌 이를 보고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해야할 시간임을 무언으로 알려준다.

차돌이도 그런 대찬에게 눈길로 아쉬움을 전달한다.

대찬은 몸을 돌려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선영이 앞으로 간다.

[누님.....친구를 잘 부탁합니다.

제겐 이 세상에 하나있는 친구라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누님을 추궁할 것입니다.]

초로의 신사는 선영이의 앞으로 가서 다시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인사 겸 부탁을 한다.

그건 협박이 아니라 친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며 간호를 하고 있는 그녀들에게 대한

애정이었다.

선영 이는 그 말에 기겁을 한다.

[아니, 누님이라니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제 같은 천민이 각하를 한번 뵈 온 것만도 영광이거늘 누님이라니 너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죽기로 보살필 것입니다.

만일 각하가 우려하는 일이 생긴다면 저 또한 이 세상에 없을 테니 심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와주셔서 진정 영광이며 감사합니다.]

선영인 허리를 깊이 숙이며 민망하고 쑥스러운 표정을 숨긴다.

그리고 또렷하게 대통령의 심려에 대한 답변을 한다.

고마웠다.

아무리 캄캄한 밤중이지만 고된 업무에 쉬지도 않고 찾아주신 지도자가 아니신가.......

그런 분이 동생을 친구라 칭하며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마음한구석으로는 동생의 끝없는 역량에 대한 자랑감도 가득했다.

[역시 내 친구의 누나야...하하하........

그리고 이건 작은 선물입니다. 친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담 없이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찬은 상허에게서 보따리를 받아 선영에게 내민다.

선영인 거절하지 않는다.

거절한다고 가져가지도 않을 것이며 구태여 그렇다면 바로 받는 것이 더욱 편하리라 여겼다.

선영인 보따리를 받아들며 다시금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마음을 보인다.

[감사합니다. 각하의 마음이라 여기고 동생에게 쓰겠습니다.]

[하하하..그래야죠...]

그리고 대찬은 차돌 이를 본다.

두 눈엔 이별의 아쉬움이 들어있다.

[이봐 친구, 사실 오늘 일정잡기가 무척 힘들었어. 이해하겠지..허허.......

그러나 자네가 일어나면 내가 필히 날을 잡아 연락할 테니 코가 비 툴 어 지게

마셔보자고.....

그리고 나를 축하도 해 줘야하지 않겠어........

그러니 하루속히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야한다고, 알았지........허허허......]

차돌 이는 대찬의 깊은 사려에 한마디말도 못해주는 게 갑갑하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쓰도 떨어지지 않는 말을 어찌 하랴.다만 눈빛으로 대답을 할 수없는 자신이 초라하도록 슬퍼진다.

찾아 온 친구에게 무어라 한마디 못해주는 자신이 미워지도록 갑갑해진다.

그때 또 다른 음성이 차돌 이에게 작별을 고한다.

[사숙,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땐 꼭 제자에게 한수 비법을 전수해 주셔야 합니다.]

상허도 작별인사를 한다.

차돌 이는 눈빛으로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고 그 눈빛으로 그들이 떠남을 보아야했다.

그들은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잠시 후 정원의 가로등도, 어둡게 했던 집안의 모든 불도 켜지고 요란한 발자국과 시끄러운 소리로 난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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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후 차돌 이는 달라졌다.

핏기 없는 얼굴에 약간이나마 화색이 돌았고 창백하던 피부도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차돌 이는 혼자 있길 원하는 듯 했다.

선영인 그걸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차돌 이는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려한 것 같았다.

선영인 어차피 그 자신과의 싸움이고 언제고 거쳐야할 일이라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겨라, 이겨내야 한다.]

아무것도 고뇌할 것이 없는 사람은 영혼이 잠들어 있는 것과 같다했다.

우리네 사람이 고뇌라는 괴로운 칼날에 부딪쳐본 일이 없다면 약하게 부는 바람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 시련을 극복한다면 넌 분명 다시 태어나리라..

그녀는 차돌이의 눈빛이 주는 마음을 읽고는 시간을 정해 차돌 이를 간호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지침을 내린다.

그리고 차돌 이를 병문하러온 외부인도 선별해서 날짜를 정해 만나도록 했으며 평상시에도 별 일 아니면 차돌이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선영인 냉정하게 보일정도로 엄격하게 이번 일을 시행 하였다.

그건 선영이가 무언가 생각난 게 있어서였다.

그는 무랑이 에게 서도 들었고 차돌이가 자랑삼아 한말도 기억났다.

차돌이가 중국에서 오랫동안 기를 연마하고 커다란 성과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자 무언가 뇌리에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섬뜩함이 일었고 어쩌면 하는 그런 기우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차돌이가 저런다면 혹시 기혈을 뚫기 위해서인지도 모르는데 여자들이 간호한답시고 북적대고 시끄럽게...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지만 몸을 접촉하는 일이 귀찮은 일일 수도 있다 여겼으며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본인의 치료에는 도움이 없을 것이라 단정했고 자기가 품은 마음이 맞기를 간절히 빌며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차돌 이는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사지는 움직일 수 없고 눈마저 감고 있어 무얼 하고 있으며 얼마나 나아졌는지도 알 길이 없다.

...........................

차돌 이는 다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오로지 두 군데서 활약하고 있는 기운을 단전으로 모아야했고 그리고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야했다.

지금 백회혈과 회음 혈에 움직이는 강렬한 힘을 단전에 모으는 것이 급선무였다.

차돌 이는 눈을 감았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두 곳에서 활동하는 강렬한 기운을 단전으로 옮기기 위한 결사적인 경주를 시작하였다.

.

차돌 이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그러자 불연 듯 무아스승님이 한말이 떠오른다.

그땐 별로 귀담아 두지 않았던 말 같은데 지금 생생히 마치 자기 곁에서 들려주듯 선명하게 들리는 듯하다.

[차돌아,..........

모든 것은 공으로 시작하고 공으로 끝난다.

공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고 괴롭고 고통스런 길이지만 수행자에겐 필요불가견한

일이다.

먼저 공으로 가기위한 자세로는 좌선으로부터 한다.

좌선이란 [여기에서 잠깐, 불필요하지만 내가 아는 좌선을 옮겨볼까 합니다]

완전한 연화좌로 앉을 때 오른쪽 넓적다리위에 왼발을 얹혀놓고, 왼쪽 넓적다리위에

오른발을 얹어 놓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등뼈를 곧게 세우고 귀와 어깨는 일직선이 되어야하며 어깨는 천정을 향하고

뒷머리는 들어야한다.

그리고 턱은 당겨야하며 자세에 힘을 갖고 아랫배 쪽으로 해서 아래로 죄어야한다.

이렇게 함으로 신체적 정신적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며 처음에는 호흡을 하기에

어려움을 발견해도 자세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깊이 숨을 들이마시게 되며

편안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즉 가부좌다.

그리고 손은 법계정인을 만들어야한다. 오른쪽 손바닥위에 왼쪽 손을 얹혀놓고 중간

손가락의 중간마디를 서로 포개고 엄지손가락을 서로 맛 물리도록 해야 한다.

또 배꼽의 높이 근처에 엄지손가락을 놓은 채 손을 몸 쪽으로 향하게 해야 하며 팔은

자유롭고 편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몸으로부터 약간 떨어지게 해야 하며 마치 각각의 팔 아래에 계란을 깨지 않고

지니고 있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도 뒤로도 기울여서는 안 되며 마치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또한 단전에 어느 정도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까지는 지면으로 설명 드리기가 곤란하네요.

지식도 짧은데다 이것도 어딘가에서 보고 생각해가며 옮기는 것입니다.l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한 자세를 가질 수는 없다.

가령 신체가 불안전한 사람이나 간질 같은 지병이 있는 사람은 좌선을 할 수 없듯이

자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마음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기를 잊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망아의 지경에

들어서면 그 상태에서는 못할 것이 없다.

그 누구도 들 수없는 무거운 짐도 가벼이 들 수 있고 누구도 다스리지 못하는 병도

나을 수 있을 것이며 낳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또한 그런 과정에서 행하는 것은 불가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데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세상에 못하는 것이 만들어 질수 없듯이 내가

이루러하면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는 것이 공의 세계이다.

마치 꿈같은 경지이며 일이기도 하지.....

그러나 그런 경지에 든 이가 누가 있었던가, 부처님을 제외하고 그 누가 그런 세계를

밟을 수가 있었던가.

우린 그분의 가르침대로 조그마한 성과라도 얻기 위해 수행하고 노력하지만 아주

극미한 성과만으로도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는 걸 너는 알 것이다.

나또한 지금까지 구십 평생을 그길 수행만으로 산 사람이니..........

차돌아, 버려라..그러면 얻을 것이니라..........]

왜 이 말이 지금 생각이 났을까........

차돌 이는 한참을 망설이고 궁리한 끝에 지금까지 행해왔고 지금 행하려하는 전쟁을 포기하고 만다.

다만 자기를 잊고 아픔도 잊고 불편함도 잊는 그러한 세계에 접기 위한 버리는 명상에 빠져들기로 한다.

단전으로 유도하려했던 기운을 그대로 놓아준다.

제 맘대로 제가 있은 곳 가고 싶은 데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붙잡으려 애쓰기보단 차라리 그 기운에 휩싸여 같이 떠돌이 다니는 그런 심정으로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 또한 잊으려고 애쓴다.

그것이 쉬운 일이랴........

알 수없는 기운은 언젠가부터 알 수없는 포위망을 느끼고 불안한 듯 발광하고 저항하더니 그런 포위를 풀고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니 천지가 제집인 듯 거칠 것이 없이 신체 어느 곳에도 흘러간다.

차돌 이는 그날부터 그 한 가지에 매달린다.

불편한 몸이라 남들의 두 배 이상 힘든 고통이고 괴롭지만 고통 뒤에 오는 환희를 아는지 참고 묵묵히 그 고통을 감수하며 자기가 찾아가는 세계, 공의 세계로 향하여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

차돌이의 몸속의 기는 처음에는 제각각이었고 제 맘대로 활동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강약이 있는 법, 기란 놈도 강자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스스로 복종하며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지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의 삶을 살던 기도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집단을 이루며 옮겨 다니고 있었다.

조그마한 기가 움직이며 대문을 밀칠 때의 고통도 차돌 이에게는 벅찼는데 그놈들이 뭉쳐 내지르는 발길질은 실로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차돌 이는 인내와 끈기로 아픔을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런 기의 기세를 맞는 아픔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도 허해지며 마치 새처럼 날아가는 자신을 느끼기도 한다.

수련의 끝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실로 공을 경험했다고 해도 다시 공의 세계를 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이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조차 없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자체가 없어야한다.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그러한 세계가 말로 떠돌지만 어찌 그 세계를 밟을 수 있겠는가.

억지스런 고집이 아닐까.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차돌 이는 다시 신체의 커다란 아픔에 입을 벌리려했다가 잡생각이 나를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이라 여기고 다시 버리기 위한 명상에 잠기려고 애쓰는 것이다.

....................................

어느 날,

윤지가 물에 젖은 수건을 들고 벌거벗은 채 차돌이가 머무는 아방궁으로 들어섰을 때 윤지는 또 한 번 기적 같은 현상을 목격한다.

항상 신선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는 아방궁에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매 쾌한 냄새가 나고 있었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차돌이의 몸이 약간이지만 침대에 붕 떠 있는 것이다.

부상해있는 차돌 이를 보고 윤지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자리에 목석이 되어버린 체 두 눈은 화등잔만 한 체 이러한 현상에 기절할 듯 놀라며 멍청하게 서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내에서 나는 냄새가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더니 종내에는 그만 엎어져 정신을 잃고 만다.

[쿵]

차돌이의 몸에서 배여 나온 냄새이리라........

차돌이가 세상에서 오염되고 불순한 것들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아마 태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 냄새는 지독했고 지금까지 차돌 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리라........

차돌 이는 자기를 태우고 있는 것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부상해 떠있는 차돌이의 표정은 더 할 수없이 평화로웠고 순수했다.

윤지의 쓰러지는 소리가 컸는가.

다시 사람들이 들어오고 이런 광경을 보고 놀라고 그리고 지독한 악취냄새에 중독되어 쓰러진다.

졸지에 차돌이의 아방궁 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개져있거나 사지를 벌리던지 또는 모로 누워 기절해있다.

이 궁에 올 수 있는 여자들은 아마 전부 온 것 같았다.

양여사도 흉측한 몰골을 해가지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하늘로 곧추세우고는 이상한 자세로 기절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냄새는 차츰차츰 사라진다.

시설이 완벽한 건물 실내에는 환풍기가 여전히 돌아갔지만 냄새를 모두 지우지도 못했던 어쩌면 고약한 냄새가...그런 악취가 사라질 즈음 차돌이의 몸도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언제 내 몸이 부상했는지 모르는지 처음그대로 누워있을 뿐이다.

다만 차돌이의 몸을 가리고 있는 얇은 시트가 땀에 절어 그의 몸에 찰 삭 붙어있다.

그리고 다리사이의 중앙에 고봉처럼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

.......................

차돌이의 몸에 커다란 변화가 있고 이틀 후.

아침 일찍 선영 이는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수건과 함께 가져가 차돌이의 이마와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정성어린 손길로 차돌 이를 닦아주는 선영이의 동작은 어쩜 행복이었다.

선영이가 차돌이의 목을 닦아 내려갈 때 차돌이의 입에서 기운 없고 나직한 소리가 들린다.

[누나, 밖에 바람이 쐬고 싶어.]

선영 이는 자기 귀를 의심한다

순간 손을 부르르 떨며 놀란 토끼눈을 해가지고 차돌 이를 쳐다본다.

차돌 이는 웃고 있었다.

[너 금방 뭐라고 했어. 분명 말을 했지. 나더러 분명 밖에 나가자고 했지.........]

선영 이는 혹시 잘못들은 것이 아닌지 재차 확인한다.

선영이의 눈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가득했고 금 새 눈망울은 촉촉이 젖어 그 눈망울로 부터 굵은 눈물을 뿌려내고 있다.

차돌 이는 빙그레 웃으며 아주 미비하지만 고개를 끄떡이는 것이 아닌가.

[아...그래. 된 거야...이제 된 거야.........

엉 엉엉...이것아....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호호호..정말 장하다.....]

선영 이는 마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환자 같았다.

그리고 이 순간에는 차돌이의 누나로 돌아와 그동안 애쓴 것에 칭찬하고 감격의 눈물과 기쁨의 웃음을 섞어가며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고 있었다.

[호호호......그러자. 정말이지 너랑 외출해본지도 너무 오래되었어.

그렇지만 잠깐 기다려.......

네가 입을 옷도 챙기고 휠체어도 준비해야겠지. 호호호......]

선영 이는 부리나케 뛰어나간다.

그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늘까지 버텨왔는데 그것이 지금 현실로 다가왔다.

꿈만 같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환한 세상이 보인다.

맑고 영롱한 진주처럼 세상이 아름다웠다.

그렇다. 맑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실로 오랜 인고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오늘을 맞은 것이다.

진주라는 것이 모든 고통을 견디고 난 뒤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상처를 입는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랴,

하지만 이 상처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절치부심 각고의 노력을 한다면 분명 소중하고 커다란 결실이 있는 법이다.

자신이 받은 고통만큼 영롱한 빛을 반짝이는 것이 진주나 사람이나 뭐가 틀리겠는가..

잠시 후 한 무더기의 여자들이 나타나고 모두는 차돌이의 주위에 둘러선 체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듣고 싶은지 그저 입만 바라보고 있다.

모두는 자기할일을 잊고 있는듯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고 일부는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차돌 이는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할 말을 잊었다.

다만 정다운 웃음으로 대신할 뿐이다.

눈엔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이슬을 가득 담고........

[허허허........]

조그맣고 힘없는 웃음이다.

그러나 그 웃음은 반가움이었고 고마움이었다.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리....

지루한 싸움이었다.

도대체 삶이 무엇이건데......내가 무엇이건데.....

여인들의 지극한 정성이 눈에 선해온다.

[어머머........정말 이이가 소리를 냈어.....이 야호........

언니들 들었지, 이이가 말하는걸........호호호........]

무랑이 제일 먼저 호들갑을 떤다.

눈에는 눈물을 담고 입으로는 방정을 떨고 있다.

[그래, 계집애야, 들었어.....우린 귀가 없어. 그걸 못 듣게..........]

미지였다.

미지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 눈물은 이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 어찌 미지에게만 그런 표정이겠는가,

모두는 환호하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눈엔 잔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부는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면서도 차돌이가 가져다주는 기적 같은 회생에 너무나 기쁜지 얼굴은 온통 환하게 펴져있고 웃음으로 가득했다.

한동안 시끌벅적한 소란이 있고 선영이가 호통 아닌 호통소리에 소란은 멈춘다.

[이것들이,,,,,,, 지금 산책 준비하게 도와 드려라 했더니.......

그리고 지금 동생은 굉장히 피곤하고 힘들 텐데, 그런 식으로 욱 박 지르다니.....

너희들이 내말을 안 듣기로 아예 작정한 것이냐.....

지금 저이에게는 오로지 안정을 하게 도와줘야 하는데도.....너희들 정말.......]

[큰언니, 미안해. 호호호...너무 좋아서.........]

현영이가 모두를 대신해서 용서를 빈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속옷과 가운 등을 걸치게 하고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차돌 이를 휠체어에 앉힌다.

그리고 약간 두터운 솜이불로 차돌이의 몸을 덮어준다.

선영 이는 준비가 끝난 차돌이의 휠체어를 민다.

그리고 아방궁 거실을 나오는 입구로 가지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자동문을 나오니 널따란 거실이 또하나있다.

가운데로는 저쪽문과 통하는 통로로 쓰는 것인지 아무른 장식도 없고 통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샤워실과 그리고 화장대등이 갖추어져 있었고 왼쪽으로는 긴 옷걸이와 큰 거울로만 되어있는 거실이었다.

그 옷걸이에 여자들의 옷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선영 이는 차돌 이를 거실 가운데 혼자 내버려두고는 옷들이 걸려있는 곳으로 간다.

아니 선영이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여자들 모두는 그곳으로 우루 루 달려가 각자의 옷을 찾아 꺼내 입는다.

차돌 이는 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모두는 벌거벗은 몸이었는데 삽시간에 나신이 감춰지고 화려한 색상들의 옷으로 치장한 멋쟁이 여자들로 바뀌는 것을....

차돌 이는 여자들의 행동에서 무언가를 짐작했다.

자기 생각이지만 여자들이 저곳으로 오기위한 절차의 하나로 여기서 옷을 모두 벗고 저곳으로 오는구나.....

날 위해 내가 편히 소유할 수 있고 나의 것임을 확인해주기 위해 내가 아픈 그런 세월 속에서도 그들은 저렇게 하였구나.......

난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것은 꿈 이였고 예전엔 그렇게 살았지만 그땐 약간 강제성이 들어있는 억압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다.

모두 스스로 자발적으로 편하게 하고 있지 않는가.

가슴속에 다시 뭉클 하는 게 치밀어 오른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안아주고 싶은 생각에 몸을 움직여 보려했지만 아직 사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아주 극미하게 움직일 뿐 아무른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속으로 감내하고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자유로워지면 그땐 진정 사랑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주리라...........

그래서 오늘의 감격을 몇 천배로 하여 되돌려 주리라.......

차돌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휠체어가 움직이며 또 다른 문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차돌이의 휠체어를 앞세우고 모두는 그 문을 빠져 나온다.

문 앞엔 잔뜩 눈에 눈물을 담고 양여사가 서 있다가 차돌 이를 맞는다.

[이 사람아..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이 한마디 말에 지금까지 염려하고 걱정했던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차돌이도 그런 양여사가 너무 고마웠다.

내 장모이고 나의 어머니 같은 분이 아닌가.

그런 분이 나를 위해 지금껏 걱정하고 보살폈다는 것이 죄송스러워진다.

차돌 이는 힘겹게 자기의 용서를 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모두가 제가 못난 탓입니다.]

비록 기운은 없고 힘이 없는 소리지만 모두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비단 양 여사에게 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에게 한 말일 것이다.

[그래, 그래...이젠 되었네......

그리고 하루속히 일어나 잃어버린 자네시간을 되찾고 자네를 위해 수고한 내자들에게도

지금까지 한 고생을 변상해야하지 않겠어.]

양여사도 격정에 겨운 것인가, 차돌이의 손을 잡고 흔들며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러나 양여사도 여자다.

한아이의 엄마이고 그 아이의 남편 되는 청년이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껴줬으니 어찌 감회가 들지 않으리. 나이 드신 양여사의 두 눈에도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예, 어머니.......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돌 이는 약간 가쁜 호흡을 내쉰다.

2년6개월을 입을 다물고 살았다가 오늘 처음으로 말하는 것이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그러나 양여사의 마음 고초에 비하면 어찌 한마디 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고마운 마음을 힘들게 뱉는 한마디로 감사한다.

차돌이가 힘들어하자 재빨리 윤지가 나선다.

[엄마, 이이가 힘드나봐.......

지금은 말 많이 시키면 안 될 것 같아......엄마도 조금 참았으면 해........]

사실 윤지는 지금 무지무지하게 참고 있었다.

몇 년 만에 터진 정인이며 남편의 입인데 자기에게 한마디해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비단 그것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기에 꾹 참고 있을 뿐이다.

마음한편으로는 그것이 야속하고 얄미운 마음도 들고 또 다른 마음한편으론 이제 다시 옛날과 같은 정인의 품에서 같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모두는 차돌이가 스스로 기운을 차리고 뭐라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계집애, 누가 제 서방 아니랄까봐, 알았어...]

양여사가 눈을 흘기며 앞을 터준다.

그러자 휠체어를 잡고 있는 선영이가 양 여사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도 같이 가시죠......]

[아냐....너희들끼리만 갔다 와......난 애들 방에 가볼래......]

양 여사는 몸을 돌려 구석에 자리한 방으로 가더니 그곳으로 사라진다.

차돌 이는 아이라는 말이 들리자 석이가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뜻을 담은 눈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윤지를 본다.

[호호호..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요.

오늘은 아이들에게 당신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아이는 다음에도 볼 수 있으니 우리랑 산책이나 해요.]

윤지가 제법 어른이 된 듯 했다.

차돌이가 다른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재주를 발휘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현영이도 나선다.

[정말 일요일이란 게 너무나 기뻐......

지금 이렇게 모여 있을 수가 있고.

또 조금 있으면 형님 동생들도 올 테니..호호호........

자, 언니 그이를 모시고 나가세요.

난, 먹 거리를 준비해서 따라갈게요.]

[호호호. 역시 동생은 센스가 빨라 좋아.......

그래, 많이 준비해 가지고 와.....]

선영이 현영을 한없이 추켜 세워주며 칭찬한다.

[알았어. 언니, 그리고 우리 무랑 여장군이 도와준다면 좋을 텐데.........호호..]

현영인 모른척하고 선영 이를 따라가는 무랑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예쁘고 큰 눈으로 도움을 청하는 애교 섞인 눈빛을 주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피 이... 그럴 줄 알았어, 언니는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를 찾거든...

하여간 나는 언니가 제일 미워...호호호...........]

무랑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댄다.

자기라고 차돌 이와 떨어지고 싶겠는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정인과의 동행인데..물론 잠시지만 떨어지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그이에게 나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일로 분쟁을 초래하거나 미움을 받을 수가 없었고 그래보았자 자기만 손해라는 걸 안다.

나보다 선임인 현영이도 참고 있는데 내가 싫다 고집피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당연하다는 표정이었고 밉다며 현영 이를 쳐다보는 눈동자는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호호호.....................]

때아니게 이집에서 웃음꽃이 만발했다.

이렇게 웃음이 흘러나오기는 이집에 오고는 처음이고 아니 차돌이가 다치고 난 뒤부터 언제 마음 놓고 웃어본 적이 있었는가....

오늘 그들은 마음껏 그리고 목청껏 웃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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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보는 맑은 세상인가......

온 세상은 맑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불어오는 사람과 그 소리는 정다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약간은 추운 날씨지만 공기가 그렇게 향긋하도록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맑은 공기가 차돌 이에겐 무리였던가 보다.

금방 얼굴이 새파래진다.

2년 넘게 실내에만 있던 몸이라서인지 싸늘한 밖의 날씨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차돌 이는 환하게 웃었고 옆의 여자들도 웃고 있다.

휠체어를 미는 선영 이는 차돌이가 혹시 불편해할까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덮고 있는 이부자리를 목까지 치켜 올려주고 있다.

그럴 때마다 차돌 이는 환한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아직 사지는 움직일 기력도 않고 있지만 차돌이나 모두는 그마저도 언젠가는 훌훌 털고 일어서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괜찮겠어.

지금 4월이야. 그래서 아직은 추워..........]

선영이가 다시 차돌이의 옷깃을 세워주면서 다정하게 말한다.

오랜 세월을 집안에서만 있었는데 갑자기 집 밖의 바람이 혹 차돌 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걱정이 된다.

[후후후...벌써 그렇게 되었어.

난 눈 내리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그 사이 몇 달이나 지나갔어..........]

차돌이가 미안한지 아님 자기도 모르게 세월이 지나간 것이 아쉬운지 누나를 향해 웃으며 반문한다.

[호호호....이 바보주인아........

몇 달이 뭐야, 2년도 지났어. 그 동안 얼마나 속이 탔는데..............]

선영 이는 웃으며 답해주다가 종내에는 차돌이가 누워 있은 고통스런 세월을 알려주면서 그만 울적해지고 만다.

그가 다쳐 누웠고 우리가 가슴 졸인 것이 얼마나 긴 세월이었는데 고작 몇 달이라니........

미워 막 패주고도 싶었지만 이렇게라도 정신을 차려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선영인 그간의 세월이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허나 차돌 이는 아연해지고 만다.

몇 달이라니...........그냥 조금 세월이 지나갔겠지 했는데 2년이 넘었다니...

[뭐..........정말. 내가 그렇게 오래토록 그러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고도 내가 아직 이런 몸으로 살아있었단 말인가........내가 말이야.....]

차돌이의 표정이 심하게 심각해지고 굳어진다.

왜 내가 그토록 오래 나도 모르는 세월을 누워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제비가 모는 차에 타고 잠깐 잠들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러도록 오래 누워있었다면 실로 커다란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고 그런 나를 곁에 있는 여자들이 돌보아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의 이런 모습에 나의 여자들은 마음이 어떠했을까.

나의 이런 비참한 모습에도 날 지켜주며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 있은 오랜 세월이 너무나 화가 났다.

병신처럼 누워 있었다는 게 화가 났다.

그러고도 아직 몸조차 가눌 수 없다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정말 미치도록 화가 났다.

차돌 이는 문득 제비가 생각났다.

내가 이러면 제비는........차돌 이는 제비 안부를 묻는다.

[제비는...그 사람은 무사해..........]

차돌이가 굳은 얼굴로 앞을 보며 묻는다.

자신이 이런 지경이라면 필경 제비에게도 엄청 사나운 불상사가 있으리라 여겼다.

얼굴 표정이 조금 전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나의 불행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면 분명 제비에게도 무슨 큰 변이 있었을 것이다.

[..........................................]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차돌 이는 조금 더 격앙된 소리로 묻는다.

[제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어.

그리고 언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지금 내가 내 몸 하나도 주체하지 못한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 모두가........]

차돌이의 얼굴이 상기된다.

마치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자 급히 선영이가 나선다.

[아냐....네 말에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냐........

네가 힘들까봐 그러지............그렇지만 내가 물으니 말해줄게......

제비는 현장에서 그만....그만 즉사하고 말았어.]

선영이가 대답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제비가 즉사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차돌이의 몸에 이상이 올까 염려도 되었고 제비의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말이야 누나. 그 말이 정말이라고...........]

차돌 이는 혹시나 하는 우려가 맞음에 전신에 기운을 잃는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 생각은 기우였던 것이다.

조금 전에 자기가 물었을 때 말을 하지 않아 느낀 일이지만 직접 들으니 당황스럽고 사지에 힘이 풀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 정말이야...........]

선영이도 어차피 알 일이고 밝힌 말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해준다.

[..............................................]

갑자기 모든 걸음이 중지되고 조용해진다.

그리고 적막 같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을씨년스러워지고 침침해진다.

그런 분위기로 조금 시간이 흘렀다.

차돌이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깬다.

[누나, 집으로 들어가...... 나 갑자기 밖에 있기가 싫어졌어.]

차돌이가 자기를 집으로 데려달라고 한다.

선영 이와 모든 여자들은 나올 때와는 다른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더니 천천히 휠체어를 돌려 집안으로 향한다.

차돌 이는 집안에 들어와서 자기가 있던 뒷, 채의 통로로 휠체어를 몰고 가자 누나를 제지한다.

[누나, 이곳에도 내가 누워있을 방이 있겠지.

그곳으로 날 데려다 줘.]

차돌이가 아방궁으로 가는 걸 마다하고 이곳에 머물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래, 여긴 네 집이야.

여기서 내가 있을 수 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어. 그렇게 할게.]

선영이도 차돌이의 지금 마음상태를 짐작했는지 이유도 묻지 않고 선뜻 허락한다.

선영 이와 여자들은 차돌 이를 방안으로 모시고 그리고 침대에 눕히더니 차돌 이를 본다.

괜찮겠냐는 무언의 물음이다.

[이젠 됐어. 모두 나가있어. 혼자 있고 싶어.......

그리고 나중에 곰 형을 불러줘.

곰 형이 오기 전에 아무도 이방에 들리지 마..............]

차돌 이는 눈을 감는다.

추방이다.

모두는 그런 차돌이가 안타까운지 표정들이 밝지 못하다.

차돌이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슬픔과 분노를 눈치 챘기 때문이다.

저러다가 정말 나쁘지는 것은 아닌지.......

이제껏 노력하고 애쓴 결과로 얻어진 것이 물거품으로 변하게 되지 않을지...

걱정되고 불안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다.

안정도 앞으로 헤쳐 가야 할 시련에 대한 용기와 희망도 모두가 차돌이가 마음먹고 행해야 하기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모두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잠시 차돌 이를 쳐다보다가 선영이가 앞장서서 방을 나가자 모두는 우루 루 방을 나간다.

.

............................

고독이라는 괴물이 차돌이가 누워있는 방을 휩쓸고 있었다.

그것들은 차돌이가 갖고 있는 고뇌의 원인을 바라보며 그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려함인가 비참함에 몰두되어있는 한 인간의 가엾은 육신을 바람처럼 휘어 감고 있었다.

사실 그는 삶의 그 큰 형벌 때문에 피 흐르는 낙인을 심장에 받으며 십자가에 처형당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살아온 모든 장소에서 그가 보았던 모든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는 나름대로의 생에 열망을 가지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이며 외치고 있었다.

알 것 같은 얼굴인데 도무지 기억에 아리송하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삶에 이르기까지를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열심히 토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두가 사라진 것이다.

하얀 모래만 있는 사막에 오직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아니 버려진 것이 아니고 자기가 그들을 쫒아낸 것 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차돌 이는 입 밖으로 얕은 소리를 내고 만다.

[아........흘러가는 시간을 세울 수 있다면........돌릴 수만 있다면.........]

한낱 나약하고 가엾은 인간의 절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신께 하소연한다.

시간을 정지시켜달라고...그리고 억울한 죽음을 막아달라고......

한줄기 거침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있다.

차돌이의 눈에서 시작된 눈물줄기가 눈 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가 했는데 이내 억수 같은 소나기가 되어 끊임없이 흐른다.

[왜......왜. 무엇 때문에.......

날 위해 있은 너는 죽고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나는 살아있어야 하나.....

차라리 같이 죽어버렸으면.........제비야........민우 형............흑....흑........]

차돌 이는 다짐한다.

만약 너의 죽음이 억울하다면 세상에 없는 악인이 되리라고.........

나와 그리고 너에게 죽음을 안겨준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런 일로 하여 네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내 몸에 천형이 내리고 죽어 화간지옥에 가더라도 그와 연관된 그 누구라도 간을 씹어 먹어 버리겠다고..이 세상에 다시없는 고통과 수모 속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겠다고........세상에 태어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지금 차돌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을 이루고 있지만 입을 앙다물고 이빨을 갈며 마치 흡혈귀나 다름없는 흉악하고 포악스런 모습이었고 두 줄기 뿜어내는 눈의 광채는 조금도 시선을 마주 대할 수 없도록 살기가 충만해 번뜩이고 있었다.

[형, 민우 형, 미안해....정말 미안해........]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 광분하여 터질 것 같은 내심을 삭이느라고 오로지 제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손가락이 눈에 광채를 뿜어내고 광기를 억제할 때마다 꿈틀거리고 있음을......

차돌 이는 제비의 죽음에 통한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사지는 속의 울분으로 인하여 급하고 맹렬한 기세로 차돌이의 몸을 돌고 돌아 자기도 모르게 신체의 일부를 소생시키고 있었다.

...........

...........

[대장, 정말 반가우이.......

대장에게 오고 싶었지만 제수님들이 더 좋아하고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여간 하늘이 돌봐 주심이야.....진정 감사를 드리고 싶어........하하하........]

곰[김 지호]이였다.

차돌이의 부름이 없어도 오고자했는데 더군다나 찾는다는 말에 모든 걸 팽개치고 벼락같이 달려온 것이다.

[형, 고마워.......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차돌 이는 곰을 쳐다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그의 얼굴에서 그간의 고충을 알 것 같았다.

[아니..고생이라니.....다만 제수님들보기가 미안해서.............]

곰은 머리를 젖 는다.

그리고 차돌 이와 맛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딱히 도움을 줄 것도 없었지만 그녀들의 정성을 조석으로 보며 알고 있는 그였다.

자기도 대장에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고 싶은데...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자기에게 대장은 오랜 고통 끝에 깨어나서 자기를 맞고 있지 않는가..

미안하고 감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곰은 대장에게서 풍겨 나오는 섬 뜻한 인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차돌이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나에 대한 서러움일까...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아님 어쩜 그 일로......

그런데 그의 생각은 기우가 아니었다.

차돌이가 흘러내린 말에 곰은 가슴이 철렁함을 느낀다.

물론 예고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보고해야했으며 일 처리의 지시도 받아야하지만 지금 차돌이의 눈빛이 소름끼치도록 차갑고 냉정했기 때문이다.

[형, 인사치례는 나중에 하고 궁금한 걸 먼저 알아야겠어.

나의 사고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어. 아니면 무슨 계획적인 의도가 있은 거야.....]

[.........................................]

곰은 뭐라 해야 좋을지 몰랐다.

지금 차돌 이에게 사건의 전모를 말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도 되지 않았고 또한 눈빛을 보건데 사실을 이야기하자니 그 파문이 생각보다 엄청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형, 대답해.......난 두 번은 묻지 않는 성격이고 날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가까이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만약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면 지금 이후엔 절대 형을 보지 않을 거야.

그러니 숨기지 말고 사실 그대로 말해줘..........난 괜찮으니...]

차돌이의 말은 갈수록 냉담해지고 싸늘해진다.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올리지도 않는 조용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다.

곰은 진저리를 친다.

차돌이가 보스기질이 강한 것도 정말 두 번 묻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사지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문도 오늘에서야 터진 걸로 아는데 일어나자마자 사고에 대한 것을 묻는 것이다.

분명 차돌이의 성격이라면 자기와 같이 있던 제비의 생사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면 차돌이가 내세우는 의리를 보건데 절대 그냥 있지를 않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아직 밝힐 시기가 아닌데..그의 몸이 호전되고 난 뒤에 이일을 알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빠르고 거침없는 그의 언행에 불안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래 그가 이일을 알려한다면 솔직하게 알리자.

그는 우리와는 다르지 않는가.

죽음도 물리치고 온 사람인데 이일로 또 다시 자기를 잃는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곰은 차돌 이를 믿었다.

[대장, 난 언제든지 대장이 물으면 보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야.

그래, 전부 말할게...........

하지만 대장이 모두 회복하고 난 뒤에 말하면 안 될까.

난 혹시 이일로 대장이 다시 나빠진다면 제수씨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면목 없어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래.

대장도 성격이 그러하지만 정말 이일로 대장이 나빠진다면 난 정말 죽음을 택할 거니

대장이 한 번 더 생각하면 안 될까...........]

곰도 자기할말을 확실히 한다.

그리고 지금 알려줘서 불행한일이 생긴다면 나는 분명 죽음을 택하리라고 말하고 내 성격을 아는 차돌이도 궁금증을 접고 일단 회복에만 신경 쓰라는 의미에서이다.

[형, 걱정 마.......난 더 이상 넘어질 수가 없고 넘어져서도 안 된다는 걸 알아....

그러나 이일의 전모를 알기 전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

지금 나에겐 그 일이 일어난 것이 궁금해서 미치겠어.

차라리 이대로 둔다면 내 풀에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줘..........난 괜찮으니...]

차돌이도 굽히지 않는다.

다시 곰을 재촉한다.

곰도 더 이상은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연다.

[대장.

대장의 결의가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네.

사실 대장의 사건은 고의적이었으며 계획된 사건이야.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이라고 종결지었지만 난 운전을 한 놈이 날치란 것에 분명 흑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조사해서 확실히 밝혀낸 것이니 틀림없는 계획적인 사고였어.

바로 가마모도와 날치란 놈이 짜고 만들어진 일이야......

물론 날치란 놈은 현장에서 죽었고 가마모도란 놈은...........그놈도 죽었어.

그리고.............]

곰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사건이 일어나고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것들을 소상하게 밝혀준다.

사건의 전모는 이러했다.

날치란 놈과 가마모도란 놈은 차돌 이에게 평생 씻을 수없는 굴욕과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하는 육신의 규제에 치를 떨고 복수를 다짐했다.

그들은 기회를 보고 있었고 차돌이가 상록수를 인계받고 나오는 시점을 노렸다.

물론 그들의 힘만으로는 모임의 날이나 다른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움을 줄 동료를 찾았고 차돌이가 상록수 회장이 된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지존파와 남산 파에게 접근했고 그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이 기회에 차돌이가 사라진다면 상록수가 공석이 되고 그러면 어쩜 그 자리를 자기가 할 수 있다는 야망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무술이 뛰어나고 해도 아직 지하세계에 알려지지도 않은 새파란 젊은 놈에게 허리를 굽힌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고 또한 그들은 자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조금의 도움만으로도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암중으로 도와준 것이다.

물론 이일이 밝혀진 것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다만 이번사건을 모르는 조직은 불행한일이라는 것으로 치부하고 말았지만 곰의 억척같은 조사와 그리고 살아남아 몸을 숨기고 있는 가마모도를 찾아내었고 무수한 고문과 협박으로 사건의 전모를 세심하게 파헤칠 수 있었다.

그러나 곰은 이일의 복수를 멈추었다.

가마모도란 놈을 통하여 알아낸 모든 사실을 토대로 그 일과 조금이라도 연관 있는 놈들을 비밀조직을 만들어 항시 감시하게 하였고 주범인 가마모도와 날치 놈의 주변 인적상황까지 알아내곤 그놈들까지 감시하고 있었다.

또한 그놈들을 도와준 조직과 보스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그놈들은 누가 자기를 주시하는 것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곰이 언젠가 차돌이가 깨어나면 직접 행할 복수라는 걸 알고 울분을 참아가며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가마모도란 놈은 고문과 학대에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아이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건물기둥에 머리를 박고 자살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동해바다 속에 던져졌고 지금은 고기밥이 되어 그 고기를 먹은 생선이 누구의 입에 들어가서 소화되어 변으로 처리되었을지도 모를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곰은 사건의 전모를 모두 말하고 차돌 이를 본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차돌이의 눈빛은 여전히 수그려들지 않고 더욱 빛나고 있었다.

[후후후..........날치라.......형, 고마워.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지금껏 해온 대로 그렇게 감시만 해줘.....

모든 것은 내가 일어나서 내손으로 처리하고 싶으니까....

내 한보다 민우형의 한이 더 클 테니 내가 직접 그놈들을 관장해야겠어..흐흐흐.........

하나, 분명히 다짐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그놈들과 연관된 어느 누구라도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도록 만들어 버릴 거야.....흐흐흐.........

내가 악마라 손가락질 받아도 추호도 망설임 없이 철저하게 파멸 시켜버릴 거야.....

그 놈들 뿐 아니라 그놈 주변 모두를...옛날같이 구족을 파멸시켜 버릴 거야..

흐흐흐.............

형, 또 한 가지 더 있어

그 일과 관련된 지존파와 남산파의 보스와 동조인물, 그 주변 인물까지 전부 조사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밥 먹는 시간, 심지어 변소 가는 시간까지도.........

난 한 놈도 조용히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놈들과 한 피라면 더욱더...........모조리 조사해. 혹시 빠진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조사와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고,....

그리고 날 기다려..흐흐흐......

이건 내가 아우로서 하는 부탁이 아니고 회장으로서 하는 명령이니 추호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야.

또한 이 일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해서 말이야...........

흐흐흐................]

차돌이의 긴말이 끝났다.

말을 많이 해서인지 호흡은 거칠기 그지없다.

아니, 분노로 인해서 감정이 복 받혀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지금 차돌이의 흉상은 악마 바로 그 자체였다.

곰은 차돌 이와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차돌이가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나오고 싶을 정도로 으스스했고 그리고 떨렸다.

한 마디 한마디 토해내는 복수의 절규가 소름끼치도록 흉폭 했고 말만 듣고 있어도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한기를 느낀 것이다.

곰은 명령을 수행하겠다고 말하고는 재빨리 그 방을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오금이 저리고 마치 자기가 도살장에 끌려가 처형을 기다리는 소의 꼴이 된 것 같은 오싹함과 섬 짓함에 전신이 떨려 더 이상 있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차돌 이는 분노해 있었고 곰은 불안했던 것이다.

곰은 나오면서 안도의 한숨을 거푸 쉬고 있었다.

마치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등골에 땀이 축축하게 배 인 것을 느끼면서 차돌 이와 더 이상 대면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에 안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곰은 내가 이러한데 차돌이가 회복되어 그의 처절한 복수를 감내해야할 당사자들은......갑자기 그들이 불쌍하고 애처로운 마음도 든다.

.

..................................

한번 터지기 시작한 봇물은 막을 수가 없다고 했던가.

살아나기 시작한 신경조직과 세포는 차츰 전신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차돌이의 피나는 고련도 많은 몫을 하였고 시일을 엄청 앞당기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 후......

차돌이의 사지가 움직이게 된 것은 두 달가량 지나서였고 지금 다리는 아직 불편하지만 팔을 어느 정도 움직여 이젠 혼자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 달이 더 지난 후였다.

그렇지만 차돌이의 수련과 일어나고자 하는 정신은 너무나 억척스러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섹스도 마다하며 오로지 자기 몸을 회생시키는데 전념을 기우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기를 위해 희생된 것을 안 사신의 하얀 껍질을 보고는 낮밤이 모자랄 정도로 광적으로 자기 몸을 회생시키는데 전념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노력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 없다했나.

6개월이 다시 지나고 차돌 이는 혼자 걸을 수 있었다.

그동안 고통과 번민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지난 세월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처음 차돌이가 자기 혼자 몸으로 일어서기 위해 앙다문 입으로 얼굴에 땀방울이 매달린 채로 이루려고 하는 집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질 겁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살 떨리게 하였고 그러한 노력이 수차례 반복되고 그리고 할 수 있었고 그걸 이루자 차돌 이는 다시 앞을 향해 도전하는 끈질긴 집념의 도전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불편하지만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이 없어도 천천히 발을 움직여 걷게 된 것이다.

진정 기적 같은 일인 것이다.

[오늘은 저번에 갔던 계곡에 혼자 힘으로 걸어 가봐야겠어.

힘이 들겠지만 그렇게 해야 다리에 힘이 빨리 붙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일수도 있으니...]

차돌 이는 무랑이만을 대동한 채 밖을 나간다.

어쩜 집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함인지도 모른다.

차돌이가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차돌 이는 말문이 터이고 조금씩 몸에 생기를 찾기 시작할 때. 가끔 시끄러운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이상한 일이구나 생각하며 쉴 때마다 집안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았다.

전에 없던 조그만 애기들이 보행기에 타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윤지와의 사이에 난 아들 민 석이 말고 3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웬 아이인가하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차돌 이는 아이들이 귀여워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선영이가 살며시 다가와 귓전에다 대고 말해주었다.

[주인 아이들이야.

아직 이름도 짓지 못했어.]

차돌 이는 선영이로 부터 아이들이 누구라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차돌 이는 뛸 듯이 놀랐다.

하나도 아니고 세 명이나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세 아이가 ......

차돌 이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이한 형용에 몸을 떨며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교묘한 일이지만 모두가 차돌이가 양양과의 결혼을 위해 중국에서 가졌던 정사로 생겨난 아이들이었다.

누나는 딸을 낳았고 양양과 순덕 이는 아들을 낳았다.

사실 차돌 이는 너무나 기뻐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러나 애써 감정을 삭이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가슴속의 한이 그것을 즐기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급히 방으로 들어와 순덕 이를 찾았다.

방으로 들어온 순덕 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아마 차돌이가 하려는 말을 아는 듯 했다.

차돌 이는 그런 순덕 이를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다가 차츰 무심으로 바꿔버린다.

[형수, 아니 당신........아기 이름은 기석이라 지었으면 해....

어차피 나도 당신도 지켜야할 약속이고 우린 형 때문에 맺어진 사람이야.

약속은 인륜과 도덕에서 벗어나도 꼭 지키고 행해야 한다고 봐.

당신도 가슴이 저리고 아프겠지만 지금 그 아이를 보는 그분의 심정은 우리 못지않게

씁쓸하고 어쩜 가슴이 터질듯 아플 것이야.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형에게 보내줘,

난 대부로... 당신은 대모로 살며 먼 발 치에서 지켜보자고.......

그게 우리가 지켜야할 약속이고 도리야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나의 아기를 가질 수 있으니.......

그러니 섭섭해도 울지 말고 웃는 얼굴로 보내줘......

힘들겠지만 당신이 직접. 그것도 오늘 당장........]

차돌 이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 약속도 있었고...곰이 이렇게까지 해서 후손을 얻으려는 심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나 어찌했던 자기 핏줄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자기가 그러한데 순덕인 어떨까....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일 것이다.

참을 수밖에.......나나 순덕이 모두 아픔을 가슴에 묻는 수밖에....

오열하는 순덕일 애처로이 쳐다보던 차돌인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만다.

[흑...흑...흑.....]

순덕 이는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했고 언제나 각오하고 있은 일이지만 막상 자기가 낳은 아이를 이제 엄마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곳으로 보내야한다니 가슴이 쓰리고 저린 것이다.

그곳이 눈앞이고 가까이 있는 곳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순덕 이에게는 더욱 큰 고통일수도 있으니 아이를 보내야하는 엄마로써 어찌 눈물이 나지 않으리.

순간 떼를 쓰서 절대 보내주지 않겠다고 하고 싶지만 자기도 차돌이도 약속한 일이고 또한 자기보다 의리를 중시여기는 차돌 이는 내가 그렇게 한다면 무슨 수를 써도 아이는 보낼 것이고 자기는 차돌 이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었으니.....

저분의 고집도 저분을 거역할 수 없는 자신이 한스럽고 미워진 것이다.

순덕 이는 흐느끼면서 부리나케 방을 나간다.

차돌 이는 그런 순덕 이를 보며 그 또한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차돌 이는 나가면서 집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아이 때문에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만 차돌 이는 애써 외면했다.

누구의 한을 풀기 전에는 소리 내어 웃지 않으리라고 맹세한바 있었고 그걸 잊는다 해도 누구의 가슴에 엄청나게 큰 돌로 짓이겨 몇날 며칠을 헛소리와 한숨 그리고 눈물로 지내게 한 자신 아닌가.

지금도 이 아이들을 볼라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누구를 위해서라도 기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은 가슴 깊숙이 감추고 애써 외면하며 무심하게 나오는 것이다.

그날 차돌 이는 계곡까지 한참을 걸려서 기어이 혼자 힘으로 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호흡을 고르고 그리고 진정되자 백왕과 홍 왕을 불렀다.

그리고 30cm도 채 안 되는 그 두 놈을 품에 안고 엄마가 자기에게 해준 커다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쓸어주고 있었다.

언젠가 꿈결처럼 느껴지던 자기가 부모님을 보러가고자 할 때 그렇게 앞을 막고 섰던 사신이...........그건 아마 날 살리려고 했음이라.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날 살리고자 했음이라....

그리고 날 살리고 자기는 죽었으리라.........

지금 자기가 살아있는 것은 분명 사신의 힘이 분명하리니........

차돌 이는 백왕과 홍 왕 사신의 자식들을 쓸어주며 감사하고 감사하며 사신을 못 잊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세상이 아닌 이세상의 현실이다.

언제고 내가죽어 사신을 만난다면 이제 내가 사신을 위해 무엇이든 다하리라는 마음을 먹으며 백왕과 홍 왕을 놓아주고는 천천히 가부좌를 취하더니 눈을 감는다.

하루속히 건강을 찾아야 할 이유가 많았다.

무엇보다 자기를 이렇게 만들어 사신과 제비의 죽음에 대한 한을 갚고 싶었고 잊고 산 옛날을 보상받고 싶었다.

복수란 자기에게 편리하게 해석하게 되는 것인가.

사실 반대로 그놈들의 입장이라면 무슨 수를 쓰서라도 복수하고픈 마음이 일 것이다.

지금 자기가 그러하듯 그놈도 사람인데 어찌 자기들을 비참하게 굴복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천형까지 받아야했으니 그 마음에 어찌 한이 맺히지 않으리......

나는 앞으로 할 복수가 정당하고 그놈들이 저지른 복수는 정당하지 못하단 말인가.

허나 여긴 인간세상이다.

힘 있는 자가 우선인 더러운 인간세상이다.

다르게 보면 대통령이 피살되면 그 파장은 엄청나게 크고 사태는 어디로 갈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정국이 되지만 일반 평민이 누구에게 피살되면 그저 신문의 한쪽에 조그마하게 기사를 남기고는 묻혀버린다.

하기 좋은 말로 개인적인 원한이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린다.

차돌이가 당한 것과 그놈들이 당한 것은 그런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놈들이 먼저 건드렸고 다시 차돌 이를 건드린 것이다.

그놈들은 차돌이 개인에게 복수를 한정지었지만 차돌 이는 당사자가 죽고 없는 지금 그와 관련한 사람들에게까지 복수를 행하려하고 있다는 점이 틀린 것이다.

차돌이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분노하고 시샘하고 욕심을 지으며 남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것은 그도 사람이고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건 나중 일이지만 지금 차돌이의 폭발할 것 같은 한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울리고 고통과 치욕에서 세상을 저주하며 살게 되는지는 나중의 일이다.

차돌 이는 움직이지 않고 명상에 빠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무랑이도 다른 바위위에 앉아 차돌 이와 같은 자세를 취하더니 그 역시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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