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인지도를 높여보자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이든이 막아섰다.
“왜? 뭐 할말 있어?”
“아니…그냥 요새 통 못 만나서…”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우물 쭈물 못하는 모습이 어디서 본 느낌이다.
우쭈쭈 우리 이든 외로웠쪄요?
“지금은 좀 피곤한데…”
신체복구 때문에 그렇게 힘들진 않았으나, 지금 이든에게 시달리면 저녁에 약속을 맞출 수가 없다.
이놈은 정도를 모르니까. 게다가 며칠 쌓였을 테니 아마도 내가 기절할 때 까지 푹푹 박아댈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하자. 일주일 뒤면 예약이 다 끝나거든? 그때는 삼일동안 너랑 해줄게.”
이든은 잠시 고민하더니 해맑은 얼굴로 알았다고 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휴식을 취할 수 있나 싶었는데,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이렇게 섬뜩하게 들린 건 처음이네.
애초에 우리 저택에 올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네~ 나가요.”
메이가 후다닥 달려서 현관을 열어주자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내와, 우락부락한 아저씨 둘이 찾아왔다.
“험험.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하러 왔습니다. 대충 보긴 했는데 직접 알아보는 게 빠를 것 같아서요.”
“그럼 공사는 언제부터인가요?”
“정확히 정해지진 않았습니다만…늦어도 3일 뒤부터는 시작할 계획입니다.”
“그럼 지금은…”
“지금은 변경사항이나 세세한 부분 조율을 위해 왔습니다.”
역시…쉬긴 글렀군.
마음속으로 또르르 눈물을 삼키며 이런 저런 조율을 시작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겠습니다. 아마 내일 오후쯤 시작할 거니 짐들은 다 4층으로 옮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언제나 쾌활한 메이가 너무 부럽네.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벌써 출근시간이다.
확 째버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티아 님도 이제 나가보셔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확인사살하지 않아도 돼…”
약속은 저녁 9시쯤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관계도 맺고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금방 흘러가기 때문에 지금 나가는 것이 바람직했다.
이젠 조금 익숙한 거리를 나아가서 아직 오픈 준비중인 창관에 들어갔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심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카운터를 보던 아줌마는 여전히 날 개무시하고 있고 말이지.
나도 간단한 눈인사조차 생략하고 곧바로 비올라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안~녕!”
벌컥! 문을 열어젖히자 뭔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비올라의 모습이 보였다.
“허리아파? 왜 그러고 있어?”
“…방금 그렇게 들어온 게 알랙산드리오였다면 죽였을거야.”
그러면서 책상 아래에서 손을 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열심히 움직이는 펜 사이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저게…뭐지? 눈에 힘을 주고 보니 펜대에 물기가 묻어있는 게 보였다.
“…”
그렇게 보니 알 것 같았다.
살짝 상기된 뺨과, 아까의 어정쩡한 모습.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과 살짝 거칠어진 호흡까지.
이거 빼박이네. 진짜 알랙산드리오면 죽었을지도 모르겠어.
“괜찮아. 나는 다아~ 이해한답니다.”
“무슨…!”
이것 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잖아.
언제나 피곤에 찌든 얼굴로 서류만 만지작거리길래 많이 둔감한가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저…정말?”
“어머! 진짜야? 그냥 해본 말인데.”
살짝 놀려주자 얼굴이 새빨개지다 못해 터질것처럼 붉어졌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눈가에 힘을 얼마나 줬는지 물기가 좀 맺힌 것 같아서 황급히 사과하고 화제를 돌렸다.
“소식 들었지? 오늘 귀족이 온대.”
“안 그래도 전서를 받았어. 그것 때문에 오늘은 뒤쪽 방을 너 하나만 쓰도록 배려해 줬고. …대체 공작을 어떻게 구워삶은거야?”
“글쎄다~. 내 앞으로 들어온 돈은 얼마나 있어?”
“…솔직히 말하면 살짝 흔들릴 정도로 많이 들어왔지.”
그렇게 말한 비올라는 허리를 숙이고 금고에서 자루뭉치 하나를 꺼내올렸다.
묵직하네.
“이건 오늘 일 끝나고 갈 때 가져갈거야. 보관해 놔.”
“오늘 이걸 가져간다고? 그럴 수 있어?”
“왜?”
“…? 정말 모르는 거야?”
비올라가 정말? 이라는 듯이 물어보길래 내 쪽에서 더 궁금해졌다.
내가 내 돈 가져가는데 뭐가 문제야?
하지만 비올라가 가진 의문은 다른 쪽 이었다.
“네 오늘 상대가 누군지 몰라?”
“당연히 모르지. 알겠냐?”
공작이 엄선한 사람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한 정체까지는 모른다.
“빨랑 말해. 누구야?”
내 재촉에 약간 어이없어하면서도 걱정하는 듯이 말해 주었다.
“제국 기사단 라이온가드의 기사단장인 헥스야.”
뭐야, 난 또 황실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았네.
“그게 뭐?”
“그게 뭐냐니! 헥스 몰라?”
이거 내가 이상한거야?
애초에 제국 사람도 아닌 데다가, 제국에 온지 일주일도 채 안됐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했지만 비올라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너 정말 모르는구나…”
아까보다 더 어이없다는 말투로 내게 설명해 주었다.
“잘 들어. 헥스는 무려 황실의 사람들을 호위하는 라이온 가드의 기사단장직을 5년째 맡고있는 괴물이야. 검술같은건 우리도 잘 모르니 넘어가고 가장 중요한 걸 말하자면…거기가 장난 아니게 크대.”
“거기가 크다고? 얼마나?”
지금까지 본 것중에선 당연 이든의 것이 가장 컷기에 인간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 라는 생각으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진지했다.
“웬만한 어린아이 팔뚝만 하다더라. 직접 본 사람이 한 말이니 믿어도 좋아.”
너무 설명이 상투적이라 정확한 크기가 가늠이 안 되었다.
“에이,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나 클까?”
“그리고 또 하나 더. 단순히 크기만 큰게 아냐. 기사단장이다보니 체력도 엄청나고, 스태미나도 우월하대. 힘도 좋고.”
그거 완전 이든 아니냐? 대충 내 머리속에서 헥스라는 사람의 이미지가 잡혀갔다.
이든의 열화판 버전으로.
“힘 좋지, 몸 좋지, 거기 크지, 스태미나 뛰어나지. 밤일 쪽으로는 당해낼 사람이 없다더라. 게다가 한번 불이 붙으면 자기가 만족할 때 까지 안 끝내서 그와 밤을 함께한 사람은 기절할 때 까지도 퍽퍽 박혀서 다음날 못 일어 난다더라.”
내가 이든을 몰랐다면 살짝 겁에 질렸을 수도 있겠지만…아쉽게도 그 정도는 수도없이 경험했던 것이다.
분명 밤에 시작했는데 잠깐 기절했다 눈을 떠 보니 다음날 밤이 되어 퍽퍽 쑤셔질 때의 기분을 네가 알아?
한 손으론 빵을 입에 쑤셔넣으며 박아대는 모습을 네가 봤냐고!
이든의 체력을 알고 있는 나는 예전에 한번 내가 어떻게 되든 좋으니 네 맘대로 해보라고 했었다.
항상 이든이 불완전 연소로 끝낸다는 것을 알기에 했던 말이지만…결과는 참혹했다.
아무리 울고불고 애원해도 끝끝내 놔주지 않고 쑤셔대다 내가 세 번쯤 기절해서야 행위가 끝났지…
그 이후로 다시는 이든에게 맘대로 하라는 말을 잘 안 꺼내게 되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나한테 뭐? 헥터? 기절? 재밋다. 하하하!
정말 웃기기만 한 걱정이었다.
“일단 알겠어. 그래도 한 9시쯤 온다니까 그 전까지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있지 뭐.”
“어디 있으려고?”
“휴게실 없어?”
“없어.”
“그럼 다른 창녀들은 어디서 쉬어?”
“대부분 그냥 분장실에서 대기하지. 너고 거기 있으려고?”
내가 긍정의 뜻을 전하자 비올라는 날 말렸다.
“내가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우리 직원들이 좀…장난이 아냐.”
“뭐 서로 멱살이나 머리채 잡고 싸우기라도 해?”
“그정도 까진 안하지만…손님 받는 것 보다 괜히 애들 텃세 때문에 도망쳐 나간 애들도 수두룩 하다니까…”
“그럼 됐어. 난 거기 있을 테니 헥스? 그 사람 오면 불러.”
대충 손을 휘휘 저어대며 다시 방문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에 좋은시간 보내고~ 하면서 눈웃음을 지어 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귀여운 예비 사제들을 만나러 가 보실까?
분장실(또는 의상실이라고도 한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사람은 분홍색 장발을 치렁치렁하게 흐뜨린 묘령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난 이 아가씨가 누군지 잘 알고있지.
저번에 나이 좀 있는 선배한테 따끔한 일침을 날렸던 업소1위 아니야?
살짝 까칠하고 도도한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이…릴리였나?”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은 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거울에 달라붙어 있던 릴리가 내쪽을 돌아보았다.
“누구…세요?”
가늘던 눈매가 서서치 치켜올라가더니 마침내 휘동그래 질 정도가 되었다.
마치 푼수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거지?
그녀의 반응은 꼭 아이돌을 만난 소녀팬 같았다.
그래서 더욱 이상했다.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일텐데 저렇게 열렬하게 반응을 한다고?
마치 이상형을 만난 소녀팬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메이와는 다른 부류라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