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조교당해버렷
누군가 그랬지. 욕구가 해결되면 그제서야 사색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어두운 창 밖으로 세찬 새벽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방 안은 충분히 공기가 덮혀져 있음에도 어렴풋이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이불이라도 덮어야…이런.
밤새 격렬한 정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이부자리는 누군가 물이라도 한 바가지 부은 것 처럼 축축하게 젖어 도저히 포근할 것 같지 않았다.
어쩌지…이거라도 덮어야 하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별 생각 안했어.”
“제가 이 재상의 자리를 20년 넘게 지켜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의 생각 정도는 읽어낼 수 있게 되었죠.”
그거 좀 무서운데?
괜찮은 거야?
“별 거 아냐. 그냥 좀 추워서.”
“뭣하면 제 품이라도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공작님 몇짤?”
“음? 올해로 64정도 입니다.”
“그래요. 제 나이는 몇으로 보이나요?”
“제가 알기로 여신님은 아르고니아의 나이와 맞먹…”
“몇으로 보.이.나.요?”
“…많이 처서 스물쯤 되어 보이십니다.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르고 아리따운 새색시가 됬을 나이군요.”
“그래. 대충 그정도라 치자. 근데 방금 그 멘트는 거의 손녀뻘 되는 사람에게 하기엔 너무 응큼하지 않아?”
“이미 볼장 다 본 사이에 무엇을 그리 신경쓰십니까?”
“섹스까진 하지만 마음까지 주진 않을거란 말이지.”
“허허…이 늙은이의 멘트도 나름 먹히긴 한다는 말이군요. 제 아내에게 종종 해줘야겠습니다.”
“아내? 아내분이 있는데 여기서 이러는거야?”
“제가 남자구실 못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요 뭐…아내도 이해할 겁니다.”
“쯧쯧…넌 진짜 와이프에게 잘해줘야겠다.”
“젊은 아이라서 웬만하면 다 받아주고 있습니다. 너무 응석받이만 되지 않으면 싶죠.”
“젊어? 몇 살인데?”
“여신님과 비슷할 겁니다. 올해로 스물이죠.”
!!! 뭬?
스물?
“…진짜 도둑놈이었네.”
“허허허…할 말이 없습니다.”
씁쓸하게 웃는 공작의 모습은 마치 황혼에서 자신의 인생의 오점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정략결혼이긴 하지만 이미 후계는 있고, 그저 제 욕심으로 데려온 아이이니 더 잘해줘야지요.”
“응. 그게 맞겠다. 평생 둥가둥가 해줘야겠네.”
10, 20도 아니고 40살이나 어린 연하를 신붓감으로 데려오다니.
“그럼 그 어린 부인하고도 아직 관계를 맺은 적 없어?”
“그렇지요. 애무 정도라면 몇 번 해 봤으나 도통 서질 않으니…”
쯧쯧쯧…안타깝네.
“이 주제는 넘어가죠. 그…여신님의 신명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공작이 황급히 주제를 바꿨다.
내 신명? 그러니까 이름 말하는 건가?
“이티아. 미와 색욕의 여신 이티아야. 아직 예비이긴 하지만”
“이티아…도저히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진데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겠지.”
“다음 연구 주제는 그것으로 해봐도 좋을 것 같군요.”
“그러든가…후아암~”
“졸리십니까?”
“그럼…지금이 몇 시야? 밤새 몸을 썼으니 당연히 피곤하지…”
“신도 체력이 있군요.”
“난 아직 예비라니까.”
“맞다. 신력을 모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럼 오늘 저와 관계해서 신력이 어느정도 모였습니까?”
“한 60정도? 인간종은 신분의 고하와 상관없이 무조건 10씩 올라가.”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다른 귀족들에게 여신님을 소개시켜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공작쯤 되면 수많은 귀족들을 알고 있겠지?
인지도를 늘리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열게 된 창관의 단골손님도 만들 수 있을 테고, 돈도 적당히 벌 수 있을 테니 절대 나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하지만 공작 입장에선 나와 관계할 시간이 적어질 텐데?
“…오늘 나랑 섹스한게 만족스럽지 않은거야?”
“그럴리가요. 다만…저도 나이가 있다보니 매혹에 걸리면 후폭풍이 엄청납니다. 몇 시간동안 피가 아래쪽에 몰려있어서 현기증이 난다고 할까요. 게다가 매일 침실로 여신님을 모시면…아내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면 뭐. 어쩔 수 없네.”
“그래도 내일까진 저택으로 와 주십시오.”
“힘들다며?”
“여신님의 처음을 먹을 기회인데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공작은 손으로 내 엉덩이를 살살 문질렀다.
그 추찹한 손길에 또 다시 발정이 날 것 같아 황급히 공작의 손을 쳐내고 돌아누웠다.
“이제 잘거야.”
“내일은 창관으로 가지 마시고 바로 저택으로 오십시오. 저녁 6시 정도에 오시면 될 겁니다.”
“알았어. 이제 자.”
“먼저 주무시지요. 저는 일이 좀 있어서 하다가 자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노곤한 몸은 눈을 감고 힘을 빼자마자 곧 수마가 찾아왔다.
***
새액- 새액-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침대를 바라보니 경국지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미녀가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과연 누가 알까?
제 침대 위에서 자고있는 미녀가 사실 미의 여신일 것이라고.
태생부터가 학자 집안인 브리오 하인델은 황실 금고에 있는 금서들까지 뒤져가며 이티아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꽤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정보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내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분이다.’
한날 인간이 여신을 품으려 하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만한 일이다.
허나 욕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외모, 성격, 밤일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그녀를 마다할 사내가 있을까?
오히려 눈길이라도 한번 받고싶어 구애하게 되겠지.
‘내가 조금만 미숙했다면 나도 그 구애하는 무리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군.’
그녀를 온전히 제 것으로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조력자의 역할이라도 맡자는 것이 브리오 하인델의 생각이었다.
그녀를 다른 귀족들에게 소개시켜주려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녀에게 해가 되지 않을 귀족들만 소개시켜주고, 그러면서 자신은 정치적인 이득을 취한다. 이것이 브리오 하인델의 계획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물론 그럴수록 자신이 그녀를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조력자의 지위로 가끔씩이나마 그녀와 함께할 수 있으면 상관없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구먼…”
당분간 그녀는 바빠질 터이니 내일 확실하게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 브리오 하인델은 필기하던 것을 그만두고 침대로 가 몸을 뉘었다.
내일 있을 즐거운 시간을 위해 눈을 감았다.
***
공작저에서 자고 일어나서, 씻고 아침까지 대접받았다.
공작은 아침 일찍 어디를 나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길래 그냥 혼자 먹고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왔다.
으흠…이제 뭘 할까?
오후 6시에 공작저를 방문해야 하는데, 그 전까진 시간이 좀 남아서 뭘 할지 고민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관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했지?
시간이 잘 안나서 이든의 업무가 얼추 끝나갈 때 까지 미루고 있었는데 이참에 처리해버려야 겠다.
“공사를~ 하려면~ 어디로갈까~나.”
일단 황성에 가야겠지?
인테리어를 바꾸려면 황성에 가서 신고를 하고, 황성에 의뢰서를 제출하면 견적을 보러 와준다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저번에 이든과 함께 가본 기억을 되살리며…마차를 탔다.
뭐하러 다리아프게 걸어가? 그냥 황성으로 가 주세요! 하면 끝인데.
내 다리는 소중하니까 그냥 마차를 타기로 했다.
물론 엉덩이는 무사하지 못했지만.
얼얼한 엉덩이와 메슥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황도 자체도 꽤 넓은 편인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민원 등을 처리하는 황성은 그만큼 넓었고, 사람도 많았다.
어디보자~저쪽에서 접수를 하면 되는건가?
흔한 이세계 모험조합처럼 안내창구에 안내원 여성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기번호표 같은건 역시 없었고, 그냥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곳에 따라섰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긴 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줄이 줄어들어서 금방 내 차례가 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저택 인테리어를 바꾸려고 하는데요.”
“네. 저택 주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그 6번지구 29길에 있는 5층짜리 저택인데…”
“집주인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티아 에요.”
“네. 확인되었습니다. 여기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
아가씨가 내민 문서에는 대충 인적사항과 원하는 가격대, 리모델링 이유 및 쓰임새 등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음 인적사항은 내걸로 쓰면 되겠지?
가격대야 돈은 충분하니 됐고, 리모델링 이유? 창관으로 개조하려…고. 됐다.
“다 했어요.”
내가 내민 문서를 슥 훑어보더니 창관이란 부분에서 날 흘깃 쳐다보았다.
“창관? 혹시 사업장 등록도 하셨나요?”
“아…니요?”
“창관으로 등록이 되어야 정식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해야하나요? 지금은 그냥 저택인데…”
“아직 영업을 시작한 게 아니라면 급할 건 없지만…일단 이대로 접수할게요.”
“네. 그리고 리모델링 업체소개도 도와준다고 들었는데…”
“네! 일단 접수가 수리되어야 저희쪽에서 견적을 보고 맞춰드릴 수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음…그럼 저쪽에서 기다리면…”
“네, 네. 다음 분?”
아직 묻고 싶은건 남았지만 뒤에 사람들 눈총에 못 이겨 떠밀리듯 밖으로 밀려났다.
그럼 또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건가?
근처 소파에 앉아 다리를 휘적휘적 저으며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멀리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 일이래? 황제라도 행차했나?
웅성대는 쪽에서 다수의 인원이 무리지어 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길라 로브에 달린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쓰고 구석탱이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무리는 정확히 내가 있는곳을 향해 다가오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