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4화, 작은 경쟁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덥수룩해서 표정조차 읽을 수 없다.
키가 거대해서 다른 여자들은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온몸이 구속당해 있으나 느껴지는 예리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꽤 멀리 있음에도 살을 칼로 에는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렇게 존재감이 확실한 것이 바로 자이언트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존재다.
다만 그래서 의심도 든다. 왜 저런 대단한 자가 저급으로 취급되는지 말이다.
“의심된다는 표정이네?”
“응? 아…. 그렇지. 희귀한 종족이라며? 그런데 왜 최하 품질로 분류된 거지? 노예 상인이라면 희귀한 상품은 가장 마지막에 내놓지 않나?”
“자이언트기 때문이야. 희귀한 종족인 것은 맞아. 그러나 그녀들을 길들이는 것은 더없이 어렵거든, 노예 계약 서류로 옭아매기는 쉽지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들이야. 서류라도 잃어버렸다간 주인은 그대로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저들은 누가 자신들 위에 서는 것은 너무도 싫어하거든, 같은 동족의 지배자에게도 항상 수많은 쿠데타가 일어나는 아주 야만스러운 종족이야. 하지만, 덕분에 본인의 전투 능력도 대단한 자들이지.”
“야생마 같은 종족이라…. 그래서 저렇게 저렴한 거로군. 노예로 사로잡긴 했으나 애물단지 같은 존재인 것을 너도나도 잘 알고 있으니 저렴하게라도 팔아 치우겠다는 거로군.”
“아주 정확해. 이루스넌 눈치도 좋구나. 왜 이런 인재를 카밀라 같은 년이 차지했었나 모르겠네. 아휴 부러워라. 간부끼리 우리 서로 돕고 지내자. 나중에 나몰라라 해버리면 나 실망한다?”
“알았어. 아까 약속 했잖아. 잘 지내자고.”
“자기 자리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는 년들이 종종 있거든, 카밀라처럼.”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저 자이언트 실력은 확실하니 길들일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의 대원이 될 것 같아. 길들일 수만 있다면.”
“레벨이 얼마나 되냐가 문제인데….”
“저품질로 등록되었으니 레벨은 아무리 높아도 30 언저리일 거야. 아무리 애물단지라도 레벨이 높다면 저품질이 될 리가 없지. 120인 네 레벨이면 충분히 조련할 수 있다 보는데?”
“자이언트는 레벨당 능력이 얼마나 되지?”
“1레벨 자이언트가 인간 일반인의 10배에 해당해. 단 저들은 레벨을 올릴 때 필요한 경험치 요구량이 매우 놓지. 도적단으로 놓고 보자면 일반 자이언트 1레벨이 일반 대원보다 세배? 네 배 정도 강할걸?”
“30레벨이면 최대치로 보았을 때 120의 단원까지 상대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충분히 조련할 수 있다고 본 거구나?”
“어디까지나 확실한 통계 수치는 아니야. 네가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것도 단원일 때의 이야기야.”
“무슨 소리야?”
“눈치채지 못한 거야? 너 지금 직업이 바뀌었을걸?”
“뭐?”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신체 능력 화면을 눈앞에 띄워 올렸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내 직업이 도적에서 도적 간부로 변해 있었다.
놀람에 입도 벌리지 못하고 있는데 미스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두령이 널 간부로 인정한 순간부터 네 직업은 도적 간부가 되었을 거야. 어젯밤에 확인을 안 한 모양이네?”
“그래…. 갑자기 간부가 되라고 해서 좀 얼떨떨한 바람에 말이야.”
“모두의 인정으로 두령에서 올라가는 대 두령과는 다르게 간부, 두령 직업은 대 두령의 임의로 임명할 수 있어. 물론 그에 따른 능력치 상승이 조금 적지만, 그래도 일반 단원과는 천지 차이의 능력치를 가지게 되지. 그래서 내가 말 한 거야. 일반 단원일 때는 저년과 네가 자웅을 겨뤄 누가 이길지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로 네가 이길 거야.”
“그렇구나…. 그렇다면 사자. 내 팀으로 확실히 길들일 수 있다면 지크리스 못지않은 든든한 동료과 돼줄 거라 생각되는군.”
“좋아. 아직 저년에게 돈을 건 머저리는 없으니 조금 싸게 살 수…. 칫….”
“경쟁자가 등장한 건가. 말하자마자 호랑이가 따로 없네.”
“호랑이?”
“있어. 그런 거.”
미스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자이언트 여성에게 금액을 제시했다. 아직 금액이 크지 않지만, 아무래도 자이언트 여성을 마음에 들어 한 거 같다.
길들이지 못해도 노예 계약서만 있다면 충분히 노리개로 삼을 수 있다.
누군진 몰라도 저 우람한 자이언트 여성을 상대로 욕정 하다니 취향이 독특하다 할 수 있었다.
“자이언트 여성이 섹스는 또 기가 막히게 잘해. 저놈 저거 어디서 자이언트 여자를 한 번 맛본 놈이 틀림없어.”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쉿. 비밀이야. 히히-”
“…….”
검지를 입에 대며 비밀이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어쨌든 이대로 저런 고급 인력을 놓칠 수는 없으니 호가를 높여서 금액을 제시했다.
금액 호가가 제시되자마자 날카로운 눈빛이 이곳을 향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 눈빛과 시선이 맞았는데도적단의 남성 하나가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옆자리의 미스틸과도 시선을 마주했다가 혀를 차는 듯 하며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푯말을 들어 올려 미스틸이 제시한 호가에 대항해 더 높은 수치의 금액을 제시했다.
“해보자는 건가?”
“우르자인이 저번에 우리가 간택한 여인에게는 호가를 제시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법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 언니 말이 맞아. 그런데 왜 있잖아. 무서운 대상이 없으면 날뛰는 놈들 말이야. 언니가 없으면 가끔 저런 것들이 좀 있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자이언트를 싼값에 안을 수 있으니 저러는 것도 당연하긴 해.”
“변태 같은 새끼.”
아직 그가 자이언트를 왜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여성 자이언트가 일반 남자 단원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레벨도 낮은 일반 단원이 자이언트를 조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더욱 말이 안된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노예 계약서를 가지고 강제로 저 자이언트를 취한다는 선택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자연스레 그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가 호가를 높이자 미스틸도 지지 않고 호가를 높였다. 이번에는 아예 두 배로 껑충 뛰어버린 금액이다.
남자는 당황하는기색이 역력했다. 푯말을 올릴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겨우 손을 들려는 찰나 이번에는 그의 옆에 있는 남자가그를 말렸다.
아무래도 객기를 부려 돈이 없는데도 큰돈으로 호가를 높이려 하니 남자가 말린 모양이었다.
“멍청한 새끼. 객기도 정도껏 부려야지.”
“그러게. 그런데 저거 일부러 호가를 높이려고 난리 치면 어쩌지? 가끔 그런 놈들도 있잖아.”
“나도 이 판에서 자주 놀아서 대충 얼굴만 보면 견적이 나와. 저 녀석 이미 한계야. 만약 한 번도 호가를 높이잖아? 그럼 나 그냥 포기할 거야. 그럼 저 자이언트 우리 거거든.”
“뭐?”
“최종 호가를 제시한 후에 그 금액을 내지 못하면 자연스레 바로 한 단계 아래 금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와. 즉 우리를 말하는 거지. 그리고 사기 호가를 제시한 놈은 손목 하나를 자라야 하고. 하…. 멍청한 놈. 객기 부리는 것 좀 봐.”
남자는 결국 푯말을 들어 올렸다. 옆자리의 남자는 고개를 흔들며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어쩔 거야?”
“그만둘 거야. 저놈 분명히 돈 없어. 아, 미안한데 잠깐 싸울 준비 좀 해줄래?”
“뭐 때문에?”
“애매한 숫자의 금액이 부족하면 환전소에서 금액을 빌리려 할 거야. 다만 그 전에 우릴 먼저 제거하려고 하겠지. 높은 확률로 저놈이 결투제안을 해올 테니 적당해 상대해 줬으면 해.”
“날 뭘 믿고 이런 큰일을 맡기니?”
“레벨이 깡패야.”
“하…. 너 그 말….”
“그래. 쥬린한테 배웠지. 히힛-”
아니나 다를까 푯말을 올리자마자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글거리는 눈동자. 눈 안에서는 자이언트 여성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넘실거리고 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했다. 그것을 허락할 내가 아니었지만...
탓!
“손대지 마! 좆 같은 새끼야.”
“뭐, 뭣!!!”
“말귀 못 알아들어? 손대지 말라고, 너 같은 새끼가 나한테 손대는 거 불쾌하고 역겹거든?”
“개 같은 년들이 우르자인의 뒷배만믿고 멋대로 굴다니. 난 그런 거 하나도 두렵지 않다! 따라 나와!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지!”
“얼씨구. 꼴에 힘 좀 쓴다 이거야? 정말 대단하네! 그렇게 잘 쓰는 힘으로 여자 괴롭힐 궁리만 하고 있으니 말이야.”
“뭐가 어째?”
“아- 시끄러워. 그래 상대해 주지. 밖으로 따라 나와. 미스틸, 다녀올 테니까 괜찮은 애들 있으면 알아서 골라줘. 저 자이언트는 내가 팀에 둘 거니까 눈독 들이지 말고.”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가. 자이언트 조련이 뭐 쉬운 줄 알아?”
“누구 마음대로 너희 년들이 가져가고 말고야 저년은 내가 이미 눈독 들였으니 너희들이야말로 포기해라! 내가 이년을 철저히 쓰러트리고 돌아오겠다!!! 알았어?!”
“하. 입만 살아있는 똥개 자식이군. 너 지금 간부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알고 있어?”
“닥쳐! 나도 간부다!”
“아 그러니? 남자 쪽 간부는 하도 많으니 내가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해서 말이야. 이거 미안해라!”
“크아아! 이년을 쓰러트리면 다음은 네년 차례다!”
“그러던지. 알았으니 그만 떠들고 나가서 해. 이루스 잘 부탁할게.”
“그래. 넌 따라 나와 이 새끼야!”
“어! 어!!!”
놈의 목덜미를 잡아 밖으로 이끌었다. 놈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내 힘에 끌려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레벨 120에 도적 간부다. 같은 간부라 자신을 소개하긴 했어도 레벨이 나보다 높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제이슨도 말했던 것처럼 내 레벨이면 부 두령을 시켜도 아깝지 않다고 했으니 유추해본 것이다.
탓!
데구르르!
놈의 목덜미를 잡았던 손을 휘둘러 밖을 향해 놈의 몸을 던지니 가볍게 날아가 땅을 굴렀다.
그 모습이참으로꼴사나워 보여 입이 절로 미소를 그리게 된다.
놈은 바닥을 구르다가 씩씩거리면서 흥분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개 같은 년! 결투다! 널 죽여 버리겠어!!!”
“좋아. 덤벼봐. 여기서 일어난 일은 모두 불문에 부치지. 결투에 임하겠어.”
결투라는 것이 그리 쉽게 일어나진 않지만, 도적단 내부에서는 서로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꼭 필요한 행위였다.
제이슨도 단원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원치 않지만, 그래도 뭔가 단원들 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대책은 꼭 필요했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바로 이 결투였다. 상대방의 목숨을 취해도 절대로 벌하지 않는 합법적인 싸움이다.
물론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공증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결투를 입증해야 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미스틸이 그것을 공증하고 입증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을 듯하다.
“크아아아!!!”
소리 높여서 기합을 지르며 자신의오른쪽 품의 검집에서 검을 꺼내 빠르게 달려오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퍽!!!
“크허!!!”
검을 가볍게 피한 뒤 놈의 턱을 올려 차버렸다. 놈은 턱을 맞아서 머리가 어지러운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스앙!
스산한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내가 단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놈의 허벅지에 단검 한 개를 순식간에 찔러 넣었다.
“큭!!!”
단검에 맞으니 놈은 중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는 땅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대자로 뻗어버린 놈은 숨을 헐떡이며 다리를 부여잡았다. 단검으로 찌른 곳은 허벅지라 급소랑은 관계가 전혀 엎기에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턱!
놈의 가랑이 사이에 소중한 부분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는 질근, 질근 천천히 힘을 가해 지르밟으며 놈의 표정을 확인했다.
“커! 윽! 그, 그만해! 내, 내가….”
“뭐? 잘 안 들리는데?”
꾸욱!
신은 신발이 꽤 얇아서 놈의 기둥, 그리고 두 개의 알이 짖눌리는 것이 대충 느껴졌다.
좀 더 힘을 가하면 아마 터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악!!! 그만! 내가 졌어! 미안하다고!”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지.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아!!!”
“후”
좀 더 힘을 가해 주려다가 고통을 못 이긴 놈의 비명을 들이며 발에 힘을 빼 주었다.
놈은 눈물을 질질 짜고 있다. 위로도 아래로도.
“너 같은 놈들이 도적단 남자들 체신을 다 깎아 먹는 거야. 시발. 너 어디 쪽 소속이야?”
“큭…. 자, 자마칸 두령.”
자마칸 두령, 저번에, 모죠 사건대신세를 진 두령이다. 그것 말고는 딱히 나와는 이렇다 할 접점도 없고 오히려 두령 쪽에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런 놈이지만, 잘못이 있으면 자마칸 두령이 해결해야 할 터, 목숨만은 살려 주어야 겠다.
“개 같은 새끼. 두령의 반만 좀 닮아봐라. 어쨌든. 자마칸 두령의 위신을 생각해서 목숨을 살려줄 테니 가서 반성이나해. 한 번 만 더 까불면 그땐 용서 없이 이거 터트릴 거니까.”
꽉!
“@#%@$#@[email protected]%!!!”
놈은 혼절했다. 마지막 한 번의 일격이 좀 강했던 모양이다.
꿀럭! 꿀럭!
그때 놈의 하반신에서 뭔가가 점점 차오르는 기분이 들어 더러운 느낌에 발을 떼니 놈이 발기한 상태로 뭔가를 바지 안에서 점점 싸지르고 있는 윤곽이 보였다.
“미친 변태 새끼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차버리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잘못했다간 진짜 알 두 개 터트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쓰러진 놈을 그냥 두고 아직 열기가 한창인 노예 경매로 향했다.
쓰러진 놈의 얼굴이 미묘하게 홍조가 생긴 건은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