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7화, 강화되는 능력.
‘그만 질질 짜자 누가 보면 꼴사나워.’
마음을 다시 다 잡았다. 한 번 울고 나니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 전, 카밀라에게 배운 대로 신체 상태 화면을 띄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고 자기 전에는 자기 몸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꼭 확인하라고 성화를 부리던 그녀 덕분에 일과의 시작과 끝은 이 신체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레벨 11. 사냥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6이었던 레벨이 순식간에 올랐다.
내 능력이지만, 내가 가장 먼저 봉인하기로 마음먹은 하이드레인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내 능력의 단점은 경험치로 레벨을 올릴 수 없다는 건데…. 나중에는 분명 이게 내 발목을 잡게 될 거야. 뭔가 방법이 필요해.’
오늘은 어떻게든 잘 숨겨 넘겼다. 고블린과 워리어를 사냥하여 레벨을 올렸다는 것으로.
비정상적으로 성장이 빠른 것은 내 하이드레인 능력이라 알아서 생각해 주니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이 문제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앞으로 레벨 상승은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은 즉 이대로 내 성장이 멈추고, 의심을 사게 될 것이란 말이다.
고블린의 사냥이 끝났으니, 앞으로는 아마도 더 강한 마수들을 상대하게 할 것이다.
‘그때마다 능력을 봉인하고 있다면 성장은 멈추고 상대방은 강해지는 악순환이 되겠지. 적을 죽이지 못해 내가 죽던가. 제이슨이나 카밀라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날 추궁하던가 뭐가 되었든 문제야….’
레벨을 상승시킬만한 다른 방법, 즉 우회 루트가 필요하다.
수련만으로는 강해지는 것에 한계가 있다.
레벨이 상승하는 것만으로도 신체 능력이 높아지고 레벨이 높으면 수련으로 강해지는 한계도 점차 늘어난다.
6레벨의 신체를 최대한 수련시킨 상태니 앞으로 11레벨의 신체를 수련으로 조금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시간 동안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직업. 도적”
직업, 사람이 살면서 하는 훈련, 그리고 전투 방식과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
사람은 한평생 하나, 또는 두 가지의 직업을 가진다고 제이슨이 설명한 바가 있었다.
그것도 높게 잡은 것이지 한 직업을 최대한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일생을 그곳에 바쳐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도적은 초반 성장이 매우 빠르지만 가면 갈수록 성장이 떨어지고 점차 힘이 빠지는 직업이다.
그러나 후에 카밀라의 설명에 따르면 직업에 심화를 거치면 좀 더 강한 직업으로의 변화가 일어난다고도 한다.
레벨과 수련을 계속 이어 나가면 후에는 나 역시 카밀라나 제이슨처럼 도적 직업에서 좀 더 특화된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이 역시나 레벨이 발목을 잡게 된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레벨을 올릴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꿈같은 이야기다.
“능력, 하이드레인…. 응?”
마지막으로 정말 보기 싫지만, 내 능력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하이드레인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잠깐 눈을 의심하며 하이드레인 능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변했다. 하이드레인 능력이 변해 있었다.
오늘 사용한 하이드레인 능력 덕분에 흡수 효율이 높아져서 능력 여기저기에 몇 가지의 변화가 일어났다.
능력: 하이드레인
(1. 상대방의 레벨을 낮추고 자신의 레벨을 올리는 능력. 상대방과의 성교[몸을 섞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능]를 통하여 발동된다.)
(2. 상대방이 자신보다 레벨이 높으면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흡수율이 높아진다. [최대 흡수량 5레벨], [흡수 효율이 5% 도달하면 흡수 레벨 2점 상승])
(3.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대상에게 전투, 성교 중에 매우 높은 확률로 항거할 수 없게 된다. [흡수 효율이 20% 도달하면 확률이 저하한다.])
(4.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은 전투, 성교 중에 매우 낮은 확률로 항거할 수 없게 된다. [흡수 효율이 20% 도달하면 확률이 상승한다.])
(5. 경험치를 이용해 앞으로 4레벨을 올릴 수 있다. [흡수 효율 1%마다 2레벨 추가] 레벨 상승에는 평균보다 2배 높은 경험치가 요구된다.)
(6. 같은 대상에게 하루에 한 번만 발동한다. 단 흡수한 대상과의 연전이 이루어지면 최대 세 번까지 연속으로 발동한다. [흡수 효율 25%에 연 속 발동 한 번 추가])
(7. 능력이 강제로 발동하는 것을 억제하려면 성교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방을 흡수 불가 대상으로 지정해 둬야 한다.)
(8. 능력이 발동할 때마다 효율이 높아진다. 현재 하이드레인 흡수 효율은 2%)
“생겼…. 네?”
흡수 효율이 2%가 되어 스킬의 능력들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거나 좀 더 알기 쉬운 능력 상승 설명이 뒤에 따라붙었다.
특히나 경험치를 이용해 레벨을 올릴 수 없다는 5번 항목이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흡수 효율 1%에 2레벨을 올릴 수 있도록 단점이 완화되었다.
고작 1% 2레벨, 그것도 그냥 상승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경험치로 올려야 하지만,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물론 4레벨을 채우게 되면 다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겠지만, 숨길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났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이것 역시 숨겨야겠지….”
어차피 상대방이 내가 허락했을 때 볼 수 있는 신체 상태는 이름, 그리고 레벨과 직업뿐이다.
능력은 무슨 수를 써도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없으며, 이를 보기 위해서는 정말 희귀한 마법 아이템이 필요하다는데 그것은 제국에서도 구할 수 없는 잊힌 세대의 유물이라고 했다.
연기만 잘하면 지금 내 능력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나의 무기다. 정말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를 대비한 최후의 한 수이다.
나에게 이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이슨이 내 몸을 탐하지 못하게 하는 억제제가 된다.
레벨 200에 육박하는 제이슨은 지금의 나로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그 차가 명백하다.
지금은 그의 밑에서 천천히 실력을 높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를 넘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꼭….
….
…….
……….
*****
능력의 변화가 생긴 뒤로 이루스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레벨은 11, 그에 걸맞은 신체 능력을 얻기 위해 하루는 훈련, 그리고 하루는 마수 사냥을 한 번씩 돌아가며 병행한다.
약한 3에서 4레벨의 고블린만 사냥하니 레벨 상승은 정말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기본 레벨이 12 이상인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워리어를 상대할 수는 없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콰직!!!
“키!!!”
단검에 오른쪽 볼부터 왼쪽 볼이 완전히 관통한다 고블린이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비명을 지르는 그 고블린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이루스가 다리를 차올렸다.
퍽!
그대로 놈의 배에 그녀의 발차기가 작렬했고 놈은 입이 완전히 찢어지며 뒤로 날아가 즉사했다.
그런 이루스의 단검 끝에는 정확하게 도려낸 어금니가 두 개 궤여 있었다.
고블린의 어금니는 아래쪽보다 위쪽의 것이 더 크고 단단하다. 물론 가격도 더 비싸다.
그것을 파악하고 나서부터는 사냥의 속도가 붙었고 갈무리도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참 좋은 효율로 사냥을 이어가는 그녀의 귀에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딸랑!
흠칫!
방울 소리가 나는 곳을 한 번 바라본 그녀는 이곳으로 향하는 몇몇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발정기의 고블린들에게 한 번 크게 당한 뒤로 그녀는 더욱 냉정하고 주의 깊게 움직였다.
‘칫…. 물러날 때인가….’
실과 방울을 연결하여 걸린 대상의 위치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소리 함정이었다.
일반적인 고블린이 이 함정에 걸리면 나는 소리와 몸집이 큰 워리어가 걸리면 나는 소리는 아주 달랐다.
그 소리를 이용해접근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대충이나마 미리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 난 소리는 워리어의 소리였다. 그것을 알게 된 이루스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크르….”
이루스의 예상은 여지없이 적중하였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안 가, 죽은 고블린의 시체 주변으로 몇몇 고블린이 다가왔다.
일반 고블린 다섯 마리와 워리어 두 마리. 정말 많은 수의 이동이었다.
거기에 워리어 중에 한 놈은 무려 레벨이 16에 육박하고 있었다.
만약 이루스가 냉정한 판단으로 몸을 빼지 않았으면 지금쯤 큰 곤욕을 치루고 있었을 터였다.
“후우!”
놈들과 거리를 벌리며 그대로 마수의 숲을 빠져 나온 이루스는 온 몸이 땀 투성이였다.
그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이며 사냥을 하였다는 뜻이다.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 안에는 고블린들의 어금니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모아둔 수가 아닌, 모두 오늘 하루 만에 잡아들인 고블린들의 어금니다.
아랫어금니를 빼고 한 놈당 두 개의 어금니가 나온다는 가정하게 약 스물에서 스물둘의 고블린이 희생당한 듯했다.
그러나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다.
약하디약한 고블린들은 그만큼 경험치도 별로 주지 않았다.
그런데 하이드레인의 불이익으로 레벨 상승에 필요한 경험치가 무려 두 배가 돼버렸다.
물론 레벨을 아예 올리지 못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나아지긴 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당장은 고블린 따위를 아무리 사냥해도 레벨 하나를 올리기 버거웠다.
뭔가 고블린 보다는 강하고 워리어 보다는 약한 새로운 마수를 사냥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고블린으로 레벨이 잘 안 오른다고?”
“그래…. 슬슬 다른 마수를 잡아야 할 거 같은데 마수의 숲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
고블린의 어금니를 정산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바논과 술을 자시며 그에게 상담을 청한 이루스
바논은 흔쾌히 그녀와 함께 자리하여 그 상담에 어울려주고 있었다.
마수의 숲은 넓고 그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여 고블린 지역 말고는 가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고블린 지역의 초입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워리어의 존재와 더불어 발정기의 고블린의 협공은 너무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었다.
카밀라가 있었으면 그녀에게 상담하면 되겠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속한 우르자인 두령에게 불려간 상황이었다.
참고로 이어 붙이자면 우르자인 두령은 이 제이슨 도적단의 여 두령으로 대대로 이어지는 여성 단원들을 관리하며 이끄는 조의 두령을 맞고 있다.
조의 이름은 두령이 된 사람에 따라 바뀌게 되지만, 조에 속한 사람들의 성별은 변하지 않는 오래된 관례와 같은 조라고 한다.
이루스 역시 간부 카밀라의 밑에 배속되어 있기에 크게 보자면 이 우르자인 소속이기도 했다.
여하튼, 그래서 카밀라가 자리를 비웠기에 다른 상담역이 필요했고 그렇게 낙점된 사람이 바논이란 것이다.
바논은 비록 잡무 담당이지만 이루스 보다 훨씬 오래 이곳에 있었다.
고블린 발정기도 사실 카밀라보다 그가 먼저 알려줬었으니 상담역으로 제격이었다.
“흠... 초입의 고블린이 아니면 다른 것들은 기본 레벨이 8정도 되는 리저드맨 정도가 있는데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
“11이야.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11이라고? 흠…. 그 정도면 충분하긴 한데…. 음….”
뭔가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이루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리저드맨, 가죽이 단단하고 꼬리가 길며 창을 잘 사용하는 도마뱀 인간들이다.
일반적인 힘으로는 가죽을 베기 어려워 사냥하기 벅찬 마수지만, 놈들은 둘 이상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아서 고블린 보다 단결력은 떨어진다.
다만 개체별 능력이 확실히 고블린 보다 훨씬 강력하며 꼬리도 자유자재로 다루기에 무기가 두 개라 봐도 무방한 놈들이다.
그러나 확실히 놈들의 레벨은 평균 8에서 10 사이에 왔다갔다 하는 놈들이다.
지금 이루스의 레벨이라면 10의 리저드맨이 나온다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텐데 비논이 망설이고 있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자신 앞에 놓인 술을 들이켠 바논은 결정을 했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갓다.
“역시 그만둬야겠다. 일단 이번 계절이 지나거나 발정기가 좀 끝나면 움직이자, 지금 리저드맨의 지역은 좀 위험해.”
“뭐? 리저드맨들도 발정기란 말이야?!”
“아니야. 놈들의 발정기는 봄이야. 가을엔 놈들이 겨울잠을 준비하는 시기라 오히려 약해지는 타이밍이지.”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다른 이유가 있어?”
“약해진 리저드맨들을 영양식으로 삼기 위해 움직이는 또 다른 발정기의 마수가 돌아다니거든….”
“다른 마수?”
“그래….”
잠시 뜸을 들인 바논이 목이 마른 듯 술 대신 물을 들이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레벨 30에서 38까지 육박하는 놈들…. 미노타우로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