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4화, 침략의 이유.
부드러운 이불도 푹신한 침대도,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유두와 음부를 겨우 가리는 이 천박한 드레스의 허함을 달래주지 못하였다.
지금 난 잘 꾸며진 먹음직스러운 음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잘 꾸미니까 진짜 예쁜데? 셈나네. 나중에 대 두령이 충분히 맛보고 나면 줄이나 하나 그어 버릴까?”
거기에 이런 흉흉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여자까지 옆에 있으니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이 더 심란하다.
내 표정을 읽은 걸까? 그녀는 질 나쁜 농담을 던진 듯한 악동의 표정을 하며 내 옆에 거칠게 앉았다.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쫀 거야?”
“…….”
“대답 안해?”
그녀의 크게 뜬 눈동자가 가까이에서 보였다.
내 얼굴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는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다.
정말…. 이런 상황에 부닥친 나에게 대답을 바라다니 이 여자는 너무 악취미 같았다.
“네…. 무서워요.”
“쯧 귀염성 없긴. 대 두령이 솔직히 생긴 건 야생마처럼 생겼어도 섹스 엄청 잘하니까 너무 겁내지 마. 에탄 그 개 같은 놈에게 당하는 것보다 이편이 나을걸? 너 나한테 목숨 빚진 거야.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갚아.”
“살아 있다면요….”
“마치 우리가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네? 아까 우리가 흉흉하게 죽이느니 마느니 이야기하긴 했는데 우리도 사람 목숨을 그렇게 쉽게 죽이지는 않는다고. 뭐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 놈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긴 하지만, 무기도 없는 민간인이야 주먹질 몇 번 하면 알아서 기거든.”
“하….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거죠? 금방이라도 대 두령이란 분에게 데려갈 것처럼 행동하더니.”
“대 두령은 아직 할 일이 있어서 좀 더 기다려야 해. 빨리 준비시킨 이유는 만약 그분이 왔을 때 네가 대령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지. 네가 기다릴지언정 그분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그런가요….”
“시간이 남으니 질문이나 받아 줄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너도 궁금하잖아?”
“질문하면 알려는 주실 건가요?”
“비밀도 아닌데 뭐. 어차피 대 두령의 몸종이 되었으니 너도 늦든 빠르든 알게 될 일이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그럼 알려 주세요.”
내가 왜 여기 잡혀 왔는지 페이머스 도적단은 뭔지.
왕국이고 제국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질문, 그 한 가지 질문을 지금 던졌다.
“왜 침공한 거죠?”
“침공…. 침공이라. 그래 너희는 당연히 그렇게 느끼겠지.”
한참을 뜸 들이던 카밀라는 이내 자신의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까 공동에서 대 두령이라는 남자가 들고 있던 미노타우로스라는 마수의 안에서 꺼낸 마석이란 물건이었다.
다만 이쪽의 물건이 좀 더 빛이 연하고 색이 탁했다.
“이건 마석이라는 거야. 우리 세계에서는 이 물건이 그 어떤 보석이나 돈보다 귀중한 물건이지, 이 작은 물건이 집 한 채 값이라고 이해면 쉬울 거야.”
“이 마석이란 우릴 침공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큰 상관이 있지. 마로 이 마석을 얻기 위해서 너희의 세계를 우리가 침공한 거니까.”
이 조그마한 돌멩이 따위를 위해서? 알고 나니 뭔가 허무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이런 작은 돌멩이를 위한 일이었다니….
“우리 세계에서는 지금 이 마석을 얻을 방법이 없어 대기 중에 있는 마나의 양이 한없이 부족해서 마수들이 변이를 일으키지 않거든. 마수는 변이를 일으킴과 동시에 몸에 마나를 받아들이고 죽을 때 그 마나가 마수의 핵으로 흡수되어 이런 마석이 만들어지게 되지. 그런데 우리 세계의 대기 중 마나는 거의 고갈된 상태라서 아무것도 없는 빈 마석만 떨어지는 상태가 되었거든. 그래서 우리 세계의 모든 왕국, 제국 할 거 없이 힘을 모아 다른 세계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그 게이트를 열고 실험적으로 오십 곳을 연결했어. 뭐 운이 없게도 너희가 있던 곳도 그 대상이었고.”
“그럼…. 저희 세계에서는 마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게이트를 연 지점은 마나가 풍부한 곳이야. 대기 중에 마나가 풍부하면 그 마나를 받아들이고 마수가 변이를 일으키니 당연한 말이지. 그리고 너희 세계는 그런 대기 중에 마나가 정말 풍부한 곳이었어. 마수가 그곳에 도달하자마자 바로 변이를 일으켰으니 말 다 한 셈이지. 아까 소 대가리, 그게 미노타우로스라는 녀석이야. 원래는 나보다 머리 세 개에서 네 개 정도 더 있는 크기의 녀석인데 변이를 해서 그렇게 집채만 하게 커진 거야. 뭐 힘도 강해지고 흉포하게 변한다는 단점도 있는데 우리에게는 상대도 안 되는 놈이지.”
“…….”
카밀라가 해주는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암울하기만 했다.
이들은 우리가 겪어야 할 그 어떠한 피해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인 이 작은 돌멩이 마석을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제때 구조를 받지 못했다면 거기서 죽었을 텐데….
이들은 그런 위험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가?
“너무해….”
“뭐가 너무한데?”
“왜 평화로운 세상이었던 우리 세상을, 아니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거죠?”
“힘없으면 당하는 거지. 만약 너희가 조금이라도 힘이 있었고 우리에게 대항이 가능한 종속들이었으면 왕국과 제국이 알아서 사절을 보내고 친화 정책을 폈겠지. 그런데 너희는 너무 약했어. 총? 그런 하찮은 무기를 들고 몸은 단련시키지도 않았으니 침략을 당해도 할 말이 없지. 약자는 짓밟히고 빼앗기고 당하는 법이잖아? 그리고 우릴 만난 게 너희가 운이 나쁜 거라고. 도적단이 다 그런 그렇잖아? 약탈하고 죽이고 강간하고!”
“그건 당신들 세계의 그리고 당신들 이론이잖아요! 우린 문명인이고 이런 야만스러운 일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정의로운 곳이라고요!!!”
“흥! 그게 다 뭔 대수라고 큰소리야. 정의는 얼어 죽을…. 그러고 보니 이 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좀 잘 대해 주니까 자기 입장도 모르고 지랄하네? 정말 어디 하나 잘라 줘야 하겠니?”
“해봐! 해보라고!!! 차라리 죽여!!! 이런 꼴을 당하느니 그냥 죽는 게 나아!!!”
반 정도 목숨을 포기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외치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어디서 솟아오르는지 모를 용기가 충만했다.
침략의 이유를 알고 그 이유라는 것이 너무도 자기중심적이라 허망하기 그지 얺었다.
죽이라는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내 뺨을 후려갈겼다.
“악!”
강하게 뺨을 맞아 쓰러지지만, 다행히 침대 위라 큰 상처는 없었다.
쓰러지는 도중에 면적이 작은 드레스는 이리저리 풀려 가슴이 다 드러나 버렸다.
맞은 뺨 부분에서 점차 화끈한 감각이 올라오는 걸 보니 붉게 물든 듯싶다.
그녀는 분노에 차 바로 검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보였는데 손찌검이 다였다.
“기어오르지 마라. 너 같은 건 죽여 버리고 오늘 그분의 밤 상대를 내가 대신해도 전혀 상관없으니까. 네 여린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명하고 싶으면 네 처지를 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필요 없어…. 욕을 보고 살아가느니 죽는 게 나아….”
솔직히 내가 살던 곳도 순결이라는 말이 많이 사라진 시대였다.
성에 문란한 것은 아니지만, 성에 제법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섞는다고 죄가 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더라도 욕정을 풀기 위한 하룻밤도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러나…. 강간은 다르다.
여성의 그리고 남성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며 상대방에게 상처만을 안기는 그런 행위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온 나다.
그리고 의외로 스물둘 나이라는 이 시기까지 순결을 유지한 처녀다.
고지식하다고 말할지라도 내 처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었기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놈팡이에게 지금 내 순결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것도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정말이지 아까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고 싶었는데 지금은 죽을지라도 더러운 꼴을 보기 싫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 과거의 기억에 항상 두려움에 떨고 꿈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삶.
내가 그 남자에게 당하고 난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런 삶이다.
내 어머니는 날 강간 때문에 낳아 혼자 기르셨다.
때문에…. 어머니의 상처와 공포 그리고 그 아픔을 잘 알고 있다.
그 아픔을 이기지 못 해서 열여덟 내 인생에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큰 대못을 박아 버리게 된 용서 받지 못할 행동. 그것이 바로 강간이다.
“그곳 사람들은 몸이 약한 만큼 정신도 약한 건가? 하. 강간 한 두 번 당하는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죽느니 마느니 열 올리고 그러는 거야? 봐”
카밀라는 내 앞에서 스스로 짧은 팬티와 같은 갑옷을 벗고 자신의 음부를 드러냈다.
아직 분홍빛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소음순과 대음순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음부를 보이면서도 그녀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훈장이라도 된다는 양 자부심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네 말대로라면 난 벌써 열 번은 넘게 죽었어야 해. 그런데 봐 난 살아 있다고.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살아남는 거야. 여자의 몸도 무기야. 내 몸을 써서 내 목숨을 구명하고 남자고 여자고 내 앞을 막아서는 것은 죽이고 치우고 오르고 올라 이 자리까지 왔지. 네 머릿속에 무슨 꽃밭이 펼쳐져 있는지 알 거 없지만, 넌 정말 나약하다. 그러니 침략을 당한 거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녀의 말을 듣기 싫어 손으로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부정하듯 몸을 말았다.
당장이라도 이 믿기 싫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이대로 정신이 나가 미쳐 버렸으면 좋겠다.
이걸 버텨낼 재량이 없다. 눈앞에 있는 카밀라처럼 강하지 않고 나약하다.
그것만큼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다.
딸깍
귀를 닫고 있는데도 들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 그 소리가 내 손을 뚫고 귀로 들어왔다.
왔다….
그가 온 것이다.
지금부터 나에게 잊지 못할 치욕을, 그리고 정조를 빼앗아갈 그 존재가 도달한 것이다.
“준비는 다 된 모양이군. 넌 그만 나가봐라. 네 고성이 밖까지 다 들리더구나.”
“예…. 죄송합니다. 대 두령님.”
“아니다. 네 말에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약자는 강자에게 빼앗기는 법이고 짓밟히는 법이지. 그것이 바로 이곳의 진리야.”
“그럼….”
그녀가 나가니 주변이 고요해진다.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내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기척뿐이다.
살며시 귀를 가린 손을 치우고 눈을 뜨고 말았던 몸을 펴고 앞을 보니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인사하지. 난 이 페이머스 도적단을 이끄는 대 두령 제이슨이다. 넌 이름이 뭐지”
“이, 이름…. 알아서 뭐하시게요…. 어차피 쓰고 버릴 몸인데….”
용기를 내서 강한 척을 해보지만, 그런다고 몸의 떨림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어찌나 처량하게 느껴진 것인지 그가 너털웃음 터트릴 정도였다.
그는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가까이 앉았다.
그리고는 내 볼에 손을 대고는 고개를 올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미색도 곱고 피부고 곱고, 몸매도 나무랄 때가 없군. 상등품 중의 상등품이야. 물론 상품으로 쳤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은 노예상들에게 물건을 팔만한 시기도 아니고 왕국의 감시도 있고 하니까. 운신의 폭이 좁거든. 그러니 팔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참…. 안심이 되는 이야기네요….”
내 비아냥을 듣고도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산도적 같은 인상에 미소를 지으니 어딘지 조금은 푸근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의 무서운 인상이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쿵
그는 아직도 얼어있는 내 앞에 보란 듯이 탁자를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술, 그리고 안주인 듯한 고깃덩이와 몇 가지 알 수 없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
자리에 다시 앉은 그는 자기 옆에 자리가 빈 의자를 가져다 두고는 그곳을 두드리며 날 불렀다.
“이리 앉아서 술을 따라라.”
“…….”
자상하게 말하지만, 애초에 나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었다.
죽지 못했으니 치욕을 견디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국적인 디자인의 술병을 들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 위로 팔을 걸침과 동시에 가슴을 큼직한 손으로 잡았다.
남자의 거북한 손길이 가슴을 잡는 기분은 너무도 더러웠다.
“흐흐흐 술맛 참 좋군. 미색 좋은 여자가 따라준 술만큼 극상의 맛이 또 없지. 어디 왕국의 왕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미색이라 더더욱 맛이 좋군.”
이 세계의 기준으로 미인인 걸까? 사람 기분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이런 상황에도 칭찬은 너무도 잘 들려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뜻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아까까지 처참하게 일그러진 내 표정은 그의 칭찬을 듣고 조금, 아주 조금 펴졌다.
“제가 있는 곳에서 치이고 치인 게 저 같은 사람이에요.”
“설마?! 아니 그런 천국 같은 세계란 말이야? 하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에탄이 아니라 내가 갈 걸 그랬군.”
자기 비하를 하는 말인데도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믿으며 신기해했다.
제이슨…. 이 도적단의 대 두령인 이 남자는 인상처럼 호탕한 성격이었다.
물론 내 몸을 탐하고 있는 이 손길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