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3화, 페이머스 도적단.
라이저 산맥에서 그 위명이 자자한 페이머스 도적단이라고 하면 대륙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잘나가는 도적단이다.
한번 털기로 한 대상은 절대 놓치지 않으며 작은 왕국의 금고 정도는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그 무력과 실력이 대단한 집단이다.
대대로 이 도적단의 대 두령은 페이머스라는 성을 물려받으며 현 21대, 대 두령의 이름은 제이슨, 제이슨 페이머스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크고 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제이슨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의 마석! 단번에 큰돈을 벌어 왔군. 그래 에탄이 네 녀석이 이놈을 잡았다고?”
“예! 대 두령! 제가 잡았습니다.”
“두령이 되자마자 큰 공을 세웠군. 이제는 신입 두령이라고 에탄을 깔보는 머저리들은 없겠지?”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이우신 역시 분위기에 쏠려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안 하지만 동의하는 것을 표현했다.
원탁 중앙에 놓여 있는 마석, 사람 손가락의 한 뼘보다는 좀 더 큰 크기를 가진 영롱한 푸른색의 보석이었다.
마석이란, 마수의 핵이다.
마수를 사냥하면 얻을 수 있는데 마수의 강함에 따라 그 색이 더욱 영롱하고 밝게 빛나는 푸른색이 되며 약해질수록 빛이 바래고 색이 탁해지는 성격을 가진 마법의 돌이다.
강한 마수일수록 체내에 많은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데 죽는 순간 모든 마력이 중앙에 있는 핵에 흡수되어 이렇게 마석으로 만들어진다.
마석은 모든 마법 연구와 마법 아이템의 핵심 재료가 되어 수요가 많은 물품이다.
“어떠신가? 이 정도면 왕국에서도 꽤 짭짤한 보상을 주겠지? 그렇지 않나 관리 양반.”
제이슨이 마석을 들어 올리며 누군가를 향해 질문한다.
그러자 아무렇게나 옷을 입은 야만인들의 소굴에 혼자만 우아한 백로처럼 옷을 입은 한 준수한 생김새의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외눈 안경을 슬쩍 들어 보이며 제이슨이 들고 있는 마석을 품평했다.
“음…. 이거라면 저희 왕국에선 제국 금화로 천금을 드리지요. 물론 첫 수확이니 더 많이 쳐주는 걸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천금! 으하하하하! 산을 타고 넘나드는 어중이떠중이 상단을 하나 터는 것 보다 남는 장사로군 아주 좋아! 좋고말고! 으하하하하!!!”
“지금 바로 왕국에 연락하여 대금을 출발시키라 하지요. 한시가 급한 일이니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수고하시게.”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급하게 발을 놀려 거대한 동공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제이슨이 다시 입을 열고 원탁을 기준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연설과도 같이 이들을 독려했다.
“근 10년 만에 나타난 마석이다. 앞으로도 계속 왕국과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노타우로스 같은 강한 마수뿐만 아니라 소소한 녀석들도 닥치는 대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래 저쪽의 상황과 마수 소환 시기는 얼마나 되지?”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우신을 이곳에 데려온 여성 간부 카밀라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 두령인 제이슨에게 존경과 흠모를 담아 허리를 접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충정의 인사를 올린 뒤에야 겨우 입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이동한 세계의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그곳의 인간들은 너무도 나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남자고 여자고 모두 저희 세계의 민간인보다 못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나마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이란 것들이 이런 무기를 들고 있긴 했습니다.”
탕!!!
카밀라는 품에서 꺼낸 권총을 자신의 손을 향해 발사했다.
이미 그쪽 인간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듯 능숙하게 사용한 그녀.
발사된 총알은 바로 앞에 있는 가녀리게 보이던 그녀의 손을 뚫지 못하고 허무한 모습으로 원탁에 떨어졌다.
“조잡하기 그지없더군요. 약하디약한 고블린도 머리를 노리지 않는 한 죽이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변이한 놈에게는 소용이 없더군요. 원거리 무기인데 사용법이 간단한 것은 장점이라면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들끼리의 인명 사살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인가 싶은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숨만 나오는 무기입니다.”
“킥킥킥 저것도 무기라고 들고 다니다니 불쌍해서 못 봐주겠네.”
“조잡하군. 조잡해. 저런 막대기보다 못한 걸 들고 싸운다고?”
“고블린도 못 죽인다? 그런 게 무기라니 농담도 아니고 정말 웃기는 무기로군.”
이우신 그녀가 살아오던 세상에서는 총이란 절로 두 손이 다 머리 위로 올라가게 만드는 요술봉이나 마찬가지인 무기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를 보고도 콧방귀를 끼어대고 있었다.
‘대체 뭐야 이 사람들은….’
자리에 앉은 이우신은 정말이지 이런 괴물들만 모여 있는 곳에 왜 자신이 있는지도 이해가 안 갔으며, 자신이 넘어온 그 파란색 물결이 가득한 문 역시도 이해가 안 갔다.
뭐가 뭔지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이라 입을 열고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러나 옆에 서 있는 카밀라가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눈 돌리지 말라고 했던 경고가 떠올라 그냥 고개만 숙이고 말만 듣고 있었다.
‘그나저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잖아? 왜 아직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너무 놀라서 그런가.’
딱 봐도 이우신 그녀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의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대화도 자유로웠다.
신기한 일이었지만, 당장은 그 궁금증을 풀 방법이 전혀 없으니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쌓인 이우신의 상황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저 카밀라의 목소리만이 이 거대한 동공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명을 이어갈 뿐이었다.
“마수 소환 상황은 그저 그렇습니다. 미노타우로스와 고블린 다섯 마리였고 제가 이곳으로 다시 넘어오는 동안에 그 어떤 소환이나 이변이 검출되지 않은바 오늘 소환은 끝났다고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흠…. 다른 구역도 그럼 비슷하다는 말이로군, 되도록 부하들에게 다른 놈들 구역 침범하지 말라고 잘 말해둬. 괜히 분란이 생기면 싸움만 일어날 거야. 충분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사업인데 괜한 일로 뒤처지면 곤란하지.”
“알겠습니다. 대 두령.”
“그쪽 인간들은 어떻게 처리했지?”
“예. 모두 한곳에 잡아 두고 감시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리 걱정할 것도 없어 보이더군요.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약한 인종들입니다. 그리고 마나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나 대기 중의 마나 농도가 높은데도 말이지요.”
“흥! 당연히 마나를 다루지 못하겠지. 만약 마나를 다루는 녀석들이었으면 아직도 마나가 남아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야.”
“소환된 마수가 즉시 변이를 일으킬 정도였으니 마나는 정말 풍부한 곳입니다. 질 좋은 마석이 계속 유입될 것이며 소환되는 마수도 게이트 상황에 따라 시간이 점점 줄어들 예정이니 앞으로 페이머스 도적단의 좋은 자금줄이 되어줄 겁니다.”
“그렇겠군. 자 그럼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으니 그걸 질문하지. 저 여자는 뭐지?”
대 두령 제이슨의 지적과 함께 그 부리부리한 눈이 이우신을 향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원탁에 앉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제이슨을 따라 이우신을 향한다.
졸지에 모든 시선을 한 번에 받게 된 이우신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더욱 움츠렸다.
*****
‘뭐…. 뭔데?! 갑자기 잘 나가다가 왜 날 쳐다보는 거야?’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것만으로도 몸이 버티지 못할 엄청난 압박을 느끼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시선까지 집중되면 정말 위장이 쓰릴 정도로 긴장하게 돼버린다.
내 상황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며 카밀라가 말을 이었다.
“저쪽 세계의 여자인데 대 두령께 헌상하기 위해 데려왔습니다. 미색도 뛰어나고 몸매도 봐줄 만하더군요. 요즘 도적단에 노예로 잡혀 온 여자들도 다 처분되어 적적하시겠거니 하고 엄선해서 골라 왔습니다.”
“흐! 날 생각해 주는 건 언제나 카밀라뿐이로군, 그렇지 않나?”
진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 같은 목소리도 들려온다.
또 이러니저러니 전혀 관심 없는데 그냥 대답하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대 두령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이곳 모두가 저 남자에게 복종하는 듯하다.
짧디짧은 스포츠머리에 수염이 덕지덕지 머리카락보다 더 길게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제이슨의 얼굴, 그야말로 도적단의 두령이라 자부할만한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에는 뭔가에 긁히고 찢긴 듯한 흉터가 가득했다.
그의 한쪽팔은 손조차 없고 뭔가를 발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모습만 봐도 위압이 넘치는 그 남자의 모습에 괜히 몸이 움츠러든다.
“약한 놈들이라면 이쪽에서 노예로 팔아 버려도 돈도 안 될 테니 구태여 힘쓰지 말고 거기서 관리해. 잡일을 시키던지 성욕을 푸는 노리개로 삼던지 알아서 처리하라고. 단 왕국의 관리가 방문하는 기간에만 조심하도록, 그 기간만 아니라면 본보기로 두셋 정도 죽여도 된다.”
“알겠습니다!”
“흐흐흐 이거 할 맛이 나는구나.”
같은 인간을 죽이라는 말이 이렇게 즐거운 것일까?
이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두겁을 쓰고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다니 혹시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 같은 종자들인가?
“좋아.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저쪽 관리는 계속 에탄이 하도록, 네 휘하 간부 세 명을 데리고 잘 처리해 봐 알겠나?”
“알겠습니다. 대 두령. 제가 잡음 없이 잘 처리하겠습니다.”
에탄이라 불린 저 남자, 이곳으로 잡혀 오기 전에 날 강간하려고 했던 남자다.
솔직히 아직도 그 상황만 생각하면 몸이 떨리고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그는 대 두령이라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숙였지만, 아직도 날 노리고 있는 것인지 징그러운 눈빛으로 계속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금은 저 에탄이라는 남자에게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 잡혀 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랬다면 저 징그러운 눈빛보다 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받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날 먹음직스러운 뭔가로 보는 저 시선, 대 두령이라는 남자의 시선이었다.
얼마나 굶은 건지 군침까지 흘리다니 정말 식인이라도 하려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사람을 죽이네 살리네. 떠드는 이들의모습을 보면 정말 사람을 잡아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았다.
“자 다들 자리로 돌아가라. 카밀라 너는 저년 잘 씻기고 먹인 다음에 오늘 밤에 내 방으로 들이도록.”
“분부대로….”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동공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대 두령이라는 남자는 나가는 와중에도 나에게 끈적한 시선을 보내 왔다.
그 남자의 바지춤이 보기 좋게 부풀어 있다. 적나라하게 표현될 정도로 꽉 끼는 바지를 입어 쉽게 알 수 있었다.
오늘 저 남자에게 당하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하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 할 거 같다.
“따라와.”
“네….”
부정한 생각만 머리에 가득하니 삶의 희망이 느껴지지 않았다.
씻고 먹는 이 짧은 시간이 지나가면, 여성으로 당할 수 있는 모든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약이라도 사용해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정신이 부서질 테니 모욕도 없고 수치도 없고 고통도 없겠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던 내 양손에는 어느새 밧줄에 묶여 있었다.
자살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혀를 물고 죽는다는 발상도 있긴 하다.
그러나 혀를 무는 것은 너무도 큰 용기가 필요하니심약한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카밀라라는 여자는 내 성격을 빨리 파악한 모양인지, 혀 깨무는 자살은 상정해 두지 않고 있었다.
“씻어. 허튼수작 부리면 알지? 팔이나 다리 하나 잘라내도 우린 지혈을 아주 잘 하거든. 어차피 대 두령의 은혜를 받는데 보지 말고 다른 불필요한 것은 필요가 없으니 후후후.”
추잡하다…. 같은 여자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걸까?
정말 이 사람들은 사람이 맞기나 한 것일까?
야만인들의 소굴에 혼자 잡혀 온 문명인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로구나…. 정말 처참하다.
의욕이 없어 설렁설렁 씻고 있으니 카밀라가 무서운 눈길을 보내오고 있다.
설렁설렁 씻지 말고 구석구석 꼼꼼하게 씻으라는 뜻일 것이다.
자신이 엄청 존경하는 사람의 상대를 해야 할 참이니 냄새라도 났다가는 죽여버린다! 뭐 그런 뜻인 듯했다.
하는 수 없이 박박 문질러 몸을 씻고 욕조를 나오니 그녀가 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카밀라가 내미는 무언가를 받아 들었는데 그것은 겉이 화려한 항아리였다.
뚜껑을 여니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는 기름이 들어 있었는데 카밀라가 그것을 몸에 바르라 하였다.
그녀의 말에 따라 기름을 몸에 바르자 마치 몸에 흡수라도 되는 듯 순식간에 스며든다.
몸 구석구석 기름을 바르자 잠시 후 내 몸에서는 그윽한 향기가 풍기게 되었다.
“먹어.”
이번에는 그녀가 지시한 것은 탁자에 준비된 음식을 먹으란 내용이었다.
탁자에는 속이 뒤틀리지 않을 채소와 죽 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그녀 나름의 배려일까? 채소와 죽뿐이라 조금 가볍지만, 한번 게워낸 속에 들어가기에는 가벼운 게 훨씬 좋다.
천천히…. 마음을 다스리며 조금씩 식사를 하는데 카밀라가 또 무시무시한 안광을 쏘아낸다.
“빨리 먹으라고! 대 두령을 기다리게 할 참이야?!”
“아, 알았어요….”
내가 살던 곳에서 계급이 깡패였다면? 이곳은 검이 깡패였다.
끝이 날카롭고 흉흉하게 빛나는 검날이 가까이 다가오니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내 몸이 내 명령을 벗어나 살기 위해 속으로 음식을 마구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