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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213화 (214/344)

Chapter 213 - 213화- 위기에 빠진 왕국군

[이건 이 세상의 존망을 건 싸움이다.]

제1 왕녀 에일로이에게서 아르웬은 전권을 위임받았다. 군대 최고 우두머리인 총사령관직에 오른 아르웬은 휘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 악마를 여기서 저지하지 못하면 왕국, 아니 이 세상이 전부 불바다가 될 거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전원 그리드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리드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그리드 때문에 둘도 없는 친구를 잃었고, 그리드 때문에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잃었으며, 그리드 때문에 고향을 잃고, 그리드 때문에 재산을 잃고, 그리드 때문에 명예도 잃었다. 왕국군 대부분이 대악마 그리드로 인해 인생이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당연히도 이들을 이끄는 아르웬 역시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아르웬의 아버지 한스는 그리드에 의해 돼지고기처럼 토막 나는 최후를 맞이했고, 언니 카르디안은 그리드에 의해 노예로 타락했으며, 어머니 글랜디도 그리드에게 납치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영지인 세이렌 섬과 주민들마저 그리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었으니 그리드를 죽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웬도, 장수들도, 병사들도 그리드를 지옥으로 떨어뜨리고 싶었다. 그 대가가 목숨이라면 무조건 바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동기가 충분하다고 해도 현실은 잔혹한 법이다.

[물론,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상대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악마가 통솔하는 군대는 이 세상의 모든 악의를 담은 것처럼 너무나 강력하다. 그리고,

[이미 들어서 알겠지만, 그리드는 괴수 군단을 부리고 있다. 수도와 세이렌 섬, 라미드 섬이 하루 만에 함락된 것도 녀석들 때문이지.]

악마는 괴수들까지 자신의 수하로 부리고 있다. 고작 한 마리 때문에 왕국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최악의 전개였다. 악마가 마음만 충분히 먹는다면 이곳에 있는 왕국군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전부 전멸하게 될 거다.

[당연히 놈들은 나타날 테고, 우린 버티지 못할 거다.]

당연히도 아르웬이 손가락만 빨고 있지만은 않았다. 성국에서 지원받은 흑광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괴수들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괴수에는 괴수로 상대하는 것이 이치니까.

하지만, 그 이치를 사용하는 데 실패했다. 왕국을 위해 실험체를 자처한 장병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흑광을 복용하자마자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핏덩이가 되고 말았다. 이후로도 실험은 계속되었으나, 결국 성공한 사례는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놈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지만, 솔직히 말해 자신 없다.]

결국, 유일하게 괴수화에 성공한 아르웬만이 녀석들과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어떤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부활한 그리드까지 합세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아르웬은 말했다.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쳐라. 탈영해도 죄는 묻지 않겠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몸을 불사를 필요는 없다. 자신은 그리할 작정이나, 너희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벗어나라. 아르웬은 그리 말했고,

누구도 이 말에 따르지 않았다.

어차피 도망가도 갈 데가 없으니까. 그리드 때문에 돌아갈 장소가 전부 불타버렸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전부 그리드가 앗아갔다. 전부 다 사라져버렸는데 돌아가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돌아가서 죽거나, 여기서 죽거나 다 똑같다.

그러니 싸우겠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싸우겠다. 빌어먹을 악마 새끼에게 한 방 먹여주기 전까진 저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장수들과 병사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그럼, 후회하지 마라.]

싸울 의지로 충만하다는 걸 알게 된 아르웬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리고 고마워했다.

혼자서 싸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죽어도 책임져주진 않을 테니까.]

[네!!!]

그렇게 왕국군은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이 망할 놈들아, 다 죽여버리겠어!

-전원 돌격하라! 녀석들을 이곳에서 저지해야만 한다! 죽어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자!

-포탄을 있는 대로 퍼부어라!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쏴, 쏘라고!

함성이 절규로 바뀌기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이쪽은 2번 섬. 총사령관은 들리나?]

2번 섬을 담당한 지휘관의 통신이 들어왔다.

[빌어먹을 수인들이 너무 많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네치아 왕국 함대가 전멸한 이후 강철 군단은 다섯 개의 섬에 동시 상륙을 시도했다. 각 섬에 주둔한 지휘관 준비된 무기들로 침략자를 공격했다.

지금까지 비축해온 포탄을 아낌없이 퍼붓고, 비축해온 화살을 아낌없이 쐈으며, 이때만을 기다려온 마법사들이 마법 폭격을 날렸다. 왕국군의 매서운 공격에 천하의 강철 군단도 상륙에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약 30분이 지난 뒤.

선전하던 왕국군은 이제 궤멸당할 상태에 놓였다.

[방어선은 전부 붕괴했고, 이곳 지휘부에도 적이 침투했다. 잠시만….]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지휘관은 통신을 재개했다.

[애석하게도 여우 괴물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다. 수인들의 대장 년들도 죽이는 데 실패했고.]

몹시 원통하다는 심정으로 지휘관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하다못해, 하다못해 한 놈이라도 죽이겠다. 그럼 마지막까지 무운….]

말을 마무리도 하기도 전에 통신은 끊겼다. 끊기기 직전에 뭔가 활활 타오르는 소리와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이쪽은 3번 섬.]

3번 섬을 담당한 지휘관에게서 통신이 들려왔다.

[망할 박쥐 놈에게 전부 당했다. 준비한 무기는 악어 놈들이 다 부쉈고, 내가 아끼던 마법사들도 거북이들이 다 죽였다.]

너무나 서러워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휘관은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난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내 가족을 죽인 놈들에게 항복할 바에야 싸우다 죽겠다. 그러니….]

-끼에에에에엑!

갑자기 괴수의 울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통신이 끊겼다.

[이쪽은 4번 섬.]

4번 섬을 담당하고 있는 지휘관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데스나이트 군단에 패배했다. 한심하게도 나만 살아남았다.]

그나 4번 섬은 다른 섬들과 달리 괴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않았으나, 인간 형태의 괴수나 다름없는 데스나이트 군단에 초토화되고 말았다. 아무리 베어도 죽지 않고, 아무리 쏴도 쓰러지지 않으며, 아무리 포격을 날려도 금세 회복하는 데스나이트 군단에 왕국군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길 방도는 이제 없다. 죽는 것 말고 답이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지휘관은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사령관. 만약 살아남는다면 내 딸에게 전해다오. 바쁘다고 놀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

그 순간, 통신이 끊겼다. 끊기기 직전 검이 베이는 소리만 들렸다.

‘비, 빌어먹을….’

통신을 듣고 있던 아르웬은 분통을 터트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밀릴 줄이야. 각 섬을 담당하던 지휘관들의 마지막 유언을 들은 아르웬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강철 군단을 모조리 다 섬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키에에에엑! 케에에엑, 케에에에엑!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바닷속. 전투가 벌어지자마자 아르웬은 바로 괴수로 변했다. 상반신은 거대한 쥐가오리에 하반신은 뱀 꼬리인 괴수가 된 아르웬은 적을 요격하기 위해 바다에 나섰고,

[그리드를 쓰러뜨렸다는 말에 쫄았는데, 벌 거 아니네?]

검은색 촉수 괴물, 탈리아에게 붙들려 있었다. 전신이 구속된 아르웬은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촉수의 옥죄는 힘을 도저히 끊어낼 수가 없었다.

[이대로 토막 내서 그리드에게 바칠게. 그리드가 널 따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니까.]

[우, 웃기지 마!]

아르웬은 포효했다.

[누가 그렇게 될 것 같냐! 난….]

이때, 통신이 틀려왔다.

[이, 이쪽은 5번 섬.]

5번 섬을 지키던 지휘관이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지휘관은 입을 열었다.

[그, 그리드가…망할 악마 새끼가 이곳에 왔다. 녀석에 의해 병사들이 전부 죽어버렸다.]

그 말을 들은 아르웬은 두 눈이 확 떠졌다.

‘그리드가 5번 섬에?’

어째 안 보이더니만, 그쪽을 노린 건가? 아르웬은 당장이라도 5번 섬으로 가고 싶었다.

[어디 가게?]

[으으으윽?]

[나랑 놀아야지.]

촉수를 끊어내지 않는 한 가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녀석과 싸우겠다.]

5번 섬 지휘관도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그러니 사령관. 잘 보고 있어라. 이것이 공작 가문의 마지막….]

-콰직!

무언가 밟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통신은 끊겼다.

‘제기랄….’

다 당해버렸다.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다 했음에도 궤멸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안 되는 거야.’

제국의 함대를 격멸할 목적으로 데리고 온 트루퍼 무리는 촉수 괴물에 의해 허망하게 전멸하고 말았다.

자신이 자원을 있는 대로 갉아 넣어서 만든 철선 함대도 허망하게 전멸했고, 왕국 전역에서 긁어모은 범선 함대도 제국 함대의 무자비한 포격에 다 수장되었다.

유일한 원군이었던 성국의 제12 군단도 전멸했다. 설마 했던 괴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12군단은 단장 티아스와 함께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전력은 이제 아르웬 뿐이며,

아르웬마저 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알고는 있었다. 복수를 위해서 모든 걸 동원했음에도 패배할 거라는 사실을. 괴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어도, 그리드에게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했어도 끝내는 실패로 돌아갈 거라는 사실을. 흑광을 잔뜩 먹었어도 결국 이 촉수 괴물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이렇게 허망하게 끌려갈 순 없다. 복수하기 위해 모든 걸 걸었는데,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나 억울하다.

‘난, 난, 난….’

복수할 거다. 자신의 행복을 부순 녀석들을 모조리 다 죽일 거다. 다 죽이기 전까진 절대 질 수 없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바칠 거다!

그 순간,

-키에에에에엑!

아르웬의 몸에서 검은색 마기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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