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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라, 지배하라, 진짜 보스가 되어라-53화 (54/344)

Chapter 53 - 53화- 주인이여, 멋대로 죽지 마시옵소서

‘너희들은 나서지 마. 타이는 내가 상대한다.’

전속력으로 질주한 끝에 여우섬에 도착한 강림은 이리스와 수아에게 그리 명령을 내렸다.

‘실험실로 가서 사람들을 구해.’

타이의 만행으로 여우섬엔 섬 밖으로 나갈 배는 전부 침몰했다. 도망칠 수단이 없으니 다들 지하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는 실험실에 피해 있을 거다. 강림은 자신이 병력을 이끌고 타이를 상대하는 동안 실험실에 숨어 있는 사람들 전원 기함으로 대피를 유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전부 다 타면 당장 여우섬을 떠나, 알았지?’

당연히 이와 같은 명령에 이리스와 수아는 반발했다.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고. 아무리 그리드가 강하다고 한들, 괴수를 혼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러니 자신들이라도 데려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강림은 이리스와 수아를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타이는 분명 날 노리고 섬을 공격했을 거야.’

어째서 타이가 거북섬이 아닌, 여우섬을 노렸을까? 아마 강림이라는 원수를 죽이기 위해 노렸을 거다. 강림이 돌아왔을 거라 여기고 여우섬을 공격했을 거다.

강림은 그리 판단했다.

그러니 만약 녀석의 목적이 자신이라면 혼자 가는 게 낫다. 이리스나 수아를 데리고 가면 수월하겠지만, 강림은 혼자 간다는 악수를 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리스, 내가 죽으면 아트리아를 대신 보좌해야지. 너마저 잃으면 퀸즈가 어떻게 되겠냐?’

자신이 죽으면 자동으로 후계자는 아트리아가 된다. 그 아트리아를 이리스와 탈리아가 보좌해줘야 한다. 아무리 아트리아가 만능 비서라고는 해도 혼자서 다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후일을 위해서라도 이리스를 살아야 한다.

수아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미친놈이 임산부를 전장에 데려가냐?’

임신했으니까. 임신한 여자를 같이 죽자며 전장에 끌어들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데려가지 않기로 강림은 마음먹었다.

사실, 살고 싶다면 두 사람을 데려가는 게 정상이다. 까닥 잘못하다간 여기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꼬챙이에 꽂히는 것 이상의 것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강림이 바라는 해피 엔딩은 꿈도 꿀 수 없다.

적어도 게임상에서 능력치가 사기급이었던 두 여자를 데려가는 게 현명하다. 단순 괴수가 아닌, <흑광>이라는 약물로 강화된 괴수이니 아무리 병력을 대동한다 해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승률을 높이고 싶다면 수단과 방도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하건만, 강림은 포기했다. 포기하고, 자신이 대신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강림 자신도 몰랐다.

단지, 자신이 얻은 여자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강림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봐야 할 거다.

“너, 너희들 미쳤냐? 왜 왔어? 죽고 싶어 환장했냐?”

살려 보내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려 했는데 멋대로 와버리다니. 이 답답한 녀석들! 강림은 저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죽겠다니,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하냐?”

이리스에게서 벗어나 두 발로 선 수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죽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살기 위해서 왔지.”

그리 말하면서 수아는 허공에다 손가락을 휘저었다. 부를 환(喚)자가 허공에 나타난다. 그 글자를 수아는 손가락으로 튕겼다. 튕김과 동시에 타이와 크기가 맞먹는, 전신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여우가 강림했다.

수아가 만들어낸 사역마다. 사역마는 수아의 지시에 따라 타이와 맞서 싸웠다.

“네가 죽어버리면 우리만 곤란하다고.”

본래라면 사역마를 소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아의 목에는 쇠고랑이 채워져 있으니까. 영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봉인하는 쇠고랑이 있는 한 아무리 수아가 힘이 넘쳐 흘려도 실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야 하나, 지금 수아는 사용할 수 있다.

“너 없으면 살지 못하게 만든 주제에 왜 멋대로 죽으려는데?”

강림이 개조해줬으니까. 거북이족 아켈론이 바친 고대 유물, <모래 모형>을 이용해 강림은 수아의 목에 건 쇠고랑을 개조했다. 강림이 내건 조건을 충족시키면 봉인되었던 힘을 맘껏 쓸 수 있도록 조정했다.

그 조건이란 바로,

“쓰레기인 널 사랑하게 만든 녀석이 멋대로 죽으면 내가 기뻐할 것 같아?”

진심으로 강림에게 푹 빠지는 것. 강림을 위해서라면 몸이든, 영혼이든 다 바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수아는 그 조건을 만족했기에 족쇄를 풀 수가 있었다.

그러니 멋대로 강림이 죽는 꼴을 수아는 볼 수가 없었다.

“죽으려면 같이 죽자고. 수많은 여자를 미망인으로 만들지 말고.” “저도 수아랑 같은 의견입니다, 주인님.”

이리스도 수아의 의견에 동조했다.

“주인님이 죽으면 자결할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 “그중에는 저도 있고요.”

제발 헛된 생각 좀 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리스는 말했다.

“저희를 지옥으로 끌어들였으니 끝까지 책임져주시길 바랍니다, 주인님.” “…하아, 젠장.”

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아.”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다니. 그리드라는 핵폐기물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을 텐데, 혹시 자신이 바꾸기로 마음먹어서 그런 걸까?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있다. 강림은 아직 멀쩡한 왼손으로 망치를 고쳐잡았다.

‘이기자.’

이겨서 해피 엔딩을 맞이하자. 모든 걸 손에 넣은 악당다운 해피 엔딩을. 그래야 이 두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마왕이 되지. 강림은 각오를 굳히고 전방을 주시했다.

-쿠워어어어엉!

사역마와 괴수와의 싸움이 끝났다.

-크르르르릉….

사역마의 목이 뜯겨나갔다. 사역마는 불 그 자체라 무는 순간 입안이 새까맣게 타버리고도 남을 텐데, 타이는 고통을 감수하며 사역마를 소멸시켰다. 방해꾼을 없앤 타이의 증오 서린 눈동자가 세 사람을 향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리드….]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는 듯한 목소리로 타이는 그리드를 불렀다.

[수…아….]

마찬가지로 수아도 불렀다. 자신들의 이름을 부른 것에 강림도, 수아도 깜짝 놀랐다.

‘이성이 다 날아간 거 아니었나?’

<흑광>을 먹은 자는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된다. 자신과 가장 친한 자가 눈앞에 있어도 잡아먹기 알맞은 고깃덩어리로 취급한다. 오직 짐승 울음만 내는 것 말곤 그 어떤 단어도 입에 담질 못한다.

그래야 할 터인데, 어째서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거지? 설마 이성을 되찾아….

-쿠워어어어엉!

…을 리가 없지! 타이가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자 강림, 이리스, 수아는 바로 흩어졌다.

[죽…여 주마.]

원한이 한가득 담긴 목소리로 타이는 선언했다.

[네놈들 전원 죽여버리겠다!]

-쿠워어어어어엉!

하울링을 사용하는 타이. 전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괴물의 비명에 세 사람은 몸이 경직되었다.

물론 잠시 동안에 불과하다. 다들 금세 경직이 풀렸다. 풀린 세 사람 중 먼저 달려든 사람은 강림이었다.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공격을 전부 다 피하고, 놈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바로 도약. 괴물의 머리 위로 낙하한다. 낙하하면서 강림은 있는 힘껏 망치를 휘둘렀다.

목표는 눈동자. 조금 전의 공격은 털가죽 때문에 막혔으나, 눈동자는 아닐 거다. 한쪽 눈을 잃으면 녀석의 전투력도 급감할 거다. 그리 생각하며 강림의 망치가 괴물의 오른쪽 눈동자에 닿는 순간,

“크흑?”

묵직한 충격에 강림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위험을 감지한 타이가 머리를 들이받는 것으로 대응한 것이다. 강림은 공중제비를 몇 번 돌다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먼저 한 마리부터 먹어 치우자.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강림을 향해 타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아가리를 벌린 채로 돌진하려는 순간, 타이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

무언가가 뒷다리를 붙잡고 있다. 동시에 너무나 뜨겁다. 고개를 돌린 타이는 전신이 불타오르는 커다란 들개 두 마리가 자신의 다리를 붙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뒤이어 커다란 불꽃 덩어리들이 타이의 등을 강타했다.

-쿠워어어어엉!

고통에 몸부림친다. 몸부림치면서도 자신을 방해한 들개들을 무참히 물어뜯는다. 입안은 새까맣게 타서 숯이 되었음에도 타이는 기어이 들개들을 전부 해치워버렸다.

그렇게 다 해치운 타이 등 뒤로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아아압!”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 이리스다. 수아의 협력으로 불 속성을 가진 그녀의 장검은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검을 괴물의 목덜미를 향해 겨눈 채로 이리스는 내리꽂았다.

-쿠워어어어엉!

철옹성인 털가죽을 뚫고 괴물의 경추(頸椎) 안으로 검이 파고든다. 이리스는 더욱 깊숙이 찌르고, 찌를수록 괴물은 더욱 괴로워했다. 이대로 크게 베어내기 위해 이리스는 칼자루를 쥔 양손에 힘을 주었다.

“으윽?”

하지만, 타이가 너무나 날뛰는 바람에 결국 중심을 잃고 말았다. 경추 꽂힌 칼도 회복되지 못하고 동강이 나버렸다. 간신히 낙법을 취했기에 이리스는 강림처럼 땅바닥에 굴러떨어지진 않았다.

-쿠워어어엉!

이리스가 무방비 상태임을 깨달은 타이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앞발을 들었으나,

그 직후 나타난 커다란 불의 벽에 가로막혔다.

[…?]

이리스 앞에만 생긴 게 아니다. 타이를 둘러싸듯이 커다란 불의 벽들이 형성되었다. 순식간에 감옥에 갇힌 괴물은 벽을 뚫기 위해 발톱이 녹아내리는 걸 개의치 않고 마구 벽을 할퀴고, 꼬리로 치고,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애써 만든 벽이 서서히 금이 가는 모습에 수아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래도 안 쓰러진다고?”

진작에 쓰러져야 할 상황이다. 아무리 타이가 괴수가 되었다고는 한들, 한계가 있는 법. 그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에 수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벽을 풀어, 수아.”

새로운 검을 꺼내든 이리스가 그리 요구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리스는 검을 하나 더 챙겨왔다.

“이번에야말로 목을 베어버릴 테니까.” “….” “설마, 동정하는 거야?”

망설이는 듯한 수아의 모습에 이리스는 질책했다.

“정신 차려. 네 친구 구할 수 없다는 걸 주인님한테 들었잖아?” “알고는 있어. 알고는 있지만….” “그럼 얼른 풀어. 여기서 끝장내지 못하….”

불의 벽이 깨진 것은 이때였다.

-쿠워어어어엉!

깨짐과 동시에 커다란 그림자 그녀들을 덮쳤다.

“뭐?” “이런!”

타이다. 자신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채 덮쳐온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잡아 먹히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이 멍청이들아. 가만히 서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타이에게 먹히기 직전, 강림이 두 사람을 구해냈다. 두 사람을 멀쩡한 왼팔로 안은 채로 저 멀리 몸을 피했다. 두 사람을 구해 낸 강림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크흑!”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나, 난 괘, 괜찮아.”

이리스의 걱정에 강림은 그리 말했으나, 얼굴은 전혀 아니었다. 옆구리는 더욱 피로 물들었고,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보다 녀석을 얼른 쓰러뜨려야 하는데….”

자신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잘 아는 강림이었지만, 쉴 수는 없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죽도 밥도 되질 않는다는 걸 잘 아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쓰러뜨릴 건가? 놈처럼 괴수가 되지 않는 이상, 승산은….

‘…가만, 괴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저 괴수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괴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기, 수아.” “왜 그래?” “가르쳐주면 안 될까?”

강림은 수아에게 부탁했다.

“타이가 괴수로 변할 때 쓰던 주문. 알고 있다면 나한테 가르쳐 줘,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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