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 - 51화- 위기에 빠진 아트리아
"타이가 여우섬을 공격하고 있다고?"
여우섬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강림은 그리 생각했다. 배가 침몰한 지 6일 이상 지났음에도 아트리아는 구조선 한 척도 보내지 않았고, 전서구 한 마리도 보내지 않았다. 이리스는 정복 활동 중이고, 그게 최우선으로 삼으라고 강림 자신이 명령을 내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아트리아는 이리스처럼 제약받는 상태가 아니었다.
제약받는 상태가 아닌데, 어째서 아무런 행동도 보이질 않은 걸까? 한창 연합을 두들겨 패던 이리스에게 강림을 찾아보라는 편지를 보낸 것 말곤 왜 아무것도 하질 않았던 걸까? 혹시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구조대를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반역을 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허무맹랑한 생각마저 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설마 아트리아가 그런 짓을 하겠어?’
모습이 흑막처럼 보여도 그리드를 위해 목숨도 다 바치는 비서다. 그렇지 않다면 독에 중독되어 생사의 갈림길 위에 선 그리드를 구하기 위해 흑마법까지 쓰질 않았을 거다.
그런 여자가 느닷없이 배신할 리가 있겠나? 제발 배신하지는 않기를, 신뢰하는 여자가 줄어들지 않기를 강림은 진심으로 빌었다.
다행히도 아트리아가 배신한다는 막장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최악의 전개가 강림 앞에 나타났지만 말이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설명해 봐." "예, 알겠습니다."
거북이족 전사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자신이 본 것을 전부 얘기했다. 등껍질은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나 있었고, 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장 치료가 시급하나, 전사는 나중으로 미뤘다.
지금은 타이라는 대재앙을 어찌 막냐가 급선무니까.
"저희가 여우섬 근처에 도달했을 때 기함 하나가 타이에게 공격받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타이의 완승이었습니다.” “….” “근데, 타이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이상하다고?”
<본능 회귀>를 통해 거대한 호랑이로 변할 수 있게 된 타이다. 마음대로 괴수가 되어 자신들을 그런 타이에게 무슨 변고라도 닥쳤나? 머리에 튀어나온 물음표를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던 강림에게 거북이족 전사는 자신이 느낀 위화감이 뭔지 알려줬다.
“본래 색깔이 주황이어야 하나, 제가 본 타이는 검정이었습니다.” “검정?” “네, 검은색 호랑이였습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도 불길한 검은색이었고요.” “말도 안 돼….”
강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타이가 그 약을 먹은 거야?'
지금 이 거북이족 여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타이는 그 약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약을 먹지 않은 이상 주황색이 아닌, 검은색 호랑이가 될 리 없고, 몸에서 불길한 검은색 기운이 나올 리 없을 테니까.
‘게임에서도 구하기 힘든 약을?’
고대 찬란한 문명을 일구었던 인간들이 개발한 금단의 물약. 인간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괴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약물을 통해 강대한 힘을 얻게 된 자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낼 수 있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힘 때문에 자신들이 일구어낸 문명을 파멸시키고 말았다.
현재 약물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지만, 만드는 제조법은 남아있다. 재료와 시간만 충분하다면 금단의 약물을 복원하는 게 가능하다.
그 약물을 어찌 타이가 복용했을까? 게임에서도 오직 사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얻을 확률도 극악인 그 약물을 어떻게 확보한 걸까? 대체 누가 타이에게 그 약물을 준 걸까?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말로 먹은 거라면….'
타이를 손에 넣는 걸 포기하고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다. 지금 강림에겐 그 약을 해독할 방법도, 약을 먹고 괴물이 된 타이를 되돌릴 방도도 없으니까.
"지금 여우섬 상황은 어떻지?" "최악입니다."
강림의 물음에 거북이족 여성은 그리 대답했다.
"함선들은 전부 침몰했습니다. 타이는 섬에 상륙했고, 아트리아가 병사들을 규합해 저항 중이나 얼마 버티질 못할 겁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이야기를 듣던 중 갑자기 의문이 든 강림은 물었다.
"어째서 너 혼자뿐이지?" "…." "아켈론이 한 네다섯 명은 데려갔다고 들었는데…."
파견된 거북이족 전사는 다섯 명. 하지만 돌아온 건 한 명뿐. 이게 뭘 의미할까? 알고는 있지만, 강림은 아니기를 빌었다.
하지만, 기대는 언제나 배신하는 법이다.
"전원 전사했습니다." "…." "타이에게 걸려서 그만…." "제기랄."
죽었다는 사실에 강림은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카르디안." "예."
강림의 부름에 말총머리를 한 여함장, 카르디안이 대답했다. 강림과 노는 이리스를 대신해서 이 기함을 임시 책임자가 되어 배를 지휘하는 중이다. 카르디안에게 강림은 지시를 내렸다.
“전속력으로 여우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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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여우섬은,
-쿠워어어어엉!
거대한 검은색 호랑이에게 유린당하는 중이다. 호랑이가 한 번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꼬리를 채찍처럼 내리칠 때마다 나무도 집도 전부 날아간다. 천지를 요동시키는 이 괴물은 눈앞에 움직이는 모든 것을 다 죽이고 있었다.
-쿠워어어어엉!
자신을 향해 창을 던지는 인간 병사들을 앞발을 휘둘러 날려버린다.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는 인간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날려버린다. 괴물이 휘두른 발톱에 수많은 병사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핏덩이들이 곳곳에 널브러졌다. 그들이 서 있었던 땅은 그들의 핏물을 머금어 적색 땅이 되어버렸다.
도저히 싸움이라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학살. 그저,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수인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던 병사들이 이제 자신들이 그 꼴이 되는 처지에 놓였다.
아니, 모르고 있을 거다.
그들에겐 이성이 없으니까.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되도록 개조당했으니까.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복종하는 것. 주인인 그리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목숨을 바쳐 적을 쓰러뜨리는 것. 이를 위해서라면 상대가 얼마나 강하냐는 건 중요하지 않다.
몇 명, 몇십, 몇백, 몇천, 몇만이 희생되는 한이 있어도 쓰러뜨린다.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면 수많은 시신을 산으로 쌓아도 그들은 멈추질 않을 거다. 지금 괴수에게 전멸 직전까지 몰려 있다 해도 그들은 공격을 멈추질 않을 거다.
이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쿠워어어어어!
안타깝게도 거대한 호랑이에 생채기 하나 내질 못했다.
-쿠과가가가강!
마법사 부대가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낙뢰를 직격으로 맞아도 흑색 호랑이, 타이는 끄떡조차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아트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랄. 전혀 효과가 없잖아.”
청동색 갑옷을 입은 아트리아는 직접 전장에 나와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여우섬의 방위를 위해 남겨둔 함선들을 이용해 타이를 쓰러뜨리는 게 정석이나, 할 수가 없었다.
한 척도 예외 없이 타이에게 박살이 나버렸으니까.
‘녀석이 범인이었다면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아왔어야 할 강림이 돌아오질 않았다. <더 퀸즈>가 점령한 섬들을 차례대로 순방한 뒤 여우섬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이후 구미호족 복원 계획을 재개한다. 늦어도 3일 뒤에 강림이 여우섬으로 귀환할 거라고 아트리아는 그리 예상했다.
그랬는데, 소식이 뚝 끊겨버렸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전서구를 보냈을 텐데, 한 마리의 전서구도 오질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트리아는 한창 정복 전쟁 중인 이리스에게 강림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자신도 호위함 두 척을 보내 실종된 강림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나갔던 두 척의 호위함은 소식이 뚝 끊겨버렸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트리아는 새로운 호위함을 한 척 더 보냈으나, 그 호위함도 소식이 뚝 끊겨버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조사하기 위해 아트리아는 직접 기함을 이끌고 나갔으며,
타이에 의해 부서진 함선들의 잔해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걸 보게 되었다.
‘저 녀석이 범인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대체 누가 함선을 공격한 걸까? 전신이 철로 이루어진 배를 대체 어떤 놈이 깨부순 걸까? 이 시대에서 철선과 정면으로 대적할 수 있는 범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텐데. 범인을 알아내기 전까진 함부로 구조대를 파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트리아는 여우섬 방위에만 집중했다.
그러면 더는 배가 부서지는 일은 없었냐?
아니, 있었다. 밤마다 배가 한 척씩 침몰했다. 침몰 원인도, 그 원인을 제공한 범인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게 배를 전부 잃어버린 여우섬은 바다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때를 노리고 타이가 여우섬을 침공했다.
타이의 맹공에 섬에 주둔 중인 병력 태반이 몰살당하고 말았으며,
“흐으으윽!”
아트리아는 타이의 앞발에 짓밟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