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 - 34화- 일광욕을 즐기는 두 사람
"하늘이 참 맑구나."
밝은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푸른 하늘을 보며 강림은 그리 중얼거렸다. 피부가 좀 타겠지만, 갑판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도 썩 나쁜 기분이 아니라고 여겼다.
"너무 맑아서 목이 마르네."
팔자 좋게 해변용 의자에 늘어져 있는 강림은 왼팔을 옆으로 뻗었다.
"야, 모유 좀 내놔 봐." "직접 드시면 안 됩니까?"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구미호, 수아는 진절머리 난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 역시 해변용 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옷을 입고 있는 강림과 달리 여전히 알몸에다 목에 쇠고랑을 차고 다니는 신세지만. 신분이 강림의 노예지만, 수아는 노예처럼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마음은 없었다.
"내가 그것까지 해야만 해?" "…."
물끄러미 수아를 바라보는 강림. 조용히 오른손을 든다. 오른손에는 리모컨이 쥐어져 있었다. 리모컨은 막대기처럼 생겼으며 위에는 빨강 버튼이 달려 있었다. 그 빨강 버튼을 누르자,
"흐끼이이이익?"
수아는 발작하기 시작했다.
"후끼익, 히끼익, 흐끼이익!"
가랑이에 박힌 막대기가 살아있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질 속을 마구 헤집고 다니니 수아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차례 분수를 뿜어내는 걸 보고 나서야 강림은 다시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음부를 휘젓던 막대기가 작동을 멈추자 수아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흐으윽, 으으으, 흐으으으…."
경련을 일으키는 두 허벅지 사이로 투명한 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노예는 노예답게 명령에 좀 따라라, 응? 내가 언제까지 무례함을 참아줄 것 같냐?"
그렇게 말하면서 강림은 수아의 젖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슴 양쪽에는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다. 카우가 선물로 준 장난감 중 하나였다. 강림이 이 중 오른쪽 가슴에 달린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흐끼이이익?"
꼭지와 부착된 분홍색 첨단에 압박이 들어왔다. 그 압박에 수아는 신음을 삼켰다. 잠시 뒤, 새하얀 모유가 콸콸 흘러나왔다. 강림이 미리 컵을 준비했기에 전부 바닥에 흘러내리지 않고 전부 컵에 담아낼 수 있었다. 한가득 담아내자 강림은 손잡이를 반대로 돌렸다. 압박이 사라졌지만, 수아는 또 자지러졌다. 가랑이 사이로 아까보다 더 많은 맑은 물이 콸콸 쏟아졌다. 광기라는 파도에 빠진 것처럼 구미호의 녹색 눈동자는 허공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게, 내 말을 들어야지. 왜 사서 고생하냐?"
다 네 업보다는 식으로 핀잔을 주는 강림. 컵에 담긴 모유를 한 번에 들이킨다. 갈증이 해소되자 강림은 크윽, 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앞으로는 주의해. 다시는 봐주지 않을 테니까." "네, 네…."
수아는 굴복했다. 구미호족의 귀물인 요력석을 바치며 강림의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니 노예답게 주인의 말에 복종하면 좋을 것을, 그놈의 불같은 성질까지는 버릴 수 없나 보다. 그런 성질을 가만히 놔둘 강림이 아니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조교 해서 강림은 수아의 혼을 쏙 빼버렸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성질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인공 설화 역시 은근히 자존심이 세서 곧이곧대로 말을 듣는 전개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나저나, 앞으로 방문할 섬이 몇 군데더라….'
토끼섬까지 방문은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리스가 새로 점령한 섬을 시찰하는 것뿐이다. 이리스가 점령한 섬이 몇 개나 되는지 강림은 손가락으로 세봤다.
'열둘, 열셋…열다섯이구나. 많이도 점령했네.'
아무리 진군이 빠르다고는 해도 이렇게 단기간 내로 열다섯 개의 섬을 점령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리스의 능력이 대단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만큼 수인들의 인구수가 너무 적어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가 적은 건 그 복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될 거야.'
수인의 평균 능력치는 보통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다. 초월하지만, 그 대가로 수가 너무나 적다. 너무 적어서 만약 적이 물량 공세로 나선다면 천하의 수인들도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게임상에서 수인 연합이 고작 해적 대함대에게 멸망한 이유도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만약 인구수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컸다면 그리드에게 쉽게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거다. 수인들이 대부분 노예로 전락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확실하게 늘리자. 세상 전체를 집어삼키려면 현재 병력만으로는 무리니까.'
인구수를 늘리고, 늘린 만큼 군대를 키우고, 키운 군대로 점령지를 늘리고, 점령지의 통제를 강화해 차근차근 땅을 길들인다. 길들여서 내분이 벌어지는 걸 사전에 방지한다.
그리드는 이런 최소한 노력조차 하질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그냥 정복만 하고 끝내는 것에만 만족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나중에 자신이 세운 제국이 며칠도 되질 않아 붕괴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줄은 그리드는 죽어서도 몰랐을 거다.
강림은 그렇게 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드처럼 무식하게 나라를 병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취급할 생각은 없으며, 세상을 불태우기를 바라는 광인이 될 생각도 없었다.
이왕 만들 거 최소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로 만들겠다. 그리드처럼 자신이 세운 나라를 자신의 손으로 말아먹는 짓 따윈 절대로 안 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수인 연합을 확실하게 짓밟아야….'
"저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갑자기 수아가 질문을 던졌다.
"타이는 언제까지 저대로 놔둘 거야?' "당연히 귀물을 바칠 때까지지."
강림은 즉시 대답했다.
"호랑이족 전체를 바치겠다고 맹세하지 않는 한 풀어주지 않을 거야. 당연히 딸을 만나게 해주지도 않을 거고." "잔인하네." "그래, 난 잔인하지."
강림은 부정하지 않았다.
"잔인하니까 내가 이러지, 안 그러겠냐?" "전에는 착하게 산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착하게 살려는 사람을 나쁜 길로 인도한 사람이 누굴까요?" "히익?"
강림이 옆구리를 꼬집자 수아는 파르르 떨었다.
"네놈이 날 믿어줬다면 내가 이 짓을 지금까지 하지도 않았거든? 네놈이 저지른 죄부터 생각해봐." "저, 적반하장이네. 내,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니.“
수아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 "아, 그래, 그래. 내가 저지른 게 너무 크지. 너무 커서 속죄하기에는 너무나 늦어버렸지."
솔직히 말하자면 강림은 개발진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만악의 근원이라고는 해도 좀 의외인 면도 좀 넣지, 왜 악의만 잔뜩 넣은 악당으로 만든 걸까? 요즘은 입체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가 인기가 많은데, 왜 평면적인 캐릭터를 만든 걸까? 다른 면이 있었다면 뭔가 다른 걸 해볼 여지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 있었을까? 이보다 더 이른 시점으로 빙의되었어도 과연 선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드가 겪었던 비참한 과거를 견디고 악의 길로 빠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었을까? 정신력이 강하지도 않은 자신이 과연 견뎌낼 수 있었을까?
답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늦었으니 진짜 악당이 되어 살 거야."
악당이 되지 않는 이상,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걸. 원작처럼 악의 제국을 세우는 절대 악이 되는 것만이 답이라는 걸. 악의 제국을 세우고 모든 여성 캐릭터를 노예로 삼는 배드 엔딩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강림이 맞이할 수 있는 해피 엔딩이다.
"모든 여자를 모두 노예로 만들 거야. 만들어서 오직 내 말만 복종하게 할 거야."
이를 위해서 그리드와 같으면서 다른 길을 걷는다. 그리드처럼 파멸하는 건 사절이니까. 그리드가 저지른 실수가 뭔지 잘 알기에 강림은 그 실수를 답습하지 않을 거다.
수아를 굴복시킨 것도, 그리고 타이를 굴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그리드와 달라지겠다는 강림의 각오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드였다면 진작에 두 사람의 목을 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러니 타이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 "그러다가 죽어버리면 어쩌려고?" "죽지 않아." "히이익?"
이번에는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꼬집는 것 이상으로 수아는 몸이 심하게 떨었다. 약간 허리가 휘어지고, 가랑이 사이로 꿀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미쳤다고 그렇게 방치할 것 같냐? 내가 방치한 적이 있어?" "히이이이익!" "나도 매일 관리하고 있다고. 죽을 때까지 전기 찜질을 할 정도로 전 미치지 않았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강림은 주기적으로 쉬는 시간을 준다. 식사 시간도 준다. 전기 찜질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시간 정도는 준다.
그 시간이라는 게 고작 30분도 되질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러니 걱정하지 말 것. 내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냥 내 말에만 복종해." "흐으응…." "알았냐?" "히이이익? 아, 알았어.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그만 간지럽히라고!" "…."
그만할까? 이 정도면 충분히 괴롭힌 것 같으니까.
강림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아니, 그냥 하자." "히이이익! 이, 이 나쁜 놈!"
그대로 간지럽히기를 강행했다. 애원을 무시한 것에 수아는 원망스러운 듯이 강림을 노려보나, 강림은 무시했다. 무시하고 계속 간지럽혔다.
"히끅, 히끅, 히끄으으으윽!"
절정에 이를 때까지 계속 간지럽혔다.
"하하, 이거 정말 재밌네. 이대로 온종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
그 순간이었다.
-쿠워어어어엉!
갑자기 울려 퍼진 호랑이의 울음에 강림도, 수아도 깜짝 놀랐다. 함선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 소린 설마…."
타이? 강림이 그렇게 생각하고 폭발음이 들린 건 동시였다.
-쿠과가강!
배가 크게 흔들렸다. 무슨 일인지 강림이 알아보기도 전에 배가 크게 기울어졌다.
"까약?"
넘어질 뻔한 수아를 강림은 재빨리 붙잡았다.
"수아, 괜찮냐?" "괘, 괜찮아. 근데, 아까 그 소린 대체…." "나도 뭐가 어찌 된 건지 잘 모르겠…."
이때, 강림은 보았다.
"저, 저건…."
배 밑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빠져나간다. 그림자는 수면 위로 올라오고, 그 정체를 본 강림은 크게 경악했다. 당연히 옆에 있던 수아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타, 타이? 어째서 타이가 저 모습이 된 거지?"
나타난 것은 호랑이였다. 커다란 호랑이. 금색 눈동자를 지닌 호랑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강림을 발견했다.
-쿠어어어엉!
보자마자 분노어린 포효를 내뱉는다. 그 포효만으로도 강림은 완전히 얼어붙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수아도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호랑이는 공격하지 않았다.
[두고 보자.]
딱 그 말만 남긴 채 유유히 사라질 뿐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림은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수로 저 기술을 개방한 거지?"
저건 <본능 회귀>라는 기술이다. 오직 타이만이 쓸 수 있는 새로운 필살기. 그 필살기를 얻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타이가 각성하여 등급이 한 단계 오를 것. 2. 필요한 재료를 모을 것.
이 두 가지를 충족해야만 얻을 수 있는 필살기다.
근데, 그 필살기를 지금 쓴다고? 아직 이야기 초반부에 해당하는데? 무슨 수로 쓸 수 있는 거지? 자신도 모르는 수단이 존재하는 건가? 강림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주인님, 어서 탈출해야 합니다. 이 배는 이제…."
간부 한 명이 달려와서 구명정을 타고 빠져나와야 하니 얼른 오라고 재촉하기 전까지 강림은 타이가 빠져나간 자리만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