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 - 33화- 호랑이에게 남겨진 마지막 수단
“후으윽, 후으읍, 후으으읍!”
타이는 고문받고 있다.
“후끅, 후끄윽, 후끄으윽!”
정강림이 주인인 기함에 설치된 실험실에 갇혀 있다. 본래는 탈리아가 주인이나, 여우섬으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빈방이 되어버렸다. 최소한의 기구들과 자재들만 남기고 모든 물품은 전부 여우섬에 있는 실험실로 옮겨졌다.
그렇게 비어버린 실험실에 호랑이족 수장은 구금되어 있었다. 알몸뚱이인 상태로 분만대에 구속되어 있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재갈이 입에 물려 있으며,
전신 곳곳에는 수많은 전극 패드가 붙어있었다.
“후끅, 후끅, 후끅, 후끄그그그극!”
그 패드에서 흘러나오는 전류에 타이는 24시간 내내 전기 찜질을 당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싶어도 온 방향에서 푹 찌르고 들어오는 고통을 천하의 타이도 견디기 어려웠다.
“후끄그극, 후끄그그, 후끄그그그그!”
아프다. 괴롭다. 풀어줘. 풀어줘, 풀어줘! 이렇게 애원해도 타이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타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고, 침이 턱을 타고 질질 흘러내려도, 가슴에서 자극으로 모유가 흘러내려도, 가랑이 사이에서 투명한 물과 뜨끈한 물이 동시에 흘러내려도, 타이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부족의 최강인 내가, 왜 이딴 걸 당해야 하는 거야?’
부족 내에서도, 수인들 내에서도 타이를 압도하는 자는 없었다. 그나마 비빌만한 상대는 구미호족 수장 수아였으나, 그 수아마저도 체술에선 타이를 이기지 못했다.
이런 자신이 타이는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전대 수장인 아버지의 위엄에 자신도 도달했다고 믿었다. 아버지 역시 그 어떤 수인도 이기지 못할 만큼 강한 분이었으니까. 그 아버지처럼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타이는 저절로 어깨가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간 어깨를 강림이라는 쓰레기가 부숴버렸다. 부수고, 다시는 전사로 살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 그 쓰레기 때문에 타이는 철창에 갇힌 실험용 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째서 노예로 전락한 걸까? 한 번의 패배만으로 모든 걸 다 잃은 게 당연한 일인가? 다 잃고 노리개가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가? 어째서 그 쓰레기의 장난감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마음이 가루가 될 때까지 고문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전기 고문을 받는 타이는 끊임없이 되물었다.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무엇이 잘못된 거냐고. 무엇이 자신을 여기까지 추락시킨 거냐고.
‘왜, 왜 내가 그딴 놈을 위해 이런 걸 당해야 하는 거냐고!’
수인 연합의 토끼섬 침공이 일어난 지 2주 이상 지났다.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판단한 강림은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에 따라 아트리아는 포로들을 데리고 여우섬으로 돌아갔으며, 이리스는 다시 정복 활동에 돌입했다. 상처가 회복된 강림은 중단되었던 점령지 방문을 재개했다.
그 강림의 일정에 타이는 강제로 따라다녔다. 강림이 직접 타이를 조교 하겠다는 이유로 데려간 거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가, 감히 날 도, 도구로 이용하다니….’
점령지 통제를 위한 도구. 강림은 수인 연합의 최강자라 불렸던 타이가 노예로 전락한 모습을 공개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기 고문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타이의 모습을. 자신에게 강간당해 처절하게 울부짖는 타이의 모습을 점령지에 사는 수인들에게 공개했다.
이를 본 수인들은 일말의 저항심마저 꺾이고 말았다. 최강자가 노예로 전락한 시점에서 더는 싸움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아버렸으니까. 비단 점령지 내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다.
타이가 노예로 전락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연합에서 이탈해 강림의 지배를 받겠다는 부족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배를 받으면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말이다. 그만큼 타이라는 인물이 수인들에게 있어서 희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며, 그 희망이 무너졌으니 굴복한다는 전개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일 거다.
만약 타이가 포로 교환을 위해 강림을 살려둔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선전 도구로 이용당하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왜 바보 같은 짓을 해서….’
타이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망설이지 말고 강림의 머리를 다진 고기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뒷일 생각하지 말고 확 저질러 버릴 것을 왜 그랬던 걸까? 전사들을 구했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실패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였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타이가 후회해도 이미 돌아가 버린 시곗바늘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쓰레기를 위한 씨받이 신세로 전락한 전사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도. 그 쓰레기에 의해 개조당한 자신의 육신이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도. 그리고,
쓰레기의 피가 섞인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딸이네. 아들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타이는 토끼섬에서 딸을 출산했다. 출항하기 직전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강림은 잠시 출항을 중단하고 타이의 출산을 도왔다. 해주는 게 손을 잡아주는 것 말곤 한 게 없었지만.
그렇게 타이는 원수의 눈앞에서 원수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낳자마자 아기를 빼앗기는 수모도 당해야만 했다.
‘너, 수아처럼 하질 않았잖아?’
그게 이유였다.
‘수아처럼 항복해. 항복하고 증표를 나한테 바쳐. 그러면 이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해줄게.’
구미호족 수장 수아는 쓰레기의 가축이 되었다. 가축이 된 증거로 수아는 구미호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물건을 쓰레기에게 진상했다. 무엇을 진상했는지 타이는 모른다.
하지만,
‘드디어 구미호들을 내 손아귀에 넣었다!’
…고 좋아하는 걸 보면 평범한 물건은 아닐 거다.
그런 수아가 그랬던 것처럼 타이 역시 충성의 증거를 바쳐라. 호랑이족 생존과 직결하는 물건을 자신에게 바쳐라. 그 물건이 뭔지 자신은 알고 있으니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안 하면 평생 딸 못 볼 줄 알아라.
그것이 강림이 내건 조건이었으며,
그 조건을 타이는 받아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누가 할 줄 알아? 할 것 같냐….’
아직 자신은 지지 않았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패배했을 뿐이다. 패배했다고 모든 게 다 끝났다고 볼 수 없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일어서서 싸울 수 있다. 싸울 수 있다면 설욕할 수 있다.
그러니 항복 따윈 없다. 호랑이족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귀물 또한 주지 않을 거다. 어떤 치욕을 받아도 절대로 그 쓰레기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거다 고문으로 자신이 끝내 죽는다고 해도 절대 노예가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다.
그것이 설령 딸이 놈의 인질이 된다 해도….
“….”
딸을 생각한 순간, 타이는 사고가 정지되었다. 전류가 몸을 마구 찌르는 고통마저 이 순간만큼은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젠장.’
타이는 기억하고 있다.
‘아아, 아아아아악! 배가, 배가아아아아!’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되던 날을. 생살이 찢어지는 수준을 넘어선 고통에 허우적대던 날을.
그날만큼 아팠던 날은 없었다. 그날만큼 원수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에 안심했던 날도 없었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이에게 있어 출산의 고통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
그렇게 타이를 괴롭히던 고통의 소용돌이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대신, 자신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증명하는 것처럼 우렁찬 울음이 메아리쳤다.
자신과 쏙 빼닮은 가진 딸의 모습에 타이는 허용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히 쓰레기의 자식이다. 그 쓰레기의 피가 섞인 저주받은 아이다. 그런 아이를 사랑을 줘야 하는 이유 따윈 없다. 버려야 할 이유가 수없이 많은 아이에 불과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이거늘, 어째서 지금 딸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걸까? 어째서 그 딸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이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살면서 이런 기분에 휩싸인 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것이 사랑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타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나가야 해.’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되는 고문에 타이의 뇌는 익어버리기 직전이었다. 인체에 무해(無害)한 소량의 전기가 주입된다고는 하나, 끊임없이 주입 당하면 무해가 유해가 될 수 있다.
이를 알면서도 강림은 타이를 풀지 않았다.
‘이번 일정이 끝날 때까지 이대로 방치할 거야.’
이것은 조교다. 고문이 아니다. 타이의 마음이 꺾이기 위해 실행하는 조교의 일환이다. 위험하면 중단하겠지만, 그때가 될 때까지는 이대로 방치하겠다. 너의 증오 서린 눈빛이 절규가 가득 차면 그때 풀어주겠다.
일정이 다 끝나고 여우섬으로 복귀할 때까지 이대로 있을지, 아니면 백기를 들지 선택해라.
타이는 백기를 들 생각도, 이대로 당할 생각도 없었다.
‘누가 무서워할 줄 알아?’
무슨 짓을 해도 반드시 이기리라. 기필코 녀석의 목을 뽑아버리리라.
그리 다짐한 타이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크게 떨고 있었다.
‘난 지지 않을 거야. 지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되뇌어도 막상 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아니,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 힘, 안 쓰실 건가요?
토끼섬 침공을 준비하던 중 수아의 동생, 설화가 그런 말을 꺼냈다.
-수인들은 본모습으로 돌아가는 힘이 있다고 들었어요.
수인들이 어떤 경위를 통해 태어난 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창조주의 은혜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말만 전해질 뿐이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 힘은 저희 언니와 당신만 쓸 수 있다고 들었고요.
만약 수인이 힘을 바란다면, 지금의 모습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힘을 바란다면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옛날 이 세상을 호령했던 모습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현재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수인들은 사실상 없다. 그나마 가능한 자들은 구미호족 수장과 호랑이족 수장밖에 없다.
아니, 이젠 쓸 수 있는 자는 타이밖에 없었다.
-그 힘을 쓰는 건 어떤가요?
설화는 그리 얘기했다.
-끝낼 수단이 있다면 써야지, 신주 모시듯 그냥 놔둘 건가요?
마치 앞날을 예견한 것처럼 설화는 그 힘을 쓰라고 종용했다.
-쓰세요. 안 쓰면 당신 평생 후회할 겁니다.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타이는 무시했다.
그 힘을 쓰질 않아도 충분히 강하거늘, 왜 써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도 함부로 쓰질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늘, 고작 해적 우두머리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그리드란 녀석이 살아 있는 대재앙도 아닌데 말이다.
개소리 그만하고 엘프들의 협력이나 받아와라. 타이는 설화에게 그런 밀명을 내리고 대산림으로 보냈다.
-하아, 하나같이 바보들이야. 왜 이렇게 멋대로 구는 거야?
항상 조숙하던 얘가 그런 거친 말을 내뱉었다는 게 타이는 좀 놀라긴 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화가 한 충고를 무시했다는 거다. 무시하는 바람에 지금 타이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언제 통구이가 될지 모르는 전기 고문에 시달리는 처지에 놓였다.
만약 설화 말대로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타이는 후회하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하나.
그 힘을 개방할 거냐, 안 할 거냐이다.
‘쓰게 되면 평생 짐승으로 살 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이것밖에 없다. 이럴 수밖에 없다. 진짜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그 쓰레기를 죽이고 딸을 되찾을 유일한 기회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 따윈 없다.
“후끄윽, 후끅, 후끅, 후끅, 후끅!”
타이는 속으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계승되어왔지만, 결코 써서는 안 될 주문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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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워어어어엉!
커다란 괴수의 비명과 함께 강림의 기함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