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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게임-169화 (16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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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Abyss, Aquarium

"언제까지 니들만 저거 쓸 건데?"

"웃기시네. 누가 보면 우리가 니네 막기라도 한 줄 알겠네요?"

"맞잖아? 지금 니네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아냐?"

"왜 반말 찍찍 갈기시는지. 감을 잃어버렸나."

푸른방에서 빵을 연성하고 있던 강한 친구들 클랜의 여자와 다른 클랜의 여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둘 다 무투계열이고, 강한 친구들에게 소리를 높이는 여자는 아프로겐 그룹의 리더 격인 박송하였다. 살짝 그을린 듯한 구릿빛 피부, 키는 크지 않지만 복근과 늘씬한 근육이 온몸에서 약동하며, 바스트 사이즈 또한 압도적인 미인이었다. 쥬피 썬더 무투계열의 대표격인 김아현과도 자주 스파링하던 강자였다. 성격이 불 같은 걸로 유명했다.

반면에 그녀와 대치하는 이는 키가 커서 박송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구 선수를 연상케 하는 건강한 육체였다. 모든 마력과 이능이 봉인된 이곳에서 둘은 최상급의 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먹고 살자고 빵 좀 구하겠다는데 그게 그리 꼬우세요?"

"지금 니네 말고 나머지 다 쫄쫄 굶고 있는 거 안 보여?"

"순서를 기다리시라 이거에요. 네?"

"지금 니네 인원 믿고 이러는 거냐? 제대로 보여줘?"

박송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전투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다. 상대 또한 기세에서 밀리지 않고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솔이 겁 먹은 듯 유예린의 뒤에 숨었다. 마른 몸매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유솔의 가슴이 등에 닿자 유예린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린 언니, 싸우면 어떡하죠."

"괜찮아. 큰 일 없을 테니까."

유예린도 긴장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혹여라도 단체 교전이 되면 휘말릴 수 있기에 다시 침실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임예정도 유예린 곁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였다.

짝, 짝, 짝.

손뼉으로 주의를 집중시키며 푸른방에서 나오는 여인이 있었다. 공동의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고, 일순 말을 잊었다.

미인이었다. 얼굴, 몸매 반반하지 않은 이들이 없는 정글의 여인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미모였다. 공동에 박혀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했을 텐데 긴 머리카락은 웨이브를 지며 길게 떨어지고 있었고,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눈썹은 가늘고 선명하다. 그 아래 쌍커풀진 눈은 선명하면서도 부드럽게 꼬리가 올라가 색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도톰한 입술은 바른 것도 없는데 선명한 다홍이었다. 입가에 난 점은 그녀를 한층 고혹적으로 만들었다.

피부가 새하얬다. 날씬한 몸매와 크지는 않지만 작다고도 할 수 없는 모양새 좋은 가슴, 그리고 넓은 골반과 탄력 있는 엉덩이, 아랫배에는 장미 모양의 야릇한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색기를 풀풀 흘리는 미녀의 등장에 박송하조차 당황한 것 같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프로겐의 박송하. 맞지?"

"그런데, 넌 누군데?"

"최화영이야.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네?"

그러면서 싱긋 웃었다.

"빵이 먹고 싶다…… 이거지?"

"그래. 니네, 인간적으로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잖아. 양보도 해."

"양보라."

최화영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빙 꼬면서 고개를 갸웃하더니, 박송하를 바라보면서 샐쭉하게 웃었다.

화사한 입매와는 달리 눈동자가 싸늘했다.

"싫은데?"

"……!"

그녀의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강한 친구들의 여자들이 자세를 취했다. 일순 당황한 박송하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무리인 아프로겐 클랜원들도 박송하의 뒤로 주춤 섰으나 두 배가 넘는 인원 차이에 전의를 잃은 기색이었다.

최화영은 그 중심에서 홀로 팔짱을 끼고서 가만히 박송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짱 위로 지탱되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도드라졌다.

박송하의 긴장한 표정.

최화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핫! 뭐야, 송하 너 왜 그렇게 진지해. 장난이야, 장난."

"……."

"뭐니. 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마. 무섭잖아? 우리는 이제 갈 테니까 너희도 빵 맛있게 먹어. 알았지?"

최화영이 깔깔거리며 손을 들자 강한 친구들 클랜이 일제히 자세를 풀었다. 박송하는 여전히 최화영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는 박송하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응?"

최화영이 윙크했다. 박송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들은 저쪽 방에서 쉬도록 하자. 다들 따라와."

"네, 언니."

"네!"

몇몇 여인들이 빵을 한 무더기 챙겼다.

그녀들도 어느새 공동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는지 쥬피 썬더와는 다른 침실방을 향했다. 최화영이 푸른방에서부터 침실로 걸어가면서 뒤로 열 한 명의 여인들이 따르는 모습은, 그녀가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며 위풍당당하기까지 했다.

최화영이 문득 유예린을 흘끗 쳐다보았다.

유예린과 함께 있는 다섯 쥬피 썬더의 무리를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유예린을 응시하며 가볍게 웃는다.

그 시선.

유예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강한 친구들의 최화영,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나 본 것은 처음이었다. 육체보다는 이능을 사용하며 자세한 정체는 밝혀져 있지 않았고, 그저 강한 친구들 안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드는 능력자라고 했었다. 그리고 사태를 지켜본 유예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다같이 사이 좋게 의지하면서 이곳을 나가겠다는 생각은 안이하다. 앞으로의 밑그림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어-이! 유예린!"

박송하가 그녀를 불렀다.

"울리잖아, 살살 말해 멍청아."

"하하, 말투 싸가지 없는 건 그대로네."

박송하와 유예린은 아는 사이였다. 애초에 운무시의 클랜들은 같은 목적 하에 함께 움직이는 일이 많았다. 마스터들에게 비전을 주었던 그 도사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흐응."

박송하가 유예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야, 아저씨처럼."

"막상 보니까 가슴은 내가 더 크네."

"돼지인 거지."

"무슨 소리야, 나 체지방률이……."

알던 사이라 해도 알몸으로 마주한 건 처음일 수 밖에 없다. 박송하가 낄낄거렸다.

"어쨌거나 저거 같이 갈래?"

푸른방의 바퀴는 컸기 때문에 하나를 돌리는 데 보통 여러 명이 동원되고는 했다. 하나에 여럿이 붙으면 두 클랜이 함께 빵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유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빵이 핑계지만 둘 다 느끼고 있었다. 협력의 필요성을. 지금 이곳에서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최화영이 너무 압도적이었고, 더군다나 성격 또한 평범하지 않다.

"운무 신세기 애들은?"

"아까 빈 침실로 들어가는 거 같던데. 불러볼까?"

"이따가."

운무 신세기는 가장 적은 셋이었고, 멤버들도 유순한 편이라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어찌 됐건 간에 강한 친구들이 저렇게 나오는 이상 우리가 힘을 합쳐야겠지?"

"……."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도 얼마나 여기 있을지 모르는데. 어쩌면 평생이지."

"그 남자가 언젠간 풀어준다고……."

유예린은 입을 열면서도 얼마나 순진한 발언인지 알았기에 차마 끝맺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 그 남자가 조금만 마음을 돌려도 그녀들은 평생 이곳에 있을 수도, 아니면 팔려갈 수도, 그냥 죽일 수도 있다. 그녀들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그 남자에 비하면 개미 수준이었고, 힘을 잃은 지금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너도 그 말 그리 안 믿는 거 아니까 안 해도 돼. 정말 풀어줄 수는 있겠지만 최악을 가정하자고."

박송하가 바퀴 하나를 붙잡고 밀기 시작했다.

흡! 하고 힘을 주고 밀자, 혼자 힘으로도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단련된 근육이 팽창했다. 유예린은 감탄했다. 박송하의 몸은 아름다웠다. 잘 단련된 늘씬한 근육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작은 흑표범 같았다.

"아, 맨몸으로 하니까 생각보다 힘드네."

능력이 돌아왔다면 이런 바퀴를 돌리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도와줄게."

유예린이 붙었다. 무투계가 아니어서 금방 기진맥진이다.

박송하와 유예린, 두 그룹의 리더가 하나의 바퀴를 차지하고 둘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머지는 이리저리 섞여서 바퀴를 돌렸다. 클랜원들도 서로 아는 얼굴들이 있어서 무리 없이 융화되었다.

"어차피 오래 있어야 한다면 여기 닫힌 사회에서 최대한 버텨야 하니까. 너와 나의 역할이 중요해. 원래는 그냥 좋게 좋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여자는 즐기고 있어."

최화영의 존재가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버렸다.

"짧게 본 걸로 확신하기는 이르지만…… 분명히 그 여잔 뭔가 하려고 할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애들 잘 이끌어야 돼."

한참을 돌리고 나니 빵이 하나 관에서 나왔다. 박송하가 그것을 반으로 쪼개 유예린에게 주었다. 한 입 베어무니 나쁘지 않았다. 딱히 요리가 된 상태는 아니지만 여기 들어온 이후로 무얼 먹지 못했기 때문에 유예린은 단숨에 다 먹을 수 있었다.

"하나로 부족하네. 계속 돌리자고."

그렇게 계속해서 돌렸다. 적당히 배도 부르고 여분의 빵을 생산해내자, 침실에 박혀 있던 운무 신세기 클랜원들과도 마주쳤다. 그녀들은 조용히 빈 바퀴 하나를 차지해서 셋이 하나를 돌렸고,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박송하와 유예린은 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자는 데 뜻을 모았고 헤어졌다. 네 개의 침실은 각 클랜의 거점이 되었다.

정말로 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되면 모든 불이 꺼뜨려지고, 공동의 마력석만 희미하게 지하 18층 아쿠아리움을 밝혔다. 그렇게 그녀들은 일과에 익숙해졌다.

*

시간이 흘렀다. 강한 친구들은 여전히 푸른방을 오래 차지했다. 박송하나 유예린이 나서서 최화영에게 항의하기 전까지 푸른방을 독점했고, 그녀들이 최화영에게 항의하면 예의 오만한 태도로 말장난을 치고는 인원을 물리는 식이었다.

화장실은 각자가 이용한다고 하지만, 샤워장도 문제였다. 샤워장에서 물이 공급되는 것은 하루 단 한 시간, 샤워기는 네 개였다. 모두가 제대로 씻으려면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끝내야 했다. 때문에 여자들끼리 사소한 시비가 붙는 경우가 생겼고, 그때마다 최화영과 유예린, 박송하가 나서서 중재했다.

이따금 생리가 터진 여자들은 화장실이나 샤워실에 박혀 있었으나 언제나 머물 수는 없었기에 다리로 피를 흘리는 여자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날, 공동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듣는 외부의 소리였지만 모두들 그 뜻은 알고 있었다.

소년이 말한 두 번째 룰.

여자를 바치는 것.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었건 상관 없다. 음악이 흐르면 남자가 올 것이고, 스물 여섯 여인들은 한 명의 여자를 그에게 안겨야 한다. 남자와 뽑힌 여자는 엘리베이터 곁의 화려한 침실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고 남자는 다시 돌아간다. 그녀들이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만드는 룰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음악이 흐르는 공동에는 모든 여자들이 나와 있었다.

"……."

자신들을 포획해서 가둔 남자에게 몸을 대주는 걸 바라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던 임예정조차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악취미네."

박송하가 중얼거렸다. 나오는 음악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였다.

유예린이 눈을 감았다. 소년은 말했다. 한 명은 자신에게 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생활은 점점 가혹해질 것이라고.

애초에 자신이 이들을 이끌고 이곳에 왔다. 클랜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여자들을 속여 바친 것이다. 자신에게는 책임이 있다.

"누가 할 거야?"

누군가가 말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럼……."

"내가 할게."

유예린이 걸어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임예정과 유솔은 안타까운 얼굴이었으나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다.

"내가 모두를 이곳으로 데려왔으니 책임을 진다."

유예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하는 표정이다.

누군가가 총대를 맨다면, 나머지는 평화로울 수 있다.

"흐응, 그게 아니라, 잘 생긴 남자랑 한 번 뒹굴고 싶은 거 아니야?"

조롱하는 목소리, 최화영이었다. 그녀의 말에 강한 친구들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쥬피 썬더의 인원들, 더불어 박송하까지 발끈해서 최화영을 노려보았다. 사나운 시선에도 최화영은 오히려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로운 얼굴이다.

그리고 음악이 멎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문이 열린다.

남자가 걸어나왔다. 여전히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얼굴이다. 퇴폐적인 눈초리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게 된다. 그의 시선이 공동에 모인 여자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맨 앞에 서 있는 유예린을 향했다.

유예린을 확인한 남자는 기쁘다는 듯 싱긋 미소지었다. 꽃이 피는 듯한 화사한 웃음이었다.

"왜 이렇게 여위었어, 누나?"

"……."

"그래도 여전히 미인이네. 상대가 누나라서 기뻐."

수현이 유예린에게 다가가 살짝 포옹했다.

"힘든 일은 없었지?"

"……그게 걱정이면 풀어주시죠."

"하하하. 누나 하는 것 봐서."

수현이 유예린의 손을 잡았다.

"그럼 갈까?"

엘리베이터의 곁, 붉은 색의 가장 커다란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내부는 눈부시게 화려했다. 방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크기의 침대는 붉은 빛이어서 그 목적이 노골적이었고, 샹들리에의 불빛이 잘게 쪼개지며 고풍스럽게 꾸며진 내부를 밝혔다.

수현이 유예린의 허리를 안고 붉은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소년이 허리를 안았던 손으로 유예린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을 모두가 보았다.

이내 둘이 방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그 날, 여인들은 붉은 방의 방음이 매우 허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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