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125화 (12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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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 번째 겨울

"오늘 강의 너무 어렵지 않았어?"

태진이 말을 걸었다.

소희가 얼굴을 들었다. 조금 놀란 듯이 말끄러미 태진을 올려다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심을 버리고 선입견을 지우니 소희가 너무 귀엽다. 특히나 요새에 무엇인가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예전에는 명랑했다고 했지.

이런 애를 두고 잠수 탔다는 그 예전 남자친구는 뭐하는 자식이야.

"난 중간부터 이해가 안가더라. 이 수식이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해?"

"……교수님 글씨가 지저분해서 그래요."

소희가 펜으로 태진의 노트 한 쪽을 직직 긋고 표기를 바꾸었다.

"어 뭐야, 그게 그거였어? 와, 역시 교수님 괜히 마왕이 아니다. 이렇게 함정을 파네."

태진이 소희와 말을 나누자 몇몇 학우들이 관심을 보였다. 평소에 소희와 말을 섞고 싶어했던 후배 하나가 먼저 태진에게 붙었다.

"뭐에요, 형 공부해요? 안어울리게 강의 내용을 논하고 계시네. 이런 모습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왠지 아냐? 그동안은 다 이해해서 논할 필요가 없었다 짜식아."

"우오. 자신감. 시험 망했다고 술먹자실 땐 언제고. 교수님더러 개색 어쩌고……."

"소희야, 믿지 마. 난 그런 적 없다."

둘의 시답잖은 대화를 듣고 있던 소희가 미소지었다.

태진과 후배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녀의 희미한 미소에, 퀘퀘한 강의실 안으로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드는 것 같았다. 태진도 후배도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태진이 억지로 입을 열었다.

"소희야. 우리 그간 같이 제대로 밥도 제대로 한 번 안먹은 것 같은데……."

후배의 눈이 태진을 향했다.

형, 진짜 할 겁니까……?

지금 분위기 좋은데 굳이 그렇게 멀리 가야 합니까……!

태진이 후배 녀석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말을 이었다.

"내일, 아니다 오늘 밥이나 같이 먹을까. 오빠가 살테니까…… 물론 이 녀석이랑 다른 후배나 친구들도 불러서 다같이."

태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동안 기회도 없었잖아?"

기회도 없었잖아…… 이 말은 그녀를 향하는 것이다.

소희도 낌새를 눈치챘는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태진은 생각했다.

소희야, 이 오빠가 인생 선배로서 너보다 더 아는 게 있다면, 그런 건 잴 필요가 없다는 거야. 못먹어도 고 모르니. 귀찮고 망설여져도 그냥 하고 나면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단다.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의 눈이 커지고, 태진은 씨익 웃었다.

"그래. 나중에 강의 끝나고 연락할게. 전화번호가……?"

소희가 책상에 놓여져 있던 태진의 휴대폰을 들어서는 화면을 켰다가, 패턴 화면에서 태진에게 내밀었다. 태진이 패턴을 열자 그녀가 자신의 번호를 눌렀다. 소희가 번호를 채우고 되돌려주는 휴대폰을 받아들면서, 태진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바로 나다.

이소희가 입학한지 두 번째 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된 지금까지.

조별과제 이외의 일로 그녀의 번호를 따낸 첫 남자가 나다.

그는 저장버튼을 눌렀다.

저장 이름에는.

이름에는 그냥 이소희, 라고 썼다.

그는 맹호이기 때문이다.

***

밤을 걷는 자에게 질문하지 마시라.

그들은 대답 대신 칼을 되돌리기 때문에.

소년은 어둠의 경계를 걷는다. 밤은…… 세계가 잠드는 시간, 이글거리던 하늘의 파수꾼이 침몰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른 악의에 찬 별들이 세상이 숨긴 비밀들을 풀어놓고 타락한 피조물들을 하나하나 떨어뜨린다. 소년은 밤을 걸으며 그것들을 받아먹는 들개라고 하자. 들개는 냄새를 잘 맡고, 특히나, 식욕을 돋구는 부패한 시취(屍臭)에 예민하다.

소년의 이름은 정한새, 나이트워커.

그 이름을 아는 자들은 적으나,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바닥을 기는 끔찍한 괴물들이므로,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밤이면 해가 가린 별들이 떠오르듯, 빛이 숨긴 비밀스러운 길들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소년은 그 위를 걷는다.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적막을 손에 쥔 백야의 사공."

─ ……육십육의 자드레드.

"불꽃의 신기루를 삼키고 똥과 오줌과 재를 뒤섞어 황야에 뿌리는 백골 초장이.

─ …… 백과 이를 둘로 나눈 그레이크.

"절애에서 목 매달고 절명을 메아리치는 단말마의 눈 먼 떠돌이."

─ ……이를 제곱한 몫을 제곱한 값을 제곱한 마고트.

소년의 속삭임에 허공에 푸른 불빛이, 그 안에 끔찍한 악마들의 두 눈과 혓바닥이 날름거리다 어둠으로 스러진다. 소년은 지옥 너머에서 부름을 기다리는 악마들의 군단, 그 이름을 하나하나 외운다.

나이트워커, 지옥에서 현세에 이르는 굽이친 길들을 안내하는 패스파인더.

정한새가 흥얼거릴 때마다 불빛 속의 끔찍한 것들은 그 모습을 달리한다. 정한새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다가 이내 어둑한 가로등 아래 십자로에서 멈추었다.

"드디어 찾았어."

─ ……나의 이름을 부르라.

"아직은 아니야. 때가 되면 너의 이름을 부르지.

─ …… 나의 이름을 말하라.

"참아. 그놈의 살로 포식하고 뼈로 이를 쑤시게 해줄테니.

그의 뒤에서 일렁이는 보라색 불빛, 그 안에서 야수의 어렴풋한 얼굴 윤곽이 비치었다. 그의 목소리는 지옥 밑바닥에서 긁어 올린 듯이 거칠고 불안정하다.

"지금은 너의 군단만으로 충분해."

─ ……주사위로 세 번, 탐욕스러운 육.

"주사위로 세 번, 탐욕스러운 육."

불빛이 스러졌다.

정한새가 웃었다. 그의 주위로 한층 짙어진 어둠들이 드리웠다. 그늘 속에 더 짙은 그늘들이 꿈틀거렸다. 날벌레들이 모여 거대한 형체를 이루듯 암흑 속의 암흑들은 모여 선명한 칠흑을 이루었다.

그것들을 자신의 그림자에 가두고, 정한새는 외진 길을 나와 네온사인 빛나는 거리로 나섰다.

술에 취하고, 욕을 하고, 조그마한 전자기기들로 사철 연결되어 정숙을 잃은 인간들의 감정들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씨발새끼. 사랑해. 지금 뭐해. 술. 담배. 엉. 피방 고고. 모텔이야? 사장님 살펴가십시오. 성적은 어때. 많이 힘들어? 배부르다 배불러. 콘돔 사 와. 얼마에요? 긴밤에 이십이에요?

세상이 이런데 어떻게 악마들을 믿지 않을 수 있겠어.

그의 뒤를 밟는 발걸음들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선명하다.

정한새는 뒷골목 건물로 들어섰다. 학생 아니야? 여기요. 응, 들어가. 머리 까맣고 긴 애로요. 응, 알았어. 계단을 오르고, 길을 헤메다, 들어선 방에는 짙은 향수 냄새와 빈 침대가 있다. 정한새는 그곳에 드러눕는다. 바지와 내의를 함께 내리자 발기한 살기둥이 튀어나오고, 그는 두 손으로 그것을 움켜잡고 스스로 뒤흔들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여인은 그 광경에 흠칫한다.

벌써 혼자 분위기 내는 거니?

비켜.

응?

비키라고.

여인이 이해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옆으로 튕겨나고, 두 남자가 들어섰다. 그의 뒤를 밟던 발걸음들이 이제 정한새의 앞에서 따각거린다. 그들은 십자가를 쥐어 기도를 하고 성호를 그었다. 그들은 명백히 정한새를 혐오하고 있다. 정한새는 이제 침대에 걸터 앉아 그들을 향해 자신의 성기를 용두질하면서 큭큭 웃었다.

"히히. 개-새끼들."

"타락한 자에게 안식을."

"가짜 허상을 신이라며 똥구멍을 빠는 개-새끼들."

좌측에 선 남자가 등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가드에는 십자가,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십자가를 인 사나이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가 정한새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뒤로 튕겨나며 벽에 부닥쳐 피를 토했다.

"개-새끼들."

뒤에서 성호를 그어 기도하던 남자는 목에 메는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컥컥거린다. 그의 모가지에 선명한 교살흔의 떠오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낄낄. 깔깔. 우히히.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짐승들이 조소하며 깔깔거린다.

그들의 눈이 커졌다. 정한새는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그들 앞에 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벌벌 떠는 여인을 잡아끌어 그녀의 헐벗은 스커트를 걷고 팬티를 내렸다.

"자, 개-새끼들아."

그녀의 상체를 거울 화장대에 쳐박고, 둔부에 침을 뱉고, 용두질하던 남근을 그대로 쑤셔박는다. 여인이 신음했다. 정한새는 거칠게 허리를 놀리면서 낄낄 웃는다.

목이 졸리던 남자는 이제 허공에 떠올라 발버둥친다.

벽에 부닥친 남자는 벽에 붙박힌 채 머리통만 앞에서 뒤로, 쾅, 앞에서 뒤로 쾅, 계속해서 쾅, 피가 줄줄 흐르고 눈동자가 희미하다.

정한새의 허리놀림이 가빠졌다. 이내 정한새는 자신의 물건을 빼어내어 그들을 향해 다시 수음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놀림은 절정에 이른다. 그가 허리를 떨면서 허연 정액을 그들의 몸뚱이에 뿌린다. 찌익, 하고 죽어가는 남자의 배에, 찌이익, 하고 죽어가는 남자의 머리통에 뿌리고 폭소한다.

"낄낄, 개-새끼들아."

그리고 죽지 않은 물건을, 여인의 머리채를 붙잡아 억지로 물게 했다.

"너 머리가 까맣고 길다."

여자는 우웁, 하고 그의 물건을 삼킨 채 컥컥거린다. 정한새가 깊숙히 허리를 놀려 그의 목구멍에 남은 정액 찌꺼기를 흘려내리면서, 그녀의 머리채를 한층 거세게 쥐어뜯었다.

"정하. 정하. 정하. 정하 이 씨발년."

다시 그의 허리가 빠르게 움직인다. 여자는 숨도 쉬지 못한 채 창백한 얼굴로 그의 학대를 감내했다. 죽은 성직자의 시체, 그 위에 정액, 매음굴의 창녀와 악마, 모두가 어슴푸레한 전등 아래에서 뒤섞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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