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44화 (4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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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정태 랩소디

성현이 교실 뒷문을 발로 열어제꼈다. 미닫이문이 문간과 부딪치며 큰 소리를 냈다. 교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엎드려 자던 아이가 짜증내며 뒤돌아보다가,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성현이 발소리를 크게 내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아이들이 몸을 비켰다. 교실은 확연히 소란이 죽었다. 성현이 의자에 걸터 앉아 책상에 발을 올린다. 흘끗, 가방이 걸리지 않은 자리를 쳐다봤다. 소희의 자리다. 왜 결석했을까. 얼마전부터 소희는 계집애처럼 생긴 이수현과 사귀기 시작했다. 그놈은 알겠지. 기분 더럽다.

"씨발."

성현의 욕지기에 교실에 더 조용해졌다.

교실 분위기에 만족하며, 성현은 라이터를 꺼내어 찰칵거렸다.

드르륵,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성현은 지포 라이터에 희미하게 되비치는 상으로 머리 스타일을 손질하는 중이었는데, 차츰 교실이 시끄러워지는 걸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처럼 왁자지껄해졌다. 왁스가 죽어 머리도 잘 만져지지 않았다. 누군가 크게 깔깔거리는 소리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성현의 눈치를 보는 아이는 없었다. 성현이 방금 교실로 들어온 남학생을 노려보았다. 박정태다. 다들 내가 저놈한테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성현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손에 힘을 주었다.

"정태야.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우울해?"

"어? 아니. 괜찮은데. 고맙다."

"초콜렛 먹을래?"

"오, 땡큐."

여자애들 몇몇이 정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성현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못생긴 년들이 들이대기는. 성현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그으며 내는 소음에 몇몇이 쳐다보았다. 성현은 성큼성큼 다시 뒷문으로 걸어갔다.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지만 성현은 개의치 않았다. 화장실로 가서 담배나 한 대 피고 와야겠다.

뒷문이 열리고, 두 명이 후다닥 뛰어들어왔다. 성현이 미간을 찡그린다. 이수현과 박서은이다.

"너 때문에 땀 났잖아!"

"내 탓이야? 니 탓이지."

수현이 서은의 어깨를 툭 치자 서희가 수현의 복부를 찌른다. 소희로 모자라서, 박서은이랑 저렇게 놀아나는 꼴에 욕이 치민다.

그때 복도 창문이 열리더니 화사한 얼굴이 불쑥 들이밀어졌다. 갸름한 얼굴에 살짝 처진 눈, 묘한 미소를 입꼬리에 머금고 다니는, 이소희와 함게 일 학년 미녀로 유명한 송진하였다.

"헤이, 이수현!"

"어, 어?"

서은과 싸우던 수현이 뒤돌아봤다. 진하가 눈을 휘며 배시시 웃더니 음료수캔을 내밀었다.

캔을 말아쥔 가녀린 손가락 검지에는 반지를 끼고, 손톱에는 연한빛 매니큐어를 발랐다. 예쁜 손이었다. 수현이 음료수를 받아들며 진하를 쳐다보았다.

"뭐야 이거?"

"그냥. 소희 남자친구에 대한 호의?"

수현이 웃었다. 수현의 교복 넥타이가 헐렁히 풀어져 있는 걸 보곤 진하가 꼭 목까지 매어주었다.

"야, 목 졸려."

"너 왜 내 카톡에 답장 안해?"

"못봤어."

진하가 입술을 내밀며 수현을 쳐다보다가, 이내 넥타이를 풀어주었다.

"흠…… 됐다. 히힛. 안녕. 나중에 봐."

진하가 손을 흔들고는 창문을 닫고 교실로 뛰어갔다. 서은이 수현의 옆구리를 다시 찔렀다.

"인기 많네, 이수현. 양다리 걸치게?"

"시끄러. 소희가 나 죽일 걸."

그 와중에 앞문이 열리며 교사가 들어왔다. 국사선생 헤드샷이었다. 성현은 수현이 노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때를 놓치고 담배마저 필 수 없게 되자 이를 갈았다.

이소희와 사귀는 걸로도 모자라서 송진하랑도 저렇게 친해지고, 게다가 남자애들 사이에서 저 둘만큼이나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박서은과는 예전부터 사귀냐는 오해를 받았을 정도로 가깝다. 수현에게 아구창을 맞았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며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공부고 뭐고 잠이나 자려고 엎드렸다가, 아차, 헤드샷인 걸 깜빡했다. 뒤통수를 쳐맞았다.

"아 씨……ㅂ……."

"엉? 김성현 너 뭐라고 했어?"

"쌤. 너무 쎄게 때리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는 너는 임마 나 들어오자마자 엎드려?"

"그래도 폭력은 쓰지 말죠."

"이건 사랑이다."

성현은 헤드샷을 한 대 더 쳐맞고 교실 뒤에서 엎드렸다.

짜증이 치밀어 씩씩대고 있는데,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드니 수현과 서은이 무어라 속삭이며 둘이 숨죽여 웃는 게 보였다. 둘이서 말을 나눌 때 수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은의 허벅지로 손을 올리고는, 서로 뺨이 닿을 듯 밀착시켜 소곤거렸다. 서은도 무어라 말하는데 둘의 얼굴이 가까워 그녀의 머리카락이 수현의 어깨와 등을 덮었다. 그 꼬락서니를 본 성현은 더 짜증이 났다.

몇 분 지나자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성현은 여전히 가슴이 막힌 것처럼 못마땅하다. 결국 국사수업이 끝나고 헤드샷이 떠나자마자 성현은 벌떡 일어나 수현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꾸벅꾸벅 졸던 수현이 혼곤한 눈으로 응, 하고 성현을 올려다봤다.

새끼 진짜 예쁘장하게 생겼네. 성현은 순간 수현의 미모에 가슴이 덜컹했지만 애써 적의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입이 잘 안떨어진다. 얘 때려도 되나. 자세히 보니 이소희보다 예쁜 거 같은데. 눈에 힘 주라고! 속눈썹이 몹시 길다.

"그…… 임마……."

"……."

"우리 못끝낸 일이 있으니까…… 청소시간에 그…… 나랑 함…… 치……."

함 치자. 씨발 새끼야라고 말해야 되는데. 말이 잘 안나왔다. 서은도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현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시비 걸기가 애매하다.

어느새 교실의 시선이 전부 성현과 수현에게 쏠려 있었다. 성현이 용기를 냈다.

"함 치자…… 씨발…… 새꺄."

"어머."

서은이 입을 가렸고, 교실 여기저기서 여자애들이 꺅. 어머, 세상에, 어떡해, 따위의 경악성을 내질렀다. 뒤쪽에서 악마……! 라는 비명조차 나왔다. 그 자신의 양심과 주변의 여론이 합쳐져 성현은 소심해졌다.

"그, 너 쫄리면 그냥 니가 진 걸로 해줄게."

"내가 졌어."

"……."

성현은 무언가 몹시 아쉬웠지만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현이 뒤돌아서자 아이들이 몹시 좋아했다. 이게 아닌데. 성현이 불만 가득한 마음을 다독이며 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멀리서 자신을 경멸하듯 쳐다보는 정태와 눈이 마주쳤다.

병신.

입모양으로 말했다. 성현은 화가 뻗쳤다.

"박정태!"

"뭐."

"나와, 개새끼야."

정태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교실 뒷공간으로 걸어나왔다. 성현도 몇 걸음 가다가, 발을 박차고 날아차기를 날렸다. 정태가 피했다. 그 여파로 의자 하나가 나동그라지며 듣기 싫은 소리를 터뜨렸다.

"또라이냐? 너 성격 되게 이상하다."

"씨발새끼가."

성현이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정태도 넥타이를 벗고 손목시계를 풀어 옆에 서 있던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준비가 된 둘이 동시에 뛰쳐나가려다가, 순간 정태가 멈칫했다. 그 바람에 성현도 멈추었다.

정태가 손을 들어 잠깐 기다리게 하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옆의 학우에게 건냈다.

"약정 많이 남았다."

성현도 생각난 듯 말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나도."

"웃기네. 니 폰 존나 옛날 꺼잖아."

"그래도 아이폰이다."

"존나 구리네. 잡스가 언제 뒤졌는데."

성현이 눈썹을 꿈틀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잡스 형님 모욕하지 마 씨발 좆같은 새끼야!"

성현은 주먹을 날리려다가, 문득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뉴발란스다. 고인이 되신 그분과 같은 모델은 아니지만, 저 박정태를 뉴발란스로 까버리면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아 굳이 뒤돌려차기를 선택했다.

"크윽!"

주먹인 줄 알았는데 성현이 자세를 틀며 발차기로 전환하자 당황한 정태가 한 방 허용했다. 성현이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역시……! 당신은 제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성현은 비틀대는 정태에게 다시 큰 한 방을 주려고, 하이킥을 날렸다. 정태는 놓치지 않고 궤적을 노려본다.

정태가 발차기를 피하며 외측으로 접근해 성현의 다리를 차 넘어뜨렸다. 성현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순간 정태가 사커킥으로 성현을 깠다. 배를 정통으로 직격당한 성현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흐억……."

성현이 배를 부여잡고 끅끅거리자 정태가 뒤로 물러났다.

"고등학생이면 철 좀 들어라. 주먹질 작작 하고."

그리고는 흘끗, 학급생이 들고 있던 성현의 휴대폰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화면 존나 작네."

성현의 속에서 불길이 일었다. 벌떡 일어났다. 눈치채지 못하고 뒤돌아서있는 정태에게 달려들어 체중을 실은 날라차기를 격중시켰다.

"아흑!"

정태가 아이들 사이로 부딪치며 나뒹굴었다. 아이들이 갈라졌다. 성현이 정태에게 올라타 주먹을 날렸다. 성현이 웅크리며 막아냈지만 몇 대는 묵직하게 걸리는 느낌이 났다.

"죽어, 씨발."

파운딩 펀치를 계속 날렸다.

어……?

순간 성현은 묘한 데자뷰를 느꼈다. 올라타서, 깔린 녀석을 괴롭히는데, 딱 저렇게 일그러진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다. 순간 정태의 얼굴을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찡그린 얼굴이 아주 낯익다.

성현이 멈칫한 틈을 노려 정태가 온힘을 다해 몸을 비틀고는 성현을 발로 차고 일어났다. 성현을 뒤로 밀려났다.

정태가 일어나 입에서 피를 뱉어냈다.

콧잔등을 한 번 찡그리더니, 픽 웃는다.

그리고 허리를 펴서 성현을 쳐다본다. 눈빛이 서늘하다.

"그래. 너 오늘 좀 맞자."

그리고 성큼성큼 성현에게 걸어갔다. 성현이 가드를 올리며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정태는 발을 뻗어 앞차기로 정태의 배를 가격했다. 사정거리로 인해 성현만 얻어맞았다. 성현이 신음하며 뒤로 밀렸다. 정태는 거침 없이 정태에게 걸어갔다.

성현이 원투, 미들킥의 콤보를 시도했다. 정태가 머리를 흔들어 원투를 피하고는, 성현과 같은 타이밍에 미들킥을 날렸다. 함께 옆구리를 가격했지만, 타격에 몸이 상한 것은 성현 뿐이었다. 성현만 욱, 하고 크게 밀려나더니 상체를 웅크리며 비틀거렸다.

정태가 허리 꺾은 성현의 머리통에 발을 올렸다. 뺨에 신발 밑창을 댄 정태가 그대로 힘주어 머리통을 밀어버렸다. 교실 뒤 사물함에 성현의 얼굴이 부딪쳤다.

"으흑!"

성현이 바닥에 쓰러졌다. 정태가 다시 사커킥으로 복부를 걷어찼다. 성현이 숨도 못쉬고 엉금엉금 기었다. 정태가 성현의 머리통 위로 발을 들어올렸다. 드리우는 그림자에, 성현이 팔을 들어 허우적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정태가, 후, 하고 발을 내린다.

"적당히 해라. 병신아."

그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들을 학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두 남학생의 싸움에 마음 약한 여자애들은 훌쩍이기까지 했다. 정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넥타이와 손목시계, 휴대폰을 돌려받고는 교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성현은 몸을 일으켰다. 인정하기로 했다. 박정태는 예전부터 훨씬 유명한 놈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조용해졌지만 박정태는 박정태였다.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저기……."

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난 괜찮아."

"아니. 가져가라고……."

아이폰이었다.

아이들은 다시 우르르 흩어졌다. 성현은 몸을 털고 일어나 혀로 입안을 점검하며 복도로 걸어나갔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차마 불은 붙일 수가 없어 입에 문 채로, 흘끗거리는 아이들에게, 뭘 봐? 눈을 부라려주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어. 왜 성현아.]

정태와 싸울 때를 떠올렸다. 정태를 깔고 때렸을 때의 일그러진 정태의 얼굴이, 분명 누군가와 겹쳤다.

"하성아. 전에 그 여자애 있잖아."

[누구?]

"오빠 믿고 설쳤다던 년."

[아, 돌린년? 왜? 또 먹을래?]

성현이 화장실에 이르러, 창문에 몸을 기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걔 이름이 뭐야?"

[박정연.]

하성의 대답에 성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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