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45화 (4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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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정태 랩소디

"씨발 너 때문에 졌잖아."

"마. 씹, 니 도라이가. 니가 혼자 큰다고 스플릿 계속하니까 한타 계속 밀린 거 아이가 미친놈아."

"어 새끼 흥분했네 사투리 나온다. 크크크."

학교가 끝난 후, 세 남학생이 피씨방에서 나란히 걸어나오며 떠들어댔다. 이제 슬슬 어둑해져 네온사인이 거리에서 번쩍이는 때였다. 치마 짧은 아가씨들이 지나칠 때마다 소년들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골목 구석에서 셋이 나란히 담배를 입에 물고는 잡담했다.

"맞다. 아까 정태랑 성현이 싸우는 거 봤냐?"

"김성현 새끼 허세만 쩔고 아니던데. 정태가 거의 갖고 놀았잖아."

"맨날 폼 잡더니…… 전에 이수현한테도 아구창 맞았잖아. 사실 호구인 거 아냐?"

"김성현 근데 전에 옆 학교 짱이랑 떠서 삐까떴다며."

"그 짱새끼도 허세였겠지. 키키키."

두 학생이 속닥이며 킥킥거리는데, 사투리를 쓰던 남자애가 말했다.

"박정태니까. 김성현이 호구처럼 보이는 거야."

흥분을 가라앉혀서 그런지 어조가 어색했다. 어설픈 표준어에 두 남자애가 또다시 낄낄거렸다. 사투리 소년이 발끈하며 둘의 등을 퍽퍽 때렸다.

"느그 박정태 중학교 때 어땠는지 모르지."

"맞다. 정태 걔 경상도에서 왔다며. 너 알아?"

"내가 씨발 박정태 여기 있는 거 보고 존나 놀랐다 진짜. 박정태 밑에서는 전설이다."

"어땠길래? 정태 착한데."

소년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에 입을 다물었다. 그들 앞을 빠르게 걸어지나가는 소년이 있었다.

박정태다.

넥타이는 어디 두었는지 가슴이 깨끗했다. 성큼성큼 걸어갈 때마다 앞뒤로 흔들리는 손에는, 평소에 끼지 않던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표정이 잔뜩 굳어서 인사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 정태다."

"정태 장갑 뭐냐. 짐 옮기나? 상하차 알바 뛰나?"

"십새야. 웃기지 좀 마. 크흐흐."

키득대는 둘에게 사투리를 쓰던 소년이 말했다.

"마 방금 박정태 장갑 꼈다고?"

"어. 가죽장갑. 개간지네. 으리 형님인 줄 알았다 야, 박정태으리."

"크흐흐, 병신아 존나 갖다 붙이지 좀 마. 개그맨 새끼."

"야. 정태가 장갑을 쓰는 이유가 뭔지 아냐."

"뭔데?"

"정태가 애 아가리를 때렸는데 이빨에 찍혀서 손가락 찢어진 이후로 누구 팰 때는 항상 장갑 썼다. 처맞은 새끼는 이빨 다 날라가서 틀니 쓰고."

"……."

둘이 조용해졌다.

"……누구 패러 가나?"

"몰라. 우린 집에나 가자."

*

"씨발, 너희 신고해버릴 거야!"

여자애의 째지는 목소리가 지하 아지트를 울렸다.

하성의 손에 들린 휴대폰 액정에서 발가벗은 여자의 알몸이 재생되고 있었다. 비처를 내보인 채 여러 남자애들에게 돌아가며 박히는 여자애는, 반항적이었으나 육체의 쾌락을 못이기고 신음하며 이따금 허리를 흔들기도 했다.

동영상 속 주인공, 박정연이 입술을 깨문 채 그녀를 둘러싼 남자애들을 노려봤다.

짧게 줄인 교복에 예쁘장한 얼굴에는 화장을 했다. 가슴이 제법 커서 블라우스가 슬쩍 들려 있었고, 아래 기장이 짧아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 색깔이 언뜻언뜻 비쳤다. 반투명한 검정스타킹을 신은 다리는 미끈한데다, 몸매도 제법 조숙했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애 몇이 속닥였다.

"썅년 존나 따먹고 싶게 생겼네."

"그치? 나 그날 먹었었는데 허리 존나 잘돌리던데."

"……."

덩치 큰 고등학교 남학생 사이에서 위태로운 차림새의 정연은 금새 짓밟힐 것처럼 애처롭다. 정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안건든다고 했잖아……."

"근데 니가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어."

키득대던 하성이 음탕한 말을 지껄이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정연이 몸을 움츠렸다. 하성이 그녀의 뒤로 돌아가 뒤에서 그녀를 안아버리자 정연이 눈을 질끈 감고 몸부림친다. 하성이 손을 뻗어 교복 블라우스 위로 그녀의 가슴을 우악스레 주물렀다. 노골적인 희롱에 남자애들이 웃어댔다.

"싫어…… 싫어……."

"너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입고 다니잖아. 아냐?"

하성이 그녀의 엉덩이에 바지를 비벼댔다. 마치 성행위를 연상시키듯 앞뒤로 허리를 움직이며 바지 속 흉물을 그녀의 엉덩이에 대고 비비자 정연이 눈에 물기가 어렸다. 하성의 행위에 남자애들이 환호했다. 하성이 정연의 양 가슴을 주무르다가, 돌연 단추를 끌렀다.

그녀의 흰 살갛과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정연이 바둥거려도 남자의 힘을 당할 수 없었다. 하성이 킥킥거리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혀를 놀렸다.

"향수 뿌렸어? 중딩인데 할 거 다하네. 섹스도 하고. 그치?"

"그만…… 제발……."

"너도 좋아하잖아."

그리고는 하성이 우악스레 그녀의 치마를 쥐고 걷어올렸다. 바짝 줄인 H라인 스커트라 잘 펼쳐지지도 않아, 그녀의 허벅지에 걸리더니 하성의 악력에 부욱 찢어지며 그녀의 팬티스타킹 속 팬티가 드러났다. 너덜거리는 치마 틈으로 하성의 손이 침범해 그녀의 팬티 위에 자리잡았다.

하성이 팬티 위를 문질러대자 정연이 다리를 오무렸다. 그러자 지켜보던 남자애들이 다가와 그녀의 양 다리를 잡고 벌려 모두의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하성이 그녀의 팬티스타킹 가랑이부분을 찢어버리고 팬티 위로 손끝을 올려 교묘하게 문질러댔다.

정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성이 손길이 점점 끈적해지고, 그녀의 팬티에 얼룩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젖었네. 꼴려?"

"제발…… 흐윽……."

"표정 봐. 쌕기 쩐다 증말."

정연을 보며 남자애들이 침을 삼켰다.

정연은 또래보다 가슴이 크고 라인도 빨리 살아나, 자주 음탕한 시선을 받았다. 인기가 많으니 날라리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큰 가슴, 미끈한 다리, 거기에 눈매도 묘하게 색기가 어려서 화장을 하고 나면 남자들이 금방 꼬였다. 사복을 입으면 성인 남성들도 헌팅하고는 했다.

"젖었다. 젖었어."

그녀의 팬티가 질척해졌다

그 와중에,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소년이 있었다. 김성현이다. 흐느끼며 유린당하는 정연을 액정에 띄워 자세히 담는다. 하성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뭐하냐?"

"그 새끼한테 보내줄려고. 크큭."

"오빠라는 놈한테 보내려고?"

"어."

"헐. 그 새끼한테 엄청 맞았다며? 또 맞을라고?"

김성현이 인상을 쓰며 하성을 쳐다보았다. 성현의 표정에 하성이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알았어, 새꺄. 이 형이 대신 패준다. 그런 새끼는 미리 밟아줘야지. 걔 좀 치냐?"

"너한텐 안돼."

성현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성이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정연에게 다가간다.

*

"김형사님?"

강력반 형사 김영진이 고개를 들었다.

"근무시간인데 이렇게 오래 새도 됩니까?"

"곧 내려갈 거다."

그의 후배인 오우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기지개를 폈다.

"그게 누군데 그렇게 분위기 잡으십니까?"

"……."

김영진이 손에 든 꽃 한송이를 납골묘에 올려놓았다.

납골공원에 주욱 늘어선 납골묘들을 둘러보며 오우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선배인 김영진 형사가 찾아온 남골묘의 주인 이름은 김요한이라 되어 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다. 김영진 형사의 성격상, 예전 사건의 피해자 정도 되는 모양이다.

오우성이 꽃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있는 김영진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 왠 담배래. 누가 묘에다가 쓰레기를 버렸어?"

"꽃 대신 둔 거다."

김영진 형사가 올린 꽃 옆에는 담배 한 까치가 누워 있었다. 장대 끄트머리만 희미하게 타들어가 그을려 있다.

"녀석이 왔다갔나보군."

"누군지 말 안해주실 겁니까?"

"내가 맡았던 애."

오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진 형사가 강력반에 오기 전에는 청소년부에 있었다고 했다.

"박초고 사건 기억하냐?

"예전에 고딩들이 진짜 막나가는 불량서클 만든 거요?"

"그때 나한테 보호해달라고 했던 녀석인데. 눈 판 사이 그 새끼들한테 맞아 죽었다."

"……."

오우성이 잠시 묘비의 이름 석자, 김요한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잊으십쇼. 저도 그런 적 있는데요. 저희가 신입니까."

김영진이 가만히 있자 오우성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선배님네가 걔네 싸그리 잡았었잖아요. 죄다."

"우리가 잡은 거 아냐."

"예?"

김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우성에게도 한 까치 주었다. 오우성이 영진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도 한 모금 빨아들였다.

"이놈 친구가 걔네 다 잡았어."

"얘도 뭐 패거리가 있었나보죠?"

"친구 한놈이 다 잡았다고."

"예?"

오우성이 김영진을 쳐다보았다.

"걔네 숫자가 몇이었는데 혼자 다 잡습니까? 뭐 은유적인 표현입니까?"

"말 그대로 중학생 하나가 아지트 쳐들어가서 걔네 다 불구 만들었다."

"뭐 효도르도 아니고……."

김영진이 픽 웃었다.

"너 티비 보지? 열살 조금 넘은 애가 대학교 졸업하고 논문 쓰고 몇 개 국어 구사하고 그러는 거 방송에 나오잖아."

"아. 예."

"지구에 몇 명 있을까말까한 타고난 천재. 그 놈도 그랬어."

"그게 그거랑 같습니까?"

"걔는 그쪽으로 타고난 거 뿐이야."

영진이 말했다.

"내가 본 그놈은…… 싸움의 천재였다."

"누군데요? 그 정도면 저도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거 아니에요?"

"그놈이 나중에 경찰 하고 싶다고 그러던데 너도 혹시 만날 수도 있겠다."

김영진이 다 타들어간 담배를 꺼뜨리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오우성도 따라했다. 김영진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놈 이름이 박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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