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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과 독주(毒酒)
퀸즈 네스트 클랜 한국지부 전체가 정하 탐색에 투입되었다.
비스코와 지오빈이 부여받은 구역을 확인했다. 마법사 비스코와 중세 검술의 계보를 잇는 지오빈은 오래된 동료였다. 비스코의 손에는 온갖 마력이 깃든 반지가 세 개, 지오빈의 등에는 세례 받은 장검이 매달려 있다.
"흡혈귀 하나 잡는다고 이럴 필요가 있나."
흡혈귀 사냥이라면 러시아에서도 지겹도록 했다. 비스코의 말에, 지오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도 불길한데. 하늘을 봐. 저렇게 요사스러운 그믐달이라니. 한국은 원래 이런가?"
비스코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으나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유난히 음기가 강한 밤이다. 하지만 우려할 정도로 균형이 무너지진 않았다.
하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운무시를 뒤덮은 힘의 결계가 희미하게 비쳤다. 정하를 도시에 가두기 위해 펼친 것이다. 저걸 발동시키기 위해 드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지부장은 너무 겁먹었다. 어린애가 지부장을 맡으면 이래서 곤란하다. 비스코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흐린 눈으로 거리를 들여다보았다.
번화가였다. 네온사인이 점등하며 시계를 흐트러뜨린다. 비스코는 재미없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세계 따위는 모르는 민간인들이 순진한 얼굴로 웃고 떠들며 오가고 있었다. 이따금 보이는 능력자들이 그들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현재의 사태를 모르고서 그냥 지나칠 뿐이다.
정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을 펼쳐봐야겠는데."
비스코가 지오빈을 이끌고 번화가의 뒷거리로 숨어들었다. 품에서 꺼내든 것은 하얀 분필이다.
그들의 모습을, 뒷골목 헤매는 길고양이 몇 마리가 지켜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시작해볼까."
분필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하얀 분필가루가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오망성이 되었다가, 이내 룬문자를 이루었다. 복잡한 도형이 몇 번이고 겹쳐지며, 온갖 이치가 그 안에 담긴다.
비스코가 그 중앙에 촛불을 태웠다.
대단위 정신탐색술식이다.
비스코가 손을 펼치자, 그가 낀 세 개의 반지에서, 보석들이 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붉고 푸르고, 노란 빛이다. 다른 손으로 보석들을 쓰다듬었다.
눈을 감는다. 그의 감각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비스코는 감각을 넓혀 정하의 흔적을 탐색했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펼쳐진 광대한 영역 속의 사람들이 느껴졌다. 그들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 속에서 비스코는 정하의 흔적을 탐색했다. 마음의 심처에는 이르지 못해도, 정하의 정보와 부합하는 여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시껄렁한 잡상들을 소거하고, 오직 정하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 키가 큰 흑발의 여자. 흡혈귀. 이빨자국. 정하. 날개. 정하의 얼굴. 그는 답을 구했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비스코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현기증이 인다. 비스코가 벽을 짚으며 동료를 불렀다.
"지오빈."
대답이 없다.
"지오빈. 지오빈?"
비스코가 술식을 거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골목을 이루는 낡은 건물 외벽에서 지오빈의, 잘려나간 머리통이 대롱거리고 있다. 얼굴은 여전히 지루하다는 표정 그대로, 영혼을 잃은 채 고깃덩이가 되었다. 잘려나간 목에서 목뼈와 신경다발, 핏줄이 아래로 늘어져 흔들린다.
피가 뚝, 뚝, 아래로 추락했다. 어느새 바닥이 피로 흥건하다. 피웅덩이에는 목을 잃은 지오빈코의 몸뚱이가 쓰러져 있다.
지오빈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것은 눈부시게 희고 가느다란 팔이다. 너무나 우아한 모양새라, 비스코는 그 순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그 팔을 타고 거슬러 올라, 주인을 좇는다.
그 팔의 주인은, 날개를 접고 외벽에 서서 비스코를 내려다보는, 지독하리만치 고혹적인 여인이다. 여인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가느다랗게 뻗어나왔다. 웃는 입매는, 요사스레 빛나는 하늘의 그믐을 닮았다.
비스코가 뒷걸음질쳤다. 정하는 더 진득하게 웃는다.
*
"이 부근에서 비스코와 지오빈이 사라졌다. 아직 근처에 있을 거야."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그녀의 주위로 능력자들 다섯명이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경계했다.
번화가의 뒷골목은 더럽고, 축축하다. 바닥마다 말라비틀어진 찌꺼기가 밟혀들고, 이따금 고인 구정물에선 악취가 진동했다. 외벽마다 이물질이 가득해 옷깃이 닿을 새라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이따금 눈동자를 빛내며 지나다녔다.
네 개의 건물 사이의 귀퉁이, 골목과 골목이 마주하는 십자로에서, 그들은 비스코와 지오빈을 발견했다.
온 몸이 산산히 조각난 채로 흐트러져 있었다. 단정하게 놓인 것은 잘라놓은 두 개의 머리통뿐이다. 그들은 죽기 직전의 얼굴 표정 그대로 놓여 있었다. 지오빈의 얼굴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이라도 할 것 같은 나른한 눈으로.
그리고 비스코의 얼굴은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들이 숨을 멈추었다. 둘의 내장이 건물 외벽에 들러붙은 채 식어가고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멈칫한다. 그녀가 물컹한 것을 밟았다. 그것은 심장이었다.
"미쳤어……."
실험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정하는 뜻대로 그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의 귀에 스미는 달착지근한 목소리.
"마음에 들어?"
일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위치한 네 개의 빌딩의 정상, 그 가운데에서 날개를 펼친 흡혈귀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저렇게 먼 곳에서도, 마치 곁에서 속삭이는 듯 그녀의 목소리는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문득 자욱하게 피냄새가 났다. 공기가 젖어들어 움직임이 거북하다.
"모두 준비해!"
일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아나스타샤의 손에서 포탄과 같은 불길이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뒤이어 벼락이 공기를 가르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온힘을끌어올려 계속해서 후속타를 발사했다. 정하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위태로운 기대가 그들을 이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기대 이하다.
그 두 개의 기운 사이를 정하가 찢어발기고, 아래를 향해 곧장 쇄도해왔다.
너무 빨라서 반응할 수도 없었다.
눈앞으로 다가온 정하의, 악마처럼 날개를 펼친 실루엣, 그게 그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하가 바닥에 내려앉는 순간 그들은 몸을 압착시켜버리는 압력에 짓눌렸다. 그 압력은 그들을 구부려 바닥에 쳐박은 후 제 스스로 휘돌고 비틀고, 균열하고 다시 합쳐지며, 멋대로 요동쳤다. 그 여파로 그들의 몸뚱이는 산체로 짓이겨지고 부서지고 산산히 조각났다. 그들의 피가 뒤섞이고 내장이 겹치고 심장이 흩어져 그 잔해가 허공을 수놓는다.
그들 모두, 일제히 침묵했다.
정하가 바닥에 내려앉아 그 압력을 조율했다. 이미 산산히 조각난 잔해들은 허공에서 몇 번이고 다시금 갈라지며 분해되어갔다.
남은 것은 시체의 피비린내 뿐, 정하의 암흑이 잔해를 잠식했다. 식도가 울컥거리며 음식을 넘기듯 그들의 시체를 삼킨 어둠이 흔들거렸다. 정하에게 흡수된다.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정하는 다시 날개를 펼쳤다.
날아오른다.
골목을 벗어나, 달을 향해 상승한다. 달을 붙잡고 싶은 듯이 손을 뻗어보았다.
닿지 않았다. 그녀는 허공을 움키고는, 뒤돌아 아래로 펼쳐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성냥갑처럼 빌딩들이 늘어서 있고, 불빛들은 점점이 빛난다. 어디가 좋을까. 그녀의 눈에, 사냥감들의 기척이 선연하다. 날개를 활짝 펼쳤다.
사냥은 계속되고 있다.
*
[알파 원팀 침묵했습니다.]
[찰리 쓰리팀 침묵했습니다.]
[알파 쓰리 침묵합니다.]
[폭스트롯 파이브…….]
"제기랄!"
세르게이가 주먹으로 벽을 쳤다. 콘크리트가 부서지며 가루가 떨어져내렸다. 쇼파에 앉아 있던 올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다.
세르게이가 성큼성큼 다가와 올가 맞은편에 풀썩 앉았다. 그들 사이에는 운무시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세르게이가 펜으로 몇몇 부분에 엑스자를 그었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일관성조차 없어서, 운무시 끝에서 끝, 먼 거리조차 시간차를 두지 않고 공격당했다.
"……용혈이라도 마신 거야?"
"멘탈마스터가 와도 이건 못막아."
정하를 찾기 위해 인원을 흩어놓은 것, 그것은 반대로 정하가 상대하기 좋은 크기로 잘라놓은 것과 같았다. 이정도 기동력이면 전투기라도 필요할 것 같다. 멘탈마스터가 오더라도, 그녀의 기동력은 평범한 여자와 다를 바 없으므로 지금의 사태를 막아낼 순 없을 것이다.
[브라보 투 침묵했…… 으아악! 지직지직…….]
둘의 시선이 동시에 무전을 향했다. 비명이 잦아들자, 또각또각, 굽소리가 무전 너머로 들려왔다.
[잘들 있어?]
정하다. 세르게이와 올가의 시선이 부딪쳤다. 올가가 집어든다.
"정하."
[멘탈마스터는 언제 와?]
"……."
[그냥 얌전히 있지, 왜 설쳐. 원하는대로 죽여줄 테니까, 말만 해.]
"어디야?"
[왜. 너희가 죽으려고?]
그 순간, 정하의 무전에서 희미하게 살려줘……란, 처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올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산산히 조각나는 파열음이 들렸다. 올가가 침묵했다.
[미안미안. 이야기 계속해.]
"빌어먹을……."
올가조차 욕지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하를 잡아야 한다. 멘탈마스터와 정하가 싸운다면, 살아남는 게 멘탈마스터라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피가 더 흐를까. 멘탈마스터의 분노에 한국의 정글, 전체가 피로 물들 것이다.
그리고 세르게이의 올가, 그들의 피도 더해지겠지.
올가가 채널을 바꾸어, 전체 클랜에 통보했다.
"전부 베이스로 돌아와. 생존 중인 팀 차례로 응답해."
알파 원은 침묵했다.
[알파 투, 알겠습니다.]
피곤한 목소리로, 알파 투가 대답한다.
그리고, 침묵이 계속되었다.
올가와 세르게이도 입을 다물었다.
무전 채널에도 적막이 이어진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그 누구인가에게서 흘러나왔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가, 생존을 알렸다.
[에, 에코 쓰리…… 알겠습니다.]
알파 투와 에코 쓰리 사이의 모든 팀이 전멸했다.
[폭스트롯 원, 귀환하겠습니다.]
[폭스트롯…….]
그들의 대답을 듣고 올가가 눈을 감았다. 한국 지부 81명의 클랜원 중 60명 가량이 정하 단 한 명에게 살해당했다.
"올가, 그냥 멘탈마스터를 기다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늘 여유 있던 세르게이의 얼굴도 굳어 있다.
올가가 젖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그들의 빌딩 창문이 깨어지며,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새어들었다. 세르게이의 목덜미를 휘어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파열음과 함께 세르게이가 벽에 쳐박힌다.
"세르게이!"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일어서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하가, 날개를 펼친 채 세르게이의 목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뭉클뭉클 요기가 뿜어져나왔다. 방 전체를 위압하는 강력한 기운이다.
"기다리다 지쳐서 직접 찾아왔잖아."
"저, 정하……."
"멘탈마스터한테 전화해. 이 녀석도 죽기 싫으면."
올가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든다.
정신을 잃은 세르게이의 입가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목을 잡은 정하의 손으로 떨어져내렸다. 정하가 혀를 내밀어, 그 피를 할짝였다. 온몸이 피로 가득하다. 이런 포식은 몇 십년만이다. 취할 것 같다. 정하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올가가 멘탈마스터를 찾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믐달이 흐붓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 노예들을 부리고 무리지어 다닐 때에는 모르던 고양감이다.
아아, 취했다. 밤에, 광기에, 피에,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서 타고 있는 낙인의 주인, 그 소년에게 취했다. 예전의 자신에게는 없던 취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게 진짜 자신이다. 그녀는 정하였다.
모두의 공포에 질린 시선.
전화기 너머로도 전해져오는 멘탈마스터의 분노.
그리고, 가슴에서 타는 듯이 이글거리는 종속의 낙인.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