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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60화 (260/287)

〈 260화 〉 26. 개선 (4)

* * *

"하……, 히……"

파비아가 코에서 피를 주륵 흘리면서 휘청거린다. 쪼그려 앉은 자세도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흑……, 아……, 흑……?"

오른손을 들어 올려서 코에 가져간다. 파비아는 어째서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파비아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팔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몇 번씩 미끄러졌다.

그때마다, 파비아의 시선은 나의 음경에 꽂혀 있었다.

"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비아는 이 짧은 사이, 입술 안에 고인 침을 몇 번씩 꿀꺽 삼켰다.

파비아의 코가 반쯤 무의식적으로 킁킁 움찔거렸다. 코를 쭉 내밀어서 귀두에 가져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킁킁.

"……윽! 하아……!?"

파비아는 명백히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두 팔로 어깨를 끌어 안은 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파비아는 주저 앉은 상태로도 상반신을 지탱하기 어려웠는지 벽에 손바닥을 짚은 상태였다.

후, 하아, 하하, 후우, 파비아의 호흡이 거칠다. 파비아는 여러 차례 호흡을 다스리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파비아는 이제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흘러나온 콧물을 꿀꺽 삼키면서 원통한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사제에……, 진짜 못됐어……. 내가……, 얼마나 참으려고 했는데……"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사제하고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파비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음경을 주시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왠지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아……. 굵고…… 뜨겁고…… 냄새도…… 지독해서…………"

말을 한 마디씩 꺼낼 때마다 초점이 흐려진다. 파비아는 어느 새 말문이 막혀 있었다. 홀린 듯한 표정으로 시선만 음경에 집중된 상태다.

"……."

파비아는 침묵한 상태였다. 그런데 침묵한 상태에서 호흡만 조금씩 빨라진다.

헥, 헥, 헥, 헥, 파비아는 지금 본인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힘을 들여 닫혀 있던 턱이 열리고 인간보다 긴 혀가 바깥으로 나온다. 혀 끝에서 침이 뚝뚝 흐른다.

하지만 정작 파비아 자신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눈빛이 상당히 진지하다. 딴에는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있는 것 같다.

파비아의 목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천천히 고개를 든 파비아가 도끼눈으로 볼멘 소리를 냈다.

"사제……, 못됐어……."

"나도 하고 싶어서 그래."

"……나빠."

나는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파비아의 눈빛은 여전히 사납다. 그렇다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저돌적인 수단으로 나온 내게 조금 심통이 난 듯하다.

하지만 내 대답이 파비아의 심정을 바꾸는데 조금 도움이 된 것 같다. 파비아는 한참 동안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표정을 찡그리더니, 몹시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 귀두에 입술을 맞췄다.

입술이 살짝 붙었다가 떨어진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을 주고 말았다. 고통에 허리가 튕겨 올랐다가 서서히 내려온다.

"냄새……, 지독해……. 그치만……, 맛을 들이면…… 괜찮을 거 같기도……"

이것은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불상사였다. 개과 수인인 파비아의 코는 이 냄새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는 태도와는 별개로 파비아는 내 음경에서 혀를 떼어내려 하지 않았다. 두손으로 음경을 꽉 고정하고 쭉 빨아올린다.

"……쪼옥……, 핥짝……, 쪼오오오옥……"

파비아의 시선은 위로 들린 채, 내 얼굴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내 얼굴을 보고 반응을 살피면서, 혀와 손을 능숙하게 쓰기 시작한다. 파비아는 오른손으로 기둥 부분을 받치고, 왼손으로 내 고환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것처럼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손길은 조금 어색하다. 머릿속의 움직임과 현실의 움직임이 서로 어긋나는 바람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질문했다.

"파비아 너……,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

파비아는 내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하지만 내 감각을 속일 수는 없다. 아마 파비아는 나와 떨어져 있는 삼 개월 동안 이 순간을 고대하며 머릿속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소화했을 것이다.

능숙하게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손과 입이 꼬이는 걸 보면 뻔하다. 이건 머릿속으로 고민은 많이 했지만, 실제로 시험해본 적이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다.

하긴 자기 입으로 말했지. 꿈에도 내 얼굴이 나왔다고.

"엄청 기대했어……"

파비아가 내 귀두에 입술을 맞추면서 말했다. 솔직한 고백이었다.

"수련은 힘들지, 루이스 언니는 너무 진지해서 말 붙이기도 어렵고……, 눈만 감으면 자꾸 사제 얼굴이 떠오르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서러운지 표정이 또 다시 울상이다.

"그래서……, 사제를 다시 볼 때를 상상하면서 버텼는데……, 티 났구나……?"

"난 네 사제잖아. 느낌이 이상하면 바로 알지."

"으으……"

파비아가 발정 상태인 것도 바로 알아봤으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파비아는 우습게도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이 정도로 감동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 역시, 감성이 상상을 초월한다.

"……사제는 똑똑해. 그치만 성격이 나빠……. 그러니까…… 내가 혼내줄거야."

파비아가 툴툴거리면서 제대로 혀와 손을 쓰기 시작했다. 나와 짧게 대화를 나눈 탓일까. 움직임에서 어색함이 사라졌다. 파비아는 나의 음경과 얼굴을 여러 번 주시하며 혀를 움직였다.

귀두 끝, 요도가 있는 위치 위로 파비아의 입술이 포개어진다. 입이 큰 파비아도 삼키지 못할 굵기였다. 그리고 파비아 자신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호흡하면서, 천천히 빨아올린다. 보드라운 뺨이 살짝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다.

귀두를 입에 문 상태로 파비아의 혀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후비고, 비비고, 쓸어 올린다. 두 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음경 기둥을 슥슥 문지르고 왼손은 고환을 부드럽게 주무른다.

파비아는 자기 입으로 오래 참았다며 툴툴거렸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참은 탓일까. 파비아의 자극이, 몹시 참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마다 자꾸 멋대로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거다. 찌릿하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리고 만다.

"……츄읍, 핥짝……"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파비아는 심하게 흥분한 상태였다. 어느 순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던 두 손이 모두 멈췄다. 하지만 얼굴은 더 붉어지고, 혀의 움직임은 더 빠르고 노골적으로 변했다.

"……."

혀와 입으로 귀두를 빠는 행위에 몰입한 모양새였다.

"윽……, 꿀꺽……"

숨이 찼던 것일까. 파비아의 입술이 잠시 귀두에서 떨어진다. 파비아의 조그만 머리통이 그 위치에서 휘청휘청 흔들렸다.

초점이 희미한 눈동자가 슬그머니 내 얼굴을 주시한다.

"그치만 사제도 대단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입 아프게 말하기도 싫지만, 가끔씩 파비아의 사고방식은 요상한 방향으로 획 날아가 버릴 때가 있다.

"그치만 사제……. 엄청 크고……, 길고……, 두꺼워서……, 엄청 참기 어려웠을 거 같아……."

"그렇게 보여?"

"아니야?"

"아닌 건 아니지만, 참았던 거지. 나도."

"그치이……? 사제도 대단하다……."

그런데 지금 이거 가지고 칭찬 받아도 되는 게 맞나.

이상한 걸로 칭찬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되게 기분이 이상한데 지금.

"그러니까……, 지금 개운하게 해 줄게……."

파비아의 눈이 반쯤 감긴다. 음경에 취해 있는 듯한 고혹적인 시선이었다.

길쭉한 혀가 낼름 거린다.

파비아는 다시 귀두에 입술을 대고 혀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차례 자극을 받고, 휴식하고, 다시 자극을 받는 식으로 여러 차례 반복한 탓인지 내 것은 빨갛게 충혈된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상반신이 굽혀진다. 하지만 파비아는 게걸스러운 움직임으로 귀두에서 입술을 떼어내지 않았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탓에 천박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윽……"

지금에 와서는 섬세함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파비아의 이미지 트레이닝은 모두 헛일이었다. 섬세함은 사라지고, 욕구와 탐욕만이 남았다.

때때로 그런 노골적인 행동이 오히려 더 강한 자극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의 파비아가 그런 상태였다. 파비아의 입 속은 펄펄 끓는 용광로 같았다. 개과 수인의 높은 체온이 원인이었다.

"쪼옥……, 푸하……, 응……, 사제……"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필사적인 움직임이다. 페이스를 고려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과 속도를 주었다.

특히 오랫동안 금욕했던 내게는 충격이 컸다. 허리가 빠지는 줄 알았다.

허리가 제멋대로 들렸다. 파비아는 나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 듯 음경을 쭉 빨아올렸다.

정액이 올라온다. 이때, 나는 거의 벽에 매달리다시피 등을 밀착 시킨 상태였다.

"윽!!"

"……읍!!"

사정하기 직전, 파비아는 양손을 모아서 자신의 턱 아래에 놓았다. 부자연스러운 자세인 탓에 상당히 불편해보였지만 파비아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윽……, 하아……"

정액이 올라온다. 표정을 관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강한 탈력감이 닥쳐온다. 턱에 힘을 주고 소리를 참았지만, 참지 못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파비아의 경우, 소리를 낼 여유도 없었다. 입을 타고 들어간 정액은 순식간에 파비아의 구강 안쪽을 채워 버렸다. 목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삼키려고 해도 한계는 명확했다.

미처 삼키지 못한 정액이 코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커헉, 케헥, 파비아의 목구멍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린다. 오히려 삼키기는커녕, 삼키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게 되는 정액의 양이 상당했다.

파비아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양손을 턱 아래에 놓아서 정액을 받으려고 했지만, 절대적으로 공간이 부족했다.

턱을 타고 흐른 정액이 손에 고이고, 출렁이면서 다시 넘쳐 흐른다. 바닥에 정액이 후두둑 쏟아진다.

"크훕! 크훕! 커……, 흐아아아……"

그 짧은 사이 파비아는 몇 번씩 기침을 토해냈지만 끝까지 입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정액이 많이 흘러 나오지는 않았다. 그 대신 코에서 정액이 다시 주륵 흘렀다.

숨은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사실 그게 제일 걱정된다.

파비아는 한참 동안 입안에 들어있던 정액을 오물오물 씹었다. 그렇게 씹어서 삼키지 않으면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점성이 높은 상태였다.

"으……, 꿀꺽……, 오물오물……"

한참 동안 입을 오무린 채 굼질거리던 파비아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위아래로 벌어진 입 안에 정액은 보이지 않았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뒤, 살짝 웃는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서 이번에는 손에 받은 정액을 혀 끝으로 훑는다. 비주얼은 우유를 핥는 고양이 같다. 하지만 정액은 우유와 비슷한 색이라도 점성이 전혀 달랐다.

파비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손에 채워진 정액을 핥아 먹었다. 손을 펼친 후 손가락 하나 하나에 묻은 정액까지 꼼꼼하게 훔쳤다. 파비아에게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직접 맛을 확인해볼 용기는 없다. 그런 짓은 꿈에서도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의 손을 청소하고, 그 다음에는 내 음경이었다. 파비아의 상반신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코가 귀두에 닿았다. 살짝 냄새를 빨아들인 순간 파비아의 몸이 크게 진동했다.

"하아아아아……"

파비아가 또 다시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혀를 길게 쭉 빼고 정액으로 범벅이 된 귀두를 치우기 시작했다. 다소 정성이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헌신적인 움직임이었다.

귀두에 맺혀 있고 기둥을 타고 흐르던 정액을 모두 수습한 뒤, 파비아는 다시 한 번 귀두에 입술을 붙이고 요도를 빨았다. 요도 안쪽에 남아있던 정액이 모조리 파비아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응……, 끝……."

파비아의 오른손이 배 위로 올라갔다. 앉은 자세 때문에 벌어진 눈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파비아의 배가 조금 전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부풀어오른 것처럼 보인다.

포만감을 느낀 듯 파비아의 표정이 한결 개운해져 있었다.

"오늘은……, 이것만 하고 끝낼 거야……."

"괜찮겠어?"

이렇게 보여도 진지한 질문이었다.

"우, 사제는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아……?"

파비아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나도 파비아의 성격은 제법 잘 알고 있다.

솔직히 파비아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다 파비아는 주기적으로 발정기가 찾아오는 개과 수인이니까.

"만족하지 못한 거 같아서 그래, 아니야?"

"그건 맞지만……"

파비아가 하복부를 연신 움찔거린다. 파비아 또한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상태라서 그런지, 움직임에 묘하게 생기가 없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그래도 이건 싫어……. 내가 얼마나 사제하고 짝짓기 하는 걸 기대했었는데……. 계획까지 다 세워뒀단 말이야……."

"계, 계획까지?"

파비아의 말이 너무나도 기절초풍할 만한 것이라서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얜 도대체 니르바나 사원에서 얼마나 번뇌와 싸워온 거지.

하지만 파비아의 시선은 진지했다.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 있다.

"응.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싫어……. 하다가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어중간하게 끝날 것 같고……"

파비아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인다.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방향이 좀 요상해서 문제지.

"그러니까……, 오늘은 이것만 하고 끝!"

파비아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했다. 이 선택이 파비아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중대한 결단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내가 진지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잘 구분이 안 된다.

바지만 안 벗고 있었어도 내 고민이 이 정도로 깊진 않았을 텐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데, 이건 멀리서 봐도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더 희극이다.

루이스가 이 꼴을 보면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싶다.

* * *

"파비아, 교대하러 왔어."

루이스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루이스는 아직도 눈이 덜 회복되었는지 왼쪽 눈이 있는 자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파비아는 내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루이스에게 수상하게 보일 건수는 하나도 없었다. 파비아는 바로 조금 전까지 정액 냄새를 씻어내고 화장실을 청소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녔으니까.

"아, 루이스 언니."

"너도 이제 들어가서 좀 쉬어야지. 신현이는 내가 보고 있을게."

"그, 그럴까?"

"응."

루이스는 오늘 여기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인지 가방에 담요를 가지고 왔다.

파비아는 묘하게 침착하지 못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루이스는 특별히 의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파비아가 침착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그럼 사제, 나 가볼게……. 사제도, 빨리 나아야 해!"

"알았어. 조심해서 들어가."

"응!!"

내 정수리를 손끝으로 살짝 쓰다듬은 뒤, 파비아가 몸을 돌린다.

"……."

결국 파비아의 짝짓기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 내가 물어보고 싶어도 비밀이라면서 고집을 피우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고.

파비아는, 내 사저니까.

문 바깥으로 나간 파비아가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었다. 내가 화답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 나도 손을 들어서 화답했다. 파비아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문을 닫았다.

"……야, 백신현."

"어, 왜 그래?"

"너, 파비아하고 했지?"

"하려고 했는데, 파비아가 다음에 하고 싶대. 내가 건강해질 때까지는 참을 거라던데."

루이스가 갑작스럽게 핵심을 찔러 들어왔지만, 나도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크게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겨우 이 정도로 특급의 감각을 속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짐승 같기는……, 다리가 온전해질 때까지는 좀 참는 게 어때?"

"그럴 생각이야. 그것보다도 선생님은? 안 오셔?"

"신아를 수리하느라 바쁘셔. 요 며칠 간 잠도 안 주무시고 계실 정도거든."

그럼 어제도 밤샘을 한 상태로 날 보러 온 거였나.

체력도 안 좋은 사람이 무리하기는.

"얼른 회복해야겠는데."

검왕검의 주인인 내가 연금술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백신아의 문제는 연금술사 한 사람의 문제도 아니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나의 빠른 회복을 재촉하고 있었다.

* * *

"선생님! 나 왔어!"

"……응. 수고했어."

파비아가 공방에 돌아왔을 때, 연금술사는 연구실에 틀어 박힌 채 검왕검의 수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는지, 책상에 다량의 약물이 널브러진 상태다.

연금술사는 파비아를 향해 잠시 고개를 돌렸다. 안경을 쓴 눈가에는 거무죽죽한 기미가 잔뜩 끼어 있다.

파비아는 생각 이상으로 나쁜 연금술사의 상태에 안색이 나빠졌지만, 저런 상태의 연금술사는 말린다고 듣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조금 쉰 다음에, 내 일을 좀 도와줘. 부탁할게."

"아, 알았어. 선생님……"

파비아의 기가 팍 죽었다. 귀를 접은 상태로 우물쭈물, 죄 지은 사람처럼 방석 위에 쓰러진다.

개과 수인인 파비아는 겉모습은 사람과 비슷해도 세부적인 신체 구조에 조금 차이가 있다. 인간을 위해서 준비된 침대가 파비아에게는 맞지 않았다. 바닥에 방석을 깔아두고 그 위에 취침하는 건 그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떠밀려서 파비아는 천천히 방석 위에 쓰러진다. 하지만 파비아가 느낀 압박은 상당한 것이라, 그녀는 누운 자세로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긴장을 풀고 편안한 자세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

긴장이 풀리니까 갑자기 스스로의 행동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때, 파비아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건 바로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제의 얼굴이다.

"……근질근질거려. 그냥 사제하고 할 걸……"

파비아는 울상이었다. 딴에는 사저로서의 자존심을 세운 것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후회 뿐이다.

하지만 파비아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그녀의 사제는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백신현에게 더 심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으……, 사제가 다 나으면……, 가만 안 둘 거야……"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사제의 얼굴을 그리며 중얼거린다.

물론, 성적인 의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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