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48화 (248/287)

〈 248화 〉 25. 신역?? (4)

* * *

"선생님, 빛을 차단하면 당장 급한 상황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응.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거야."

연금술사의 대답을 듣고 백신아를 본다. 검왕검의 칼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백신아는 턱을 쓰다듬으며 빛나는 기둥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서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내 얼굴에 눈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제 생각도 같아요. 빛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알았어."

두 사람에게 확인을 구한 뒤, 나는 검을 쥔 주먹으로 빛나는 결계를 가볍게 건드렸다.

예상했던대로 이 결계 자체에 특이한 방위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계 내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른 결계라면 모를까. 가장 바깥에 발생한 물리 결계는 그냥 단단한 벽에 지나지 않았다. 피부로 건드려도 위험하지 않다.

검을 잠시 검집에 넣어두고, 오른손바닥을 결계에 붙였다.

언뜻 보았을 때 평평하게 보이는 이 결계에는 아주 미세한 흠집이 존재한다. 마력을 오른발에 집중해서 마찰력을 높인 후 접착. 그 후에 왼발까지 벽에 붙인다.

빛나는 결계는 폭만 해도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지만, 높이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다. 수백 미터 정도.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꼭대기에 도착했다. 모서리에 손가락을 걸고 단숨에 천장 위로 올라선다.

발판은 단단했지만 안쪽에서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는 탓인지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가만히 서 있으면 멀미가 느껴질 것 같아서, 서둘러 작업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수십 미터 정도 직선으로 나아간 뒤, 다시 한 번 검을 뽑았다.

지금 당장 이 결계를 파괴할 수는 없다. 이 결계는 4중 구조이고, 세 번째에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스며들어 있어서, 어설프게 파괴하면 결계에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폭발하면서 주변 일대가 잿더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가장 좋은 건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네 개의 결계를 모조리 파괴하는 건데, 그걸 위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시간을 끈다.

천변무궁류는 마력의 흐름을 장악하는 검술이다. 그 힘으로 천후, 즉 날씨에 간섭할 생각이다.

겉옷을 벗어서 결계 위에 두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검술로 지배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하지만 부족하다. 도대체 몇 번을 휘둘러야 할까. 반경 수십킬로미터 내에 존재하는 마력과 대기를 장악해야 한다.

세 자릿수, 네 자릿수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될 때까지 한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신기하게도 칼끝에는 무게가 더해지고, 속도가 붙는다. 비탈길을 구르는 스노우볼처럼 점점 장악하는 범위가 넓어진다.

끼이이이익!! 나의 검이 정확히 30분을 새기고 멈춰선다. 맑은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고, 그 범위는 결계가 지배한 영역을 모두 포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인위적으로 빗어낸 구름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지만, 이 공간 내의 마력은 이제 내 간섭 없이 홀로 순환하고 있다. 마력의 순환이 유지되는 한 구름은 꽤 오랜 시간을 버텨줄 것이다.

지속 시간은 열두 시간 정도, 이게 한계다. 이 이상은 늘리고 싶어도 늘리기 어렵다.

작업을 끝마치고 결계에서 내려왔다. 지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연금술사 한 사람 뿐. 루이스와 파비아는 결계의 다른 위치로 이동해서, 내 작업을 보조하고 있었다.

천공의 날씨에 간섭하는 건 천변무궁류의 힘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라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정도 구름이면 될까요?"

"응. 구름이 걷히기 전까지는 괜찮을 거야. 빛이 크게 줄어들었으니,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영향력도 약해지겠지."

고개를 돌린다. 기분 탓일까. 결계의 안쪽에서 저항하던 사람들이 조금 얌전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잠시 후, 루이스와 파비아가 결계의 좌우에서 빙 돌아왔다. 내가 결계 위에서 천후에 간섭하는 동안 두 사람은 결계 주변을 돌면서 내부의 상황을 살피면서, 내 작업에도 마력으로 도움을 주었다.

"결계 중심에는 그 성이 있어. 흐릿해서 잘 안 보였지만, 집중하니까 보이더라고. 결계에 약하거나 누락된 부분은 없었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어. 사제, 어쩌면 좋을까?"

"결계를 한 번에 모조리 부숴야 해. 어설프게 파괴하면, 공간 왜곡 결계가 폭주해서 이 결계의 몇 배 이상 되는 범위가 한 번에 날아갈거야."

나는 단단한 결계를 손바닥으로 짚으며 말했다. 공간 마법은 소비되는 마력도 마력인 데다가 그 위험성 때문에 가장 최신의 마도학에서도 아직 연구가 진척되지 않은 분야이다.

근대 마도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연금술사나, 그런 그녀에게 직접 교육을 받은 내가 아니면 원리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리적 결계와 그 아래에 있는 마법 결계까지는 지금도 충분히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의 결계가 문제다.

공간 왜곡 결계는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어설프게 파괴하면 폭주해서 주변 수백 킬로미터를 날려 버릴 테니까.

설령 천변무궁류의 필살검이라고 해도, 한 번에 모든 결계를 파괴할 수 있을까.

부딪쳐보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코어의 리미터를 해제하면 어렵지 않게 파괴할 수 있겠지만……, 한 번 리미터를 해제하면 되돌릴 수 없다. 허유와의 결전을 앞둔 상황에서 함부로 비장의 수단을 소모하는 건 바보 짓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늦어서 미안하다!"

바로 그때, 내가 가장 기다리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그누스, 요하네스, 그리고 스텔라. 이 도시에 있는 가장 강력한 세 명의 모험가.

성에서 시작된 기둥은 제피로스의 7할 가까이 되는 범위를 집어 삼켰다. 그래서 그들이 결계 내부에 휩쓸려갔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는데, 가장 최악의 가능성은 피했다. 불행 중 다행이다.

"나 때문이오.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수련 중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소. 잘못 끊으면 주화입마가 찾아와서 큰일날 수 있었으니까. 이 두 사람은 그런 나의 호법을 맡아주느라 늦은 것이고."

요하네스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그는 거의 채비도 못했는지 헐렁한 무복에 무기가 잔뜩 들어간 봇짐을 하나 끼고 왔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돌아오셨구려. 필요한 순간에 딱 맞춰서 잘 와주셨소."

숨을 몰아쉬는 요하네스를 향해 루이스가 손을 내민다. 그의 말처럼, 루이스가 하루라도 늦게 돌아왔다면 상황이 많이 곤란해질 뻔했다.

마그누스와 스텔라가 차례로 루이스와 인사치레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데면데면한 사이인 파비아는 눈짓으로만 인사하고 끝냈다.

"요하네스 씨, 그래서 광증은 좀 어떠신가요? 싸울 수는 있습니까?"

"짧은 시간이라면."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 중요한 건 이 결계를 부수고 진입하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돌리고 결계에 대한 사항을 대략적으로 나열했다. 결계는 총 네 겹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번에 모조리 부수고 돌파하지 않으면 대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흠, 과연."

마그누스가 대검을 뽑았다. 대검은 손잡이도 길었다. 손잡이 부분으로 쿵쿵 소리를 내며 벽을 두들겨 본다.

"쉽지 않겠군. 물리적 결계만 해도 보통 강도가 아니야."

"하지만 차례로 절기를 때려 박으면 못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정도면 예상보다 약한 편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네가 보기엔 그 정도냐?"

"네, 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그 자식과 맞붙어본 사람입니다. 그 자식의 강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식의 강함을 생각해봤을 때, 이 정도 결계 강도면 충분히 약한 편이죠. 아마 결계의 규모가 넓은 탓에 강도가 집중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범위를 커버하는데도 이 정도의 강도라는 점에서 허유의 무시무시함을 느낄 수 있다.

결계도 마냥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극히 까다로운 세 종류의 결계를 네 겹으로 쌓아올린 형태다.

"첫 번째 결계는 내가 파괴하마.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건 내 전문이야. 아니, 첫 번째 결계 이외에는 내가 파괴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지. 마법 결계와 공간 왜곡은 내 검으로도 불가능할 거야."

"그럼 첫 번째 결계는 대장께서 맡으시고, 저하고 파비아는 공간 왜곡 결계를 걷어내면 나오는 마지막 결계를 맡을게요. 그 결계도 물리적 결계니까. 제가 파괴할 수 있을 거예요."

루이스가 주먹을 꽉 쥔다. 루이스는 여전히 왼쪽 눈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탓인지 마그누스도 그 점은 질문하지 않았다.

"마법 결계는 아이샤가 도와주면 해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성분을 검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스텔라가 연금술사를 돌아본다. 연금술사가 스텔라에게 순순히 협력할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연금술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공간 왜곡 결계요. 저 결계를 어떤 식으로 걷어낼 수 있을까……?"

요하네스가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제시한다. 사실 물리 결계와 마법 결계가 각자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데 비해, 공간 왜곡의 경우에는 전혀 방법을 제시할 수 없다.

공간 그 자체를 왜곡하는 탓에 물리 공격은 물론이고 마법 공격에도 절대무적. 돌파할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까.

결계를 분석해서 파해식을 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앞서 말했듯 공간 마법은 근대 마도학의 정수랄 수 있는 마법이고, 펼치는 것은 물론 파해하는 난이도 역시 무지막지하게 높다.

이건 내 느낌이지만 시간을 끌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식이 왜 이런 식으로 결계를 펼친 걸까. 시간을 끌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 결계를 펼쳐서 주민들에게 뭘 실험하더라도, 그건 우리 같은 적대세력을 모두 무찌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몇 가지 가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그 가설은 모두 하나 같이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정면 돌파.

힘으로 누른다.

나 역시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세 번째 결계는 제게 맡기세요."

* * *

검을 뽑는다. 사중으로 겹겹히 쌓인 결계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이다.

하나를 파괴하면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다음 결계의 파괴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 하는 순간 결계는 스스로 수복되고 말 것이다.

특히 내가 담당하는 세 번째 결계의 경우, 그냥 파괴하는 정도론 부족하다. 한 번에 수복 불가능한 피해를 때려 박아서, 결계 자체를 걷어내야 후환이 없다.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 최대 위력의 초식으로 부순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의 경우, 준비에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검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르면서 마력의 흐름을 정돈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의 제어력이 닿는 모든 범위의 마력에 간섭해서 다른 이들의 팔과 다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그 특성상 천변무궁류는 상대방의 움직임에 간섭하는 것이 수월하다. 이 능력을 통해 이제까지는 나와 맞서 싸우는 적의 움직임에 간섭해서 그들의 힘과 속도를 떨어트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확히 그 반대의 용도로 천변무궁류를 휘두르고 있다.

검을 휘두르면 그 공격에 무게와 속도가 실리게 강화하고, 마법을 쏘면 그 출력을 높이고 안정화시킨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야, 백신현. 준비는?"

"다 됐는데……, 조금만 더."

네 겹의 결계 중 가장 까다로운 건 공간 왜곡의 성질을 가진 세 번째 결계다.

그 결계를 파괴할 수 있는 건 이 자리에서 나 하나 뿐. 내가 준비를 끝마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나도 공간 왜곡에 맞서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위력을 얼마나 끌어 올려야 할지 나 자신도 모른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의 위력으로 때려 박을 수밖에 없다.

파직! 파직! 파직! 파직!!

검왕검을 등뒤로 크게 당긴다. 그 자세는 검을 휘두르는 자세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자세. 투창의 자세를 크게 닮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집중된 칼끝이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다. 빛이 동반한 열기에 의해 지면에 낮게 깔려 있던 잔디가 고약한 냄새와 함께 타들어간다.

이 정도의 마력을 잡아두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뇌혈관이 끊어질 듯한 기분이니까. 내 준비가 끝난 지금,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다.

마그누스와 시선을 맞춘다. 이 중에서 가장 준비가 오래 걸린 건 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언제라도 절기를 해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가 첫 번째, 연금술사와 스텔라가 두 번째, 그리고 그 다음이 나.

바닥에 꽂아 두었던 대검을 마그누스가 뽑아든다. 그의 대검에 고밀도의 마력이 뭉쳐서 검강의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검강 정도는 여기에 있는 루이스도 쓸 수 있는 기술이니까.

그의 검강이 모습을 바꾼다. 매끈했던 표면이 무수히 조각나고, 그 조각 하나 하나의 모습은 용이나 도마뱀 등을 비롯한 파충류계의 비늘을 닮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비늘 하나 하나가 독자적으로 전개된 검강이다. 수많은 검강이 각자 따로 움직이면서 칼날을 진동시킴으로써 파괴력은 극대화된다.

"흐읍!!"

파괴적인 소리와 함께, 마그누스의 검이 결계와 부딪친다. 마그누스의 검강은 결계와 접하고 있는 도중에도 빠르게 진동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마치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듯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마찰로 불씨가 튀었다.

한참 동안의 힘겨루기 끝에 마그누스의 몸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갔다. 그의 검강이 큰 피해를 입었는지 칼날을 휘어감고 있던 검강의 절반 가까이가 참혹하게 뜯겨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대검 자체에는 손상이 없었고, 목적도 훌륭히 완수했다.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 가량의 범위에 존재하던 결계가 뜯겨 나갔다.

결계는 파괴된 직후 말단 부분에서부터 재생을 시작했다. 그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마그누스가 그 자리에서 빠르게 물러나고, 그가 벗어난 자리에 무수히 많은 마법이 시시각각 꽂히기 시작한다. 모두 스텔라의 마법이다.

그녀가 선호하는 마법은 불과 냉기이지만 그 이외의 것을 잘 쓰지 못하는 건 아니다. 불, 냉기, 벼락, 흙, 그 하나 하나가 살인적인 위력을 품고 있다.

마법 결계가 쉴 새 없이 요동친다.

하지만 파괴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스텔라와 마그누스 사이에 존재하는 격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스텔라의 마법은 첫 번째 결계의 재생을 방해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었다.

스텔라가 물리적 결계의 재생을 방해하고 있는 동안 연금술사가 책을 펼친다. 마법진은 책이 열리는 그 순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연금술사의 몸을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무늬가 비대칭한 배치로 나열되고, 그 무늬를 모조리 포괄하는 형태로 원이 그려진다. 그 원의 개수는 수십 개,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바닥에 펼쳐졌던 마법진이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며 세로로 들렸다. 결계 쪽을 겨누고 있다.

그 순간, 불꽃처럼 흔들리던 마법 결계가 조금씩 요동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힘으로 파괴한 건 아니었다. 전투 능력으로 따졌을 때 연금술사는 1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스텔라가 결계에 피해를 주면서 데이터를 뽑고, 연금술사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계의 빈틈을 찾아낸 뒤 파고드는 식으로 공략했을 것이다.

물리적 결계가 벗겨지고, 마법적 결계가 틈을 벌린다. 공간 왜곡 결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금술사가 마법 결계의 틈을 벌리면서 스텔라의 마법이 그 자리에 꽂히기 시작했지만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다. 결계 자체가 척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스텔라의 마법이 모조리 괴상한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저것을 부수기 위해서는 비틀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 중에서 최강의 위력을 가진 절기였다.

쿵!! 왼발을 세게 내딛으며 힘을 싣는다. 등뒤로 크게 젓혔던 팔을 앞으로 휘두른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발사되려 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검주, 위!!」

초신성을 휘두르려던 바로 그때, 검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참격을 휘두르려던 오른팔을 급하게 멈춘다. 도중에 멈춘 탓일까, 피드백이 장난이 아니었다. 코피가 주륵 흐르고 말았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상황에서 직감만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벗어나기 위해서 지면을 세게 걷어찬 직후 고개를 위로 들었다.

보이드, 그 남자의 증오스러운 얼굴이 눈에 보였다.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검을 위에서 아래로 세게 내려 찍는다.

쿵!!

칼이 꽂힌 자리가 움푹 들어가면서 쪼개진다. 둘로 갈라진 지면이 치솟아오르며 흙먼지를 흩뿌렸다.

보이드, 아니 허유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휘두른 일격은 주변 일대에 소름 끼치는 지진을 발생시켰다.

충격파는 지면 뿐만 아니라 천공에 있는 구름까지 도달했다. 내가 펼쳤던 구름이 크게 요동친다. 구름이 흩어지지 않은 건 그것이 자연적인 구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이드!!"

루이스가 매섭게 소리친다. 루이스가 알고 있는 건 껍데기의 이름 뿐. 그 존재의 진짜 이름, 허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뭐지? 결계까지 펼쳐놓고 이 시점에서 직접 나선다고?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아니, 그게 아니다.

저건 아마도 본체가 아니라 결계를 파괴하는 걸 막기 위해서 허유가 파견한……

「검주, 옵니다!!」

"큭!!"

허유의 몸을 차지한 보이드는 매우 알기 쉬운 행동을 보였다. 행동에 목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놈의 표적은 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칼에 붙잡고 있는 초신성의 마력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타난 것 같았다.

보이드의 몸이 탄환처럼 날아온다. 그 속도는 매우 빨라서, 나는 방어와 회피 이외의 선택지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안 그래도 느린 속도가 더 느려진 상태이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 초신성이 응축하고 있는 막대한 양의 마력은 그 주인인 내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칼에 마력을 붙잡아 두고 있는 한, 나는 기민한 움직임을 취할 수 없다.

그렇다고 검을 함부로 부딪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검왕검에 맺혀 있는 마력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비슷하다.

잘못 부딪치면, 잡아두고 있던 마력을 모조리 잃어 버리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저 분신에 그대로 초신성을 휘두르기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제때 맞출 수 있을까? 이 느려 터진 움직임으로?

"사제!!"

바로 그 순간,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베어 찢을 것 같았던 허유의 검이 멈춰섰다. 파비아였다.

파비아는 드물게도 검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허유의 검에 맞부딪치고 있었다.

검을 부딪친 순간 파비아의 몸이 잠시 갸우뚱거리며 옆으로 기울어졌지만, 허유의 검도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카가가가가각, 검과 검이 서로를 깎아내면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

그저 그뿐인 광경에 나는 나도 모르게 평정을 잃고 소리를 입으로 내고 말았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허유는 일개 분신이라고 해도 보통 괴물이 아니다. 코어의 리미터를 일부 해제한 내가 스페트로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도무지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였다.

그 허유의 공격을 파비아는 조금 밀리긴 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멈춰 세웠다.

삼 개월 전의 파비아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그때의 파비아는 내게도 우위를 빼앗길 정도였는데……, 니르바나 사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설마…… 또 한 사람의 파비아가 눈을 뜬 건가?

아냐, 아냐. 잠깐만, 정신 차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다시 고개를 돌린다. 파괴되었던 결계가 조금씩 수복되려 하고 있었다. 이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고, 나 역시 이 이상 마력을 붙잡아둘 자신이 없다.

콰직!! 왼발을 세게 내딛으면서 검을 휘두른다. 날 끝에 뭉쳐 있던 고밀도의 마력은 검을 휘두른 순간 섬광처럼 쏘아졌다.

빛이 달린다.

질주한다.

공간을 찢어 발기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간 고밀도의 마력은 공간 왜곡 결계는 물론, 이미 어느 정도 파괴되어 있던 첫 번째와 두 번째 결계에도 큰 데미지를 입혔다.

원기둥의 형태를 한 결계가 크게 한 번 요동친다. 불투명한 결계 전체에 균열이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파직파직파직파직!! 나는 검을 휘두르는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력으로 부딪쳐야 한다. 마력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마른 수건을 짜내듯 칼끝에 맺혀 있던 마지막 마력까지 모조리 밀어 넣었다.

쾅!! 초신성은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동반했다. 그 자리에서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검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이를 악물었다.

잔디는 불탔다.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갔다. 천공의 구름이 다시 한 번 요동친다.

그리고 공간 왜곡 결계는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과 충돌한 결과, 흔적도 없이 송두리째 부서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파괴되어 있던 첫 번째 결계와 두 번째 결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위력이 조금 부족했던 것일까. 모든 힘을 다 짜내었음에도 마지막 네 번째 결계를 돌파할 수는 없었다. 세 겹의 결계를 모두 벗겨낸 대가일까. 네 번째 결계에는 긁힌 흔적 하나 보이지 않는다.

"윽……, 하아……!!"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종료된 직후, 나는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오는 탈력감에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질 뻔 했다. 주저 앉으려던 다리에 간신히 힘을 불어 넣는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꼿꼿히 치켜든다.

무방비한 상태가 된 나의 등을 찌르기 위해서 허유가 몸을 돌렸지만, 파비아는 다시 한 번 허유의 움직임을 방해해보였다.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나와 파비아의 시선이 마주친다. 파비아가 나를 보며 소리친다.

"사제, 이 녀석은 내가……! 윽?!"

파비아는 강해졌다.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허유의 분신은 역시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 순간 파비아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뒤, 다시 한 번 나를 노린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건 나와 파비아 뿐만이 아니다. 파비아가 벌어준 그 짧은 틈을 타서 루이스와 마그누스가 간신히 공방을 따라 잡았다.

루이스가 허유의 공격을 차단하고 마그누스가 검을 내려 찍는다. 이대로 공격하면 오히려 허유가 빠져 나가지 못할 상황이라, 허유는 나를 노리는 것을 포기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파비아가 8, 나머지 두 사람이 2를 감당하는 식의 공방이었다. 명백히 파비아의 실력이 이상할 정도로 늘어난 상황이라 나는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조금 전, 파비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지금 저기에 있는 또 다른 파비아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파비아의 모습 그대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작 삼 개월의 수련만으로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가……? 도대체 니르바나 사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해불가한 파비아의 실력을 본 순간 떠오른 가설이 하나 있다. 하지만 가설을 검증하기엔 시간이 없다.

파비아가 벌어준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피어난다. 고민부터 결정까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속사고가 끝나고, 행동에 들어간다.

"대장!! 요하네스!! 일단 결계부터!!"

"……!! 알았다!!"

"루이스와 사저는 그 녀석을 계속 잡고 있어!! 선생님과 스텔라는 견제!!"

"응!!"

이때, 나는 일부러 파비아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사저라고 표현했다.

명목상 사제와 사저 관계이긴 하지만 내가 파비아에게 사저라는 호칭을 붙이는 건 드문 일이다.

파비아는 이 기묘한 사형제 관계에 꽤 애착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사제로 여기고 사저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다닐 정도로.

내가 파비아를 사저라고 불러주면, 파비아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위해서 일부러 고쳐 부른 호칭이었다.

나는 파비아의, 사저의 실력을 믿어 보기로 결심했다.

허유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스스로 등을 돌리는 선택을 골랐다. 무모한 짓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파비아라면 루이스와 힘을 합쳐서 반드시 허유의 발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느껴졌다.

몸을 돌린다. 결계를 본다. 잠시 고개를 돌린 그 사이, 결계는 다시 회복되려 하고 있었다. 그 전에 마지막 결계까지 박살내고 내부로 돌입한다.

워낙 급한 상황이라 조금 전까지 전력 외로 분류해두었던 요하네스까지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중심에 두고 제1위와 2위가 검을 치켜든다.

내가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을 쓰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두 사람은 칼끝에 강기를 발산시켰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과 검강 둘. 타이밍을 맞춰서 동시에 후려친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은 물론, 두 사람의 검강 역시 일반적인 수준의 강기를 능가하는 영역에 도달해 있다. 세 자루의 검이 동시에 같은 지점을 후려쳤다. 검을 후려친 지점을 중심으로 약 10미터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네 개의 결계를 모조리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결계 안쪽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서 골몰하던 사람들은 결계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에 놀랐는지 결계에서 떨어진 상태였다.

결계의 파괴를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루이스가 나를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남자 셋과 선생님은 그대로 돌입해! 이쪽은 나하고 파비아, 그리고 스텔라 씨 셋이서 어떻게 해볼테니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여유는 없었지만,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도 루이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연금술사를 오른손으로 안아든다. 그 와중에도 연금술사는 마법을 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연금술사와 남게 된 스텔라. 두 여자의 시선이 한 순간 교차하고, 서로 멀어진다.

네 번째 결계는 금방이라도 수복될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체할 여유가 없다.

연금술사를 안아든 내가 결계를 통과한 바로 그 순간, 네 번째 결계가 완전히 수복되었다.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인 두 특급 모험가를 마주보며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어서 움직이죠. 저쪽은 괜찮을 거예요."

"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 그리고 연금술사는 이때까지도 내 품에 안겨 있었다.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연금술사의 표정이 구겨진다.

"이해가……, 잘 안 돼……"

"뭐가요?"

"굳이……, 다급하게 돌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모두가 힘을 합쳐서 분신을 쓰러트린 후, 다시 한 번 결계를 돌파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루이스와 파비아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할 필요 없이."

연금술사가 고개를 움직여서 결계 너머를 바라본다. 그녀의 말처럼, 굳이 이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제1위와 2위 역시 일단 들어오긴 했지만 나의 판단에 조금 의구심을 느끼는 듯한 얼굴.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이 중에서 허유와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많이 마주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다.

"전 그 자식의 성격을 알아요. 우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오만하고, 또한 방심을 잘 하는 녀석입니다. 전 솔직히 그 자식이 이런 식으로 결계를 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럴 바에야 정면으로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위화감은 있었다.

우리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결계를 친 행위 자체가 내가 보아온 허유의 행동양식에 크게 어긋나는 모습이었으니까.

그 점이 조금 전부터 쭉 신경 쓰였었는데, 조금 전 파비아가 보여준 실력을 보고 어느 정도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어요. 이유가 있으니까 놈은 결계를 네 겹으로 치고, 분신까지 내보내면서 시간을 끌었던 겁니다."

"……그럼, 그 이유는?"

"아마도 파비아의 힘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연금술사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파비아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저도 파비아가 갑자기 강해진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니르바나 사원에 있는 동안 파비아는 비약적인 실력 상승을 이루어냈고, 그 파비아가 제피로스에 찾아온 직후 그 자식은 결계를 쳐서 우리의 침입을 막으려고 들었습니다. 전 이 두 가지 사실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파비아의 경우 여기에 있는 요하네스와 마찬가지로 '광기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황이다.

광기.

즉, 허유가 안정적으로 올라서 있는 그 영역에.

"놈이 차지한 보이드의 육체가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며칠이 더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파비아는 루이스의 결정으로 예상보다 일찍 제피로스에 돌아오고 말았죠. 놈이 결계를 친 건, 육체가 완성되기 전에 파비아와 맞붙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요?"

정확히는, 파비아까지 포함된 우리들의 전력을 고려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파비아 혼자서는 허유의 분신과 동수를 이루는 것이 한계이지만 그 파비아의 전력에 우리들의 힘까지 더해질 경우, 허유가 그것을 위협적으로 느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래서 결계로 시간을 끌 생각이 아니었을까.

분신을 보내면서까지.

"그래서 서두르는 거야? 조금이라도 그 녀석이 약할 때 승부를 보기 위해서?"

"네."

고개를 끄덕인다. 허유는 파비아만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조금 전의 결계가 그 증거다. 공간 왜곡 결계는 아마도 파비아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비장의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리력으로 눌러야 하는데, 파비아는 기량은 높아졌어도 출력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휘두르는 일식필살검이라면 공간 왜곡 결계라도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허유는 알지 못했다.

아마 나를 얕보았기 때문일 거다. 놈은 말로는 나를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놈은 나를 재미있는 장난감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보이드의 기억으로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일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혹은 나의 기량으로 이 정도 위력의 일식필살검을 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나.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백신아의 도움 없이 일식필살검을 쓰지도 못했을 테니까.

"놈 입장에선 오히려 곤란해진 셈이죠. 쉽게 돌파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하고 결계를 펼친 건데. 저희가 바로 부숴버리는 바람에 스스로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는 걸 드러내고 말았으니까."

우리를 가로막기 위해서 펼친 결계가 오히려 허유의 상태를 알려주고 말았다.

이것은 기회다.

내게도 허유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 준비한 한 수가 존재한다.

나와 백신아의 삼 개월이 빛을 볼 때가 머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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