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24. 합체 (3)
* * *
"백신현."
스페트로가 사라진 후, 올리비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올리비아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하루아침에 아가씨는 허유에게 빼앗기고, 가주는 스페트로에게 몸을 맡기고 모습을 감춘 상황이다. 심적 부담이 상당할 듯하다.
올리비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감은 내 꼴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연금술사는 올리비아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올리비아를 향한 감정이 좋지 않다. 올리비아는 그런 연금술사의 얼굴을 보고 또 다시 기가 죽는다. 악순환이다.
"아마 한 달 뒤에 있을 전투에서, 내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여지는 없겠지. 나보다 강한 너와 스페트로……, 그 무시무시한 존재조차 자존심을 접고 네게 협력을 요청할 정도의 강적이니까."
"그럴 거야."
올리비아의 수준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 쳐봐야 1급일 뿐이다.
특급의 괴물들조차 도저히 쫓아가지 못하고 허덕이는 전장에서 올리비아가 힘을 보탤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올리비아와 샤를로트는 상당히 친근한 사이였다. 샤를로트가 올리비아에게 품고 있는 신뢰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감정은 이해한다. 나 또한 힘이 부족해서 겪게 되는 온갖 괴로움에 익숙하니까.
어설프게 위로하는 건 역효과일 뿐이다. 그리고 올리비아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위로해봐야 무엇이 달라질까.
그리고 무엇보다, 올리비아의 가치는 가지고 있는 전투 능력 뿐만이 아니다.
"음, 역시 그렇겠지. 하지만 크게 괴롭지는 않아. 너라면 반드시 아가씨를 되찾아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페트로를 쓰러트리고 아가씨를 피의 운명에서 구해낸 너라면."
올리비아가 진지한 시선으로 내 얼굴을 응시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주님이 부재하신 동안 내가 우리 일파를 이끌게 되었다. 자주 있는 일이지. 가주님이 외팔이가 된 이후로 내가 대부분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충분히 짐작한 일이다. 란즈 가주와 스페트로 사이에 몇 시간 동안 어떠한 거래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운영하는 회사를 마구잡이로 내팽겨치고 모습을 감추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올리비아 정도면 그런 역할을 맡을 만하다. 사실상 스페트로의 일파의 2인자인 데다가 경험이나 실적도 풍부하고.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력, 정보력을 통해서 너의 싸움을 도울 생각이다. 가주님께 이미 허락은 받아 두었어. 힘이 없는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니까."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올리비아가 정장의 품안으로 오른손을 집어넣는다. 흰 장갑을 낀 오른손이 알약이 들어간 유리병을 쥐고 나왔다.
"내게 대단한 통찰력은 없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지금의 네 코어의 상태는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네가 한시라도 빠르게 코어의 상태를 회복하고 싸움에 나설 수 있도록 나도 내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건?"
"스페트로 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영약이다. 그 유명한 소림사의 대환단이나 나쟈의 핵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높은 밀도로 마력이 뭉쳐 있지. 마력의 최대치를 소폭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올리비아가 손에 쥔 유리병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또한, 과도한 수행에 의해서 코어가 손상 되었을 경우 그것을 회복시키는데 기능이 특화 되어있지. 원래 좀 더 일찍 주고 싶었는데 문외불출이라 가문의 어르신들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가문의 어르신? 전대의 사람들 말이야?"
"그래, 이쪽도 꽤 사정이 복잡하거든. 란즈 가주님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가문의 웃어른들이 계신다."
그녀는 쓰게 웃으며 내 오른손을 펴게 한 뒤, 손바닥 위에 유리병을 올려 놓았다. 그대로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서 꽉 쥘 수 있게 모양을 만든다.
"네가 준다니까 쓰기는 하겠지만, 쓰기 전에 내가 검사는 할 거야. 그래도 괜찮겠지?"
"아, 네. 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이해합니다."
연금술사는 끝까지 올리비아를 물고 늘어졌다. 내 손에 쥔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빼앗아서 흰 가운의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녀 나름대로의 검사 과정을 거친 후, 내게 복용시킬 생각인 것 같다.
올리비아는 충분히 의심 받을 만 하다고 여긴 듯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양손으로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틀어쥔다.
"백신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런 것 뿐이다……. 힘을 쓰는 일은 모두 네게 부탁할 수밖에 없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녀석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일을 겪은 건 나와 비슷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겠지.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어서 나와 시선을 맞춘다. 입술을 꽉 깨문 상태로 힘을 주어 말한다.
"아가씨를 부탁하마, 백신현……!!"
"맡겨둬, 이번에는 절대로 지지 않겠어."
사실, 내게 이런 약속을 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허유에게 두 번이나 패배한 상황이다. 잃은 걸로 따지면 오히려 첫 번째 패배보다도 더 많은 것을 잃었다.
샤를로트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한 참상을 알고 있음에도 올리비아는 내게 부탁한다고 말한다.
이때, 나는 조금 전 스페트로가 모습을 감추기 전에 입에 담았던 말을 조용히 되새기고 있었다.
스페트로는 샤를로트의 몸에서 란즈 가주의 몸으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샤를로트의 마지막 말을 전해 들었다.
샤를로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를 향한 말이었다.
두 번이나 패배한 나를 믿고 있다고,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껏 실패해본 적 없는 사람이 신뢰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연달아 실패한 사람을 신뢰하는 행위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신뢰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진 샤를로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샤를로트의 마지막 신뢰마저 배신 한다면……, 내겐 무인의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올리비아와 떨어져서 악수를 나눈다. 올리비아의 시선에서 강한 신뢰가 느껴진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중요한 건 확실하게 아가씨를 구출하고, 승리를 거두는 것이니까. 나는 네가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하마. 너의 모든 행위가 아가씨를 구하기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으니."
"그래."
악수를 나누고 손을 떼어낸다. 그런데 그때, 올리비아는 불쑥 주먹을 쥔 상태로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내밀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잠시, 나는 씩 웃으며 올리비아의 주먹에 붕대를 칭칭 감은 오른손을 부딪쳤다.
"이기자, 친구여."
"물론이지. 올리비아."
* * *
그 날 저녁이 되어서, 간신히 붕대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연금술사가 붕대를 고정한 매듭을 끊고 끝에서부터 흰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얼굴의 붕대를 풀었을 때, 나는 화상 자국 같은 검붉은 색의 흉터가 오른쪽 뺨에서 목까지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뼈와 함께 얼굴뼈도 부서진 탓에 남은 흉터이다.
심하게 흉한 꼴은 아니지만 흉터는 흉터다. 연금술사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에 드러내었다.
"아무리 네 인상이 더러운 편이라지만, 흉터는 좀 그렇네. 일이 끝나고 나면 얼른 지워야겠다. 통증은?"
"통증은 안 느껴져요."
흉터 부분의 색이 살짝 다른 걸 제외하면 심하게 일그러지지는 않았다. 응급처치가 제때 된 데다가 연금술사의 솜씨가 워낙 우수한 덕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 흉터로 그친 게 다행이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이 정도의 흉터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다.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깁스가 안쪽에서부터 파괴되었다.
오른쪽 뺨과 같은 형태의 흉터가 오른손을 비롯한 우반신 전체에 퍼져 있었다.
특히 다섯 손가락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흉터가 어느 위치에 붙어 있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오른손 전체가 흉터로 절어 있는 상태다.
다섯 손가락의 모양 하나 하나가 제멋대로 뒤틀려 있다. 원인은 당연히 허유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오른손이 걸레짝이 된 탓이다.
깁스에서 해방된 오른손을 천천히 쥐었다가 편다. 이 정도로 망가졌으면 차라리 다 떼어내고 새 걸 구해서 붙이는 편이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른손은 좀 더 재활을 하고 약도 먹어가면서 조금씩 회복하는 게 좋겠어. 관절, 인대, 어느 쪽도 엉망이 되어서 도무지 빠르게 고쳐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거든."
"부탁드려요."
크게 불만은 없다. 내가 입은 부상을 고려하면 이 정도로 회복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
백신아와 연금술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여기에서 끝이 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삐걱삐걱 움직이는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풀어 나간다.
모양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검을 쥐는데는 크게 문제 없다. 당장이라도 검을 쥐고 휘두를 수 있을 것 같다.
"코어는 좀 오래 두고 회복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런 시간은 없지?"
"네, 원래라면 몇 주는 회복해야 기능이 돌아오겠지만…… 열심히 해서 빨리 회복해야죠."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부여잡는다. 아직도 따끔따끔한 통증이 있다. 지금의 내게 과분한 힘을 무리하게 휘두른 대가였다. 한계라는 건 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한계라고 불리는 것이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요하네스에게 전수 받은 심법으로 호흡을 다스린다. 그가 전수해준 심법 덕에 그래도 코어의 기능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겐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와 백신아도 그를 도운 건 마찬가지인 만큼, 서로 한 번씩 도움을 주고 받은 셈이다.
깁스를 푼 직후인 탓에 내 몸이 내 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움직임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며칠 움직이다 보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되겠지.
연금술사가 고개를 돌린다.
"올리비아가 준 그 약, 지금 검사 중이야. 검사 해 보고, 크게 문제가 없으면 먹어보고 효과를 한 번 보자. 코어를 회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게 진짜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네."
시선을 돌린다. 실험용 테이블 위에 올리비아에게 건네 받은 환약이 있다. 지금은 성분을 검사하고 있다.
연금술사가 올리비아에게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불신은 올리비아를 비롯한 스페트로 가문의 자업자득이었다.
그녀는 올리비아만 불편해 하는 게 아니라 샤를로트를 제외한 스페트로 가문의 인간 모두를 싫어하는 거니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건 연금술사가 아니라 나였지만, 그녀에게 그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이제 어쩔 생각이야? 성분 검사가 끝날 때까지, 재활 운동?"
"네, 그래야죠. 굳어 있는 근육을 조금이라도 더 풀어둬야 하니까."
허유와 맞서 싸우기 위한 방법으로, 백신아는 합체를 제시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새로운 전략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수행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배움이 빠를 뿐.
연습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난 바로 그때,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또 누구지? 이런 시간에 찾아올 만한 사람은 드문데.
고개를 돌린다. 코어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상태인 나는 문 바깥의 풍경을 살펴볼 수 없다. 하지만 연금술사와 백신아는 다르다.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문 바깥으로 향한다.
연금술사가 나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인 내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문이 열렸다. 눈이 열린 순간 나타난 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제2위, 그리고 제3위의 특급 모험가.
마그누스와 스텔라가 문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샤."
"일은 다 끝마쳤나보네."
"네, 다행히 특급 재해 중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건 없었던지라 안전하게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연금술사와 스텔라가 인사치레를 나눈다. 스텔라의 등 뒤로 그녀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큰 마그누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나를 보고 환히 웃으며 인사를 하려다가, 화상 자국처럼 커다란 흉터가 남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텔라도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도중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들의 표정이 무거워진다.
마그누스와 스텔라, 이 두 사람은 허유의 출현 이후로 전국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특급 재해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제피로스를 잠시 떠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도시에서 떠나 있던 그 사이에 나와 허유가 다시 한 번 충돌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을 거다.
그들을 소파에 앉히고 내게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마그누스와 스텔라는 스페트로의 이름이 나온 순간 표정을 찡그렸다.
몇 달 전, 그들은 란즈 가주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스페트로와 맞서 싸우고 패배한 전적이 있다. 불편한 기억인지 두 사람 모두 한 순간 평정이 흐트러졌다.
모든 이야기를 경청한 뒤, 마그누스는 그 사이에 식은 커피를 들이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특급 재해들을 처리하는 김에 해외의 사정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제,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한 기파가 느껴지더라고. 틀림없이 그 존재가 다시 나타났다는 신호가 아닐까 싶어 서둘러 돌아온 거야."
역시, 제피로스에서 꽤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나.
허유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새삼 실감된다.
자세한 건 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어쩌면 허유의 재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에 충격파가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옆자리에 앉은 연금술사가 고개를 들어서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니르바나 사원에서 수련 중인 두 사람도 혹시 그 충격파를 느꼈을까?"
* * *
"루이스 언니."
파비아가 오른손을 들어서 멀리서 수행 중인 루이스를 찾았다. 하지만 루이스는 대답이 없었다.
현재, 두 사람이 있는 장소는 통상의 수십 배의 중력이 내리 꽂히고 있는 초중력 지대. 니르바나 사원에 존재하는 온갖 시설 중에서도 특히 가혹하기 그지없는 시설로 유명한 장소이다.
단기간에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두 사람은 일부러 가혹하기 그지없는 시설만을 찾아서 수행하고 있었다.
고중력 지대는 온도가 몹시 뜨거워서 두 사람도 옷차람이 제법 가볍다. 파비아는 배를 드러내는 탱크톱에 핫팬츠. 루이스도 검은 민소매를 입고 있다.
"루이스 언니이~"
파비아가 다시 한 번 루이스의 이름을 불렀지만, 루이스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고중력 지대의 부하를 견디면서 루이스는 초식 전개에 여념이 없었다. 정확성과 집중력을 크게 기르는 훈련이다.
특급의 영역에 있는 두 사람에게도 고중력 지대의 수행은 지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파비아도 루이스도 전신이 땀으로 절어서 머리카락이 피부에 찰싹 붙어있다.
"사제한테 안 찾아가도 돼……?"
사제, 루이스는 그 단어가 나온 순간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파비아가 지금 어제 니르바나 사원 전체를 쓸고 지나간 무형의 충격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도 거대한 그 충격파의 정체를 두고 니르바나 사원 내에서도 온갖 왈가왈부가 오갔다.
두 사람은 니르바나 사원에 존재하는 수행자 중에서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파비아는 쭉 사제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그 충격파의 원인은 허유일 것이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파비아의 사제와 충돌했을 테니까.
그때 이후로 파비아는 수행에 영 집중하지 못했다. 약속한 수행 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음에도 니르바나 사원을 나가고 싶은 표정을 하고 있다.
고중력 지대, 루이스는 어마어마한 압박을 견디며 천천히 검을 아래로 내렸다. 고개를 돌린다. 루이스의 표정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가혹한 수행 내용이었다.
"안 돼. 지금 가 봐야 승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워."
"그치만……"
"그래도 안 돼. 애초에 그 충격파는 어제 발생했어. 이제 와서 찾아간들 의미가 없을 거야."
루이스는 놀라울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태도라는 사실을 파비아는 알고 있었다. 불평을 하면서도 루이스의 의지에 거역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리고 신현이는 죽지 않았어."
"어, 그걸 어떻게 알아?"
"여기로 알 수 있잖아."
루이스가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스스로의 복부에 가져갔다. 코어가 있는 위치였다. 코어의 위치는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이고, 루이스의 코어는 명치보다 살짝 아래, 하복부에 위치했다.
"우리의 코어는 마력으로 이어져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코어가 크게 손상되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움직이고 있어. 이건 신현이가 무사하다는 뜻이야."
손바닥으로 천천히 하복부를 문지른다. 루이스의 태도에서는 묘한 온기가 느껴져서, 파비아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남은 수련을 다 끝내고 돌아가자. 결전의 날까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