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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49화 (149/287)

〈 149화 〉 17. 가면 검사 (6)

* * *

"……."

그리고 그때, 마그누스의 시선이 나의 왼쪽 어깨에 잠시 머물렀다.

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마그누스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맙소사."

영문 모를 한숨이었다.

* * *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마그누스와 스텔라는 스페트로 가문을 둘러싼 사건 이후로 많이 친해졌는지, 이젠 개인적인 스케줄도 같이 다니는 거 같다.

근데 마그누스 유부남 아니었나? 저렇게 여자하고 같이 다니면 가족들이 뭐라고 안 하나?

남의 집안 사정이니까 내 알 바는 아니지만.

파비아는 연금술사의 곁에 네 다리로 누운 채, 손님들의 얼굴을 살펴보는 중이다. 최근 들어서 나와 좀 친해지긴 했지만 파비아는 낯을 많이 가리는 데다 경계심도 높은 성격이다.

마당을 지키는 용맹한 강아지처럼 언제라도 달려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마그누스는 못 보던 얼굴을 발견하고 쓰게 웃었다.

"가족이 늘었나보군."

"네, 함부로 건드리면 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진담으로 들었는지 마그누스의 어깨가 움찔한다.

"……."

스텔라도 은근히 파비아에 관심이 있는 눈치였지만 그 말을 듣고 슬금슬금 팔을 거둔다.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귀여운 파비아에게도 위험한 부분이 있다.

스텔라가 나와 연금술사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본 뒤, 조용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랬군요. 백신현 씨, 당신이 바로 그 소문의…… 가면 검사."

"그쪽까지 소문이 퍼진 겁니까?"

"네, 전 뒷세계에도 정보원을 많이 두고 있으니까요."

스텔라의 시선이 내 왼쪽 어깨에 고정되었다.

"물론…… 그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실력만 따지면 뒷세계를 호령할 만 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면 검사는 외팔이고. 제가 기억하는 그쪽의 마지막 모습은 양팔이 모두 제대로 붙어 있는 모습이었으니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스페트로 가문을 둘러싼 사건에서 몇 달 지나지도 않았잖아."

마그누스는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나의 왼쪽 어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상상력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해답을 끌어낼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요. 말로 설명하긴 좀 기네요."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그 가면 검사 찾으러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그럼 뭐, 목적은 이루셨네요."

"원래는 너하고 연금술사한테 물어보려고 온 거였거든. 너도 따지고 보면 뒷세계 출신이고, 쟤도 뒷세계랑 연이 깊으니까."

마그누스와 나와 연금술사에게 번갈아서 턱짓한다.

그 후, 내 얼굴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설마 이런 식으로 김 빠지게 가면 검사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긴, 이 좁은 동네에서 너나 루이스 말고 또 다른 괴물 같은 녀석이 튀어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안 되지."

나도 어쩌다 보니 특급의 영역을 초월한 초인들하고 엮이게 된 거지, 원래 특급 수준의 실력자는 정말 한 줌의 적은 숫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이 제피로스의 지하 투기장에서 넘버원을 차지하고 있던 선수조차 특급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기에는 부족했다.

가면 검사가 특급 수준의 실력자와 부딪치기 시작한 건 이곳의 지하 투기장을 재패한 후, 타 투기장의 최강자들이 도전해오면서부터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마그누스도 설마 내가 그 짧은 기간 동안 한쪽 팔을 잃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하게 된 거 같다.

마그누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나하고 스텔라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그거거든. 만약 그 외팔 검사가 진짜 너라면, 넌 정말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게 틀림없다고. 진짜로…… 10% 미만의 확률이라고 생각했는데."

별의별 일을 다 겪어본 그들의 기준에서도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되는 걸 보니.

"우리가 떠난 후에도 고생이 많았겠구나."

"네, 뭐. 꽤 고생했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로써 그들의 용건은 모두 끝난 셈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겨우 그런 걸 알아보기 위해서 이 두 사람이 세트로 다니며 여기까지 찾아왔을 리가 없다.

굳이 가면 검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죠? 가면 검사를 찾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은근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마그누스가 먼저 헛기침을 하며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 맞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가면 검사에게 크게 관심은 없었어. 나는 양지의 사람이고 가면 검사는 음지의 고수 아니냐. 함부로 관심을 가졌다간 서로 손해밖에 안 볼 게 뻔하니까."

"그럼……?"

"하지만 1위가 가면 검사에게 도전할 예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1위…… 그가 가면 검사에게 도전할 예정이라고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현존하는 최강의 특급 모험가, 그가 가면 검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마그누스가 턱을 살짝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여기에 있는 스텔라가 가져다준 정보야. 녀석은 내가 머지 않아 다시 한 번 비무를 신청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 그 전에 감각을 다잡기 위해서 혜성처럼 등장한 음지의 절정고수인 가면 검사에게 승부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하더군."

"확실히 그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이네요."

나는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제1위의 인물상을 떠올렸다.

특급 모험가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한 초인이지만, 그런 탓에 일반인과 구별되는 유별난 감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감성이 필요하다.

유독 특급 모험가 중에 괴짜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그누스와 루이스를 제외하면 죄다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 있는 듯한 부분이 있고, 그건 특급의 필두에 서 있는 제1위도 마찬가지다.

진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지만, 이따금씩 일반인과 비틀린 감성을 보여줄 때가 있다.

수단과 방법에 구애되지 않는 듯하면서도 스스로의 '규칙'에 철저한 면모가 있다.

"근래 들어 수상한 사람이 대결을 신청하진 않았나? 사실 이게 궁금해서 가면 검사를 찾아다녔던 거야. 1위가 나를 의식하는 만큼, 나도 1위를 의식하고 있으니까."

"있었어요. 그것도 오늘."

"뭐라고……?!"

마그누스가 깜짝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무늬가 없는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고, 체격은 저와 비슷한 정도. 그리고 마력은 스페트로나 마그누스 대장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죠. 듣자하니 진 노인의 소개로 지하 투기장에 소개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진 노인이라면……, 그렇군. 그 노인인가. 틀림없어. 그 검은 가면의 검사가 1위다."

그는 이미 반쯤 확신한 말투였다.

"일주일 뒤에 대결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죠. 늘 하던대로 지하에서 싸우면 투기장이 남아 나지 않을 테니까."

"……크게 놀라지 않는 걸 보면, 너도 짐작하고 있었던 거냐?"

"확신은 없었지만요."

사실,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천하가 넓다 한들 스페트로와 마그누스에 버금가는 고수가 흔히 나타날 리 없다.

날카로운 송곳은 아무리 교묘하게 숨기더라도 드러나는 법이다.

그 정도의 실력자가 지금까지 소문 하나 없이 음지에 숨어 있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기다가 그는 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가 양지 출신이라고 단정 짓는 건 위험하지만, 최소한 정체가 드러나서는 곤란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추측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어쩌면 그가 특급 모험가의 필두에 서 있는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백신아에게 일러준 전략도 그 '조'가 정체가 알려져서는 곤란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생각해낸 전략이다.

마그누스의 정보는 나로 하여금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지금의 네 실력은 아마 특급 모험가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수준일 거다. 그런 수준으로는 도저히 1위와 합을 나눌 수 없어. 너도 그 사실은 알고 있겠지……."

"맞아요. 그러니까 제가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그렇군. 가면 검사의 정체는 네가 아니었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그누스의 눈동자가 한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검을 향해 움직인다.

"가면 검사의 정체는…… 지금, 저기에 있는……."

마그누스의 시선이 한 순간 검왕검에 머물렀다가 떨어진다.

"네 검의 실력은 나도 알고 있지. 절대적인 마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호각 이상의 전투를 보여주었으니까. 확실히 1위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어……."

그는 스스로 납득하는 듯 하면서도, 뭔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1위의 특급 모험가와 마그누스는 오랜 경쟁 상대였다.

마그누스가 1위를 목표로 하듯, 제1위도 끝없이 쫓아오는 마그누스를 따돌리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노력을 거듭해왔다.

그는 지인으로서 나를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제1위가 파비아에게 쓰러지는 것을 우려하는 마음을 복합적으로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제1위의 실력은 대단하지만, 파비아의 실력이라면 그에게 닿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음, 신현아."

"네, 말씀하세요. 대장."

"너희가 제1위하고 맞붙기 전에 '저 친구'하고 한 번 검을 부딪쳐보고 싶은데, 허락해줄 수 있겠냐."

그의 시선이 다시금 검왕검에 향한다.

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본인에게 부탁해야 하는 문제죠."

"그런가. 그럼…… 그 친구에게 부탁할 수 있을까?"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 내가 일일이 대답해줄 필요도 없었다.

마그누스의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백신아는 눈을 빛내고 있었으니까.

『검주, 그렇게 하죠! 할래요! 하고 싶어요! 저 좀 시켜줘요!』

본인의 의지는 확고했다.

나는 마그누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본인은 괜찮다네요."

"좋군, 바로 일어나지."

* * *

빈집촌의 부지에는 남는 자리가 많았다.

애초에 사람이 그다지 다니지 않는 구역이라 민간인의 피해를 우려할 필요도 없다.

규격외의 초강자들의 대결에 매우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마그누스는 자기 키만한 대검을 양손으로 쥔 채, 백신현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의 반대편에 가면을 쓴 백신현이 서 있다.

아니,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백신현이 아니다.

가면 검사라는 이름의 음지 최강의 초고수일 뿐.

현역 제2의 전사와 음지 최강의 남자의 대결치고는 구경꾼이 적은 게 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 스텔라가 서 있고, 연금술사는 파비아의 옆구리에 등을 기댄 자세로 편하게 앉아 있다.

"루이스에게 못 보여주는 게 조금 아쉽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가우우아."

파비아가 기분 좋은 듯한 목소리로 울었다.

루이스도 밤낮 없이 일하다 보니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연금술사는 지금의 비무가 끝난 후 루이스를 데려와서 다시 요구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백신현과 마그누스, 그리고 백신아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사소한 것에 구애되지 않는 성격이었다.

"있잖아요, 아이샤."

"……."

그때, 스텔라가 연금술사를 돌아보며 그녀의 본명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들은 채도 하지 않는다.

그녀와 스텔라는 같은 곳에서 수학한 동기였지만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인연보다는 악연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이다.

"아직도 그때 일로 원망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아냐.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연금술사가 차갑게 대답했다.

급격하게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파비아도 의문을 느꼈는지 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현이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한 건 용납 못해. 신현이야 그런 걸 깊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 넘어간 모양인데, 난 좀 쪼잔하거든."

"……그건."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다.

회동에서 벌어졌던 비무.

란즈 가주의 몸을 차지한 스페트로를 상대로 패배한 백신현의 앞에 나타나서,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협박을 하려 했던 스텔라의 행적을 연금술사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탓에 백신현은 그때 일을 잊어버린 것 같지만 연금술사는 다르다.

백신현은 잊어도, 연금술사는 잊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아는 척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연금술사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샤에게 저 아이…… 백신현 씨는 어떤 존재죠?"

"제자, 조수, 안는 베개, 멍청이. 그리고 내버려둘 수 없는 아이."

"일단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할게요."

스텔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사는 스텔라의 질문을 대부분 무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백신현에 대한 화제만 나오면 유독 말이 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스텔라는 문득 마그누스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들릴락말락한 희미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있잖아요, 아이샤."

"……."

"이건 저보다 먼저 사랑을 알게 된 선배에게 하는 질문인데요……. 사랑을 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이죠?"

"…………, 응?"

그때, 연금술사의 시선이 스텔라를 향해 획 움직였다.

마그누스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스텔라의 뺨이 희미하게 붉어져 있었다.

연금술사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지진이 일어났다.

제2위의 특급 모험가, 마그누스는 이미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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