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화 (2/287)

〈 2화 〉 1. 마검님이 보고 계셔

* * *

"……뭐야, 이게 왜 뽑혀."

내가 뭘 잘못 본 줄 알았다.

힘껏 뽑아냈던 검을 도로 집어넣은 뒤, 다시 한 번 힘을 주고 당겨본다.

기다렸다는 듯 쭉 뽑혀 나온다.

이거, 왜 이렇게 잘 움직이냐.

너무 잘 빠져서 오히려 검집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을 지경이다. 검을 다시 검집으로 돌려놓은 후, 루이스를 스윽 흘겨본다.

이거 혹시 그냥 잘 뽑히는 건데 일부러 안 뽑힌다고 장난을 친 건가?

하여튼 한 번을 곱게 안 넘어간다니까.

장난기 하고는.

"어, 뭐야. 야, 잠깐잠깐! 그거, 그거 지금 뽑힌 거 맞아? 진짜로?!"

그런데 뭐야, 이것도 아닌가?

루이스의 표정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발연기로 유명한 애가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놀란 모습을 연기할 수 있을 리는 없고.

그럼 진짜로, 루이스가 힘을 줘도 뽑아내지 못한 검을 내가 뽑아낸 거라고?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한편, 루이스는 반쯤 출타해있던 정신머리를 간신히 다잡은 후, 내가 뽑아낸 검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뽑힌 거 확실하지……?"

"그런 거 같은데."

루이스는 다시 내게서 검을 받아간 뒤, 힘을 주고 뽑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관자놀이에 힘줄이 올라올 만큼 얼굴을 붉히고 힘을 주어도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힘을 다 쓰고 엎어진 루이스에게서 다시 검을 돌려받았다.

"뭐야 이거, 도대체 왜 이래?"

"그러게. 도대체 뭘까."

나는 테이블에 철푸덕 엎어진 루이스를 바라보며 보란 듯이 검을 뽑아냈다. 나도 도대체 이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는 특급 모험가가 뽑아내지 못했다는 건 완력으로 뽑아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라는 소린데, 그럼 도대체 뭐지?

루이스가 짐작한 것처럼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뽑아내지 못하는 기능이 붙어 있는 건가?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물건을 발견한 걸지도 모르겠다.

가져온 건 루이스지만.

호흡을 천천히 고르면서 몸을 일으킨 루이스는 손가락 끝으로 검집을 찔러대며 말했다.

"근데, 근데 있잖아. 내가 잘못본 걸수도 있는데."

"왜?"

"네가 처음 검을 뽑았을 때…… 검이 알아서 움직인 거 같지 않았어? 네 팔은 가만히 있다가 검이 올라오니까 거기에 같이 딸려서 올라오고."

그 말을 듣고 조금 전의 풍경을 복기한다.

확실히,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내 의지로 검을 뽑아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검이 저절로 검집에서 밀려 올라오면서, 그것을 쥐고 있던 내 팔까지 함께 올라온 듯한 느낌.

루이스가 영 탐탁치 않은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위험한 무기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네가 보기엔 어때?"

"……그래도 나는 한 번 살펴보고 싶은데."

나는 살짝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사용자의 몸을 멋대로 조종하는 기능을 가진 마검, 마도구 등의 일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이게 정확히 어떤 무기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까.

"일단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감정부터 해보자. 나도 감정은 할 줄 알지만, 솔직히 내 실력으로 감정할 수 있을 만한 물건 같진 않거든."

내 마력의 문제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만큼 내 능력의 한계는 꽤 명확하게 그어져 있다.

"감정이라."

루이스는 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한 뒤, 발끝으로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럼 지금 당장 찾아가 볼래?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뭐, 괜찮을 거야. 그 사람은 오히려 지금 같은 늦은 밤이 활동 시간이잖아."

"하긴, 올빼미형 인간이었지.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겠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 사람이란 당연히 이 도시에서 제일 가는 실력을 가진 감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연금술사의 공방이 있었다.

* * *

"여기는 어째 올 때마다 좀 으스스하다……."

아직 날이 뜨거운 계절인데, 루이스는 맨살이 드러난 팔뚝을 문지르면서 몸을 떨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비슷한 기분이다.

그래도 나는 꽤 자주 다닌 덕에 좀 낫긴 한데, 그래도 소름이 돋는 건 마찬가지다.

연금술사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감정사였지만, 성격이 괴팍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그녀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돈도 많은 사람이 왜 이런 시궁창에서 지내는지 몰라. 아무리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한다지만.

술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너저분한 뒷골목에 연금술사의 공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손을 대기만 해도 병균이 옮을 것 같은 비위생적인 문을 발로 걷어찼다.

밤잠은 없는 사람이지만,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이라 이 정도 소리는 내줘야 부를 수 있다.

잠시 후, 문이 알아서 열렸다.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건 연금술사 본인이 아닌,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고약한 담배 연기였다.

"어휴."

루이스가 가볍게 손가락을 퉁긴 순간 불현듯 불어온 바람이 흰색 연기를 그러모아 공방 바깥으로 날려 보낸다.

지독한 담배 연기가 사라진 그 자리에 작업대에 앉아서 골몰하는 연금술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현관까지 걸어오는 것도 귀찮아서 마법으로 문을 열어준 모양이다.

입에는 뿌리까지 타들어간 담배가 물려 있다.

"별일이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

그녀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우리더러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자리라고 해도 그냥 카펫이 깔린 바닥이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털썩 주저 앉았다.

그녀가 앉은 의자는 앉은 자리에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방향만 바꿔서 우리를 돌아본다.

짧은 원피스 위에 새하얀 가운 한 벌. 허리까지 내려오는 곧은 적발. 보석처럼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

이렇게 보면 얼굴은 참 괜찮은 사람이지만 연구 이외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매마른 성품인데다가 걸핏하면 나를 가지고 실험을 해대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보니까 이제 막 일어나셨네. 도대체 몇 시에 주무셨길래 이런 시간에 일어나는 겁니까?"

"어제 좀 안 풀리는 문제가 있어서 밤을 샜더니."

그래서 그런지, 눈가에는 기미가 가득하고 말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그림자처럼 하품이 따라다닌다.

좀 적당히 하지.

아무리 불로의 몸이라지만 너무 몸을 막 쓰는 거 아닌가.

그녀는 눈가를 손등으로 부비면서 질문했다.

"아, 근데 신현이 너 분명 상급 모험가 자격 검정 시험 본다고 수도로 올라갔을 텐데, 합격은 하고 돌아온 거야?"

"떨어졌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연금술사의 시선이 나를 향해 움직였다.

"시험 준비한다고 열심히 하더니, 안 됐네."

연금술사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부엌에서 냉수가 담긴 컵이 날아왔다.

"두 사람 모두 술 냄새가 나네. 일단 그거부터 마시고 있어."

무성의한 태도였지만 이것도 연금술사 기준에선 나름 신경을 쓴 행동이다.

평소였다면 찬물은커녕 말도 제대로 안 붙여줬을 거다.

나와 루이스를 자리에 앉힌 상태로 연금술사는 잠시 동안 기존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잊고 있던 일을 떠올린 듯한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신현이 너. 처음 보는 칼을 허리에 차고 있네. 보통 물건은 아닌 거 같은데, 한 번 봐도 괜찮을까."

"괜찮아요. 안 그래도 이거 때문에 온 겁니다. 선생님에게 감정을 좀 부탁드리고 싶어서."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집째 뽑아서 내밀었다.

연금술사는 내가 내민 검집을 마력을 통한 염동능력으로 가지고 갔다. 날아온 검집을 공중에서 캐치한 뒤 품평하는 듯한 시선으로 검을 훑어본다.

그녀 역시 검집의 잠금쇠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는 특별한 표정 변화도 없이 검을 돌려주며 말했다.

"신기한 물건이네. 어디에서 주워온 건지 묻고 싶은 걸."

루이스가 스스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주워온 거예요."

그 뒤, 루이스는 내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연금술사에게 전달했다.

조금 멀리까지 나갔던 몬스터 토벌전에서 이 물건을 습득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누구도 뽑아내지 못했던 검을 내가 뽑아냈다는 것까지.

나는 연금술사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검을 뽑아내보였다.

연금술사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신기하네. 검을 뽑을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준비되어 있는 걸까."

"하지만 전 아직 이 검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도대체 뭘 기준으로 해서 검을 뽑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니까."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연금술사는 마력을 써서 검을 가져갔다. 거의 강탈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알았어. 내가 한 번 감정해보지 뭐. 보수도 안 받을게. 너하고 내 사이이니까."

알아서 찾아온 흥미로운 수수께기에 연금술사의 눈이 위험한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저도 옆에서 도울게요. 선생님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빠를 겁니다."

연금술사는 감성이 보통 사람하고 어긋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걸 옆에서 붙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잘못했다가는 검을 통째로 못 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있다.

"신현이 네가 함께 해주면 나도 편리하지. 몸 쓰는 일은 네 전문이니까."

연금술사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괴짜가 으레 그러하듯, 그녀 역시 스스로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