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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화 (프롤로그) (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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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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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떤가?"

"그게, 면접관님들이 내린 결론입니까?"

면접관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력이 높고 판단력도 괜찮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센스가 있어. 하지만 이 일은 자네하고 맞지 않네.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군."

어째 말의 앞뒤가 안 맞다.

모름지기 모험가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사고력하고 판단력 아닌가. 거기에 센스까지 있다면서, 도대체 나보고 왜 모험가를 하지 말라는 거지.

"아무리 잘 해봐야, 마력을 다루지 못해서는 쓸모가 없네. 아무리 우리 일이 사람을 사지에 들여보내는 일이라고는 해도, 마력을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자격증을 넘겨줄 수는 없네."

"하지만."

"잘 생각해보게. 설령 자네가 합격해서 자격증을 가져간다고 해도, 아마 자네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거야. 안타깝지만, 세상이라는 게 다 그런 걸세. 이것도 마력 없이 여기까지 올라온 자네의 능력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야."

살살 달래는 목소리. 하지만 숨겨진 의도는 명확했다.

사실상의 불합격 통보였다.

"이건 내 명함일세. 혹 자네의 체질이 개선되거나, 다른 일이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나를 찾아오게. 일자리 정도는 내줄 수 있으니."

번들번들한 명함 한 장을 내밀며 눈짓으로 쫓아내는 면접관을 뒤로 하고 건물을 나선다.

제227기 상급 모험가 자격 검정 시험.

최종 시험까지 살아남은 다섯 명의 지원자 중, 합격하지 못한 건 나 뿐이었다.

* * *

"네가 합격해서 돌아오면 이 샴페인을 딸 생각이었는데."

"미안하게 됐다."

술집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던 샴페인을 조용히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았다.

술은 잘 모르지만 귀한 물건이라는 건 알겠다. 라벨부터가 금박으로 해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으니까.

내가 합격해서 돌아오기만 했어도 기쁜 마음으로 마개를 딸 수 있었을 텐데, 그 맛을 생각하니 아직 술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속이 쓰리다.

시험에서 떨어져서 가장 아쉬운 건 나 자신이었지만, 이 친구 역시 나 못지않게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이 친구의 얼굴을 보기가 조금 껄끄럽다.

바쁘디바쁜 특급 모험가께서 나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얼만데, 보란 듯이 최종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으니까.

"마력을 쓸 줄 모른다고 떨어졌다고? 마지막 시험까지 살아남았을 정도면 솔직히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텐데."

"면접 때도 그렇게 말했는데 안 통하더라고."

"하여튼 높으신 분들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니까."

요란스런 제스쳐에 옆으로 틀어 묶은 금발이 치렁치렁 흔들린다.

이 여자의 이름은 루이스. 이 도시에서 손꼽이는 특급 모험가 중 한 사람으로 나와는 무척 오래 알고 지낸 절친한 사이였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직후 알게 된 사이니까, 이제 거의 10년쯤 됐나.

그래, 이 세계에 떨어지고 10년.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그래서 신현이 넌 이제 어쩔래? 다음 번에도 도전할거야?"

"어차피 다음 번에 도전해서 마지막 시험까지 가도 또 떨어질 게 뻔하잖아. 마력 못 쓴다고."

나는 유리잔 위에서 넘실거리던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 뒤 혀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도전을 하더라도, 이 체질부터 개선하고 시작하려고."

"체질이라……."

언젠가는 다시 도전하게 되겠지만, 이 꼴로 다시 도전해봐야 같은 이유로 떨어질 게 뻔한 상황이다. 쓸데없이 같은 고생을 여러 번 겪고 싶지는 않다.

이곳은 검과 마법, 그리고 몬스터가 지배하는 판타지 세상이지만,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마력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처럼 마력을 다룰 수 없는 체질을 타고난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 체질을 고치지 않는 이상 몇 번을 도전해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치고 싶다고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체질이었음, 나도 이 나이 먹을 때까지 이러고 있진 않았겠지.

어지간한 약이나 수술로 개선하는 건 꿈도 못 꾸고, 최소한 나쟈의 핵 정도쯤 되는 고순도의 마력 덩어리를 흡수해야 보통 사람 정도의 체질이 될까 말까다.

혹은 저 멀리 있는 산의 스님들이 몇 년에 걸쳐서 겨우 한 알 빗어낸다던 대환단 정도면 효과가 있을까.

"요전번에 경매로 나쟈의 핵이 출품된 적이 있었는데, 한 이 정도 가격이더라고."

루이스가 글씨를 꾹꾹 눌러쓴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어디 보자, 이게 0이 몇 개냐.

하나, 둘, 셋, 넷…….

"……미친 거 아냐?"

"그렇지?"

나는 물론이고, 특급 모험가인 루이스조차 몇 년을 개처럼 일해야 겨우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액수가 쓰여 있었다.

이것도 그나마 최저가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경매에 출품돼서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두 배, 세 배 정도의 상승률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가격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겠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공급이 지나치게 떨어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이 쓰면 체질 개선 효과 정도로 그치지만, 멀쩡한 체질의 사람이 섭취하면 마력의 최대 용량을 늘릴 수도 있으니까.

천금을 줘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루이스가 질색하는 얼굴로 혀를 내둘렀다.

"네가 이거 사려면 복권이라도 당첨돼야겠다."

"한 서너 번은 당첨돼야 나올 액수 같은데."

말했다시피, 이것도 최저가에 불과하고.

삐뚤어진 표정으로 투덜거리자 루이스가 킬킬대며 웃는다. 얘는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 게 그렇게 재미날까. 술은 내가 홀짝이고 있는데, 취하기는 얘가 취한 거 같다.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이야?"

"중앙에 시험 치러 올라간다고 아르바이트 휴가 냈었으니까,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야지. 한동안은 돈이나 좀 모으면서 체질 개선 플랜이나 좀 짜봐야겠다."

조금 전에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내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험해보고 있는 일이 있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고작 열 자리의 숫자가 내게 제시한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

이야기를 들었는지, 주인은 내가 별도로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서비스라며 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다지 강한 술도 아닌데 뜨거운 기운이 속에서 훅 올라온다.

주량에는 자신이 있는 편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취기가 오르는 속도가 빠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몇 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손으로 받치고 있던 머리가 스르륵 미끄러진다. 쿵, 테이블 위에 이마가 부딪치는 소리.

조금 아프다.

"취했어?"

"아니."

이마를 문지르면서 상반신을 일으킨다. 다행히 깨지거나 부딪친 물건은 없었다. 하지만 실수는 실수. 내 멘탈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싶어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솔직히."

술기운일까. 머릿속이 빙글빙글 꼬이는 기분이다.

나는 턱을 괴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사고력도 높고, 판단력도 좋다고 칭찬해줄 거면 그냥 합격시켜주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최전선에서 몬스터와 맞서 싸워야만 모험가인 건 아니잖아. 후방에서 머리 굴려가며 플랜 짜는 것도 모험가가 해야 할 일인데, 그냥 좀 합격시켜줘도 됐을 것을……"

떨어트릴 거면 칭찬이라도 해주지 말던가.

비아냥대는 거 같아서 기분이 더 더러웠다.

아니, 이건 그냥 받아들이는 내 심성이 꼬여 있는 건가.

"취했네."

"안 취했어. 딱 이렇게만 말하고, 그만 말할 생각이거든."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주인이 내밀어준 찬물을 받아서 꿀꺽 삼켰다. 냉수를 들이키고 나니까 그나마 머리가 좀 맑아진다.

그래, 투정은 이 정도까지만 할 거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얼른 멘탈 잡고 정신 차려야지.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붙잡기 위해, 나는 일부러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그 와중에 내 시선에 걸린 것은 루이스가 한쪽 벽에 짐과 함께 비스듬히 세워둔 두 자루의 검이었다.

"근데 지금 저기에 처음 보는 검이 보이는데, 저건 또 뭐냐? 이번에 한 자루 새로 장만한거야?"

"아, 저거?"

루이스의 시선이 획 돌아간다.

한쪽 벽에 세워진 두 자루의 장검. 둘 중 하나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루이스의 애검이지만 다른 한쪽은 처음 보는 물건이다.

조금 오래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묘하게 고급진 모양새.

혹시 검을 바꿀 생각인가 싶어,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네가 시험치러 간 동안 나는 몬스터 토벌 의뢰를 받고 좀 멀리까지 나갔었거든? 거기에서 주운 물건이야."

"장식용인가?"

"그게 아니라……."

내가 흥미를 느낀 눈치를 보이자 루이스가 손짓만으로 멀리 놓여있던 검을 가까이로 가져왔다.

날아온 검을 공중에서 낚아챈 뒤, 검집의 잠금쇠에 엄지를 가져간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

루이스의 엄지 손가락이 굽어지고, 손등에도 힘줄이 돋았지만 검집의 잠금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경련조차 않는다.

안쪽에서 붙잡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했다.

"고장난 건가?"

"나도 그런 줄 알고 힘으로 억지로 뜯어내보려고 했었거든, 그런데 그것도 안 되더라구."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이상하지."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일반인의 말도 아니고 특급 모험가가 힘을 줬는데 안 뽑히는 검이라.

특급 모험가의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다.

"나 말고 다른 모험가들도 한 번씩 손을 대 봤었는데 결국 아무도 못 뽑았거든. 습득물 분배하는데 아무도 안 챙기려는 눈치라서 내가 냉큼 가져왔지. 연금술사 선생님한테라도 맡겨서 감정이라도 해보려고."

"내가 한 번 봐도 돼냐. 나도 연금술사 선생님한테 어깨 너머로 배운 게 좀 있어서, 감정은 좀 할 줄 아는 편인데."

"응, 마음대로."

루이스가 내미는 검을 받아 들어 살펴본다.

나도 연금술사에게 일을 배운 가닥이 있어서 검을 들고 이리저리 뜯어보는데, 특이한 부분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어딜 봐도 그냥 낡은 검으로밖엔 안 보이는데 이게 특급 모험가조차 뽑아내지 못할 정도로 까다로운 물건이라 이건가.

거 참 신기하구만.

나는 거의 새것처럼 보이는 검집을 가리키며 루이스에게 질문했다.

"녹이 슨 거 같지도 않은데, 네가 손질한거야?"

"아, 그건 아냐. 내가 주울 때부터 그랬거든. 자체적으로 파손을 방지하거나, 혹은 스스로 고쳐지는 기능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근거는?"

"얼마 전에 내가 한참 동안 후려쳐서 아주 작은 흠집을 하나 냈었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니까 흠집이 없어져 있더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제작하는데 한두 푼 들어간 물건이 아니겠는데. 구현하기 어려운 기능들이잖아."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실력의 연금술사라고 해도 최소한 일 년은 침식을 잊고 매달려야 겨우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일 거다.

루이스는 어느 정도 확신을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 검을 뽑지 못한 것도,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뽑지 못하도록 고도의 기능이 적용된 물건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네 말만 들어보면 무슨 봉인이라도 된 것처럼 들리는데?"

"아마도."

나도 봉인계는 전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루이스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 추측이 맞을 수도 있다.

루이스는 멋쩍게 웃은 뒤 잔을 들어 술을 머금었다.

나는 옆에서 검을 돌려가면서 뜯어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잠금쇠 부분에는 아무런 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기름칠한 자전거의 폐달처럼, 손을 내기만 해도 부드럽게 움직일 거 같다.

술을 꿀꺽 삼킨 뒤 루이스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위험한 물건일지도 모르니까, 대충 감정해본 다음에는 창고에 박아넣을 생각이야."

"……."

솔직히 말해서, 진지하게 잠금장치를 움직여볼 생각은 아니었다. 아니,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루이스나 다른 모험가들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냥 호기심이었다.

이게 정말로 그 정도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건지, 갑자기 그게 무척이나 궁금해졌고.

잠금쇠는 기름칠이 된 바퀴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어?"

루이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나는 루이스의 시선을 외면한 채 홀린 듯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접착제라도 바른 것처럼 손바닥이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무리 두들기고,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던 검이 아주 자연스럽게 뽑혀 나왔다.

누가 안쪽에서 밀어낸 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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