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달리스크 (138)화 (138/138)

짤막하게 말한 직후, 설명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는지 디무스가 슬쩍 말을 덧붙였다.

“좋아할 만한 가능성이 가장 큰 걸 수집하기로 했지.”

리브가 디무스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도 그도,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한 적은 없었다. 굳이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익숙지 않은 말을 억지로 내뱉는 것보다는 행동에서 묻어나는 그의 애정이 더 좋았다. 가령 지금과 같은 바로 이 순간.

이 전시관 자체도 감동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가슴이 떨리는 건 이곳을 소개하며 답지 않게 긴장하고 있는 저 남자의 모습이었다. 리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입술을 깨물며 일렁이는 감정을 다스렸다.

디무스는 그런 리브의 대답을 기다리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곧 참지 못하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본래 전역에 있는 모든 작품을 전부 모은 뒤에 완성된 전시관을 보여 주려 했는데, 그러느라 때를 놓치면 곤란하니 별수 없었네.”

변명처럼 말하는 사내의 얼굴에 긴장감이 점점 짙어졌다. 행여 리브가 이 미완성의 전시관에 실망이라도 했을까 우려스러운 것처럼.

그런 그를 안심시키고자 리브가 애써 입술 끝을 끌어 올려 웃었다.

“…무슨 때요?”

“그대가 내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때.”

리브의 미소를 본 디무스가 겨우 안도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브는 기꺼이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전시실을 거닐었다.

제 부모님의 작품인데 리브가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 디무스는 정말 말 그대로 ‘로이데스 부부가 만든 모든 것’을 사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이데스 부부는 꽤 유명한 수공예 장인이었고, 많은 손님을 상대했었으니 만든 물건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

전시실을 몇 개 지나자 중정이 나타났다. 어둑한 저녁, 중정은 아름다운 조명으로 치장되어서 환하게 빛났다. 중정 한쪽에는 작은 인공 연못이 있었고, 그 옆에는 그들을 위해 마련된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 위의 음식들은 방금 준비되었는지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걷는 동안 감정을 겨우 다스린 리브가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앉으려는 찰나였다.

“법적 절차가 꽤 오래 걸린다고 하니, 우선 이거라도 끼워 놔야겠어.”

디무스가 식탁에 놓여 있던 상자를 집어 들어 내용물을 꺼냈다. 그의 손에 들린 반지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도 있어야 안심을 하지.”

중정의 조명이 없었어도, 어둠 속에서 결코 빛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리브의 손끝에 걸렸다. 반지는 처음부터 그녀의 것이었던 양 손가락에 딱 맞았다.

자연스럽게 리브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준 디무스가 잠시 그것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리브를 보았다.

선택권을 주지 않겠다는 듯 대뜸 반지부터 끼워 준 것치고, 그리 자신만만하거나 오만한 얼굴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행여 그녀가 당장 반지를 빼 버릴까 걱정된다는 듯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부담스러워도 거절하기 전에 이 전시관을 돌아보며 다시 생각하도록 해.”

그는 그간 리브가 거절했던, 그리고 도망칠 때 그녀가 버리고 갔던 숱한 장신구들을 떠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선물했음에도 미련 한 톨 두지 않았던 과거의 태도가 지금 디무스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리브가 좋아할 만한 것을 더 준비해서, 거절당할 티끌의 가능성마저 지우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 비록 조급한 마음에 전시관이 다 채워지는 걸 기다리진 못했지만.

제 손을 잡은 채 답을 기다리는 사내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챈 리브의 입매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반지의 영롱한 빛깔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천천히 입술을 뗐다.

“보석 욕심 같은 건 정말 없다고 생각했는데….”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보석의 표면을 가볍게 문질렀다.

“속물처럼 보실 수도 있겠지만, 무척 기뻐요. 이렇게 아름다운 반지는 제 생에 처음 보거든요. 마다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 말에 디무스가 비로소 본연의 오만함을 조금이나마 되찾았다. 턱을 슬쩍 치켜든 그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대는 속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아는 것뿐이야.”

그의 어투는 전혀 과장되지도, 감정이 넘치지도 않았다. 마치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 주는 것처럼 명료하기만 했다.

“그대에게는 화려한 게 잘 어울리거든.”

디무스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낯부끄러운 소리를 곧잘 하는 남자였다.

결국 리브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팽팽한 공기가 한결 느슨해졌다.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디무스가 리브를 슬그머니 당겨 안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렇기에 내 곁에는 오직 그대만이 설 수 있어.”

사내의 손가락이 리브의 마디마디 사이를 파고들며 느리게 문질렀다. 숨결이 은근슬쩍 가까워지는 것을 깨달은 리브가 웃으며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아마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 그가 건넨 그 많은 장신구 중에 반지 같은 건 없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그녀의 손에 끼워진 이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굴러다니는 쇠나 길가의 들꽃을 꺾어 만들어 왔다고 해도 기쁘게 받았으리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그는 제 것이니까.

“그러게요. 화려한 게 저에게 잘 어울린다니, 당신 곁은 제 자리네요.”

리브는 평생 아름다울 게 분명한 장미를 기쁘게 끌어안았다.

***

보고싶은 코리다.

부에르노는 햇볕이 무척 따뜻해. 그곳은 어떠니?

한창 기말시험 준비 기간이려나? 첫 시험 후에 성적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 네 언니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기뻐.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나 네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거 알지?

그리고 애들린데의 기숙사 생활도 잘 맞는다니 다행이다.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것 같아서 언니도 마음이 놓여. 하지만 언제든 고민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아. 언니가 항상 너의 뒤에 있다는 걸 잊지 말렴.

이 답신이 조금 늦어서 네가 서운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

실은 근래에 밀리언의 지도를 잠깐 살펴 주게 되어서, 며칠간 네게 답장을 쓸 힘도 없이 쓰러져서 잠이 들곤 했거든. 다시 가정 교사로 취직한 건 아니고, 짧게 조언을 해 주는 것뿐인데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기력을 쏟게 되더라. 이전에는 어떻게 이런 일을 온종일 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모처럼 일을 하고 있으니 재미있어서, 당분간은 드문드문 영애들의 지도를 봐주고 다닐지도 모르겠어.

참, 내 그림은 어째서 기숙사에 걸어 둔 거야? 전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니까 더는 언니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 줘. 게다가 네게 그림을 보내 준 일로 그이가 퍽 서운해했어. 기숙사에 그림이 걸린 걸 알면 그가 직접 수거하러 갈지도 몰라. 너는 그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니까, 당연히 달갑지 않을 테지?

아무튼 언니는 잘 지내고 있어. 기말시험이 끝난 뒤 방학에는 친구들과 함께 부에르노로 놀러 와. 너희들이 지내기 좋은 멋진 장소가 있어. 그리고 그곳에서는 만찬과 파티가 열릴 예정이야!

네가 동봉한 초대장을 먼저 보았다면 무슨 내용을 쓰려는 것인지 이미 다 알겠지?

그래, 드디어 날짜를 잡았어. 네 방학이 시작되면 그 시기에 맞춰서 식을 올리기로 했지. 날짜가 결정된 바로 다음 날 초대장이 부에르노의 모두에게 전해지는 바람에 미루지도 못하게 되었지 뭐야. 덕분에 식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나를 후작 부인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생겨났어!

코리다, 행여라도 늦으면 ‘후작 부인’이 된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방학하자마자 와야 해? 로이데스 자매의 마지막 추억은 만들어야지!

그렇다고 혹시나 이 결혼이 강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줘. 언니는 지금 아주 행복하고, 이 행복을 너와도 나누고 싶을 뿐이야. 그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설명해도 너는 전혀 공감해 주지 않았잖아? 하지만 와서 직접 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멋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너도 분명 인정하게 될걸?

그럼 코리다, 언니는 이제 데이트에 갈 시간이라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아. 남은 학기도 건강하게 보내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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