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달리스크 (72)화 (72/138)

“뭐?”

“아니면 좋아하세요?”

황당하다 못해 조금은 발칙하게 느껴지는 물음이었다.

눈썹을 치켜세우며 리브를 돌아본 디무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리브는 그런 디무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정이라도 구걸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마주한 그녀의 눈은 퍽 이성적이고 차분했다.

그게 또 신선했다. 자신이 뱉은 말이 얼마나 헛소리인지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 제일 잘 안다는 의미이니까.

“아끼지.”

그래서 디무스는 선심 써서 대답해 주기로 했다.

“굳이 규정하고 싶다면, 나는 선생을 아껴.”

그것은 마치, 소장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꼽아서 첫 순번을 매겨 준 것과도 같았다. 유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들과 동일하게 두지도 않는, 딱 그만큼만 귀하게 취급하는 감정.

“이외에 더 필요한 감정이 있나?”

“없겠죠.”

리브가 시선을 내리깔며 몸을 돌렸다. 디무스가 손에 쥐여 준 다른 한쪽의 귀걸이를 든 그녀가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디무스의 말대로 직접 제 귀를 뚫으려는 눈치였다.

몇 번을 보아도 신기할 정도로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기척으로 거울 앞에 선 리브가 자신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녀의 어깨가 크게 들썩이는 걸 보니 긴장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이내 곧, 그녀의 반대쪽 귓불에도 투명하고 맑은 다이아몬드가 반짝이게 되었다.

요령 없이 무작정 찔러 넣은 금색 핀 끝에 살짝 피가 묻어났으나,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

리브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후작은 그녀의 감정을 묻지 않는다. 그는 아끼는 애완견을 돌보듯 그녀를 돌보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그녀 홀로 괴로워질 게 자명한 관계였다.

그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아, 이래서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리브는 탄식을 억눌렀다. 기어이 제 손으로 들고 온 붉은 벨벳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 거절했던 루비 목걸이가 참 비싸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앞에 두니 그것은 단조롭다 못해 애들 소꿉놀이용처럼 여겨졌다.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걸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말문이 막혀서 감히 집어 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는 이것을 받았다. 이를 거절하면 후작이 노할 테니까. 그녀는, 그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으니까.

“솔직해지는 게 어떤가, 선생.”

아니, 실은.

“내 곁에 서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

그리도 경계해 왔던 게 무색하게도 그녀의 욕심이 커졌다. 그 욕심이 이 상자를 받도록 떠밀었다.

후작이 지적했던 대로, 리브는 그와의 만남이 언제까지고 은밀하게 이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후작과의 관계가 표면으로 드러나 좋을 게 없으며, 어쩌면 제 생활을 온통 휘저을 정도로 거대한 격동을 맞이하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리브는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후작이 만인의 앞에서 그녀를 곁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이고 말이다.

단지 거래를 위해 저택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온갖 주목을 받는 남자이니 파트너로 선다면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문을 불러일으킬 터였다. 많은 이들이 그와 리브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고, 주목할 테지. 어쩌면 뒤를 캐내려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겠으나….

누드화가 계기가 되어서 만난 것이든, 그가 저를 수집품 취급하든…. 애초에 그러지 않고선 그와 만나지도, 그가 자신에게 눈길을 주는 일도 없었을 텐데.

후작은 리브에게,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언감생심 꿈에도 꾸지 못했을 남자였다.

“나는 선생을 아껴.”

후작은 제 뒤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을 싫어하니까, 최소한의 보호는 해 주지 않을까? 이제까지 그는 시종일관 리브에게 시혜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이제 와서 돌변하기에는 그간의 정성이 아깝지 않겠는가.

리브가 손끝으로 상자를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차마 다시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상자 뚜껑만 내내 쓸어내리던 리브가 시선을 들었다. 탁자 위에 올려 둔 작은 탁상 거울에 그녀의 얼굴이 반쯤 비쳤다. 창백한 낯을 한 여성의 귓가에 빨간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귓불의 양쪽 구멍에서 피가 났었다. 아침에 그걸 보고 적당히 소독해서 닦아 냈는데, 금세 또 피딱지가 생긴 것이다. 언제 아물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뚫은 구멍이 막히지 않으려면 잘 관리해야 했다. 오페라를 보러 갈 때 귀걸이를 착용하려면.

“하아….”

깊은 한숨을 뱉은 리브가 몸을 일으켰다. 그가 저를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은 지반을 제대로 닦지도 못한 모래성에 불과했다. 파도 거품에도 쉬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허술한 모래알. 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차피 무너질 모래성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꼭 내 손으로 그것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나?

리브는 부풀어 오른 제 욕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주제도 모르고 부피를 키우다 종국엔 터져 버리게 되어도, 그래서 조각나고 너덜너덜해진 쪼가리만 남겨지더라도. 그러면 그때 가서 그 잔해들을 긁어모아 버리면 될 일이었다.

***

코리다의 상태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리브에게 주는 진단서 외에, 디무스가 별개로 받는 보고서에 실린 내용이었다. 당연히 코리다의 상태를 걱정해서 보고받는 게 아니었다. 하루빨리 리브에게서 코리다를 떼어 놓고 싶어서 확인하는 것이지.

충동적으로 리브를 랑제스 저택에 데려왔던 사건 이후, 디무스는 좀 더 의욕적으로 그녀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지하실에서, 그가 아끼는 수집품들 사이에 서 있던 리브를 본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았다. 그녀는 랑제스 저택과 참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러나 코리다가 곁에 있는 이상 그녀를 저택에 데려다 놓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코리다까지 받아 준다면야 모를 일이지만, 디무스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리브 로이데스 한 사람이었다.

아픈 여동생은 걸리적거리는 존재였으므로, 디무스는 기꺼이 코리다의 회복을 기원해 주었다. 코리다에게 들이는 돈이야 몇 푼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로 인해 리브의 호의가 딸려 온다면 실상 투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외출도 선뜻 결정했다.

“이곳까지 직접 찾아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허리를 굽실거리는 하이롭 사장을 무료한 눈으로 응시하던 디무스가 힐끗, 내부를 둘러보았다. 약방답게 온갖 풀 냄새가 가득했다. 다만 내부 관리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는지, 독하다기보다는 은은한 쪽에 가까웠다.

“신약이 들어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오늘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신약의 유통은 공식 경로로 이루어졌다. 부에르노도 예외는 없어서, 디무스가 신약을 구하려면 필연적으로 신약 취급을 허가받은 하이롭을 거쳐야 했다.

심지어 첫 유통이었다. 당연히 수량은 한정되어 있고 말이다. 그러니 기왕이면 직접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당분간 신약을 구매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와 다른 누군가에게 신약을 넘길 생각은 버리라는 경고를 동시에 하기에는.

과연 디무스의 방문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에 알아본 하이롭 사장이 헛기침하며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후작님, 아시다시피 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조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겁니다.”

약방 안쪽으로 이어진 문을 힐끗 본 디무스가 냉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약을 기다리는 이 중 당장 죽어 넘어갈 환자라도 있나?”

“그거야 저희도 알 수 없지요. 저희야 약제가 필요한 분들께 최상의 약을 제공하는 게 첫 번째 본분….”

“그렇다면 본분에 충실하면 되겠군.”

디무스는 사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약을 필요로 하는 손님이 약을 구매한다는데, 어째서 혀가 길지?”

신약을 예약하려는 사람들의 명단은 진즉 입수한 참이었다. 예약자 중 위중한 환자나, 그런 환자를 곁에 둔 이는 없었다. 다들 정말로 약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신약’이라는 특별성과 희소성을 위해 지갑을 열려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사연은 얼마나 절실한가.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넘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깊을 터였다.

한동안 신약을 독점으로 구매할 거라는 의향을 숨기지 않는 후작의 모습에 사장이 진땀을 흘렸다. 다양한 귀족 고객을 상대하는 사장의 입장에서야 디무스의 태도가 제법 난처하게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디무스는 상대의 거래 사정을 하나하나 배려해 줄 정도로 마음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장은 뭐라고 말은 못 하고 그저 꼬리에 불이 붙은 개 마냥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 그를 가볍게 무시하고 있던 디무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가게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진 까닭이었다. 사장이 정색하며 입구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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