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달리스크 (69)화 (69/138)

후작은 이제 아무 말 없이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만이 지금 그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

그가 흥분하고 있었다. 적나라한 그 현실이 리브의 가슴을 술렁거리게 했다.

그녀는, 이 어설프고 서투른 행위로 그를 흥분시킬 수 있었다.

“크흣!”

후작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 단단하게 부풀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머리 위로 억눌린 신음이 터졌다.

“웁!”

“후우….”

입 안에서 성기가 크게 꿈틀거렸다. 귀두가 거의 혀뿌리 쪽에 걸쳐 있던 탓에, 절정과 함께 쏟아진 정액이 뱉어 낼 사이도 없이 식도로 넘어갔다.

몇 번이나 맥박치며 날카로운 쾌감에 사로잡혀 있던 성기는 기어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목 안으로 쏟아 내고서야 느리게 물러났다.

“허억, 허억.”

리브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 안 가득 나는 정액 냄새와 목구멍에 남은 낯선 감촉, 혀를 마비시킨 이상한 맛까지.

온통 이상했지만 가장 이상한 건 제 몸뚱이였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잔뜩 예민해진 감각. 등허리에 땀이 맺히고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저를 안아 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런, 아팠나?”

리브가 강렬한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헐떡거리는데, 턱을 잡고 있던 손이 그녀의 입가를 매만졌다. 그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살이 따끔거렸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찢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리브가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후작과의 섹스는 굳이 따지자면 거친 편이었으나, 오늘의 허리 짓은 단순히 그의 섹스 취향만 반영된 게 아니었다.

그의 거친 움직임에는 분명, 짜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짜증 난 연유는….

“제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하셨죠.”

쇳소리와 비슷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을 뱉으며, 리브가 후작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는 단추 하나 풀지 않은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이었다. 잘 차려입은 상태에서 벌어진 바지 앞섶 사이로 성기만 내놓은 모습이라니. 다른 사람이라면 변태 같아 보였을 텐데, 후작은 이런 꼴로도 보는 사람을 흥분시켰다.

그래서 리브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이 수치스럽다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도리어 안달 나기나 할 뿐.

“제가 후작님도 잘못 본 건가요?”

“아니.”

대답은 무덤덤하게 흘러나왔다.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것과 나는 상관없지.”

한 차례 사정한 성기는 여전히 반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금세 본래의 위용을 되찾을 것처럼 꺼덕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후작은 리브의 입술 틈으로 귀두를 비집어 넣지 않았다. 대신 엄지로 부어오른 입술을 살살 쓸어 내며 중얼거렸다.

“나는 너의 신이니까.”

정염이 가시지 않은 벽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눈빛이었다. 당장 그녀를 깔아뭉개 옷을 벗기고 싶은 듯하기도 하고, 조금 전까지 제 성기를 물렸던 입술에 키스하고 싶은 듯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명료한 욕정이 담겼다는 거다. 그의 욕망은 한 번의 사정으로 전혀 달래어지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상상보다는 현실이 낫군.”

“상상하셨어요?”

자신에게 구음을 받는 장면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성기를 손수건으로 닦고,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추슬렀다. 뭐라도 더 할 줄 알았던 리브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후작을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손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리브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입이며 얼굴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적어도 옷이 심하게 더럽혀지진 않았다. 특히 정액을 전부 삼켜 버린 게 뒷수습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리브의 얼굴을 확인한 후작이 여분의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가서 필립에게 저택 구경이라도 시켜 달라고 하게.”

리브가 뒤늦게 본인의 상태를 수습하는 걸 빤히 보던 후작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심심하면 내가 정말 지하실에 사람을 박제해 두었는지 확인해 보든가.”

저택 지하실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필립은 무척 놀랐다. 그는 후작이 지하실 출입을 허락했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필립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몇 번이나 리브에게 진위를 되물은 것도 모자라, 슬그머니 후작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런 뒤에야 의심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그녀를 지하실로 안내해 주었다.

도대체 지하실이 어떤 공간이기에 필립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충동적으로 지하실에 가 보고 싶다고 말했던 리브는 뒤늦게 무서워졌다.

혹시 보면 안 되는 걸 보게 되는 걸까? 목숨이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평소의 그녀였다면 저택의 비밀이니 흉흉한 소문이니 조금도 관심 두지 않고 얌전히 응접실에서 후작의 부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걱정을 사서 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하지만….’

리브는 집무실을 나오기 직전 보았던 후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지하실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그게 그녀의 과대망상일까?

생각에 잠겨 걷던 리브가 달라진 주변 풍경을 인지하고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벽과 장식장 위에 온갖 무기가 가득했다.

리브의 걸음이 느려졌다는 걸 알아챈 필립이 슬쩍 말문을 열었다.

“롱 갤러리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무기들이니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과거에는’ 사용했던 무기라는 의미이리라.

리브의 눈길이 가까운 곳에 걸려 있는 총기로 향했다. 손잡이 부분이 눈에 띄게 닳아 있는 게 인상 깊었다.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종류의 총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검 같은 것도 보였다.

“롱 갤러리라면 보통은 그림을 걸어 두지 않나요?”

“뭐… 대체로 그렇겠습니다만, 후작님께서는 초상화를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기야, 후작이 화가의 앞에서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리브 역시 상상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필립의 대답을 받아들인 리브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곳은 춥네요.”

“쇳조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요?”

필립의 가벼운 대답에 리브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필립은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듣고 흘린 듯했는데, 리브는 솔직히 이 롱 갤러리를 퍽 인상 깊게 보는 중이었다.

롱 갤러리를 가득 채운 무기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니 이곳만 그런 게 아니라, 랑제스 저택 어느 곳에서도 미술품을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까닭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지나온 로비나 복도, 후작의 집무실 등에서는 흔하게 걸어 두는 작은 풍경화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후작이 부에르노에서 알아주는 수집가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물론 개인 전시관에 따로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미술품을 좋아한다면, 생활 공간에도 잘 보이게 둘 법하지 않나. 하물며 이곳은 본가인데.

가장 값비싸고 귀한 미술품으로 장식해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 말이다.

‘그가 수집한 작품들이라면 이 롱 갤러리를 전부 채우고도 남았을 텐데.’

묘한 감상을 이어 가며 걷던 리브가 불현듯 걸음을 멈추었다. 유난히 그녀의 눈길을 끄는 검을 발견한 탓이었다.

“로이데스 양?”

“저건….”

“오,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아름답지요? 이 롱 갤러리에서 가장 값어치가 높은 물건입니다.”

필립의 설명을 들으며, 리브가 검이 담긴 유리관 앞으로 다가갔다. 필립의 말대로 아주 아름다웠다.

마치 조금 전에 기름칠한 듯 반짝거리는 검신에는 정교한 음각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검의 손잡이에는 화려하게 곡선을 그리는 넝쿨과 탐스러운 꽃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사이사이 박힌 보석은 아마도 다이아몬드가 아닌가 싶었다.

아름답기는 했다.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위화감이 들 정도로.

“어울리지 않네요.”

진열된 무기마다 나름의 역사가 묻어나는 것 같은데, 유독 이 예장 검만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시들어 가는 생화 사이에 홀로 화려하게 피어 있는 조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된 것조차, 자랑하기보다는 이질감을 더 부각하려는 의도처럼 느껴졌다.

꼭… 이 예장 검을 조롱하기 위한 듯하달까.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재빨리 고개를 내저은 리브가 몸을 돌렸다.

“그보다 지하실이 멀군요.”

“입구가 한 군데라서요. 다 왔습니다.”

롱 갤러리를 벗어나 어느 문 앞에 도착했다. 계단 옆에 위치한, 다른 방문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쪽문이었다.

“이곳입니다.”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열어 준 필립이 걸음을 멈추었다. 리브가 의아하게 그를 보자, 필립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하실은 주인님의 허락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저는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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