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야미도엔의 지적에 카라스 의원이 흠칫 놀라 자신의 COT(Collection Of Things)를 살폈다. 과연 새장 환영이 마치 바람앞의 등불처럼 새차게 흔들리며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그 현상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카라스 의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무슨 개수작을 부린 것이냐, 야미도엔!"
-글쎄. 카라스 네 두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지 그래. 누가 뭐라해도 서프라이즈 프레전트는 직접 포장을 뜯어봐야 놀라움이 배가 되지 않겠어?
"큿, 이 바퀴벌레같은년이 얼티밋 판게아 행성이 폭발할때 같이 죽지않고서는!"
컬렉션 오브 띵즈(Collection Of Things)
그랜드 컬렉션, 버드케이지(Birdcage) 개(開)
카라스 의원이 유례없이 초조한 표정으로 새장을 열어재꼈다. 그러자 그안에서 대붕공자, 카트랏슈로 추측되는 실루엣이 등장했는데 특이한 점은 그가 정체모를 새 한마리를 입에 물고 있다는 점이였... 아니 진짜 특이한건 그게 아니라 카트랏슈의 외견 그 자체였으니 백토성 특유의 유목민 복장이 아니였다면 그라는걸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단 몸 거죽이 통채로 뒤집어진듯 전신의 혈관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동공은 어디갔는지 흰자위만 번득거렸으며 그리고 터번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던 금발은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 산발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광인(狂人)이란 두글자가 딱 어울리는 모습으로 온몸을 철갑으로 둘러싼 새를 과자처럼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고 있으니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개자식이 내가 그 만년철갑조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데!!!"
"그르르르르르... 쩝쩝쩝!"
쒜에에에에에에엑!
평소 디파일러들 중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인간친화적이고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카트랏슈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카라스 의원이 거대 까마귀 날개로 공격해오자 마찬가지로 자신의 날개를 펼쳐 공세를 막아내더니 오랫동안 굶주린 걸귀마냥 못다한 식사를 이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년철갑조라는 새의 내장을 산채로 뜯어먹는 장면은 지금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겪어온 나로서도 눈쌀이 찌풀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때 내 서프라이즈 프레전트인 디바우러 모드가.
"디바우러 모드?"
-그래, 디바우러 모드. 카라스 너는 내가 인간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디파일러를 만들었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야. 내가 왜 사랑스러운 인간들을 멸종시키겠어? 모든 인간이 죽어버린다면 그건 혼돈도 아니고 질서도 아니고 그저 완전한 무에 불과해. 인간이란 꽃은 살아있는채로 온갖 고통에 신음할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 디파일러를 만든건 그런 고통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바로 별의 생명력을 축적했다가 한번에 버스팅해서 바로 너희 프라임 의회놈들을 상대하기 위함이였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 대붕공자, 카트랏슈는 오직 카라스 너 하나만을 저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일회용 살육병기였다는거야!! 같은 조류만 보면 식인본능이 폭발하게끔 설계된...
와장창!
야미도엔이 거기까지 말했을때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은듯한 카라스 의원이 몽환경의 레플리카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설마하니 야미도엔이 프라임 의회 소속 의원과의 싸움에서 나를 지원해준 뒷배경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줄은 몰랐기에 꽤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그런데 일회용 살육병기라는건 이 싸움이 끝나면 카트랏슈는 죽는다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아나키스트 멤버들이 죽어나갈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아주 찔끔 흘러나오는듯 했으나 한편으론 어차피 죽을거 내가 막타를 쳐서 1000만 VP 보상을 챙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너무 사탄도 울고갈 발상인가? 하지만 카라스 손에 죽임을 당해서 보상이 증발하는 것 보다야 그편이 낫잖아.
"나를 저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렇기엔 그 송곳니가 너무나도 무디단 말입니다! 결국 야미도엔 당신은 그냥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게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훼방이나 놓고 다니는 것뿐. 정말 저를 쓰러트릴 생각이 있었다면 본인이 직접 반신타락자중 고서열자를 이끌고 나타났어야죠. 저런 미친개 아니 미친새를 풀게 아니라!!"
"그르르르르르!"
디파일러 킹 더 스텔라 비타 제 1성기 백익만개(Feather Storm)
이성을 대부분 잃고 식인본능만 남은 상태에서도 스텔라 비타를 사용할 수 있었는지 카트랏슈가 거친 날개짓으로 토네이도를 만들어 쏘아보냈다. 일전에 선체가 100% 화이트 티타늄으로 구성된 전함 크레센트를 일격에 꿰뚫어버린 그 기술의 등장에 나까지 긴장했지만 정작 카라스 의원은 마중을 나가듯 깃털 토네이도를 향해 진격했다.
그리고 깃털 토네이도를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벗꽃잎을 가로지르듯 지나치더니 카트랏슈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제서야 나는 어느샌가 카라스 의원이 백리동숙처럼 인간으로서의 신체적 특징을 일부 버리고 까마귀 수인화 되었다는걸 눈치채고 기합할 수 밖에 없었다. 백리몽룡이라고 하는 인간의 탈은 그저 프록시마에 잠입하기 위한 위장신분이 아니였단 말인가?
뭐 그건 그렇다치고 카라스 이 새끼는 왜 만년철갑조가 COT 라이브러리에서 삭제됐는데도 이렇게 단단한거야? 카트랏슈가 만년철갑조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역습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 카라스 의원의 몸에 상처가 있나 유심히 살폈던 나였지만 끽해봐야 흠집 몇개가 나있을뿐이였다. 무적 치트키를 친것마냥 아예 흠집조차 나지 않을때보다는 나은걸려나.
"디바우러 모드라고? 그럼 어디 한번 나도 먹어치워봐라 이 모르모트 녀석아!"
"그르르르르르! 커컼..."
"만년철갑조 한두마리를 먹어 치웠다고 해서 네놈의 무딘 송곳니가 내 깃털을 뚫을 수 있을줄 알았더냐? 애초에 야미도엔도 네놈이 정말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거라 생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순간의 유흥을 위해 네놈을 희생양으로 삼았을뿐. 이 가련하고 어리석은 날짐승아 내가 그 한많은 인생에 종결점을 찍어주마!"
카라스 의원이 맹금류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손톱으로 카트랏슈를 꿰뚫으려는 순간 그걸 가로막는 아니 앞서가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카라스 의원의 등뒤에 엎힌 형국인 내가 그보다 먼저 삼지족으로 카트랏슈의 명줄을 끊어준 것이다.
어차피 디바우러 모드의 부작용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내 손으로 끝장을 내주고 싶었다는건 핑계고 사실 앞서 말한것처럼 VP가 너무나도 탐이났다. 그런데 분명 도시형 전함도 살 수 있는 수준의 디파일러 킹 현상금에 0하나가 빠져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것도 잠시 카라스 의원이 분노에 가득찬 괴성을 내질렀다.
"이 쓰레기같은 인간놈이 감히 상원의원인 내가 하는일에 사사건건 방해를 놓을셈이냐!"
"기다려주십시오, 카라스님! 제가 그 벌레같은 인간놈을 고귀하신 카라스님의 옥체에서 바로 떼어내 드리겠습니다."
"아니 됐다, 하피뇽. 이 거머리같은 인간놈은 내가 직접 두손으로 찢어죽이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을것 같군."
하피늉의 진짜 날 태워버릴듯한 불꽃시선이 느껴지는 가운데 카라스 의원이 이미 가슴이 꿰뚫려 가망이 없어보이는 아나키스트의 리더, 천우용성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날 찢어죽인다면서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잠자코 지켜보는데, 그가 천우용성의 탄생석으로 추측되는 곳에 손을 집어넣더니 모종의 석판 하나를 꺼내드는게 아닌가?
사령안이 아니였다면 무슨 마술인줄 알았을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 석판이 COT, 사이킥필드라는걸 눈치챘다. 아마도 리더가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탄생석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건 전부 저 석판 덕분이였을 것이다.
"같잖게 죽기 직전 COT에 봉인된 컬렉션들을 전부 해방해버렸군요. 그래봤자 이 프록시마 행성만 제 손에 들어오면 라이브러리를 채우는거야 눈깜빡할새입니다. 콜렉션들이 전 우주에 퍼져 있지않고 한 행성에 몰려있다니 이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
"그런걸 프록시마 행성의 가디언인 제가 그냥 눈뜨고 지켜만 보고 있을것 같습니까, 카라스 의원! 애초에 쓰지도 못할 COT의 콜렉션은 뭐하러 채우겠다는건가요?"
"당연히 제가 쓰기 위함이지요, 브리슬콘 전 의원. 당신이 말했듯이 저는 알지도 못하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COT를 회수해줄만큼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 무슨 소리를? 당신의 인간성과는 별개로 COT는 한 사람당 한명밖에 못쓰는게 사실 아닙니까?"
"정확히는 COT의 컬렉션과 컬렉터간에 본질의 유사성이 높아야만 한다는 제약조건이 있을뿐이지요. 새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한 존재는 있을 수 가 없으니 저는 분명 브리슬콘 전 의원의 COT, 시크릿가든을 쓸 수 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새이면서 초능력자인 존재는 어떨까요? 정말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하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