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달라진 천우용진이 희망에 가닥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난데없이 등장한 탄생석의 정령, 플레인스워커(Planes-walker)의 차원이동 능력이 진짜라고 해도 그게 작금의 상황의 돌파구가 될 수 는 없었다. 왜냐하면 VOT 온라인 2.0에 거주하고 있는 사령술사 전직NPC 변태사신은 내 본체가 아닐뿐더러 최대 레벨 또한 500으로 제한된 반쪽짜리 캐릭터 였던 것이다.
카라스 의원은 커녕 그가 부리는 괴물새 한마리 상대하기 벅찰게 분명했다. 아니 잠깐만! 만약 천우용진의 플레인스워커 능력이 엔도미야의 방화벽을 무시하고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2.0 내부를 오갈 수 있다면 그 방법이 통할지도? 번갯불처럼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가 죽어가던 내 전투의지에 다시 불씨를 피워 나는 적극적으로 천우용진에게 내 작전을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정말 프록시마를 구할 수 있는거야? 도리어 프록시마가 위험해지는거 아닐까?"
"아니요,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이 그린 아일랜드의 심처는 겉보기엔 그냥 무인도의 중앙에 위치한 숲처럼 보이지만 실은 완전히 격리된 이공간입니다. 만약에 일이 잘못돼도 프록시마의 주민들이 잘못될 일은 없다는 뜻이지요. 본디 강대한 적을 상대할때 이이제이만큼 효과적인 전략도 없으니 일단 저를 믿고 그대로 실행해주세요."
"아, 알았어."
그렇게 천우용진이 탄생석 능력을 활용해 VOT 온라인 2.0속으로 들어가는걸로 결정이 나고 나 또한 따라들어갈 요량으로 어깨동무를 하는데 저 멀리서 군용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바닷가쪽을 살피는데 누군가가 겁도 없이 낙하산을 매지않은채 헬기밖으로 뛰어내리더니 군용헬기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우우우웅!
"마침 카라스님에게 바칠 꽃다발에 머리 하나가 모잘랐는데 잘됐군. 좀비걸 이 개같은년아 그날밤에 못다한 푸닥거리나 마저 해보자!!"
"서, 설마 선우매향... 커헉!"
그 미확인 비행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선우매향으로 머리의 뿔과 등의 날개를 보아하건데 자신의 본모습을 거리낌없이 드러낸 상태인듯 했다. 그 상태에서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파도를 가르며 내게 육탄돌격을 해온 그녀는 내 모가지를 붙들고 해변가의 모래사장에 그대로 쳐박았다.
안그래도 간당간당했던 좀비걸의 모가지가 그 충격에 그대로 똑!하고 부러져버렸다. 나는 헬프를 요청하기 위해 모래사장을 손바닥으로 팡팡쳐댔지만 그 손짓의 의미를 어서 도망치라는 의미로 해석했는지 천우용진이 공간을 가르고 사라져버렸다. 아니 자식 새끼 키워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씨발!!
선우매향 그러니까 아마도 본명은 하피뇽일 그녀는 몸과 분리된 내 머리에 붙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더니 미리 준비한 쇠꼬치 다발중 하나에 꽂아넣었다. 그런데 그 쇠꼬치에는 이미 적지않은 사람의 머리가 꽂혀있었는데 그중에는 안전기획청 청장의 머리도 자리하고 있어 나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흐하하하하하하! 이걸로 마침내 카라스님께 받칠 아름다운 꽃다발이 완성되었군. 이 날이 오기를 내가 얼마나 고대했던가. 하피뇽, 벌레같은 인간군상들 사이에서 정말 잘 참았어. 아잉♥~ 카라스님이 잘했다고 볼에 키스를 해주면 어떻게하지?"
'제대로 미친년!'
원래부터 선우매향이 반쯤 정신줄을 놓은 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보니 아예 정신줄을 놓다 못해 풀어헤치고 다니는 모양이였다. 머리통이 달린 꽃다발을 들고는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그린 아일랜드를 거니는 모양새가 누가 보면 피크닉이라도 나온줄 알겠군. 그러다가 그린 아일랜드 심처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투명한 막을 발견한 그녀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칫 결계인가. 성가시게시리. 아깝지만 카라스님께서 주신 비상의 표식을 사용해야겠어."
선우매향이 품안에서 익숙한 모양이 까마귀 깃털 하나를 꺼내더니 후~하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나는 그 순간 카라스 의원이 백리몽룡이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을때 내게 안전벨트를 메주었던 일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내 목뒤에 비상의 표식을 새긴건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말고는 딱히 그와 신체적 접촉이 이루어진때가 없었다.
이런 바보같은! 나란 녀석은 상대가 그런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데 눈치도 못채고 뭘했던거야? 허나 뒤늦은 후회를 할새도 없이 주위 시계가 뒤바껴 나로 하여금 카라스 의원 VS 브리슬콘, 아나키스트의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결과는 말할것도 없이 카라스 의원쪽의 압승.
아나키스트 멤버들은 대부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특히나 리더의 경우 가슴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나있어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아마도 그가 죽었기 때문에 COT(Collection Of Things), 사이킥필드의 봉인이 해제되어 천우용진이 잃어버린 기억과 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다만 한가지 이상한 점은 왜 혈족의 탄생석 능력을 빼았아 놓고는 뒤에선 VIP 의뢰인이란 허울로 보호를 해왔냐는건데 뭐 이제와선 아무래도 좋은 일이였다.
"이런 아나키스트 이 바퀴벌레 같은놈들이 기어이 끝까지 살아남아 방해를 했군요! 카라스님, 이건 전적으로 제 불찰입니다. 혹시 옥체가 상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아아 깃털 몇개가 뽑히긴 했는데 뭐 이건 경상이라고 할 수 도 없는 수준이지. 오히려 오랜만에 제대로 몸풀기를 한 느낌이라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어. 그건그렇고 새삼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브리슬콘 전 의원의 생명력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로군요. 과연 COT, 시크릿가든의 소유자답습니다. 아마 혈해림, 스피츌라타를 궤사시키기 전까진 당신은 사실상 불사의 몸이나 다름없겠죠."
"카라스 의원...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용서하고 말고는 당신이 아니라 우리 프라임 의회가 결정합니다. 설마하니 사태가 이지경이 되도록 아직도 엔도미야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는건 아니겠죠? 그녀의 미소뒤에는 소름돋을 정도로 이해타산적인 본모습이 감춰져 있습니다. 아무리 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해도 근본은 인공지능. 지금 이 순간조차 그녀는 당신과 프록시마를 저울에 올린채 주판을 튕기고 있다 그 말입니다."
"엔도미야의 계산적인 측면을 부정하지않겠습니다. 확실히 그녀는 정에 이끌리기보다는 냉철한 손익계산을 통해 최종결정을 내리는 편이지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녀가 지원군을 보낸 순간 카라스 의원 당신을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카라스 의원, 제 출신성분이 본래 세계수의 묘목이라는건 이미 알고 있을겁니다. 그리고 세계수는 항성간 이동의 단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당하고도 시시한 짓거리를!"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아나키스트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바스라진 상처가 위태로워 보이는 브리슬콘이 합장을 하자 그녀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나무가 눈이 멀듯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한 장면을 이전에도 본적이 있었기에 다른 행성에 위치한 여시칼날단이 세계수를 매개체로 워프해 오고 있다는걸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
과연 누구일까? 최소한 여신칼날단 서열4위 육각수의 초월령, 브루고뉴급은 되어야 카라스 의원과 해볼만할텐데 말이지. 마침 이 그린 아일랜드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으니 마음같아선 진짜 브루고뉴 본인이 이곳에 강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빛이 사그러들고 등장한 인물은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다못해 한바퀴 돌아 뒤통수를 때려버리고 말았다.
"여신칼날단 서열 27위였다가 이번에 새롭게 6위에 랭크된 아크리퍼 옥사건님의 프록시마 강림완료! 자 죽음의 주인이자, 어버이이자, 왕이신 이 몸의 첫 희생양이 될 놈은 누구냐? 어서 튀어나와!!"
에에엑!? 저 새끼가 아니 내가 여기서 왜 튀어나오는건데? 분명 용제성에서 팔자좋게 구미첩의 탱탱한 엉덩이나 주무르고 있을줄 알았던 나 자신 즉 옥사건이 갑자기 세계수를 건너 프록시마에 강림하자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이건 백리몽룡의 진짜 정체가 들어났을때보다도 더한 쇼크였다.
영영 작별할줄 알았던 본체를 만났으니 당연히 반가운 감정이 들었으나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내 실력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잘아는법. 브리슬콘과 마찬가지로 본체가 불사에 한없이 가까운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였으나 카라스 의원을 당해낼 수 있을정도인가는 솔직히 미지수였던 것이다.
만약 용제성에서 별다른 수련없이 평소처럼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가 마실 나오듯 프록시마로 강림한거라면 단언컨대 필패할 수 밖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