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내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도주를 결정하자 천우용진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린다. 아무래도 히어로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그로서는 지금 이 순간 힘을 합쳐 백리몽룡과 맞서싸울 페이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자기가 아나키스트에 납치된 처지라는걸 잊은건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린 아일랜드의 해안가에서 그랬던 것 마냥 천우용진을 이매망량의 물결로 감싸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큰소리를 치길레 뭔가 있나 했더니만 고작 망령 수백여기를 부리는걸로 유세를 부렸던건가? 아무리 빈수레가 요란하다지만 이건 좀 김이 세는군. 오랜만에 재미 좀 볼 수 있을줄 알았더니.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하피뇽이 널 죽이려했을대 그냥 방치할걸 그랬어. 거사를 앞두고 괜한 변수가 생기는게 싫어서 살려뒀더니 날파리짓을 하는군. 뭐 결과적으론 비상의 표식이 달린지도 모르고 날뛰다가 거사를 앞당겨준 셈이지만 뭐랄까... 너 처음 만났을때부터 마음에 안들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네 고향 지옥으로 돌아가서 염라에게 안부나 전해주도록.
아 물론 그것도 내 외눈지빠귀로부터 살아남았을때의 얘기지만 말이야!"
컬렉션 오브 띵즈(Collection Of Things)
그랜드 컬렉션, 버드케이지(Birdcage) 개(開)
파다다다다다다닥!(x999)
허나 백리몽룡 아니 카라스 의원은 우리 둘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는지 또 한번 예의 새장 환영을 불러내더니 눈알이 하나밖에 달리지 않은 철새 수백마리를 소환했다. 그리고 이내 그 외눈지빠귀들은 천우용진이 얼타다가 제어에 실패한 100마리 가량의 잡귀들에게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영육을 뜯어먹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사실상 프록시마에 도착한 이래로 처음보는 강력한 퇴마계열의 능력에 나는 기겁해서 도주속도를 높혔다. 하지만 외눈지빠귀들은 천우용진이 부리는 잡귀들보다 수가 곱절은 많았고 동료들과의 먹이경쟁에서 밀린 놈들이 이번엔 내 휘하의 이매망량을 노리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굶주림에 미친 아귀와 같아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이 그린 아일랜드의 심처에는 주위를 배회하는 원령조차 없어 이매망량의 보충도 불가한 상황. 그말인즉슨 이매망량이 잡아먹히는 족족 곧장 전력 손실로 이어진다는 소리였으니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 조치란 이매망량 1000기를 100개 단위로 나눈 다음 융합을 통해 이매망량 백인장을 만드는 것이였다.
본래 A+++랭크의 영력을 소유하고 있을때나 수월하게 가능한 술법인지라 분령(分靈)에 다소 무리가 가겠지만 각개격파 당하는 것 보다야 나을터. 나는 위'사령안이 충혈될세라 영력을 집중시켜 이매망량 백인장을 탄생시켰다. 그 백인장 중 한명은 따로 빼서 천우용진을 대피시키려는데 백리몽룡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영적 존재의 융합을 통해 더 강력한 하수인을 탄생시킨다라... 재밌어 보이는 기술인걸. 나도 한번 해볼까?"
'저 새끼가 뭐라는거야? 이매망량 백인장이 그렇게 쉬운 기술이면 내가 위'사령안까지 써가면서 이렇게 똥꼬쇼를 할 필요가...'
딱!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카라스 의원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이매망량을 쫓아오던 외눈지빠귀떼가 한데 뭉쳐 꾸물꾸물 거리더니 이내 보잉 737 여객기를 연상캐하는 거대 괴물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괴물새는 이제 막 도깨비의 형상을 완성한 이매망량 백인장을 방망이채로 꿀꺽 집어 삼키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 마냥 다음 타겟을 노려왔다.
거의 이애망량 천인장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의 힘을 지닌 거대 외눈지빠귀의 등장에 나는 사실상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애초에 성인여성만도 못한 육체능력을 지닌 좀비의 몸에 A랭크의 영력밖에 안되는 소정령의 영혼으로 저런 강대한 적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런 내 의사를 읽었는지 리더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뭘 멍때리고 있는거야, 좀비걸Z! 어서 천우용진을 대피시키라니까!!"
"좆까, 이 씨발 새끼야! 생각해보니까 수지타산이 안맞아서 더 이상은 좆뺑이 못치겠어. 그냥 얌전히 수련이나 할려고 프록시마에 왔는데 도대체 이게 뭔 개고생이냐고. 백리몽룡이고, 선우매향이고, 브리슬콘이고, 프라임 의회고, 여신칼날단이고, 아나키스트고, 통합정부고 나발이고간에 니들끼리 알아서 해쳐먹어. 나는 이제 이 난장판에서 슬슬 빠질거야."
"이제와서 그게 무슨! 이봐 위험해!!"
화르륵, 빠지직, 솨아아!
내가 아홉살 먹은 초딩도 아니고 바닥에 드러눕고 파업을 선언하자 리더가 당황했는지 거대 외눈지빠귀 앞을 홀로 막아섰다. 그리고 오른손엔 화염구를, 왼손엔 뇌전의 창을 그리고 입에서는 서리숨결을 응결해 전면으로 쏘아냈다. 그렇게 3가지 속성의 탄생석 능력이 외눈지빠귀의 두날개와 꼬리깃에 명중하자 몸통이 여객기만한 괴물새도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그렇게 한시름 돌리나 싶었지만 카라스 의원은 상대의 능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서 흉내내는 것에 맛들렸는지 또 한번 기행을 일삼았다. 예의 새장 환영에서 정체모를 뇌조, 빙조, 화조를 불러내더니 동시에 리더를 공격하게 만든 것이다.
"불, 얼음, 뇌전 속성의 공격을 동시에 펼치는 트리플 엘리멘탈 어택. 과연 어느쪽의 화력이 한수위일지 겨뤄보는 것도 재밌겠군요. 이봐요 아나키스트의 리더군, 설마 당신마저 저를 실망시킬셈은 아니겠죠?"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제 영역에서 날뛰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카라스 의원!"
촤르르르르르륵!
그렇게 리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때 잠자코 침묵하고 있는줄 알았던 브리슬콘이 움직였다. 그녀의 본체로 추측되는 거목에서 두꺼운 나무줄기가 뿜어져나와 뇌조, 빙조, 화조를 휘감는 한편 사방에서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날라와 화령탁목조, 외눈지빠귀 할 것 없이 공격해 들어갔다.
"미안해요, 리더. 살아남은 다른 그린 아일랜드의 주민들을 안전한 섬으로 대피시키느라 좀 늦었어요. 지금부터는 저도 참전할게요."
"저야말로 면목없습니다. 임의로 맺은 명계의 동맹이 예상치 못한 적을 불러들일줄은."
"아니요, 신경쓰지 마세요. 저 카라스 의원이 모종의 목적을 위해 인간인척 프록시마에 숨어들었다면 차라리 지금 정체를 드러낸게 다행입니다. 물론 여기서 그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프록시마에 말도 안돼는 재앙이 들이닥치는건 매한가지겠지만요. 미안하지만 리더도 힘을 보태주세요.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군이 와줄겁니다."
"상대가 공공의 적이건 개인적인 원한을 지닌 이건 상관없이 저는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싸울겁니다. 그것이 제가 브리슬콘님에게 입은 은혜를 약간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일테니까요."
"큭큭큭큭. 크하하하하하하! 이건 정말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촌극이로군요. 하지만 이젠 좀 레퍼토리가 지겨워져서 말이죠. 그냥 단숨에 끝내겠습니다. 오랜만에 제 하이퍼 아바타를 쓰고 싶어졌거든요."
컬렉션 오브 띵즈(Collection Of Things)
그랜드 컬렉션, 버드케이지(Birdcage) 만개(滿開)
파다다다다다다닥!(x99,999)
카라스 의원이 손을 합장한 다음 벌리자 새장 환영이 덩달아 확장되더니 이젠 새아리는 것도 벅찰만큼의 화령탁목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공중에 휘날리던 나뭇잎 표창보다 더 많은 새의 등장에 브리슬콘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카라스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두 손을 합장한 다음 좌우로 넓게 벌렸다.
그러자 새하얀 나무 울타리의 환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니 그 안에서 네펜데스를 수십, 수백배 확대한듯한 괴식물이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브리슬콘 또한 콧 그러니까 COT라고 불리우는 정체불명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모양이였는데 그러면 진작 좀 쓰지 그랬냐, 이 식물덕후 아줌마야!
새하얀 나무 울타리안에서 튀어나온 거대 네펜데스는 특유의 대롱모양 입으로 화령탁목조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전력차가 너무 압도적이라 강건너 불구경중이던 나는 약간이나마 희망이 보이자 허리를 일으켜 세워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컬렉션 오브 띵즈(Collection Of Things)
그랜드 컬렉션, 시크릿가든(Secretgarden) 개(開)
"컬렉션 오브 띵즈의 힘이 개인의 인격을 말살시키는 잔악무도한 짓이라고 할때는 언제고 막상 상황이 급해지니 일단 쓰고보는군요. 이러니 다른 의원들이 브리슬콘 당신을 위선자라고 부르는겁니다."
"제 COT안에 수집된 식물들은 전부 다른 동식물들과 공존하지 못하고 자연환경을 피폐하게 만드는 해로운 돌연변이종입니다. 그들을 COT에 봉인한건 불가피한 선택이였다고요."
"결국 당신도 동의하는거군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가치는 없다는 것을. 뭐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 전속비서 하피뇽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는 선우매향이였던가요? 그녀가 수십년전의 과오를 되풀이하려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목을 모조리 따올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