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79화 (579/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어라 방금 뭐였지?'

물컹!

나는 나무줄기 무빙워크에 올라 편하게 이동하던 중 마치 거대한 젤리 안쪽으로 진입하는 느낌에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요리보고 조리봐도 무성한 수풀림이 이어져 있을뿐 딱히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보이지않는 결계인가? 아니면 내 착각인가?

"아무래도 눈치챈 모양이로군. 그린 아일랜드는 해안가와 연결된 외부 지역과 브리슬콘님께서 기거하고 계시는 내부 심처로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서 내부 심처는 물리적으로 연결된 공간이 아닌 완전한 별개의 이공간이다. 괜히 프록시마가 멸망해도 이곳만큼은 멀쩡할거라 얘기란게 아니란 말이지."

"어쩐지 섬의 규모에 비해서 이동하는 거리가 너무 길다했더니 그런 내막이 숨겨져 있었나. 그런데 그렇게나 안전한 장소에 나는 둘째치고 천우용진은 왜 끌고온거야? 아무리 VIP 의뢰인이라지만 너무 과보호 아닌가?"

"그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하지. 곧 브리슬콘님의 앞이다. 좀비걸Z 네 전 신분이 어쨌든간에 이곳에서만큼은 그분에게 정중히 예의를 갖추는게 좋을거다."

아나키스트의 리더와 천우용진의 관계와 관련해서 한번 떠보기 위해 말을 걸었던 나였지만 돌아온건 쌀쌀맞은 냉대뿐이였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정말 5분도채 되지 않아 나무줄기 무비워크가 멈춰섰으니 이내 사위를 둘러싼 안개가 걷히고 이매망량 1000기가 강강수월래를 해도 둘러싸기 힘들듯한 말도 안되는 규모의 거목이 나타났다.

나무줄기 무빙워크에서 내려선 리더는 관절이 아프지도 않은지 또 한번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그러자 거목의 한가운데에서 야생화로 만든 화관을 쓴 신비로운 미모의 여성이 상체만 빠져나온채로 말했다.

"어서오세요. 섬의 입구에서 있었던 소란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인간이라면 무조건 증오하고 보는 친구들이라 실례를 범했네요."

"역사 대대로 인간들이 인간화 탄생석 능력을 지닌 동물들에게 행한 패악질을 생각하면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오히려 제가 절대불가침 영역인 그린 아일랜드에 외부인을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나 끌고와 브리슬콘님에게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리더와 나 사이에 그 정도 부탁도 못들어줄까요. 물론 최종 인적성 검사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린 아일랜드 심처에 머무는건 무리겠지만요. 뭐 요즘은 그린 아일랜드의 주민들도 인간을 모방해 집을 지어 사니까 외부에 머물러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을겁니다. 그러면 오른쪽의 남자분부터 살펴보도록 할까요?"

투두둑!

설마 리더가 말했던 미래의 왕이 이런 형태일줄은 몰랐기에 내가 넋놓고 지켜보는 가운데 브리슬콘이 가볍게 손짓하자 거목의 밑둥에서 잔뿌리가 빠져나와 일종의 뇌파 측정기기처럼 천우용진의 머리를 감쌌다. 그런데 그와중에 멍때리던 내 시선을 확 잡아끄는 뭔가가 있었으니 밑둥의 뿌리가 들쳐진 순간 땅밑에 거목만큼이나 거대한 까마귀가 묻혀있는게 어렴풋이 보였던 것이다. 뭐야 저건 까마귀가 거대화계열의 탄생석 능력이라도 쓴건가?

"보기드문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군요. 그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이런 선한 마음을 지켜오다니 역시 리더 당신의..."

"브리슬콘님!"

"후후후, 알겠습니다. 좋아요. 당신 이름이 뭐라고 했죠?"

"처, 천우용진이라고 합니다. 노, 녹색의 왕님."

"당신은 그랜 아일랜드의 심처에서 머물러도 좋습니다. 부디 그 진주알처럼 빛나는 선한 마음가짐을 끝가지 지켜나가시길. 그러면 다음으로 왼쪽의 여성분을 잠깐 보도록할까요?"

내가 거목밑에 생매장된 까마귀의 정체에 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에 어느샌가 거목의 잔뿌리가 내 머리를 휘감았다. 만약 리더와 브리슬콘간에 따로 소통이 되어 있지 않을 경우 큰 사단이 생길 수 도 있었기에 내가 사정을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곱등이라도 만진것마냥 허겁지겁 잔뿌리를 거둬들였다. 어라라 설마 지금 이거 내가 언데드의 몸이라서 그런건가?

"불의 남긴 상처는 인간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깊은 상처를 남... 아니 설마 이 기운은!"

"잠깐만! 내가 설명할게. 사실 나는 명계의 왕, 염라의 명령을 받고 프록시마의 이상현상을 조상하러 나온 송제대왕..."

"이미 늦었습니다. 저는 비상의 표식이 새겨진 곳이라면 그 어느곳도 단숨에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하이퍼 아바타가 이런 특수한 공간에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어쩐지 아무리 감응해봐도 찾을 수 없다 했어요."

찌릿찌릿!

나는 열심히 변명을 하던중에 뒤통수에서 절대 여기 있어선 안되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와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였다. 그렇다고 진상을 확인하지 않을 수 도 없었기에 살며시 고개를 돌리는데 언제 내 목에 박아넣었는지 알 수 없는 까마귀 깃털을 백리몽룡이 회수하며 예의 재수없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배, 백리몽룡 네가 어떻게 여기에?"

"어라라? 좀비걸양 혹시 까마귀 고기라도 삶아드셨나요? 제가 방금 분명 말씀드렸을텐데요. 저는 비상의 표식을 새긴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단숨에 날아갈 수 있다고요. 그곳이 설사 현실세계와 분리된 이공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아참 그러고보니 브리슬콘 전 의원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는걸 깜빡했네요. 여전히 갓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운 미모를 자랑하는 그대를 위해 바치는 꽃다발입니다."

툭.

백리몽룡이 브리슬콘과 구면이라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꽃다발을 건넸다. 하지만 그 꽃다발은 그가 이전에 선우매향에게 선물한 장미꽃다발이 아니라 짐승의 머리가 쇠꼬챙이에 꽃힌 그로테스크한 물건이였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 쇠꼬챙이에 박힌 짐승의 머리가 이전에 그린 아일랜드 해안가에서 우리를 가로막은 원주민들의 것이라는걸 눈치챘다. 허허허... 뭐야 이거 설마 나때문에 좆된 각인가 이거?

"카라스 의원, 실망입니다! 나를 쫓아온거라면 차라리 내게만 싸움을 걸것이지 어찌 아무런 죄도없는 그들을 헤친건가요?"

"정말 실망한건 저에요, 브리슬콘 전 의원. 아니 이제는 여신칼날단 서열 5위 녹색의 율법사, 브리슬콘이라고 불러드려야할까요? 어떻게 프라임 의회를 배신하고 엔도미야같은 만들어진 기계신따위에게 붙을 수 있나요. 그것도 자신의 몫이 아닌 COT까지 훔쳐가면서 말이죠. 얼티밋 판게아가 누구손에 멸망했는지 벌써 잊었단 말입니까!!"

"얼티밋 판게아의 시민들 입장에선 차라리 멸망하는게 나았을겁니다. 당신들의 콜렉션이 될바에는 말이죠."

"흥! 아직까지도 그런 시덥잖은 소리를. 뭐 됐습니다. 과거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서 실패했지만 오늘이야말로 당신을 구제하고 COT 2개를 회수해가겠습니다. 브리슬콘 당신이 죽고나면 컬렉션, 그랜드 가든의 힘을 최대로 이끌어낼 의원후보는 절대 나타나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것 보다야 낫겠지요. 자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브리슬콘 당신만을 저격하기 위해 머나먼 우주 동토의 땅에서 어렵게 구해온 업화의 딱따구리, 화령탁목조를."

컬렉션 오브 띵즈(Collection Of Things)

그랜드 컬렉션, 버드케이지(Birdcage) 개(開)

파다다다다다다닥!(x999)

백리몽룡이 자신의 중절모를 벗어 우아한 인사를 거네더니 그 어떤 마술사도 불가능할 기적을 선보였다. 중절모에서 새장의 환영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도검처럼 날카로운 부리에 산채로 불타오르는 깃털을 지닌 새 수십, 수백마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나무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괴조(怪鳥)떼의 등장에 브리슬콘의 얼굴이 급변했다. 이전의 나무줄기 그물을 사용한다고 해도 상대가 저래서야 포박이 쉽지않을터. 내가 나서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리더가 얼음계단을 밟고 하늘로 치솟더니 입에서 엄청난 기세의 서리숨결을 뿜어냈다.

잠깐! 저거 아이시클이 사용하던 기술아닌가?라는 생각도 잠시 리더가 아직도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는 입으로 소리쳤다.

"좀비걸Z, 이전에 아나키스트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고 약속했었지? 그런줄 알고 명령을 내리겠다. 지금 당장 천우용진을 데리고 그린 아일랜드 바깥으로 도망쳐 다른 아나키스트 멤버들과 합류해라!"

"으으음... 그럴게."

"역시 그럴줄... 에에엑? 좀비걸, 상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적이야. 여기서는 힘을 합쳐서 같이 싸우는게 정석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시는겁니까, 천우용진님? 딱보니까 백리몽룡과 브리슬콘 개인간의 원한인거 같은데 괜한 싸움에 휘말려봤자 좋을게 없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진다는 속담도 못들어 보셨습니까?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새우라는건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리더라는 작자도 저리 말하는게 그냥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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