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77화 (577/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아까 VIP 의뢰인은 어쩔거냐고 물었지? 그거라면 다른 멤버가 구출하러 갔으니까 너무 거정하지마. 그리고 우리가 향할 곳은 도착하면 알게될거야."

"이렇게 대놓고 안기청 관용차를 타고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것 같아?"

"아 그러면 잠깐 리모델링 좀 해볼까?"

라고 말한 피타입이 갑자기 운전하다 말고 주머니에서 10원 짜리 녹슨 구리 동전을 꺼내들더니 그걸 차체에 갖다 붙였다. 뭐야 차량용 탈취제 대용으로 쓰기라도 하겠다는건가?싶어 이 괴짜 아나키스트 멤버가 하는양을 지켜보니 곧이어 믿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어제막 출고한것 마냥 쌔끈한 바디라인을 자랑했던 안기청 관용차의 차체가 마치 50만km는 주행한 것처럼 급격히 녹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피타입의 탄생석 능력이 접촉한 사물을 매개체로 다른 사물의 재질을 바꾸는 능력이란걸 눈치챘다. 처음 투명인간 상태로 운전석에 착석해 '이 차는 지금부터 제겁니다'를 시전했을때 갑자기 투명했던 몸이 시트지로 도배된 것도 의자시트를 매개체로 자신의 피부(혹은 타이즈) 재질을 바꾼 것이리라.

"겉모양을 감쪽같이 바꾼건 휼륭하지만 이 네비게이션에 GPS장치가 달려 있으니 이것도 재질을 바꿔서 고장내거나 파괴해야해. 아니 이건 그냥 길거리에 버려버리자."

"그, 그건 안돼! 나 네비게이션 없으면 운전 못한단 말이야."

"얼씨구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러면 안기청이 추척해오는걸 그냥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겠다는거냐? 이제보니 배신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너였던 모양이군."

"끄으응. 그렇게 말해도 할말은 없지만 어차피 VIP 의뢰인을 구하러간 아나키스트 구출조 멤버들과 조우하면 탈것을 갈아탈거야. 그리고 안전기획청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아나키스트 멤버들이 거의 총충돌해서 각종 광역시에 사고를 치고 있으니까 안기청도 고작 도난차량 하나에 신경쓸 틈은 없을거야."

"각종 광역시에서 사고를 치고 있다고? 설마 조폐청 지부를 공격한 것도 피타입 네짓이였냐?"

"아아. 성냥 한개비로 치안청 업무 전체를 마비시켰면 믿겠어? 조폐청 지부 건물 외벽곳곳을 인화성 재질로 도배해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난 것처럼 꾸몄지. 뭐 그래봤자 성냥에 발린 인의 폭발성은 그리 높지않아서 재산피해는 몰라도 인명사고는 딱히 없을거야. 우리 아나키스트의 모토중 하나가 바로 정부를 무너트리되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는 최소화 하자는거거든."

피타입이 쓸모를 다한 성냥 한개비를 내쪽으로 던지며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과연 이 성냥 한개비때문에 치안관들이 발에 불이날세라 뛰어다녔단 말인가. 가성비가 넘사벽으로 좋긴 하지만 결국 이매망량에 대항할 수 있는 퇴마계열의 탄생석 능력은 아니였기 때문에 금새 흥미가 식은 나는 성냥개비를 문밖으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무고한 시민 좋아하시네. 조폐청 지부 소속 공무원은 시민도 아니라 이거냐? 뭐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서도.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운전에나 집중해. 괜히 교통사고라도 당해서 차량조회 당하면 끝이니까."

"옛썰!"

부우우우우우웅!

피타입이 내 말을 귓구멍이 아니라 콧구멍으로 들었는지 미친듯이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차체가 녹슬었다고 해도 내부 엔진은 고급세단의 그것이였기에 관용차겸 순찰차가 살벌하게 도로를 질주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네비게이션이 과속단속구간입니다, 어린이보호구역입니다라고 경고할때는 칼같이 제한속도를 지키는게 우스웠지만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원래 교통사고 라는게 본인만 조심한다고 되는게 아닌지라 사거리 구간에서 주황색 신호임에도 좌회전을 시도하려는 노양심 운전사때문에 미니트럭과 충돌하게 생긴 것이다. 네비게이션만 믿고 닥돌하던 피타입이 어버버거리는 사이 내가 이매망량을 부려 순찰차를 하늘로 띄워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정말이지 일촉즉발의 상황을 모면해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피타입이 전혀 주눅들지 않은 목소리로 휘파람까지 부르며 소리쳤다.

"홀리쓋! 방금 그게 좀비걸Z 네 탄생석 능력이였던거지? 이거 완전 대박사건이잖아.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니 내일 일간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리는거 아닌가 몰라."

"내가 운전 좀 집중해서 하라고 했지! 하마트면 천우용진 일행과 합류하기 전에 저승길부터 갈뻔했잖아!"

"워워 진정하라구 친구. 내 피부는 현재 물렁물렁한 살이 아니라 의자시트재질로 변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아. 그리고 듣자하니 우리 좀비걸Z 프렌드는 불사의 몸을 지니고 있다는데 고작 교통사고를 무서워하는거야?"

"아니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는 조건(사지가 멀쩡하되 죽은지 얼마안된 인간의 몸)에 맞는 새로운 임시육체를 새로 구하기가 번거로울뿐 무서운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괜한 긁어 부스럼이란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아직 아나키스트란 단체를 신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데 이런저런 얘기를 떠벌떠벌해봐야 좋을게 없었다.

"어차피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안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벌써말이냐? 배기관이 터질세라 달려온 보람이 있군 그래."

어느새 시가지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의 농경구역에 도착한 순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여나가더니 붉은벽돌이 인상적인 교회앞에 멈춰섰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인지한 나는 이매망량을 이용해 네비게이션 단말기부터 잡아뜯어 저 멀리 내던졌다. 솔직히 이제와선 많이 늦은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가만히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을터였다.

그렇게 내가 네비게이션을 처분하고 피타입과 함께 교회쪽으로 향하려는데 천우용진이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마냥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옥사... 아니 좀비걸 역시 날 구하러 와줬구나. 이번에 새롭게 파트너가된 사이드킥분이랑 편의점 강도신고가 들어와서 출동1했는데 역으로 제압당하고 말았어. 그, 그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지 말아줘. 알고보니 그 편의점 강도 보통 편의점 강도가 아니라 전설적인 테러리스트 아나키스트였단 말이야. 그런데 그놈들이 자꾸 좀비걸은 이미 아나키스트에 들어왔으니 나도 자꾸 자기들 동료가 되라고 하는데 이거 거짓말이지?"

"이걸 어쩌죠? 저도 잡혀왔을뿐인데는 뻥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식멤버라기 보다는 임시멤버에 가깝지만 명목상으로나마 좀비걸Z라는 코드네임까지 받았으니 한배를 탔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대재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천우용진님도 그 배에 오르는 편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애초에 네가 이 세계로 넘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언제 이런 비밀조직에 가입... 우웁!"

나는 혹시나 천우용진이 섣불리 혀를 놀리다가 내가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2.0의 NPC 출신이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저승 출신이라고 못을 박아놓은 상황에서 그 사실이 노출될 경우 안그래도 느슨한 신뢰의 끈이 단숨에 끊길 수 있었다. 히어로 협회가 생기기 전이라면 모를까 선우매향이라는 공통의 적이 생긴마당에 그건 치명적인 악수가 되리라.

하여 일단 아나키스트라는 우산아래 잠시 비를 피하기로한 나는 천우용진을 질질 끌고 교회내부로 진입했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백발 미소녀와 낯선 얼굴의 신부 한명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뭐랄까 백발 미소녀쪽의 분위기가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너무 달라 나를 당황캐했다.

"안뇽, 언니오빠들~ 피타입 오빠는 여전히 패션센스가 꽝이구나. 어디보자 그러면 저쪽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씨? 원래는 만나면 잔뜩 텃세를 부려줄려고 했는데 얼굴을 보니까 절로 예의가 발라지네. 헤헤헤!"

"너는... 엘화이트가 아닌건가?"

"우와 나를 언니랑 헷갈리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네. 머리라도 묶어둘걸 그랬나. 엣헴, 그럼 막간을 이용해서 자기소개를 하겠슴돵! 저는 낭랑 십팔세 하양단비에요. 특기는 공간이동이라서 학창시절 단 한번도 지각을 해본적이 없답니다! 그래서 개근상까지 받았는대 문제는 개근상만 받았다는..."

"엔화이트 쓸데없는 잡담은 거기까지 해둬라. 피타입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안기청 관용차를 끌고올줄은 몰랐군."

"어쩔 수 없잖아, 오브리더. 내가 엔화이트처럼 공간이동을 할 수 있어, 에스파이더처럼 거미줄로 건물 줄타기를 할 수 있어. 차를 타고온 것도 네비게이션에 의존해서 겨우겨우 도착했다고."

"덕분에 이제 막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미사를 진행할 수 있게된 교회를 폐업하게 생겼다. 아무튼 상황이 급하니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고 지금 바로 VIP 의뢰인을 그린 아일랜드로 후송한다. 각지에서 교란 작전을 펼치긴 했지만 언제 안기청 요원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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