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76화 (576/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HQ, HQ! 여기는 가자로 285번지에 있는 조폐청 지부다! 특수강도 사건이 발생했으니 지원바란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 여기는 가자로 285번지에 있는 조폐청 지부다! 특수강도 사건이 발생했으니 시급히 지원바란다.

그런데 우우우웅!하고 시동이걸린 순간 네비게이션인줄 알았던 전면의 단말기에서 치안관의 무전이 들려오는게 아닌가? 내용을 보아하니 본래 치안청 통신라인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무전인듯 싶었는데, 같은 통합정부기관이라고 해도 확실히 안기청이 치안청보다 끗발이 훨씬 쌔다는게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였다.

"어이구야 그냥 은행도 아니고 조폐청 지부를 털다니 강도가 담도 크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안기청과 치안청간의 모종의 협약이 되있어서 히어로 협회소속이라면 자동출격하게 되있는것 같습니다만."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건 딱 질색이야. 우리만 무전을 들은것도 아닐텐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지그래? 어차피 치안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흐으음. 그 요구만큼은 들어드릴 수 가 없겠군요. 그래도 명색이 히어로인데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 는 없지요. 좀비걸양이 부상중인걸 감안해서 사건현장에 도착해도 귀찮게 굴지 않을테니까 일단 한번 가봅시다. 좀비걸양의 말대로 치안관들이 알아서 잘 사건을 수습하고 있다면 구태여 끼어들 필요는 없겠지요."

부르릉!

백리몽룡이 능숙한 솜씨로 핸들을 잡고 돌리자 고급세단답게 순찰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차안의 정적. 만약 다른 여성 예비 히어로였다면 좋아하는 음식이 어쨌니, 좋아하는 여자타입은 저쨌니 하면서 재잘재잘거렸겠지만 지금 내 머리속에는 어떻게하면 다시 천우용진과 페어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직 천우용진의 빈 탄생석 속된말론 깡통속에 있을 경우에만 분령(分靈)이 영혼 회로에 관한 심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였다. 애초에 이 임시육체에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 계획이 아니였는데 그놈의 아나키스트들과 만남 이례로 모든 상황이 꼬이기만 할뿐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선우매향한테 샤바샤바해서 천우용진의 사이드킥 자리를 확정적으로 받아내었야 했나?

"그러고보니 좀비걸양의 실명은 어떻게 되나요? 다른 예비 히어로분들은 전부 실명으로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데 유독 좀비걸양만 이명으로 되어 있더군요. 물론 히어로라면 멋들어진 이명 하나쯤은 있어야겠지만 문득 좀비걸양의 실제 이름도 알고싶어졌어요."

"그런거 알아서 뭐하게. 잔말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시지."

"그러지말고 알려주세요. 생얼도 보고싶은걸 모종의 사연이 있다고해서 꾹참고 있는데 이름정도는 알려줘도 되는거 아니에요?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히어로와 사이드킥이라면 미우나, 고우나 앞으로 계속해서 볼 수 밖에 없는 사이인데 말이죠."

"아, 그러셔? 오케이! 내 이름은 지금부터 백리좀비다. 이제 됐냐? 참고로 네 삼ㅊ... 아니 숙모뻘되는 항렬이니까 앞으로는 말을 걸때 주의하도록."

"오호라 같은 백리집안 사람인줄은 몰랐군요. 그렇다면 백리좀비양도 조류계열의 수인화 능력을 갖고 있겠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성씨랑 탄생석 능력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어라 모르셨나요? 백리가문은 원래부터 대대로 조류계열의 수인화 능력자를 다수 배출해온 명문가였습니다. 그리고 비단 조류계열의 수인화 능력이 아니더라도 조상님들이 새와 인연이 깊었는지 새와 소통하거나 테이밍할 수 있는 탄생석 능력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떤 탄생석 능력을 타고날지는 순전히 랜덤인 것에 비한다면 저희 백리가문 사람들은 나름 축복받은 존재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백리동숙이 조류변신 능력을 사용한것도 전부 백리가문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던건가?'

라는 생각하는 것도 잠시 백리몽룡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말했다.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는걸 보니까 바로 저기가 조폐청 지부인 모양이네요.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가야할것 같으니 좀비걸양은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진짜 이름 알려주는거 잊지말고요."

"그런 일은 없..."

쾅!

내 답변을 미처 듣기도전에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백리몽룡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근처의 치안관을 구어삶더니 이내 사건현장으로 직행했다. 보아하니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끔씩 원인모를 굉음까지 들려오는게 진짜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내가 사이드킥 활동을 하는 첫날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난리야, 난리는!

그리하여 내가 꼬여만 가는 상황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는데 닫힌줄 알았던 운전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태여 보지 않아도 허탕을 친 백리몽룡이 다시 복귀했음을 직감한 내가 한소리 해주려는데 아무리 두눈을 씻고 살펴도 운전석에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게 아닌가.

뭐야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백리몽룡이 두고간 차키가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순찰차에 시동까지 걸린 순간 나는 위험을 직감하고 위'사령안을 발동했다. 그제서야 아무것도 없는줄 알았던 운전석에 실체가 다소 흐릿한 낯선 존재가 백리몽룡만큼이나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왓섭! 그러니까 코드네임이 좀비걸Z라고 했던가? 나는 피타입이라고 해. 아마 우리 서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건 처음이지? 네가 우리 아나키스트 아지트에 혼자서 쳐들어왔을때 나는 우리 VIP 의뢰인을 감시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안기청 요원들이 탄 세단이 우르르 몰려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특히 안전기획청의 부청장인 늙은마녀가 나타났을때는 바지에 오줌을 지릴뻔했다니까."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게 처음이긴 뭐가 처음이야!"

"어라라? 그러면 우리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던가?"

"그게 아니라 나는 아직도 네녀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문자그대로 투명인간이 운전을 하고 있는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이야!"

"아하~ 그런 문제였구나. 그런데 내가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때문에 지금 함부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 그건 피차 마찬가지일테니까 이 정도로 타협하자고."

끼이이이이이익!

어느새 순찰차를 시가지까지 끌고나간 아나키스트 요원 피타입이 빨간불도 아닌데 갑자기 차를 멈춰세우더니 리드미컬하게 들숨, 날숨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실체가 없던 투명한 몸이 도배를 하듯 시트지로 채워지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 시트지가 순찰차의 의자시트지와 똑같은 재질처럼 보였다는 점이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능력이야?

"이러면 훨씬 낫지? 그러면 바로 출발하기전에 한가지 질문을 좀 할게. 갑자기 우리쪽 VIP 의뢰인의 집에 안기청 요원들이 들이닥친 건, 혹시 좀비걸Z 네가 배신해서 그런건 아니겠지?"

"그런 바보같은 질문은 집어치워! 너같으면 그런 질문을 받았을때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가 이중 스파이였습니다라고 솔직히 고하겠냐? 아니면 딱 잡아때고 오리발을 내밀겠냐? 네가 배신자라고 한번 가정해보고 생각해봐."

"으으음... 뭐 그건 그렇긴한데 그래도 리더로부터 일단 확답을 들어두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사실 나도 좀비걸Z 네가 배신했다기엔 타이밍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VIP 의뢰인에 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루트 자체가 제한적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용의선상에 오른 느낌이랄까."

"나는 배신자가 아니야. 오히려 나는 아나키스트를 통해서 천우용진에 관한 정보가 노출된건 아닌지 의심하는 중이였다고. 이제 됐냐? 그보다 지금 이 차를 탄채로 어디까지 갈셈이야? 그리고 설마 VIP 의뢰인이라는 천우용진을 안기청에 내버려둔채로 떠날셈은 아니겠지?"

"저기 미안한데 운전에 집중해야하니까 질문은 하나씩만 해줄래? 항상 남의 차만 몰라 얻어타다가 직접 운전하려니까 쉽지가 않네. 역시 레이싱 게임과 현실 운전은 많이 다르구나."

"뭐야 너 설마 면허가 없..."

빠앙빠앙!

조폐청 지부의 주차장을 빠져나올때만 하더라도 능숙한 핸들링을 보여줘 안심하고 있던 나는 시가지로 나온 순간 온갖 교통법규란 법규는 다 무시하고 미친듯이 내달리는 피타입때문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 미친새끼가 누가 아나키스트 아니랄까봐 운전도 무법천지로 하고 앉아 있어.

지금이라도 내가 핸들을 빼았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내게도 운전면허가 없다는 사실을 지각하곤 롤러코스터급의 관성력을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다. 근거리는 이매망량의 물결로 날아다니고 원거리는 기야스를 타고다니니 애초에 운전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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