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일단 사기는 아닌것 같네. 그런데... 우웁!"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그러나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도 딸의 시체로 사기를 친다는건 비약적인 생각이였는지 낚시가방안에는 멀쩡히 시체가 들어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내가 일찍히 요청한대로 사지는 멀쩡한대 얼굴 부분이 아주 심하게 손상되어 있다는 점이였다.
도대체 어떤 사고를 당하면 이런 부상을 입을 수 있는지 궁금해질정도로 각종 화상과 자상의 콜라보가 웬만한 공포영화 저리가라할 정도였다. 얼마나 끔찍한지 지금까지 못볼꼴 많이 보며 자라왔을 천우용진조차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연발했다.
그나마 이런 작업에 익숙한 내가 수의로 추정되는 거적대기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고 좀비 제작의 첫단계인 방부작업에 돌입했으니 벌써부터 코끝에 고약한 냄새가 감도는것 같았다. 사실 반영구적으로 쓸게 아니라 임시로 쓸 육체라면 방부처리까지는 필요없었다. 썩어 문드러진 좀비가 내뿜는 시독은 그 자체로 유용한 공격수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어느정도 사회상활이 요구되는 이 임시육체의 흉측한 얼굴은 마스크로 감춘다고 쳐도 냄새는 숨길 수 없었기에 방부처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였다. 하여 어둠의 마력으로 시체 전신을 코팅하는 한편 공기 중에서 추출한 마력에 변이 에너지 형질을 주입해 혈관 내부에 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언데드 회로까지 설치했다.
그러한 일련의 작업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완료되었으니 아무리 본체가 아니라해도 이정야 식은죽 먹기였다.
'그러면 어디한번 저 안으로 들어가서 움직여볼까.'
움찔, 움찔.
안그래도 육체없이 소정령 상태로만 살아가는게 답답하던 차, 나는 냅다 시체안쪽으로 들어가 육체의 지배권을 빼았았다. 사실 빼았았다고 표현하기도 뭐한 것이 이미 죽은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본래 육체의 주인이였던 혼령이 떠난지 오래였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내가 약간의 적응기간을 거친 뒤 몸을 일으켜 세우자 천우용진이 기겁해서 물러섰다. 자식이 게임속에선 어화동둥 내새끼하며 애지중지 육성하던 좀비가 현실에 나타나니 무섭더냐? 허나 천우용진이 염려한 부분은 완전히 다른쪽이였다.
"옷 좀 제대로 입어! 그 노숙자가 딸이라고 했던 말 잊었어?"
"아하 그러고보니 이 육체는 남성체가 아닌 여성체였군요."
스르륵.
나는 내가 입을 열고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선이 얇은 목소리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얼굴을 가리기 위해 끌어올렸던 수의를 다시 내려입었다. 끽해봐야 시체의 비부에 불과할뿐이였지만 쑥맥인 천우용진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인 모양이였다.
"이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니는건 조금 힘들것 같은데 혹시 남는 마스크가 있으신지요."
"있기는데 한데 아무래도 옥사건 네가 이걸 착용하고 나면 다시 재활용하는건 불가능하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젠 상하차 알바때문에 주머니도 두둑한데 너무 쪼잔하게 굴지는 마세요."
"하지만 이 마스크 장의사, 데드마스크 애니메이션의 한정판을 구입해야만 주는 증정상품인데..."
보름전만해도 피죽도 먹지못해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던 주제에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배부른 소리를 늘어놓는 천우용진. 나는 그런 투정을 애써 무시한채 그에게서 마스크를 강제로 빼았아 착용했다. 사실 거적대기나 다름없는 수의와 특촬물에서나 볼법한 마스크의 조합은 그 자체로도 눈길을 끌만한 것이였지만 쌩얼로 다니는 것 보다야 훨씬 나을터였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천우용진님과 이별의 시간을 가져야겠군요."
"그게 무슨 뜻이야?"
"제가 임시육체를 필요로 했던건 천우용진님의 사이드킥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프록시마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은게 있어서였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테니 당분간 부업은 자제하시고 택배상하차 알바에만 매진해주세요. 요즘같은 명절 대목이 자주오는 것도 아니고 히어로도 일단 입에 풀칠은 해야하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여기는 견우시도 아닌데 돌아올때 길을 헷갈리지는 않을까?"
"하하하! 그럴리가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이미 천우용진님과 저는 영혼의 사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만. 아무리 늦어도 내일 밤까지는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어미오리새를 잃어버린 아기오리새끼처럼 구는 천우용진을 뒤로하고 나는 재빨리 이전에 털모자녀에게 새겨두었던 영혼의 표식과 감응을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견우시와는 이웃도시인 이곳 직녀시 근처에 해당반응이 느껴져 기차를 얻어탈 필요까지는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이매망량의 물결에 올라타 밤의 도시를 가로지르길 30분여 인근야산에 도착한 나는 모종의 버려진 군사시설을 발견하곤 몸을 낮췄다. 사실상 국가간의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 프록시마에서 무슨 목적으로 건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곳곳에 초소가 존재하는걸 보면 분명 군사시설 자체는 맞는듯 했다.
물론 초소가 아무리 많아도 초병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나는 손쉽게 철조망을 돌파할 수 있었다. 다만 대충 설치한 언데드 회로와 익숙치않은 여성체의 콜라보로 진짜 좀비마냥 흐느적 흐느적 기어다닐 수 밖에 없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아무튼 누가보는 것도 아닌데 나홀로 미션임파서블을 찍으며 군사시설 중심지로 향한 나는 지휘통제실로 추측되는 건물을 발견하곤 내부로 잠입해 들어갔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지만 털모자녀에게 새긴 영혼의 표식과 그 표식에 할당한 이매망량 한기가 바로 지근거리에 존재한다는게 느껴졌기에 내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털모자녀가 있는것으로 추정되는 녹슨 철문을 열어재낀 순간 사방에서 십자가 모양의 헤드라이트가 몰려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젠장 설마 매복인가!?'
"뭐야, 에스파이더. 네가 말한대로 십자가 모양의 필터를 장착한 헤드라이트를 비췄는데 상대는 전혀 데미지를 입은것 같지 않다만?"
"어라라 이상하다. 내가 자주보는 드라마의 엑소시스트가 이렇게 하면 아무리 강력한 악령이라도 맥을 못춘다고 했는데."
"드라마랑 현실이랑 같냐, 이 짜식아! 너때문에 괜히 헛돈만 날렸잖아. 헤드라이트야 나중에 재활용한다쳐도 십자가 모양의 필터를 주문제작하느라 얼마나 돈이 깨졌는지 알기나해?"
"제이토크 너도 처음엔 혹해놓고 왜 이제와서 난리야! 그깟 필터 얼마나 한다고. 아무튼 내 스파이더 센스덕분에 아이시클 누나한테 이상한게 붙었다는걸 알아낸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저 괴상한 여자한테도 그 이상한게 한마리, 열마리... 수백마리? 으히익!!"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두뇌를 풀회전 시켰다. 대충 요약하자면 털모자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호랑이굴로 향한 내가 도리어 호랑이 동료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인듯 싶었다. 그리고 두서없이 오가는 대화속에서 털모자녀의 동료중 망령을 볼 수 는 없지만 감지할 수 는 있는 능력자가 있다는걸 파악한 순간 도망쳐야할지 말지를 심히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감지를 넘어서 퇴마가 가능한 탄생석 능력자가 있다면 미련없이 임시육체를 버리고 36계 줄행랑을 쳤겠지만 그냥 뭔가 있구나 수준의 감지만 가능한 능력자를 상대로 도망치는 것도 우스운 일이였다. 결국 도망칠땐 도망치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은 후에 치기로한 나는 눈을 멀게 만들것 같은 헤드라이트를 뚫고 서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봐 지금 헤드라이트때문에 제대로 상황판단이 안되는 모양인데 험한꼴 당하고 싶지않으면 거기서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걸 추천하지."
"으으으아아악! 제이토크 조심해! 저 여자뒤에 아이시클 누나한테 붙었던 이상한 뭔가가 수백마리는 넘게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 이거 완전 징그럽네. 그냥 스파이더 센스를 꺼버릴까."
"징그러워 봐야 에스파이더 네가 키우는 늑대거미만할까."
"제이토크형 말이 맞아. 저번에 화장실가다가 수백마리의 새기거미를 업고 있는 늑대거미를 보고 기절할뻔 했다고."
"아니 걔들이 얼마나 귀여운데 징그럽긴 뭐가 징그러워. 하여튼간에 이것들이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위대한 모성애도 몰라보고..."
"모두 조용!"
시장 바닥 같았던 지휘통제실의 분위기가 묵직한 저음 한방에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나는 그제서야 이 장소에 들리는 목소리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자리하고 있다는걸 깨닫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걸 느꼈다. 털모자녀에게 뭔가 모종의 뒷세력이 있을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바로 그 뒷세력의 중심부로 들어올줄은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