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전에 좀비를 쓰는건 사회정서상 별로라고 하지 않았던가?"
'맞습니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구태여 쓸 수 있는 카드를 썩히는건 아까운 일이니까요.'
"흐으음. 하지만 백리동숙과의 싸움때를 떠올리면 좀비 몇마리가 더해진다고 해서 딱히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것 같지는 않은데? 잡귀로도 쫒기 벅찼던 백리동숙의 움직임을 느려터진 좀비로 쫓는건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애초에 내 패인은 폴터가이스트같은 무형의 공격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하울링같은 무형의 음파공격을 방어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였잖아."
빠득!
나는 이럴때만 머리가 잘돌아가는 척하는 천리용진때문에 어금니를 있는힘껏 깨물었다. 이전에 영혼의 표식을 새겨넣었던 털모자녀를 독자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간이육체를 구하기 위해 밑밥을 까는중인데 사사건건 태클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였다.
'제가 조언했던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계시다니 역시 총명하시군요. 물론 일반적인 좀비라면 당연히 도움이 될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제가 직접 조종하는 좀비라면 어떻겠습니까?'
"옥사건 네가 직접 조종하는 좀비라니 설마 지금 빙의라도 하겠다는거야?"
'바로 맞추셨습니다. 제가 빙의한 좀비라면 설사 기동성이나 전투력은 떨어진다해도 지능 수준이 남다르니 얼마든지 전투에 크게 기여할 수 가 있지요. 게다가 본래 히어로에게는 사이드킥이 필요한 법이니 앞으로 밤의 부업일을 할때는 좀비에 빙의한 저를 데려가시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기왕 하는김에 사이드킥명도 있으면 좋으니 어디보자... 좀비, 좀비, 좀비맨 옥사건과 장의사 천우용진 나쁘지 안을것 같은데요.'
"장의사 천우용진과 좀비맨 옥사건이겠지. 사이드킥명이 히어로명보다 앞에 오는 경우가 어딨다고. 아무튼 좀비를 만들려면 시체가 필요할텐데 그러면 공동묘지로 가야하는건가? 아니면 시체안치소가 있는 병원으로?"
'아무리 밤에만 활동한다고해도 시민들의 시선을 너무 끌지 않기 위해선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시체를 구해야겠지요. 보통 뇌사상태의 젊은시체가 그런 조건에 딱 알맞겠지만 그런 시체는 장기기증에도 아주 알맞기때문에 구하기 쉽지않을겁니다. 그러니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지만 멀쩡히 붙어 있는 시체를 찾아주세요. 어차피 얼굴이야 천우용진님처럼 마스크를 쓰면 그만이니까요.'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지만 멀쩡히 붙어 있는 시체라... 그런 조건이라면 크게 어려울건 없을것 같지만 나는 현실에선 좀비를 만들어본적이 없어. 게임에서야 그냥 스킬만 사용하면 시체가 알아서 살아 움직였지만 과연 내가 좀비를 부활시키는 방법을 단기간에 배울 수 있을까? 잡귀를 지금만큼 부리는데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말이야."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다수의 좀비를 부활시킬 것도 아니고 제가 쓸 임시육체용 한마리만이라면 제가 방부처리부터 시작해서 언데드 회로를 까는것 까지 전부 알아서 해드릴테니까요. 천우용진님께서는 비교적 의심을 덜사는 선에서 시체를 구할 방법만 알선해주시면 됩니다.'
천우용진이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택배상하차 알바로 구한 중고 노트북을 두들기며 정보검색에 나섰다. 사실 시체를 구하는 것까지도 내가 도맡을 수 도 있었지만 아직 프록시마 행성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아무 시체나 건드렸다가 경찰이 달라붙으면 여간 곤란한게 아니였다.
하여 천우용진의 지능 테스트겸 그에게 좀비용 시체를 구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어떤 결과가 나올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거칠게 타이핑하고 있는 천우용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찾았다. 얼굴 상태가 좀 안좋긴 하지만 사지는 멀쩡한 시체 찾았어."
'벌써 말입니까? 생각했던 것 보다 천우용진님의 수완이 대단하시군요. 실례가 안된다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좀비용 시체를 찾을 수 있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야. 나 탄생석이 없다는 이유로 항상 인생의 밑바닥을 맴돌았으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근처도 안갈 넷까페를 몇개 알고 있거든. 원래는 내가 죽었을때 집주인 아저씨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알아뒀던건데 이런곳에 쓰게 될지는 몰랐네. 자세한건 가면서 알려줄게."
천우용진이 낡디 낡은 외투를 걸쳐입으며 말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로 향하면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인 것이였다. 지구와 달리 통합정부를 지향하는 프록시마에서는 사람이 죽었을때 장례를 치루고 부조금을 받는등의 문화는 동일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매장문화였지만 프록시마의 통합정부에서는 죽은 사람때문에 산 사람이 쓸 땅이 줄어든다며 막대한 매장세를 부과하고 있었다. 하여 프록시마에서는 매장이 아닌 화장이나 수장이 권장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비용이 만만치않아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그냥 부조금을 꿀꺽하고 시체를 무단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경우 막대한 벌금을 묻게 되기 때문에 음지에서 성행하는 사업중 하나가 바로 시체팔이. 말그대로 의료용(아마 십중팔구는 여기에 해당하겠지만) 목적이든, 어떤 부호의 고약한 취미든간에 통합정부에서 허가하지 않는 루트를 통해 시체를 팔아치우는 것이다. 나중에 시체가 어찌되든간에 벌금을 내는 것보단 그게 나으니 음지에선 제법 수요가 있는 사업인 모양이였다.
그리고 바로 천우용진이 접촉한 인물도 바로 그중 하나였으니 친지중 한명이 사고를 당했지만 마땅히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어 사망신고만 마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옆도시에 거주하고 있어 시외버스를 타면 30분내로 도착할 수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사연이 아무리 기구하다고 해도 친지의 시체를 돈받고 파는 놈이 제대로된 인간일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뭐 나야 땡큐였지만서도.
"터미널 근처 화장실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슬슬 준비하는게 좋을것 같아. 시체를 좀비를 만들때 딱히 준비물같은건 필요없는건가?"
'뭐 본격적으로 상위티어의 좀비를 만들것도 아니고 임시육체로 만들려는건데 굳이 준비물까지는 필요없겠죠. 설사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해도 프록시마에서 구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나는 거의 반 확정적인 어조로 술법재료의 존재를 부정했다. 사실 프록시마는 지구와는 달리 마력입자가 굉장히 풍부한 행성이였다. 그말인즉슨 마력원천 자체도 많다는 뜻이였는데 이상하리만치 신비문명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배경에는 탄생석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날때부터 누구나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세상에서 술법이 됐든, 무공이 됐든 고도의 수련을 필요로하는 학문에 관한 수요는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걸 수련할 시간에 자신의 탄생석 능력을 갈고 닦는편이 훨씬더 이득일테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외터미널 근처의 공공화장실에 도착한 나와 천우용진은 다소 추례한 모습의 노숙자가 기다란 낚시가방에 기댄채로 꾸벅구벅 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곤 그리로 향했다.
"실례지만 혹시 죽음의협곡 까페에서 오신 qwe123님이신가요?"
"으응? 하아아아암! 그래 맞수다. 그러면 그쪽은 장의사DM? 예상했던 것 보다 빨리왔구만. 한참 기다려야할줄 알았는데. 돈은?"
"여기 봉투안에 있습니다."
"어디보자... 정확하구만. 이미 치안경찰청에 사망경위도 확인받았고 사망신고도 마쳤으니 언능 가져가시요. 그리고 뭐 진짜 장의사일리는 없겠지만 내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 복도없는년이 취직한날 뒤질건 또 뭐람."
천우용진이 건넨 봉투속을 체크한 노숙자가 야구모자를 한층 더 깊게 눌러쓰더니 마치 도망치듯이 떠나며 중얼거렸다.
'뭔가 사연이 있는듯한 남자로군요.'
"뭐 바닥밑에는 더 밑바닥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 시체는 어떻게할 셈이지?"
'일단은 인적이 드믄 곳으로 가져가서 방부처리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선선하다고해도 시체의 부패속도를 늦추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내 지시에 낚시가방을 매는척하면서 무게중심을 잡귀에게 떠넘긴 천우용진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인근 공사장으로 향했다. 공사대금 문제로 작업이 일시중단된 공사장인지 살벌한 메시지가 생일축하 현수막처럼 치렁치렁 걸려있는 그곳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한 작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장소처럼 보였다.
그렇게 공사장 내부에 도착한 나와 천우용진은 일단 낚시가방부터 열어보았다.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았지만 혹시나 노숙자가 사기를 친것일 수 도 있었기에 물건부터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