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46화 (546/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고작 검주제에 공중제비까지 선보이며 기쁨을 표현한 아슈켈론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 아발란체를 최상급 어둠의 정령으로 삼은 일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안그래도 최상급 어둠의 정령으로 진화하면서 기고만장해진 셰오 더 큐피트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죽겠는데 이런 왈가닥 정령이 최측근으로 부임하면 감당하기가 어려울게 분명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로서 링거(에녹), 목발(아슈켈론) 그리고 투석장치(나)가 모두 모였기에 세라푸스 구하기 작전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앙그릿사가 지시한 곳에 일렬로 자리하니 보석이 박힌 술법원진에서 형이상학적인 고대 문자들이 떠오르며 세라푸스가 봉인된 거대 비취보석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변이술법과 강령술법 이외에는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굉장히 신묘한 마력의 흐름이 이어지길 십분여 에녹의 영혼에선 찬란한 순백색으로 빛나는 실이, 세라푸스의 몸에서는 보기만 해도 음침한 칠흑의 실이 빠져 나왔다. 그 와중에 아슈켈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비취보석 안으로 파고들어 세라푸스를 보호하는 결계를 펼쳤다.

그러자 칠흑의 실 사냥감을 놓친 뱀마냥 날뛰더니 이내 내게 달려들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지할 수 있는 나였지만 타천사의 염상과는 좋은 추억(?)만 가득했기에 자연스럽게 루시페르의 사념을 받아들였다. 이미 루시페르 본체와 직접적으로 정신세계에서 겨룬 경험이 있는 마당에 고작 사념 한줄기에 쫄 이유가 없었다.

"옥사건군, 세라푸스양이 부활할때까지만 일단 버텨주시길. 치천사급이 아니라 지천사급만 되어도 타천사의 염상을 정화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별걸 다 걱정하는군. 굳이 정화할 필요없이 타천사의 염상정도는 가볍게 한끼 식사로 먹어 치워줄테니까 느긋하게 의식을 진행하라고."

라고 말하면서 내가 눈을 깜빡이자 아니나 다를까 단숨에 주위 시계가 뒤바꼈다. 망망대해만큼이나 넓은 용암호수에서 조각배 하나만 의지한채 떠있는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으나 처음도 아니였기에 나는 여유롭게 팔짱을 낀채로 조각배에 몸을 기댔다.

부글부글부글부글!

곧이어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용암호수가 갈라지며 흉측하기 그지없는 생김새의 악마가 나타났지만 나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했다. 루시페르의 사념 또한 나의 그런 배짱엔 이유가 있다는걸 알았는지 섣불리 말을 걸어오는 대신 차분히 말을 걸어왔다.

'이 몸의 본체는 소멸당한 것인가?'

"아아 정말 추하기 짝이 없는 최후였지.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명색이 대마신이 얼마 안남은 자기 자신의 뿔을 하나하나 불사르며 목숨을 연명하는 꼬라지라니."

'...본체와의 의식연계가 끊어졌을때 부터 어느정도 예상한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전해들으니 절망적이기 짝이 없군. 그건 그렇고 너에게선 대마신 벨제붑의 기운이 약간이나마 느껴진다만 아무래도 그의 주권능인 폭식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군. 기생장기를 이용해 폭식의 권능을 대행하는 것도 한계는 있을터. 이렇게 하지. 내가 루시페르의 사념으로서 마지막 힘을 짜내어 주권능인 타락의 힘이 담긴 종자를 네놈의 영혼에 심어주겠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행위 자체가 사형선고나 다름없겠지만 네놈이라면 그 종자를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이쿠 이거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본체랑은 성향이 완전 딴판이구만. 그런데 딱 보아하니 공짜로 해주겠다는건 아닌것 같은데?"

'물론 아무 대가도 없이 타락의 종자를 건네주겠다는건 아니다. 앞으로 100년 아니 1000년 아니 10000년이 걸려도 좋다. 언감생심 죽음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네놈이 야미도엔의 입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비명소리가 나오게 해준다고 약속하면 내가 지닌 모든걸 넘겨주지.'

루시페르의 사념체가 부르르 떨며 증오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반신타락자 소속인 그가 엔도미야도 아니고 야미도엔을 저렇게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걸 보면 성토전이 열렸었던 천익성에서 그녀가 어떤 행패를 부렸었는지 능히 짐작 가능한 부분이였다.

세라푸스나 루시페르를 펫으로서 성토전의 상품으로 내건것 부터 시작해서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내가 대신해서 복수할 필요는 없었으나 야미도엔이 내게 있어서도 몽니와 같은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몽환경이란 고대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걸핏하면 지구에 평화롭게(?) 거주하고 있는 나를 괴롭히질 않나 대놓고 반신타락자 암살자를 보내는둥 도를 넘어선 행동이 이어져왔다.

즉 비단 루시페르의 사념체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내게 야미도엔을 엿먹일 명분은 충분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겸사겸사 루시페르의 눈과 심장뿐만 아니라 골수까지 빨아먹을 수 있다면 절대 나쁜 장사가 아니였기에 나는 바로 긍정의 뜻을 밝혔다.

"좋아 아크리퍼의 이름을 걸고 언젠가 내 역량이 되는선에서 야미도엔을 제대로 골탕먹여주겠다고 약속하지."

'미미하지만 네녀석의 이름에서 언령의 파동이 느껴지는군. 그렇다면 믿고 내게 남은 힘을 모두 집약한 타천사의 종자를 넘기겠다. 마지막으로 충고하지만 야미도엔을 믿지 말아야할 것처럼 엔도미야 또한 너무 믿어선 안된다.'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나 했을때는 언제고 처연한 목소리로 유언을 남긴 루시페르의 사념체는 이내 먼지가 되어 훝어지기 시작됐다. 그리고 새끼 손톱만한 씨앗하나가 민들레 씨마냥 날아와 내 영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매커니즘이 독룡(毒龍) 팔타로스가 사용한 독령제절초와 유사해보였으나 딱히 해로운 느낌은 없어보였다.

본디 타락의 권능이라는 것 자체가 선한 가치관을 지닌 이가 악한 가치관을 지닌 이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고저차에 따른 전위 에너지를 유도하는 것이였기에 이미 악(惡)의 화신이라 해도 무방한 내게는 이렇다할 효과가 없는 것이리라. 아무튼 이 타천사의 염상은 우버리퍼의 독배와는 달리 사용 대상자의 인격자체를 바꿔버릴 위험성이 있었기에 굉장히 신중히 다룰 필요가 있었다.

그만큼 파워업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아무리 유능한 부하라해도 성격적인 결함이 있으면 다루기 어렵다는걸 피부로 느껴왔다. 그러니 정말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겠지. 뭐 아직 종자가 싹을 튀우지도 않은 상황에서 김칫국을 마시는걸 수 도 있겠지만.

그렇게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다시 눈을 감았다 뜨자 나는 아직도 앙그릿사가 진땀을 빼며 세라푸스의 봉인을 해제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루시페르의 사념체도 빼냈겠다 금방 끝날줄 알았던 신격의 격하 작업이 생각보다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였다.

"내쪽은 이미 상황종료다만 세라푸스의 부활은 아직 멀었냐?"

"옥사건군 죄송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냥 아무말없이 얌전히 기다려주세요. 약간의 집중력만 흐트러져도 대사를 그르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지루하다면 제가 레어의 가디언에게 따로 지시를 해두었으니 그를 따라 나서던가요. 거기서 엔도미야님의 의뢰를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뭐 그 의뢰를 수락하고 말고는 옥사건군의 자유지만요."

전신에 착용한 비취보석을 빛내며 술법원진의 마력공급에 매진하고 있는 앙그릿사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나 또한 시덥잖은 농담이나 던질 분위기가 아님을 인지하고 말없이 방을 벗어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비취골렘이 나타나 길안내를 자처했는데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응접실에 입성하니 휑한 동굴 외벽 한가운데 커다란 선물상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구미첩이 잠들어 있던 그 선물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양새에 내가 크리스마스날 어린아이같은 심정으로 급히 포장지를 잡아뜯었지만 수수께끼의 미소녀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그대신 너무나 익숙한 비쥬얼의 증강현실게임 접속캡슐 하나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게 아닌가.

요즘에야 접속이 뜸해졌지만(정확히는 접속 자체가 불가능해졌지만) 그 기기는 잊을래야 잊을 수 가 없는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전용 접속캡슐이였다. 오랜만에 접속캡슐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이것이 엔도미야의 의뢰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 내가 이리저리 모델 사양을 직접 확인하는데 몇가지 특이사항이 발견되었다.

일단 모델에 따라 500W~600W정도의 전기공급을 받던 VOT 온라인 접속캡슐과 달리 이 모델은 마력석 배터리를 기반으로 구동하는 이른바 무선 모델이였다. 마력석의 품질에 따라 어느정도의 구동시간을 보일지 혹은 마력석 배터리를 충전 가능할지는 실제로 접속캡슐을 구동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모델 그 어느곳에도 전기코드가 없다는 것 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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