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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말안들을 네다섯설 아이가 때쓰는듯한 톤. 그런데 문제는 그 고함이 무슨 성대에 확성기를 연결한듯 터무니없이 크다는데 있었다. 그렇지않고서야 제법 방음시설이 잘 돼 있는듯한 마차 안속에서 이렇게까지 크게들릴 수 가 없었다. 때마침 아야사의 헐렁한 블레이져 속으로 손을 밀어넣어 찰진 젖통을 매만지고 있던 나로서는 극히 불쾌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일단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였다.
"아야사 저 돼지 멱따는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거야?"
"아... 그, 그게 아무래도 저희에게 할당된 땅의 지주가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지주라고? 설마 소작농과 지주할때 그 지주? 아니 앙그릿사 이 개년이 한자리 낭낭하게 준다고 해서 기껏 이주해왔더니만 우리를 소작농 취급해? 이 개같은년 비늘을 전부다 벗겨다가 확 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건님. 제가 말한 지주는 그런 개념의 지주랑은 조금 아니 많이 다릅니다. 일단 가면서 마저 설명해드리지요."
톡톡.
아야사가 마차 지붕을 노크하듯 두번 두드리자 말과 트리케라톱스를 교배한듯한 생명체가 어찌나 똑똑한지 유턴을 하며 제갈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아야사의 설명은 제법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용제성에서 지칭하는 지주는 특정 땅의 소유권을 지닌 권력층이 아니라 부모를 잃은 해츌링을 뜻한다게 아닌가. 즉 방금 고막을 파고들었던 소음의 장본인은 실제로 나이가 어린 아이(드래곤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연나이는 수백살쯤 되는)의 때쓰는 소리였던 것이다.
도대체 왜 지구 출신의 이주민들이 고아 해츌링을 돌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 돌봄 서비스 자체가 이 주변의 땅을 할당받은 대가에 해당하는 모양이였다. 즉 과거 소작농의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대신 일정 토지료를 지불하는 것처럼 지구의 이주민들은 무료로 다른 성체 드래곤 대신 해츌링을 돌봐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해츌링의 성장을 돕다가 그 해츌링이 성룡이 되면 이 주변의 땅은 완전히 지구 이주민에게 영구 대여가 된다고 한다. 물론 말이 영구 대여지 실소유는 언제까지나 용제성의 드래곤 일족에게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막상 내막을 알고보니 지구인들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가혹한 조건은 아니였다. 여러마리의 해츌링을 부양하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1마리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저도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진 정확한 배경은 모르겠습니다만 드래곤의 경우 자신의 핏줄에 관한 결속력이 그 어떤 종족 보다 강해서 다른 드래곤의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다고 합니다. 아예 타고난 일족의 마나적 상성때문에 가까이 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요."
"흐음, 인간들도 계모가 애정을 담아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는 드무니 드래곤은 오죽하겠어. 그것보다 방금 그 때쟁이 해츌링을 성룡으로 키워내면 이 근방의 땅이 우리것이 된다고 했지? 그러면 반대로 그 해츌링이 병이나 사고로 성룡이 되기전에 죽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것이... 만약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얄짧없이 사형이라고 하더군요. 설사 고의가 아니였다고 해도 해츌링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로 노역장에 끌려간다고 합니다. 물론 주기적으로 드래곤 감찰대가 지주가 있는 마을을 오가면서 해츌링들의 건상상태나 발육정도를 점검해주니 그런 불상사가 생길 확률은 지극히 낮겠지만 주의해서 나쁠건 없겠지요."
"흥! 병으로 뒤지나 사고로 뒤지나 결국 제 팔자지 괜히 우리한테 죄를 덤터기 쒸울려고 한다면 그땐 나도 가만히 있지않을거야. 그러니까 아야사 너도 지금부터는 너무 상전 모시듯 해츌링을 키울 필요는 없어. 그냥 적당히 때되면 밥이나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 그래. 그리고 우리는 어디 경치 좋은데가서 오랜만에 뜨거운 사랑을 나눠보자고. 무슨 말인지 알지?"
"지주가 절대 가만히 있지않을것 같습니다만 일단 사건님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내가 절대 고집(특히나 그게 잠자리와 관련된 것이라면)을 꺾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는 아야사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용제성의 시스템상 어쩔 수 없이 해츌링이 해달라는건 다 해준 모양이였지만 내가 돌아온 이상 어림도 없는 소리지.
애초에 인간의 아이건 드래곤의 아이건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나빠지게 되있는 법. 그렇다고 무슨 매질을 하라는건 아니였지만 어느정도 넘어선 안되는 선이 있다는걸 명확히 인지시켜줄 필요는 있었다. 그렇게 내가 엘더 드래곤, 하르마게돈과의 약속을 어기지않는 선에서 어떻게 해츌링을 훈육시킬까 고민하는데 어느새 마차가 마을 중앙에 위치한 나무 울타리에 도착했다.
처음엔 무슨 이주한 지구인들이 목축이라도 시작한줄 알았으나 이곳이 바로 이 마을의 지주이자 아야사 일행이 베이비 시스터 역할을 하고 있는 '밍밍'이란 아명의 해츌링이 거주하고 있는 집인 모양이였다. 하여 내가 단단히 혼낼 요량으로 마차밖을 나서는데 이미 적지 않은 인원이 몰려들어 해츌링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해츌링이라는게 돼지인지 드래곤인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배가 불룩튀어나온데다 날개는 어찌나 짧은지 몇해가 지나야 저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을지 짐작키 어려운게 아닌가. 그렇게 빈말로도 귀엽다고 하기 힘든 해츌링이 날개만큼이나 짧은 팔다리를 팡팡거리며 투정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야사 일행이 그간 고생이 적지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밍밍님 일단 이 새로만든 이유식을 드셔보시고 진정을 하시죠."
"아아아아아아앙! 아야사 망마, 아야사 망마, 아야사 망마!!!"
"어이쿠 이게 누구야 칼도로프 아니야. 엘리트 과학자께서 이건 뭐 꼴이 말이아니구만."
"으음? 다, 당신은..."
밀집모자에 헤진 멜빵옷을 입은 칼도로프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서는 들고있던 이유식 그릇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한때 아야사 직속으로 본 보어 마스크를 연구하던 수석연구원인 그였지만 지금은 살도 거뭇거뭇한게 농부나 다름없는 모습이였다.
블루아주 크로스데일의 사망 이후에는 본 보어 마스크를 연구할 명분을, 악신 세트의 침공 후에는 연구할 직장을 잃어버린 그가 새로이 베이비 시터로 취직한 일이 딱히 이상할건 없었다. 다만 본 보어 마스크 연구만 끝나면 토사구팽 시킬줄 알았던 그를 아야사가 21세기 노아의 방주(그러니까 색향천월관)에 태웠다는게 다소 의외였을뿐. 하긴 아야사가 그렇게 단호하게 옛부하를 버릴만큼 모진 성격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나.
"이것 참 오랜만이야. 그런데 기껏 개발 본 보어 마스크 완성체를 개발해놓곤 왜 이런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거야? 설마 그 멧돼지들이 분수도 모르고 반란을 일으킨건 아니겠지?"
"그런게 아니야! 아니, 아닙니다. 불과 한달전만 하더라도 사건님의 말씀대로 밍밍님의 식사를 운반한다거나 우리를 치우는 일은 본 보어 마스크에게 도맡겨왔습니다만, 어느날 한 본 보어 마스크가 갈퀴로 낙엽을 쓸다가 실수로 밍밍님의 비늘을 건드는 바람에 본 보어 마스크 일족 전체가 광산의 노역장을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아야사, 칼로도프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야?"
"예, 사실입니다. 본 보어 마스크의 지능 발당이 생각보다 순조롭게 이루어져서 몇몇 단순작업에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이 마을 또한 그 결과물중 하나였죠. 하지만 역시 육아처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에는 부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 고의는 아니였고 밍밍님이 낙엽속에 파묻혀서 낮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서 생긴 불상사였습니다만 생각보다 상황이 꼬여 드래곤 감찰단이 호출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그때 앙그릿사님이 나서서 중재해주지 않으셨다면 광산으로 끌려간건 비단 본 보어 마스크로 끝나지 않았을겁니다."
"흐으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낙엽을 청소 하다 비늘(해츌링의 육체가 성룡에 비하면 연약하기 짝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눈먼 농기구에 당할정도는 절대 아니다) 좀 긁힌거 가지고 노역을 시키다니 실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지구인중 누군가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엘더 드래곤이고 나발이고 바로 어깃장을 부렸을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가 지구 이주민의 대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였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구태여 실험으로 탄생한 유사인류인 본 보어 마스크를 위해 큰 목소리를? 굳이? 이제와서 드래곤따위가 무서울건 없었지만 이런 시덥잖은 일로 그들과 충돌하기엔 내가 용제성에서 해야할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 멧돼지 친구들한테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광산에서 조금만 더 뺑이 치라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버킷 리스트가 모두 바닥나면 구하러 갈테니까. 킥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