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31화 (531/599)

<-- -->

움찔!

PTSD 그러니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유도하기 위한 작전이 통했는지 아니면 실패했는지와는 별개로 사리카야의 육체는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아크네메시스의 삼지족을 통채로 부여잡고 엎어치기를 시전한 후 당수치기로 아크네메시스의 호흡기관을 노려온다.

부지부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저항할새도 없이 당한 내가 새삼 사리카야의 괴물같은 완력에 놀라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리카야의 손날이 내 목젖을 뚫고 지나가기 직전 그녀가 갑자기 뜻모를 소리를 지껄이다 구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째서 의식의 지배가 풀리려..."

"어라라? 내 목소리가 왜 이러는거야..."

"빌어먹을 저능아 여왕년, 날뛰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

"으으윽, 입에서 짜증나는 이물감이... 우에에에에에에엑!"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할! 이렇게 된바에 강령술사 네놈의 몸을 빼았아주마!!"

졸지에 사리카야의 토사물로 세수를 하게된 나는 차라리 목젖을 뚫리는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명을 내질렀는데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웬고하니 일전에 보았던 노파의 얼굴을 한 인면지네가 토사물 사이에 섞여 내 입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였다.

마더뻐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 나는 엑시아 여왕이 내 입으로 들어오자마자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을 요량으로 이를 갈았지만 인면지네의 꼬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몸에서 힘이 빠지는게 아닌가? 하여 그저 멀어져가는 의식속에서 왜 사리카야가 그렇게 무력하게 몸을 빼았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상기하며 나는 다시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 * * *

'여긴 어디지?'

플랑크톤 한마리조차 살지 않을것 같은 깊고 어두운 심해속에서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다소 얽힌 기억의 실타래를 풀다보니 대충 어떻게 된 사정인지 짐작못할 바는 아니였지만 기존의 의식영역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 이렇다할 대처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떠오르는지 아니면 가라앉는지 조차 구문되지 않는 심해속에서 한참을 유영하던 나는 어느 해저동굴 앞에서 멈춰섰다. 영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지만 달리 갈데도 없었기에 동굴 입구에 발을 내딛는데 갑자기 직경이 10m에 달하는 핏줄 가득한 눈동자가 튀어나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인님,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뭐, 뭐야 요슈아 너였어? 이런 씨발 새끼야 놀랐잖아. 왜 갑자기 이런 곳에서 등장하고 지랄이야. 아니 그 이전에 이곳은 도대체 어디야? 설마 내 의식이 엑시아 여왕에게 제압당한건 아니겠지?"

"하하하! 그런건 아닙니다. 저조차 실패한 일을 고작 절지류 기생충이 어떻게 해내겠습니까. 제가 살펴본 결과 그 엑시아 여왕이라는 자가 한 일은 자신의 신경망을 확장해 주인님의 중추신경망에 침투 및 교란시킨 것이였습니다."

"그럼 재깍재깍 복구시켜야될 거아니야? 뭘 꾸물거리고 있는건데?"

"어허 주인님이 그렇게 큰 소리칠 입장이 아니실텐데요. 뭐 앞으로 안구인권을 보존해주신다고 약속하면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저 요슈아가 힘을 보태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면? 이게 지랄염병 이단 옆차기하고 자빠졌네. 안구인권이라니 도대체 그건 누가 만든 신조어냐? 애초에 그런게 왜 필요한건데?"

"왜 필요하다뇻! 틈만 나면 제 눈알을 찔러 대고, 의식세계에서는 얼차려에다가 그 우버리퍼 더 블라블라인지 뭐시기한테는 미끼로 던져버리고. 이런 푸대접은 벨제붑님이 살아계실때도 받아본적 없다 이 말입니다. 마안중에서도 엘리트중의 엘리트인 제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으흐그그그극!"

해저동굴을 가득 매운 요슈아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거렸지만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신마켓에서 요슈아를 구매 후 개봉할 당시 녀석 또한 내 몸의 지배권을 빼았으려 했던 기생충 아니 기생안 출신이란 사실을 상기해 냈기 때문이였다.

"오냐 그 놈의 안구인권?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이전삶이 천국이였구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탄압해주마!"

"하아! 제 도움없이 여기서 나갈 수 있을것 같습니까? 주인님의 의식세계가 굉장히 견고하긴 하지만 엑시아 여왕의 침투방식은 의식세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신경망을 해킹하는 방식이라 저조차 여기까지 우회해 오는데 고생 꽤나 했단 말입니다!"

"시끄럽고 도와줄 생각 없으면 저리 꺼져! 대신 마신의 두번째 심장, 불칸 너 이리 나와봐!"

"나를 불렀는가 계약자여!"

나의 부름에 어디선가 굵직한 초음파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살피니 물안경을 착용한 심장 모양의 난쟁이가 짧은 팔다리로 용캐 헤엄을 쳐 이곳으로 맹렬히 접근중이였다. 뀡대신 닭이라고 요슈아가 저렇게 비싸게 군다면 불칸의 힘을 빌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이봐 불칸 혹시 지금 당장 식도를 타고 올라와서 내 구강에 자리잡은 벌레 한마리만 조져줄 수 있나? 네 근육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흐음. 만약 이전처럼 계약자의 아바타와 본체가 하나로 융합된 상태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조금 힘들것 같군. 계약자의 본체는 지금 관속에서 죽은듯 잠들어 있지않은가. 물론 나라는 두번째 심장만큼은 절대 잠들지 않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고 있지만 말일세. 이전 싸움이 워낙 격렬했던 탓인지 포도당과 산소를 필요로 하는 지친 근육세포가 제법 많아. 물론 아픈만큼 성장하는 것이 바로 근육이니 나로선 환영할 일이지. 음하하!"

"아, 맞다... 아니 잠깐만. 불칸 네가 지금 본체에 있다면 도대체 내 부름에는 어떻게 답할 수 있었던 건데?"

"그건 바로 근육통신 덕분일세!"

"그, 근육통신이라고?

이것들이 신조어 만들기에 맛들렸나? 나는 안구인권보다 해괴한 단어의 등장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불칸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 주변을 연신 헤엄치며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근육통신이란 짧게 요약하면 바로 믿음과 우정이 발하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팔굽혀펴기 목표치까지 단 1개가 남았을때, 온몸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려와 입도 뻥긋할 힘조차 없을때 바로 그런 순간에 근육에게 간절하게 뇌파를 보내는 것일세. 제발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달라고. 그 간절한 염원이 근육에 닿아 끝내 팔굽혀펴기 목표치를 채우는걸 바로 근육통신이라고 하지."

"불칸 이 뇌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진 멍청한 녀석이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주인님, 저와 불칸이 이런 와중에도 주인님과 소통할 수 있는건 단순히 영혼 끼리 링크가 되어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절대 근육통신이니 하는 터무니 없는 개념때문이 아니라고요!"

"근육통신, 근육통신, 근육통신..."

요슈아가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쳐왔지만 나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듯 근육통신이란 네글자를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고 끝내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나는 마치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소리쳤다.

"그래 맞아! 어차피 신경망을 해킹한 것 뿐이라면 이지가 없는 언데드 수하를 부릴때처럼 영력망을 통해서 언데드 회로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면 되는 일이였어. 엑시아 여왕 이 빌어먹을 년 아주 요절을 내주마. 그리고 그 다음 목표는 요슈아 너야 이 개새끼야!"

"으헤에에에에에엑! 하, 한번만 봐주십쇼! 앞으론 절대 안깝치겠습니다."

내가 엄지와 검지로 권총모양을 만들어서 요슈아에게 겨누자 녀석이 기겁해서 게 눈 감추듯 해저동굴 깊숙한 곳으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은 나는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며 영력을 실처럼 뽑아내 사방팔방에 거미줄처럼 뻗었다.

영력은 인체의 오감이 아닌 육감에 놓여있는 영역이였기에 엑시아 여왕이 아무리 내 신경망을 해킹했다해도 간섭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심해를 전부 뒤덮을듯 영력의 실을 뽑아내던 나는 돌고래가 초음파를 통해 주변 사물을 인식하듯 영력망을 펼쳐 주위 상황을 인지해 나갔다.

두 눈으로 직접 본것만큼 정확하진 않겠지만 거대한 힘의 파동으로 볼때 아무래도 엑시아 여왕은 그 새를 못참고 내 육체로 정신을 차린 사리카야 여왕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듯 했다. 쓸데없이 몸 상하는 일은 질색이였기에 영력의 실을 아크네메시스의 삼지족에 주입한 나는 이내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자 주위의 시계가 급격히 흔들린다. 마치 고장난 텔레비전처럼 심해가 보였다, 하늘이 보였다 분노한 사리카야가 보였다 하더니 끝내는 삼지족에 움켜쥔 인면지네가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인다. 울고불며 살려달라고 날뛰는 노파의 목소리가 엥엥하고 귓가를 멤돌았지만, 나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삼지족을 있는 힘껏 움켜쥐며 소리쳤다.

촤아악!

"게임오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