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회
vol.14 Oxygan the True Queen Of Ocean
"그래 전생유적의 관리자로 선정됐는데 수백년동안 모험가가 전려 찾아오지 않아 다른 의미로 고생했다는거구나. 물론 물의 정령에게 수백년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 도 있겠지만 엔도미야도 참으로 너무하군. 그정도면 다른 행성으로 이전할법도 한데."
"그렇죠, 브루고뉴님? 엔도미야님이 이것저것 섬세하게 신경써주시긴 했는데 가끔보면 감정이 없는것 같아서 좀 무서워요. 아무튼 덕분에 너무 할짓이 없어서 정령 칵테일술로 만든 음료수 종류만 수백여가지가 넘어갔다니까요. 그러다가 1000여개가 될때쯤..."
"저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났다는건가."
브루고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추억의 책장을 마지막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나서야 내게 관심을 주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애초에 깽판을 칠려면 추억의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치는게 맞았다. 지금 그저 자연스럽게 추억의 책장을 덮고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리라.
"손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것 같아 미안하군."
"알면 됐어. 그보다 우리끼리 할 얘기도 꽤 길어질것 같은데 오르시나랑 슈이쿤은 이 방에서 내보내는게 어때? 그 둘끼리도 그간의 소회를 풀겸."
"확실히 그편이 좋겠군. 슈이쿤, 오르시나를 데리고서 정령가든, 아쿠아리움이 지난 수백년간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고 오렴. 뭐 사실 거의 그대로긴 하지만."
"예, 알겠습니다."
긴말없이 바로 자리를 떠나는 오르시나와 슈이쿤. 그리고 투명한 크리스탈 외벽을 통해 그 두 물의 정령들의 실루엣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너 오르시나가 다시 돌아온걸 보고 연어에 비유했었지. 그렇다면 너희 정령신들의 손으로 뽑은 어둠의 정령신 아니 정령왕이 다시 돌아온건 뭐라고 표현하려나?"
"운명의 장난정도로 표현하고 싶지만 운명은 절대 장난을 치지않지. 운명력은 항상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에만 작동하니까 그대를 이곳으로 부른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기탄없이 바로 그대를 보자고 한거고."
"그놈의 운명력, 운명력 지겨워 죽겠네. 시끄럽고 수왕성에 관해서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 얼마 안있으면 수왕성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예정인데 놀라지 말라고. 무려 디파일러 50개 사단이 침략할 예정..."
"그거라면 이미 알고있다."
"뭐? 알고 있었다고?"
나는 구체적인 병력규모를 말했음에도 태연한 표정으로 받아넘기는 브루고뉴의 표정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이 소식을 알리자마자 안절부절 못해하며 내게 도움을 요청할거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바다위에서는 적의 병력규모와 상관없이 무적이라고 생각하는건가.
"물이 있는곳에 곧 생명이 있다. 그말인즉슨 생명체가 있는곳에는 항상 물이 있다는 뜻이고 물의 정령을 거느리고 있는 내 눈과 귀를 속일 수 있는건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되는건가? 엔도미야에게라도 말해서 원군요청을 하던가 아니면 다른 정령신들에게 참전을 부탁하던가 해야지."
"그럴 필요는 없네. 절대 자만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만만치 않은 상대이기에 더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 외부요인을 차단한거지. 한번 생각해보게. 만약 불의 정령신인 이프리트 13세가 이 싸움에 참전한다면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물의 기운이 약해져서 내게는 오히려 마이너스네. 그리고 다른 여신칼날단의 도움을 받는다고 쳐도 수왕성 전체가 대홍수로 뒤덮힙 상태에서 자신의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는 많지않아. 이러니 저러니 해도 10000m 심해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신하들과 같이 싸우는게 편하네."
브루고뉴의 말을 듣다보니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자연재해를 재채기만큼이나 쉽게 일으킬 수 있는 정령신에게 자잘한 원군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건그렇고 벌써부터 수왕성에 대홍수를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다니 샨코 공주는 안중에도 없는건가? 물론 레드 파이렛의 구성원은 대부분 해산물이라 생존수영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그들은 미리 대피시킬 계획이네. 여러가지 장소를 고려중이지만 오르시나와 대화를 하다보니 전생유적에 대피를 시키는게 좋을것 같더군. 수왕성과 격리된 차원인 그곳이라면 최악의 사태에도 화를 피할 수 있겠지."
"샨코 공주는 이미 전생유적에 출입한 경력이 있어서 입장할 수 가 없을텐데?"
"그거라면 엔도미야에게 양해를 구해야겠지. 그대도 알겠지만 그녀는 기계신이긴 헤도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를 두지 않을만큼 꽉 막혀있진않아. 그보다 나는 샨코 공주보다 그대가 더 걱정이로군."
"내가 왜? 설마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진다라는 얘기를 하려는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날 너무 낮잡아보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지난번 정령왕관 수여식때 말일세. 제대로 인수인계도 받지않고 허겁지겁 돌아가버리지 않았던가. 정령왕으로서 갖춰야할 소양을 하나도 갖추질 못했으니 빛과 어둠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본래의 취지와도 맞지않은 셈이지. 만약 괜찮다면 내가 빛의 정령신 루를 대신해서 가장 중요한 몇가지만 설명을 해주고 싶네만?"
"짧게 요점만 간단히."
가르침을 받는 입장 주제에 뾰루퉁하기 그지없는 나의 태도에도 아랑곳않고 브루고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겉으로는 관심없는 척 했지만 앞으로 내가 어둠의 정령왕으로서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분명 필요한 것들이였기에 나 또한 집중에서 그 내용을 머릿속에 받아적었다.
일단 정령왕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자신만의 심상세계(心像世界)가 구현화된 정령가든을 가꾸는 일이라고 한다. 이 정령가든이 있어야 휘하의 소정령들을 육성 및 소집할 수 있으니 우주각지의 정령사들과 계약을 통해 어둠의 대속성이 미치는 영향을 확대해 나가는 일종의 베이스캠프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곳 아쿠아리움같은 거대 정령가든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본적도 없는 곳이지만 아마 내게 주어진 어둠의 정령가든은 현재 3평 고시원방 수준일 것이고 휘하 소정령들도 아예 존재하지 않을게 분명하단다.
내 마음이 그만큼 좁아서 그런게 아니라 전대 정령신의 힘을 세습(이름끝에 2대, 3대, 4대같은게 붙은 정령신들이 이에 속한다)하는게 아닌 외부인이 정령왕으로 추대될 경우엔 다 이렇게 시작할 수 밖에 없단다. 브루고뉴 또한 고도의 수(水)속성 술법 연구하던 고대 마도사가 육신이라는 껍질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정령화된 경우라 정령가든 아쿠아리움의 크기가 어항만 했었다고.
아무튼 그렇게 1만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항속의 소정령들을 어화둥둥 돌보다보니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를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얘기다만... 육성시뮬레이션 게임같은건 내 취향과 전혀 거리가 멀었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쪼꼬미들 키우는 취미없어. 그냥 셰이드크롤러처럼 한번에 강력하고 쓸만한 상급 어둠의 정령들을 부릴 수 는 없는거야?"
"그 날 자네를 데리고 사라진 그 상급 어둠의 정령은 그저 억겁의 세월동안 타인의 그림자속에 기생하면서 운좋게 정령가든없이 살아남았을뿐이야. 우주 각지를 뒤져보면 그런 케이스가 한두번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좀 회의적이군. 좀 귀찮더라도 처음 기틀을 잘 잡아놓으면 나중엔 알아서 스노우볼이 굴러가는 때가 오네. 그러니 최하급 어둠의 정령인 셰오를 얕잡아 보지 말고 충분히 번성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주게나. 어떻게 보면 인간의 아이보다 연약한게 그들이니까."
"만약 내가 어둠의 정령왕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멋대로 행동한다면 어쩔셈이지? 다시 정령왕관을 수거해 갈건가?"
"아니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수 도 없네. 정령왕관은 이미 자네의 영혼과 융합되어 그대의 영적존재를 진화시키는데 소모되었네. 인간들의 왕관처럼 뺐을 수 있는게 아니야. 그리고 기본적으로 중속성의 정령신은 대속성의 정령신의 일에 간섭할 수 없게 되어있네."
"그말은 마치 대속성의 정령신은 중속성의 정령신에게 간섭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흐음. 간섭이라고 해도 그대가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있네. 어디까지나 다원속성간의 균형을 위해 협력을 요청하는 수준이지. 마치 그날 자네를 어둠의 정령왕으로 임명했을때처럼 말이지. 그리고 애초에 자네는 아직 어둠의 정령신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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