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3 Oxogan The Bony City Of Necropolis -->
"어라, 또 세계수가 빛나기 시작했어. 혹시 드래곤 나이트님이 부활하신건가? 역시 우리 용사님이 그렇게 쉽게 당하실리가 없지. 가서 나랑 교미 놀이 해달라고 쫄라야지."
뇌가 순진하다 못해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먹은듯한 히야신스 4세 공주가 바다가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세계수 쪽으로 달려나간다. 세계수를 가득 메운 빛무리의 실루엣은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그런 추측이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였으나, 이미 진'사령안에 의해 혼(魂)이 증발하고 백(魄)만 남은 드래곤 나이트 이용제가 부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목숨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게임 캐릭터와 현실속 인간의 가장 큰 스펙차이중 하나였으니 괜히 내가 강박증 환자처럼 뇌와 심장 보호를 위해 과잉투자를 하는게 아니였다. 아니나 다를까 빛무리가 잦아들고 세계수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녹색 드래곤 한 마리뿐이였고 탑승자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비늘곳곳에 환공포증을 유발할만큼 빼곡히 비취보석이 박힌 그 녹색 드래곤의 모습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누군가와 똑 닮아 있었기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져 피스톤 운동을 이어나갔다. 허나 오랜만에 사람을 본 시골개처럼 뛰쳐나간 히야신스 4세 공주를 방치할 수 없었는지 몸부림을 치는 튜리파. 가만 좀 있어, 이년아! 나는 일단 박으면 세번은 싸야한단 말이닷!!
"저 녹색 드래곤은 도대체? 드래곤 나이트님과 대륙을 횡단할때조차 단 한번도 본적 없는 타입의 드래곤... 어서 공주님을 말려야돼! 어서 날 놔라 추잡한 마왕놈!!"
"그럴 필요없으니까 얌전히 박히고 있어. 저 비취 드래곤은 바하무트처럼 덩치만 큰 양아치 드래곤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젠틀한 녀석이니까 공주를 해치는 일따윈 없을거다."
여신칼날단 서열 10위이자 천익성에서의 성토전에서 리더를 맡았던 보석룡(寶石龍), 앙그릿사. 그녀는 인세에 보기 드문 성자 아니 성룡으로 비단결을 넘엇 극세사 이불같은 마음씨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였다.
여신칼날단과의 첫 인사를 슈퍼로이드 퀼레뮤츠로 시작한 나였기에 처음에는 그 친절함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으나, 대마신 루시페르와의 일전에서 총대를 메는 모습을 보고 날때부터 악한 사람(나 김사건처럼)이 있는가하면 날때부터 착한 사람도 있다는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동체를 인간폼으로 축소시킨 뒤 바다로 다이빙 하려는 히야신스 4세 공주를 공주님 앉기로 받쳐든 앙그릿사. 면식이 있는 사이도 아닐진데 자신의 비늘에 긁힐까 애지중지 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였다. 하긴 히야신스 4세의 나이가 세자리를 넘어간다해도 나이가 네자릿수를 넘어가는 앙그릿사가 보기엔 갓난아기나 다름없으리라.
"바닷물이 보기보다 깊고 차갑답니다. 수영의 달인이 아니라면 이런 이른 아침에 수영은 삼가셔야되요."
"아, 알겠습니다. 저 근데 그린 드래곤님 혹시 드래곤 나이트님을 혹시 보지 못하셨나요? 삐까뻔쩍한 전신황금갑옷을 착용한 젊고 잘생긴 제 인간 약혼자말이에요."
"글쎄요. 그렇게 눈에 확 띄는 복장의 소유자라면 제가 못봤을리가 없을것 같습니다만 아쉽게도 제가 지구에 도착한 이후로 처음 본 인간은 당신이 처음이랍니다. 아니 인간이 아니라 요정족이셨던가요? 어쨌든 드래곤 나이트라니 참 오래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로군요. 전설속 우화에서나 들어봤던 이름인데 말이죠. 저희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시길 언젠가 용제성이 위험에 쳐했을때 드래곤 나이트라는 용사가 신성처럼 나타나 별을 구원할거라고 하셨거든요."
"정말인가요? 신기하네요. 사실은 제가 찾는 드래곤 나이트님의 이름도 용제였거든요. 이건 단순한 우연일까요?"
"아마도요. 인간이 용제성 구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소리니까요. 그 반대라면 모를까."
오늘 처음만난 주제에 무슨 할말이 그리 많은지 한동안 수다를 떨던 앙그릿사가 히야신스 4세 공주를 활주로 위에 내려주고 이곳으로 날아왔다. 귀한 손님이라면 귀한 손님이였으나 나는 일종의 기싸움을 할 요량으로 그녀를 본척만척한채 계속해서 튜리파의 뒷구멍에 자지를 쑤셔넣다 빼기를 반복했다.
"아흣, 아흣, 아으읏! 그, 그만 좀... 하으윽!!"
"성토전이 끝난 이후고 꽤 오랜만이죠, 아크리퍼? 바쁜 와중에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하군요."
"알면 거기서 가만히 찌그러져서 내가 질싸 3번 다 끝낼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하여튼간에 이 놈의 세계수 베어버리던가 해야지. 무슨 여권도 없는 불법체류자들이 자꾸 기어들어와."
"세계수를 벨때는 베더라도 제 얘기는 듣고나서 하는게 좋을겁니다. 세계수는 엔도미야님의 대권능을 제외하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은하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수단중 하나니까요."
"아 쫌 그러니까 그만 좀!"
내가 피스톤 운동을 잠시 멈춘채 신경질적으로 앙그릿사에게 삿대질을 하려는 찰나 그녀가 말없이 홀로그램 화면 하나를 출력했다. 그 화면에는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에 웬 낡아빠진 고성하나가 유유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허나 아무리 열심히 짱구를 굴려도 당최 눈앞의 화면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이 화면은 엔도미야님께서 전 우주에 흩뿌려 놓으신 1조개의 소형위성들중 하나가 전송해온 사진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엔도미야님이라고 해도 이 넓은 우주를 실시간으로 빈틈없이 촬영하는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 사진을 건진건 꽤나 운이 좋았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지요."
"운이 좋긴 개뿔이! 탑여배우 화장실 몰카사진도 아니고 그딴 줘도 안가질 고성 사진 하나 찍은게 뭐가 운이 좋다는거야?"
"사령술사인 당신이라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사진의 해상도가 너무 낮았던걸까요. 여기 찍힌 이 고성은 겉으로보면 그저 평범한 성채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워프엔진으로 아케론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도시형전함, 네크로폴리스입니다."
나는 익히 알고 있던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이해할 수 없자 잠시 뇌회로정지 상태에 빠졌다. 좋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한 단어, 한 단어 분석해보자. 아케론강은 분명 물의 수호정령 오르시나가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권능을 사용할때 빌려쓴다는 저승의 강으로 산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
그리고 워프엔진이야 그 원리는 모른다쳐도 실제로 타본적도 있고 구경해본적도 있어. 마지막으로 네크로폴리스는... 그냥 VOT(Vaccie Of Things) 온라인의 흔해빠진 사냥터중 하나잖아. 물론 말이 그렇다는거지 사령술사한테 필요한 술법재료가 툭치면 우수수 떨어지는 곳이라 흔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않지.
실제로 그것때문에 대형길드간 이권다툼도 많았고 심지어 사령술사도 아닌 직업길드들까지 몰려들 정도였으니. 그렇게 쭈욱 단어들을 꼽씹어봤지만 앙그릿사가 말하고자 하는바가 이해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더 난황에 빠질뿐이였으니 나는 보지에서 정액을 줄줄 흘리는 튜리파를 슬쩍 밀어내고 앙그릿사를 정면에서 마주보았다(물론 여전히 바지는 입지않은채로).
"나는 말을 빙빙돌려서 하는걸 좋아하지않아. 연락도 없이 불쑥 남의 행성에 찾아왔으면 용건만 간단히 세줄 요약해주는게 어때?"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번일은 그렇게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서요. 엔도미야님의 볼일이 하나, 제 개인적인 볼일이 하나 그리고 아크리퍼 당신 본인과 관련된 중요사항이 하나. 굵직한 사항만 벌써 세개기때문에 세줄 요약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에요. 게다가 보안엄수가 필요한 사항인데 보는눈도 워낙 많은지라."
앙그릿사의 시선을 쫓아 살펴보니 비록 질싸 3회 할당량을 모두 채우지는 않았지만 내가 튜리파에게서 관심을 끊었다고 판단했는지 어느새 요정족들이 떼로 몰려와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 실로 민족애까 넘치는 애뜻한 장면이였지만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저번 성토전때처럼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린가?"
"아수라몽크 트렉슐씨에 관한 얘기라면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본래 지구인도 아닌 타차원의 요정족 무리에 간자를 심는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요. 그보다는 이제막 전쟁통을 피해 피난을 온 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는걸 미연에 막기위함이랄까요."
"쓸데없이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로군. 알았으니 일단 따라와."
"저기 그전에..."
"아니 뭐 또? 요정족들이 천막에서 사는게 불쌍하니까 집이라도 내놓으라는건가?"
"그게 아니라 아크리퍼군 실례지면 바지는 좀 입어주시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