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십면체 라이노바이러스 필드(Rhino-virus Field) 전개 개시!"00427 vol.12 Oxogan The Dragon Knight Saga ========================= 치히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괴룡왕 바하무트도 왕이고 마왕 데스프로그도 왕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의 힘의 격차라는건 왕(王)자가 아닌 다른 의미의 한자를 쓴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심했다. 방금 직접 보고도 잘 믿기지 않지만... 바하무트의 브레스는 이렇다할 속성도 가미되어 있지 않으면서 그저 초고밀도로 농축된 에너지만으로 해상 플랜트 주위의 바다를 모조리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이곳의 수심이 그렇게 낮은것도 아닐진데 훤히 들어난 산호초 동산을 보고 있노라니 간신히 불씨를 살려냈던 전투의지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였다. 그러다 뒤늦게 히야신스 4세와 튜리파의 생사에 생각이 미친 나는 자욱하게 깔린 수증기를 날려보내기 위해 헬라이온과 이자하다카로 하여금 날개를 세차게 흔들게 했다.
펄럭펄럭!!!!!(x2)
솔직히 말해 그녀들의 생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적어도 시체를 찾기전까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시체마저도 남아있지않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나는 용사고 히야신스 4세는 공주였다. 그리고 최후의 최후까지 공주 구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붙는 것이 용사의 본분이자 존재 의의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렇게 마침내 안개와도 같던 수증기가 모두 걷히고 괴룡왕 바하무트의 브레스가 정통으로 지나간 자리가 드러났을때의 결과물은 놀랍기 그지없는 것이였다.
'둘 다 멀쩡해? 그것도 상처하나 없이.'
그 누구보다 기적을 바라마지않았던 나였지만 막상 아무도 다친 기색이 없자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였다. 바하무트의 브레스는 벌집을 닮은 베리어에 한해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못한듯 해상 플랜트가 벌집 모양으로 깎여나간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벌집 베리어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튜리파를 처음 발견했을때 바로 옆에 있었던 블루투스 헤드셋 소녀였다. 히야신스 4세와 비슷한 연배(물론 나이 자체는 히야신스 4세가 훨씬 많겠지만)로 보이는 연약한 소녀가 저런 고위결계를 이렇다할 주문영창도 없이 사용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랄 노자로군.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온갖 폼은 다 잡더니 벌레 새끼 한마리 못죽였데요, 못죽였데요. 이러다가 지구 담당 여신칼날단원이 갑자기 돌아오기라도하면 개쳐발리겠네. 키키킼.
"닥쳐라, 야미도엔! 이 행성에 마나가 없어서 위력이 약해진 것 뿐이다. 이 몸의 괴룡박격포가 고작 이 정도의 위력일리가 없지않느냐!! 단 1초라도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을 수 만 있었어도 저딴 유리결계따위는 단숨에 박살냈을것이다."
-뉘예뉘예. 잘난 괴룡왕님께서 그런거라면 그런거겠지요. 그런데 어찌된 이유로 브레스의 위력 약해졌건간에 지구가 100%의 실력을 발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전투무대라는건 팩트 아니야? 만약 나라면 그냥 드래곤 2마리에 만족하고 그냥 바로 지구를 떠나겠어. 괜히 한 마리 토끼를 더 잡아먹겠다고 양손의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걸 명심해. 게다가 여긴 엄연히 엔도미야 언니의 권역이라 내가 줄 수 있는 도움도 한정적인걸.
"나 괴룡왕 바하무트가 네년의 도움이 없으면 여신칼날단의 위선자놈들 하나 처리하지 못할것 같으냐! 야미도엔 너야말로 명심하거라. 왕은 왕에게 구걸하지 않는다는걸. 그리고 톡톡히 눈에 담아두거라. 마나 없이도 천지를 격동케하는 이 몸의 괴룡박투술을!!!"
파앗!
돌연 코앞에서 사라진 바하무트가 야미도엔의 목소리를 송출하는 손거울을 뒤로한채 튜리파의 근처에 등장했다. 튜리파가 번개처럼 정원사의 덩쿨검(Gardener's Vinesword)의 시동기를 발동해 반격에 나섰지만, 바하무트의 팔을 칭칭 휘감은 억센 덩쿨줄기는 손날치기 한번에 무력화되고 말았다.
그러고도 힘이 남았는지 수비적인 기수식을 펼친 튜리파를 벌집 베리어밖으로 튕겨보낸 바하무트의 그냥 평범한 손날치기. 어느샌가 히야신스 4세를 들쳐업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듯 고속 백대쉬를 한 블루투스 헤드셋 소녀가 쿠션 역활을 해주지않았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격이였다.
자신의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걸 증명하듯 단 일합만에 승부를 낸 괴룡왕 바하무트. 이건
검술의 고하를 떠나서 압도적인 힘의 격차때문에 뭘 어떻게 해볼 수 가 없는 싸움이였다. 뒤늦게 해상 플랜트의 자체 경비인력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각양각색의 병장기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저 괴물의 상대가 될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애시당초 저 경비인력들은 조선시대도 아닌데 왜 냉병기로만 무장을 했단 말인가. 뭐 열병기가 있다고해서 갑자기 뾰족한 수가 생길리도 없겠지만 81mm 박격포같은게 있다면 시선끌기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케네트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황삼 아저씨,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 기습이에요. 해상 플랜트의 보안설비를 당장 최고경비태세로 전환하세요."
"그, 그게 방금의 공격으로 해상 플랜트의 전력시설이 파손돼서 대부분의 보안설비가 작동중지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정화조 시설정도가 지금 이 해상 플랜트에서 유일하게 멀쩡히 굴러가는 시설일겁니다. 황월방도중 일부도 제 눈앞에서 가루가되어 사라졌... 아니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프랑케네트 아가씨와 요정족 손님들의 안전입니다. 퇴로확보는 저희 황월방도들이 맡을테니 일단 기야스에 탑승해 색향천월관으로 후퇴하시는게 어떻습니까?"
"그렇게 간단히 도망치게 냅둘정도로 호락호락한 적이 아닙니다. 차라리 황삼 아저씨가 요정족 아가씨들을 이끌고 색향천월관에 피신해 있으세요. 지켜야할 대상이 많아지면 싸우기 힘들어지는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 하지만..."
"황삼, 프랑케네트 아가씨께서는 우리들의 보호를 받아야할만큼 약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지. 내가 남아 아가씨를 엄호할테니 너는 어서 아가씨가 시키는대로 하거라."
"황일 대장 그러면 프랑케네트 아가씨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레레 장군.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 계시겠지요. 당신이 따거외의 사람의 명령을 듣지않는다는건 익히 알고있습니다. 사실 그건 우리 황월방도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프랑케네트 아가씨는 따거의 숱한 부하들중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걸 기억하셔야합니다. 목숨을 지켜야 하는건 말할것도 없고 아가씨의 옥체에 흠집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보필해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따거께서 돌아오셨을때 크게 경을 치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유언은 다 끝났느냐, 이 버러지놈들아! 안됐지만 단 한놈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박[撲] [一]일
멸[滅] [拳]권
팔짱을 낀채로 잠시 사태를 관망하는가 싶었던 괴룡왕 바하무트가 더 이상 추가로 경비인력이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자 행동에 나섰다. 녀석이 활주로의 한가운데에 주먹을 꽂아넣자 마치 아스팔트 바닥이 투두둑 갈라지며 파도처럼 전방을 덮쳐나간다. 저 괴물놈 상대를 한꺼번에 처리하기위해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건가!
-입실론(E) 사출 준비중(6/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23/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51/100)
-입실론(E) 사출 준비중(88/100)
-입실론(E) 사출 완료(100/100)
"정글짐 레이저(Jungle-gym Razer) 분사 개시!"
해수로 이루어진 쓰나미의 위력이 해변가 도시를 초토화시킨다는 점을 고려할때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쓰나미의 위력은 굳이 입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제 딱 1회 남은 헬라이온의 플레임 브레스를 사용해야 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할때 블루투스 헤드셋 소녀는 또 한번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지구의 기술력을 수천년쯤 앞선듯한 초소형드론을 산개시켜 레이저빔을 발사하더니 아스팔토 파도를 통체로 잘게 토막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치 보조요리사처럼 그녀 옆에 달라붙어 도탄된 아스팔트 조각들을 쳐내는 서양장수와 동양장수.
그 신묘한 검술 솜씨는 대번에 그들의 복장이 코스프레가 아님을 증명했고, 나는 어쩌면 저 괴룡왕 바하무트를 쓸어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녀석이 블루투스 헤드셋 소녀 일행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빈틈을 찌른다면 이 싸움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다시 불붙은 용기에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고 나는 헬라이온을 타고 바하무트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또 한번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것이 그리도 분한건지 부들부들거리는 녀석의 코앞에 라스트 플레임 브레스 한방!
화르르르르르륵!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였으니 나는 '용의 인장' 스킬을 통해 하루에 한번 발동할 수 있는 이전투구의 능력으로 바하무트의 배후로 돌진중인 이자하다카의 등위로 순간이동을 해냈다. 이제 정원사의 가시검끝에 마력을 집중한 다음 관통상 너머로 수백발의 매직미사일을 꽂아넣기만 하면,
푸우우우우우욱!
"이것이 바로 마왕 데스프로그도 일격에 쓰러트린 나의 필살 콤비네이션 스킬이였어야 했는데... 쿨럭쿨럭."
"버러지만도 못한 놈! 혹시나 미성숙한 성체 드래곤을 마저 키워야할지도 몰라 살려둘려 했더니 이런 개수작을 부려? 왕에게 반역을 꾀하는 자에겐 죽음뿐이다, 드래곤 나이트! 네놈의 애완 드래곤에게 작별인사나 해두거라!!"
"쿠웨에에에엑!!"
촤아아아아아아아악!
분명 성공이 눈앞에 온줄 알았것만 바하무트의 꼬리가 드래곤 기생체로 변하더니 그대로 내 복부를 꿰뚫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임무를 마친 드래곤 기생체가 다시 주인곁으로 돌아가자 위아래로 대량의 피를 쏟기 시작한 나의 육체. '용의 인장' 스킬로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실로 치명적인 상처였다.
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헬라이온, 이자하다카 그리고 세류. 못난 주인을 만나서 너희들이 못볼꼴을 많이 보게 되는구나. 하하하, 게임 폐인에서 마왕을 물리치고 대륙을 구한 드래곤 나이트 사가는 결국 여기까지인 모양이야. 정말 최악의 베드엔딩이자 데드엔딩로군 그래. 눈을 뜨면 세이브 지점으로 돌아간다거나 하진 않...
털썩!
* * * *
'아인종 연합군을 전멸시킨 삼마왕이 어찌 저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아인종 연합군을 전멸시킨 삼마왕이 어찌 저리도 쉽게...'
'아인종 연합군을 전멸시킨 삼마왕이...'
토구대륙에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술법원진을 그리는 와중에 요정국의 궁정술법사, 파크스가 쉴새없이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통에 나는 머릿속에 환청이 들리는듯한 기분이였다. 결국 참다 못한 내가 '아가리 묵념하고 술법원진에나 집중해, 이 망할 늙다리 새끼야!'라고 소리친 뒤에는 잠잠해지긴 했지만 무슨 텔레파시라도 보내는듯 머릿속에서 저 대사가 지워지질 않는다.
자신의 대륙을 멸망시킨 마왕 셋을 내가 줄줄이 소새지마냥 한큐에 해치운게 그리도 억울하단 말인가. 억울하면 지들이 힘을 키우던가. 마력입자 농도가 특급 풍수지 뺨치는 수준이면서 인재풀이 그것밖에 안되는 대륙은 솔직히 망해도 쌌다.
아니 어쩌면 마력입자 농도가 높았기에 오히려 더 신비문명의 발달이 더뎠던걸지도 모르지. 숨만 쉬면 내공이나 마나가 쌓이는데 누가 내공심법이나 마나호흡법을 연구하고 싶어하겠는가. 그거 연구할 시간에 산에가서 심호흡을 더 많이하면 장땡이지. 하여튼간에 과유불급이라고 마력입자 농도가 너무 높아도 문제였다.
"저 아크리퍼 마왕님 귀환진의 밑그림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만..."
"그래? 그러면 퍼뜩 지구로 돌아가자고. 난 지금 당장이라도 니네 여왕님이랑 신명나게 떡치고 싶은걸 간신히 참고있는 중이란 말이야."
"그, 그것이 완성은 완성인데 반쪽짜리 완성이랄까. 세류의 여의주처럼 마나의 흐름을 집중시킬 매개체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혹시 데스버팔로, 데스크로우, 데스친칠라 마왕을 쓰러트리고 나온 뿔들중 하나를 주실 수 없을련지."
"그냥 미완성이라고 해라, 미완성이라고 해! 반쪽짜리 완성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여기 있으니까 어서 가져가."
나는 비교적 쓸모가 적을것같은 데스크로우 마왕의 뿔을 파크스에게 넘긴 뒤 히야신스 3세 여왕의 허리를 바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옆가슴이 물컹하고 와닿는게 여간 기분이 좋은게 아니였다. 사실 히야신스 3세 여왕만 지구로 데리고 간다고 치면 이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없었으나 대륙 전쟁에서 살아남은 난민들을 거두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였다.
뭐 이미 짐작했겠지만 갑자기 내 성격이 성자로 탈바꿈 한것도 아니고 전리품까지 퍼줘가며 내가 이런 착한 짓을 하는 이유는 히야신스 3세 여왕을 넘어서 히야신스 4세와 튜리파까지 냉큼 따먹기 위함이였다. 제 아무리 콧대높은 요정왕국의 공주와 여기사라고 해도 자국의 백성들을 구조한 용사에게는 미안해서라도 가랑이를 벌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
당장 히야신스 3세만 하더라도 적지않은 숫자의 요정족 난민들을 확인하고 눈에 띄게 고분고분해지지 않았던가. 필시 자신이 성노예로서의 역활에 충실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든지 난민들을 버리고 갈 수 있다라는걸 직감한 거겠지. 그리하여 나는 히야신스 3세의 풍만한 가슴을 보란듯이 주무르며 귀환진에 발을 내딛었다.